영화, 드라마, 연극

사이비 - 모처럼 본 한국 애니메이션, 뜻밖의 수작

Lesley 2013. 12. 1. 00:01

 

 

 

 

  11월에 애니메이션 '사이비' 시사회에 다녀왔다.

  사실 큰 기대 없이, 그저 시사회에 당첨되어 무료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갔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다!  묵직한 주제의식은 물론이고, 적당한 재미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상영관만 충분히 확보한다면,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중박 이상의 흥행성적은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형 제작사나 배급사가 손 댄 애니메이션이 아니라서, 상영관이 적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괜찮은 작품을 관람할 기회가 없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며, 11월 19일 시사회에서 봤던 사이비의 감상문을 이제야 써보려고 한다.

   

 

 

1. 사이비 - 절묘하게 두 가지 뜻을 담은 제목 

 

 

  애니메이션 제목을 '사이비' 라고 지은 것은 참 절묘하다.

 

 

  ◎ 우선, 사이비라는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자.

 

  사이비라는 말을 들으면 100명 중 95명 이상은 아주 당연하게 '사이비 종교' 를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사이비라는 단어는 종교라는 단어와 붙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제는 '사이비 종교' 라고 할 것도 없이, 아예 '사이비' 라고만 해도 사이비 종교란 뜻으로 통할 지경이다.

  이번 시사회에서 감독 및 작가가 관객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의 영문 제목인 'The fake' 를 두고 "원제는 사이비인데 왜 영문제목은 The fake라고 지었느냐?" 라는 질문이 나왔다.  아마도 그 질문자는 사이비를 '사이비 종교' 의 의미로만 생각하고서, '가짜, 사기꾼' 이라는 뜻의 fake란 영어단어가 한국어 제목과 동떨어졌다고 여긴 듯했다.

 

  하지만 사이비(似而非)는 원래,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似) 결국에는 아닌(非) 것, 즉 그럴 듯한 겉모습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가짜를 뜻한다. 

  지금은 사이비 종교란 용례로 많이 쓰이는 통에, 현대에 만들어진 단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단어는 '논어' 나 '맹자' 같은 유교 경전과 '장자' 같은 도교 경전에도 나올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덕과 신의가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고결하고 정의로운 척 행동하는 위선자' 를 사이비자(似而非者)라고 했고, 현재 사이비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얼핏 보면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것' 을 사시이비(似是而非)라고 했다.  또한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유교경전 해석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할 때, 상대방을 사이비라고 비난한 적도 있다. 

 

  그런 사이비의 뜻을 생각하고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사이비라는 제목이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이비' 라는 제목의 첫 번째 뜻은 '사이비 종교' 다.

 

  사이비 종교 그 자체가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아니지만, 가장 주요한 소재다.

  사이비 종교를 매개로 하여, 사기꾼, 광신도, 가정폭력을 일삼는 자 등 온갖 인간 군상의 행태를 보여주니 말이다.

 

  선량하지만 다소 어리숙하고 소극적인 젊은 목사가 막 부임해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미 광신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어쩌다가 집단으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그 이유나 과정은 영화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시골 마을이 댐 건설 때문에 수몰지구로 지정되었는다는 사실, 그에 따른 이주 및 보상금 문제가 이미 마무리 되었다는 사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 사람들 마음에 남은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는 것, 그 두 가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갈등을 겪으며 생긴 앙금, 평생을 보낸 고향을 떠나야 하는 슬픔과 허망함, 다 늙은 나이에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원래 종교라는 것이, 심신이 안정된 사람보다는 불안정한 사람에게 더 호소력 있는 법이다.  그래서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마을 사람들에게, 교회를 앞세운 사기꾼들은 비교적 쉽게 달라붙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사이비' 라는 제목의 두 번째 뜻은 선과 악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위에서 설명한 사이비라는 단어의 원래 뜻(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가짜)은, 선과 악이 뒤섞인 이 애니메이션 제목으로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진실 = 선량하고 정의로운 것', '거짓 = 사악하고 부정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그런 뻔한 공식을 뒤집는다.  사악한 자의 입에서 진실이 나오고, 선량한 자의 입에서 거짓이 나온다.  또한, 진실은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나오고, 거짓은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다. 

  

  주인공 '민철' 은, 한 마디로 쓰레기 같은 인물이다. -.-;;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허구한 날 가족에게 폭력이나 행사하면서 술과 도박에 빠져 산다.  민철의 행동거지로 보건데, 만일 '장로'(사실 진짜 장로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교회 장로로 통하고 있음.)가 먼저 민철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기꺼이 장로의 사기행각에 동참하여 한몫 챙기고도 남았을 사람이다.

 

  그런데 민철이 우연히 장로의 정체를 알게 되어, 사람들에게 장로가 사기꾼이라고 알리게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 장로가 세운 교회에 푹 빠진 상태다.  게다가 한 동네에 살다 보니, 민철의 못된 행동거지를 뻔히 알고 있다.  그러니 누구도 민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래서 평소 행동거지가 중요한 것임!)

  만일 민철이 마을 사람들과 경찰에게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더라면, 비록 민철이 망나니로 소문난 사람이라도, 일이 좀 다르게 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성격 급하고 포악한 민철은 자신의 평소 행실은 생각 안 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에 길길이 날뛸 뿐이다. 

 

  참 우습고도 얄궂은 것이, 민철이 장로가 사기꾼이라고 '진실' 을 말하고 장로의 사기행각을 밝히려하는 '옳은 행동'이 결코 선하고 정의로운 이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해서, 이 망나니 아저씨는 '이웃 사람들이 사기꾼에게 당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또는 '지명수배 중인 범죄자를 보면 신고하는 게 선량한 시민의 당연한 의무니까' 같은 올바른 동기에서, 장로 무리와 맞선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장로와 시비가 붙어 경찰서까지 끌려간 일에 원한을 품고, 장로에게 앙갚음을 할 의도였다. (그런데 장로가 나쁜 놈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시비는 민철이 먼저 걸었음. -.-;;)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장로의 정체를 말했건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멍.청.한. 마을 사람들과 쓸.모.없.는. 경찰들' 에게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동분서주한다.  그렇게 민철이 자신의 감정에만 사로잡혀 좌충우돌하는 통에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그리고 선인인지 악인인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목사' 가 있다.

  성품만 생각한다면, 이 목사는 분명히 선한 사람이다.  특히, 가족에게 못할 짓 하면서도 일말의 가책도 없는 민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시골 사람들을 꾀어 사기를 치려는 장로, 이 두 사람과 비교한다면 이 목사는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성품' 말고 '행동' 으로 따지자면, 목사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물론, 처음에는 분명히, 목사가 장로의 의도를 알지 못 한 채 사기행각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중에 모든 일이 명백히 밝혀지기 전까지, 목사는 장로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장로는 가짜 장애인으로 가짜 기적을 만들어내며, 가짜 생수를 판매하기까지 한다.

  처음에 목사는 그만 두라고 설득에 나선다.  하지만 "이게 다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다.  무식한 시골 사람들이 언제 성경을 다 읽고 제대로 신앙심을 갖겠느냐?  이런 것이라도 보여줘야 신앙심을 갖게 될 것 아니냐?" 라는 장로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오히려 설득당한다.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도 속으로는 수상쩍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초등학생도 뻔히 알만한 상황에, 배울만큼 배운 어른이 까맣게 속아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 끝부분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사건 때문에 다른 교회에서는 일을 할 수 없어서, 뻔한 진실 앞에 애써 눈을 감은 듯하다.  법률용어를 끌어다 쓰자면 '미필적 고의' 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목사는 민철과는 정반대로, '순수하고 옳은 의도' 를 갖고 있지만, '거짓' 을 말하며 사기행각을 묵인하는 '나쁜 행동' 을 저지르게 된다.

  이 착한 목사는 분명히 마을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한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사기행각을 중단시킬 수도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에 한 걸음 물러나 버린다.  장로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경찰에게 거짓말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열렬히 존경하는 마을 사람들까지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동기와 결과의 좋고 나쁨이 뒤섞여있다.

  바로 그 점이, 그림체만 봐서는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 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며 장점이고, 이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보다 더 사실적으로 만들어준다.    

 

 

 

2. 거짓이 주는 희망, 진실이 주는 절망

 

 

  이 애니메이션이 관객에게 던져주는 화두 중 하나가 인생의 아이러니다.

  위에서 말한 '선인이 거짓을 말하고 악인은 진실을 말하는 상황' 과 '나쁜 의도에서 진실이 나오고, 좋은 의도에서 거짓이 나오는 상황' 자체도, 사실 우리가 살면서 수시로 부딪치게 되는 아이러니다.  그저 이 애니메이션 속 사연처럼 엄청난 사연이 아닐 뿐이지,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런데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있으니...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거짓이 희망을 안겨주고, 진실이 오히려 절망을 준다.  그리고 장로 일당이 하는 언행이 거짓임을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람도 있다.

 

  '영선' 은 민철의 딸이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끔찍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채 딸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 하는 어머니...  영선은 그런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힘들게 주경야독을 했다.  마침내 대학에도 합격하고 등록금도 모아 희망에 부풀어 있던 때, 아버지란 사람은 그 피 같은 돈을 도박판에 쏟아부어 딸의 미래를 망쳐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눈물로 항의하는 딸에게 적반하장식으로 욕설과 폭력을 퍼붓기까지 한다.  절망에 빠진 영선에게, 교회에서 만난 목사의 다정한 말은 너무 큰 위로가 되었고, 등록금을 마련해주겠다는 장로의 제의는 너무 달콤했다.

  아마도 영선 역시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장로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딸 같은 아이를 노래방 도우미로 쓰지는 않을테니까...  사실, 너무 뻔한 일 아닌가?  그런데도 영선은 장로가 하라는대로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장로 일당에게서 빼내주려는 아버지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사이비 교회는 영선에게 한 줄기 희망(비록 거짓 희망이지만)을 주었는데, 정작 그 거짓 껍데기를 벗겨내려는 아버지는 영선을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퍼마켓 부부' 의 사연도 인상적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한 때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고 민철과 어울려 파락호 짓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사는 민철과는 달리, 이 남편은 마음을 잡고 좋은 가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는 폐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고, 남편은 그게 젊은 시절 자신이 아내를 고생시켰기 때문인 것 같아서 무척 미안해 한다.

  이 남편은 다른 마을 사람과는 다르게, 이주 보상금을 전부 기도원 설립을 위한 헌금으로 내라고 하고 생수를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파는 교회의 행태에, 분명히 꺼림칙함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아내가 하자는대로 한다.  그 교회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알면서도 속아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민철이 찾아와 장로 일당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울 때, 남편은 아내의 시신을 앞에 두고 너무나 담담한 말투로 말한다.  "그게 사기일 리가 있느냐?  그게 사기라면, 이 사람(아내)의 이 편안한 얼굴은 뭐란 말이냐?" 

  어떤 면에서는 민철의 딸 영선과 비슷한 캐릭터다.  사실은 그 교회에서 말하는 희망이 거짓임을 알면서, 절망적인 현실 대신 거짓 희망에 '자발적으로' 속았으니 말이다.

 

 

 

3. 관객의 질문에 대한 감독과 작가의 설명

 

 

 

무대 위의 두 사람 중, 검은색 점퍼 입은 이가 '최규석 작가' 고, 황토색 점퍼 입은 이가 '연상호 감독' 임.

 

 

  이 전에 갔던 시사회에서는, 감독과 관객들의 대화 시간이 따로 있어도 질문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관객들이 연달아 질문을 하는 통에, 분위기가 후끈했다.  관객 중에 연상호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 을 보고 반해서 이 시사회 신청을 한 팬들이 많은 듯했다.  나처럼 '무료 영화 관람' 이라는 데 초점 맞추고 시사회 신청한 사람이 좀 무안할 지경이었다. ^^;;  

 

  연상호 감독의 답변 중 목사에 대한 반전에 관한 설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 끝부분에서 목사에 대한 반전이 일어난다.

  나는 그 부분을 '근본은 착한 사람인 것 같았던 목사조차 결국에는 악마성을 갖고 있었다.' 정도로 이해했다.  마치 영화 '프라이멀 피어' 에서 '에드워드 노튼' 이 맡았던 역할처럼, 이 목사란 사람도 내부에 선과 악을 극단적인 형태로 품고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경우, 그 반전에 대한 복선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서 반전이 참 뜬금없게 된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내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해석이었다. ^^;;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떤 관객이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해서, 운 좋게도 연상호 감독의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감독은 반전 부분에서 목사의 행동이, 목사 스스로의 입장에서 보자면 '악' 이 아니라 오히려 '선을 극대화 한 상황' 이라고 했다.  장로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사기를 칠 것이고, 민철 역시 계속해서 가족을 괴롭힐 것이 분명하다.  특히나, 민철이 딸 영선을 학대하는 것은, 목사의 과거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악몽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악을 없애고 선을 이루기 위해, 목사가 그런 극단적인 짓을 벌였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목사의 행동은 결국 범죄다.  하지만 어쨌거나 목사의 의도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식으로 자기의 인생을 망쳐서라도 세상의 거대한 악을 줄이려 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감독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목사의 행동은 범죄라는 법률적인 문제 말고도 큰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목사야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으니, 그 일로 어떤 결과를 맞게 되더라도 스스로 감수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목사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을 소지도 충분하다.  사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죄값을 받지 않고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나가는 것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큰 분노를 느낀다.  만일 목사가 혼자서 일을 벌였더라면, 그 일이 범죄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고, 많은 이들이 심정적으로는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래,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너무 많아.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차라리 없어져야 해.  그 목사 정말 대단한 일 했네!  아주 멋져!' 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목사가 시키는대로 움직인 그 지적장애인은 도대체 무슨 죄냐?  그 지적장애인 입장에서 보자면, 천국을 내세워 마을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 장로나, 천국을 내세워 자신을 범죄에 끌어들인 목사나, 결국 그 놈이 그 놈이다. -.-;;

 

 

이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민철' 의 모델이 된 중견배우 장항선. ^^

 

 

  최규석 작가의 답변 중에서는, 주인공 민철의 모델이 누구인지 하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관객 중에서 민철이란 인물을 그리면서 따로 모델로 삼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사실, 그 질문을 듣고 별 게 다 궁금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최규석 작가에게서 특별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따로 모델은 없고, 거칠고 포악한 성격을 표현하기에는 그렇게 생긴 인물이 적합할 것 같았다.' 정도의 답을 예상했을 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말 모델이 있었다...! @.@

  민철의 모델은 바로 중견배우인 장항선이다...!  특히 민철의 머리 모양과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걷는 모습을 장항선에게서 따왔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듣고 보니, 포스터 속 민철의 모습과 장항선의 모습이 많이 비슷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그 동안 드라마에서 본 장항선의 모습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특별히 잘난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을 보낸, 그러나 가족이나 동료 또는 이웃에 대해 따스한 잔정을 품고 있는 선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장항선의 모습을, 착한 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낼 수 없는 인물인 민철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것 역시 아이러니라면 아니러니다... ^^)

 

 

 

4. 이런 괜찮은 작품 관람할 기회 좀 넓혀주시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내가 가진 편견 중 하나는,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내용이 어설프다는 점이다.

  이 '사이비' 는 그런 내 편견을 뜯어고쳐준 작품이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관람 리스트에서 제외하지는 않게 될 듯하다. 

 

  그런데, 이 포스트 앞부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상영관이 너무 적다.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이라고 소개를 해준다한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관람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  그래도 영화관이 많은 서울의 경우에는, 지금도 11 곳에서 상영 중이다. (11곳을 많다고 해야 하는 이 기막힌 상황... -.-;;)  하지만 서울 다음으로 상영관이 많은 인천-경기도조차, 처음에는 10군데에서 상영하더니 개봉 열흘이 지난 지금은 상영관이 하나도  없다. -0-;;  그리고 그 밖의 지역(충청, 전라, 경상, 제주 등)은 처음부터 상영관 숫자를 센다는 게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상영관이 몇 군데 안 되더니, 이제는 아예 없다.  ㅠ.ㅠ

  정말이지, 우리나라에서 예술영화니 저예산영화니 하는 영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무조건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

 

  제발 괜찮은 작품 관람할 기회 좀 넓혀주기 바란다...!

  특정 영화들만 상영 기회를 독점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관객들의 관람 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배우들이나 제작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폭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에 걸릴 수 있는 영화 숫자가 줄어들면, 소위 잘 나가는 소수의 스타들만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영화 제작편수도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영화인들과 관객 모두를 위해 저예산영화니 예술영화니 하는 영화들의 사영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