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간송미술관 2013 가을 전시회 진경시대 화원전(眞景時代 畵員展) / 기타

Lesley 2013. 10. 22. 00:01

 

  지난 주에 간송미술관의 2013년 가을 전시회에 다녀왔다.  

  '진경시대 화원전(眞景時代 畵員展)' 이란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지난 13일에 시작했고 27일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그러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고즈넉한 동네 성북동 구경 겸하여 한 번 가보시기를...

 

 

  다만, 오늘 여기에서는 전시회에 나온 그림보다는 '관람 분위기' 쪽에 방점을 찍고 포스팅하려 한다.

 

  첫째, 인상적으로 본 그림 중 과거에 이 블로그에 소개한 것들이 제법 많다는 것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가 진경시대 관련한 것이다 보니, 진경시대의 풍속화를 주제로 했던 2011년도 가을 전시회와 많이 겹칠 수 밖에 없다.  특히 2층 전시실 가운데를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던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은, '미인도' 가 없는 것만 제외하면 2011년도 가을 전시회와 같다고 봐도 될 정도다.

 

☞ 간송미술관 2011 가을 전시회 - 풍속인물화대전 (上)(http://blog.daum.net/jha7791/15790842)

    간송미술관 2011 가을 전시회 - 풍속인물화대전 (下)(http://blog.daum.net/jha7791/15790846)

 

  둘째, 이번에 처음 본 그림 중에 내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들이 있기는 한데, 그 두 그림의 이미지를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서 여기에 소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ㅠ.ㅠ

  바로 신원(信園) 이의양(李義養)의 그림 두 폭이다. (그러고 보니 진경시대 화가들은 왜 그렇게 호에 園자를 많이 넣었을까...  혜원, 단원, 신원...  이 시대 화가들이 동산을 엄청 좋아했나...)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연경(현재의 베이징)에 가서 본 이국적인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무척 이채로웠다.  연경에서 본 이슬람 국가의 사신(위구르 또는 중앙아시아 국가였을 듯함.)과 태국 사신의 모습을 그린 '회회섬라사신(回回暹羅使臣 : 이슬람, 태국 사신)' 과 인도 또는 그 근방 국가에서 온 이들이 연경에서 자기 나라의 유희를 선보이는 모습을 그린 천축추천(天竺鞦韆 : 천축 그네)이 그것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그림인지, 인터넷을 뒤져봐도 이미지가 없어서 못 올릴 뻔했는데...  다행히도 인터넷 벗님께서 '회회섬라사신' 을 구해주셨다. ^^ 

 

 

왼쪽의 뾰족한 금색 모자를 쓴 이들이 섬라(暹羅 : 태국) 사신임.

오른쪽의 털모자 쓴 이들은 회회(回回 : 이슬람족, 아마도 위구르 또는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쪽의 이슬람 사람들인 듯함.) 사신임.

 

  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 이외의 다른 국가와는 직접적인 교류가 드물었다. 

  그러니 이의양의 눈에 저 외국인들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조선 사람과는 다른 옷차림을 그리면서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렸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섬라 사람들의 모자는 참 세밀하게도 남겼다.

  사실, 현재의 우리나라만 해도 2000년대 이전에는 외국인 보는 게 드문 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단체로 경복궁이나 중앙박물관 같은 곳에 갔다가,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 보면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초등학교 꼬꼬마들이 "Hello!", "I love you!" 등 TV 같은 데서 귀동냥으로 들은 영어 외치며 손 흔들고... ^^ 

 

 


 

 

  자, 이제부터 본론이다... ^^

 

 

  ◎ 사람들이 바글바글, 북적북적한 간송미술관 관람의 추억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과거 속으로 사라진다...

 

  이번에 간송미술관에 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가야 한다.

  원래도 1년에 두 차례, 각각 2주일씩만 열리는 간송미술관 전시회다.  그래서 갈 때마다 줄을 서야 하고, 사람에 밀려 느긋이 구경을 할 수가 없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대단했다!  지난 주에 간 것이 4번째였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싶더니만 이번에는 정말 엄청나게도 몰렸다.  솔직히, 전시회에 나온 그림보다는 사람들 바글거렸던 것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다. ^^;;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하도 지루해서 찍어본 사진임.

(왼쪽) 내 바로 앞쪽에서부터 간송미술관 정문 안까지 바글바글~~

(오른쪽) 정문에 들어서서 찍은 사진인데, 종교인들까지 인파에 몸을 던졌음. ^^

 

 

  이 날 나와 내 친구 딴에는 서둘러서 갔다.

  10시부터 관람객을 받는다고 하기에, 10시 안 되어 도착하면 잠시만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쩌다 보니 조금 늦어져서 10시 6분에 도착했는데...  도착해보니, 이미 우리 앞에 저런 줄이 쭉 늘어선 상태였다. -.-;;

 

  함께 간 친구는 처음으로 간송미술관을 가게 된 것이라서,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간송미술관 가서 5시간을 줄섰다가 겨우 들어갔다는 글을 쓴 것을 봤다고 한다. (헉...! 5시간...! @.@)  내가 "5시간은 너무 오버다.  제일 붐비는 주말에도 2시간 정도 기다린다는데, 웬 5시간이냐?" 라고 핀잔을 줬는데...

  이 날 상황 보니까, 주말이며 전시회 시작하는 날인 13일에 간 사람이라면 정말 5시간을 기다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시회 때마다 사람 붐비는거 생각해서 항상 평일에만 갔는데, 이전에는 평일에 가면 30~40분 기다리고서 곧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날은 평일 아침부터 갔는데도 1시간 반 넘게 기다렸으니... ㅠ.ㅠ

  기다리는 동안 일찌감치 와서 입장한 관람객들이 나오는데, 상당수가 어디 초등학교에서 온 것 같은 교사와 학생들이었다.  친구와 나는 "쟤들은 언제부터 와서 줄섰기에 벌써 다 보고 내려가?", "아침 8시쯤 왔었나 보다." 하고 소곤거리고... ^^;;  

 

 

나중에 관람 끝내고서 간송미술관을 나서며 찍은 사진임.

(왼쪽) 아침보다 줄이 더 길어져서, 저기 인도 맨 끝까지 바글바글~~

(오른쪽) 사진상으로 보이는 인도 끝에서 왼쪽으로 꺽어진 인도로도 사람들의 행렬이 쭉 이어짐.

 

 

  1시간 반도 넘게 다리 아프게 서있다가 겨우 입장해서, 다시 1시간 넘게 사람들에 밀리며 관람을 했다.

  밖에서 줄섰을 때 원없이 본 사람들을, 1층 전시관에서도 2층 전시관에서도 질리도록 또 봤다. (여기를 봐도 사람, 저기를 봐도 사람~~ 사람, 사람, 또 사람...!! -.-;;)

  전에 갔을 때도 사람이 워낙 많아서 느긋하게 관람하지 못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 시간에 쫓기듯이 관람하지는 않았다.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아직도 입장 못 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바로 위의 사진이 낮 1시 넘었을 때의 상황이었음.), 간송미술관 측에서도 어지간히 초조했나 보다.  전에는 질서유지 정도에만 신경썼는데, 이번에는 실내에서 몇 분에 한 번씩 "가운데 분들, 움직여주세요~~" 라는 말을 외쳐가며 사람들에게 빨리 보라고 재촉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했기에, 고분고분 지시에 따랐는데...  그 와중에 왜 천천히 못 보게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여보슈!  혼자만 볼거유?  밖의 상황 좀 보슈~~  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단 말이오~~!!!)

 

  이번에 유별날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 이유가, 현재의 간송미술관 건물에서 하는 전시회가 올해로 끝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 동안 사설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 높은 그림들을 보관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많았는데, 그에 대한 해결책이 나온 모양이다.  내년에 동대문 어디에 개관하는 디자인미술관에서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3년간 전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새로 짓는 간송미술관 건물로 소장품을 옮긴다고 한다.

  비록 관람하기 무척 불편한 환경이기는 하지만, 1년에 두 차례 저렇게 북적북적 관람하는 것이 간송미술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낭만 어린 특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다리 아프게 서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네.' 하는 마음으로 더 몰려든 것 같다. ^^

 

 

  ◎ 길상사와 성북천의 좋은 글귀

 

  간송미술관을 나와 점심을 먹고서, 길상사로 갔다.

  사실은 간송미술관에서 기다리는 시간, 관람하는 시간 합쳐서 3시간 넘게 서있었던 것 때문에,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3시간 넘게 걸었다면 덜 피곤했을 것임.  거의 움직이지 못 하고 서있으려니 그게 더 힘들었음.)  그런데 친구가 점심 먹고나니 너무 배가 부르다고, 과식한 것 소화 좀 시키자며 길상사에 가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 길상사에 정말로 '소화시키려고' 갔다.  이 친구 말고 지금까지 길상사에 함께 간 사람이  두 명이 더 있는데, 그 두 사람은 서울에 이런 조용한 절이 있느냐며 길상사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며 찬찬히 구경을 했더랬다.  그런데 이 친구는 쌩하니 한 바퀴 돌더니만, 다 봤다고 그만 내려가잔다. -.-;; 

 

 이 친구가 원래 감성적인 면이 좀 부족한 편이기도 하지만, 길상사에 때를 못 맞춰 간 탓도 큰 것 같다.

 그 동안 길상사에 나 혼자도 가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가기도 했다.  그런데 항상 봄, 여름, 가을이 각각 절정을 맞는 시기에 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  일부러 그렇게 때를 맞춰 간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으니, 운이 참 좋았다.  길상사의 봄 풍경과 가을 풍경은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 길상사(吉祥寺)(http://blog.daum.net/jha7791/15790814)
   길상사(吉祥寺)의 단풍 구경하세요!(
http://blog.daum.net/jha7791/15790845)

 

  그런데 이번에 갔을 때는, 가을은 가을이되 어설픈 가을이었다. ^^;;

  길상사 안의 많은 나무에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아 먼저번처럼 예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름처럼 짙은 녹색으로 강렬한 느낌 주는 것도 아니고...  뭔가 좀 헐벗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한 가지 건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솔길 나무에 걸려있던 법정 스님의 잠언이었다. 

 

 

(위) 살아가면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그게 어디 쉽나...

(아래) 아무래도 살생 금지하는 사찰에서 살아 그런가, 사람들이 다가가 사진 찍어도 도토리만 열심히 먹던 녀석... ^^

 

 

  법정 스님의 잠언처럼, 보통은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을 해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말을 괜히 입 밖에 내어서 후회하고, 또 어떤 때에는 마땅히 해야 했던 말을 제때에 하지 못 해서 후회하기도 하는, 나 같은 무지몽매한 중생은 어쩌면 좋단 말이오...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 -.-;;)

 

 

젊은이의 패기가 팍팍 느껴지는 성북천 위 보도의 팻말. ^^

 

 

  길상사를 나와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빵 좀 먹고서, 성북천을 끼고 좀 걸었다.

  그런데 성북천 위의 보도에 일정 간격으로 나무 팻말이 쭉 붙어 있었다.  길상사에서 본 법정 스님의 잠언처럼 뭔가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글도 있고, 위의 사진 속 글처럼 재미있으면서도 글쓴이의 패기가 철철 넘쳐흐르는 글도 있었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어떤 학교 교실에 걸려있는 급훈 '포기는 배추 셀 때에나 쓰는 말이다.' 이후로, 가장 재미있으면서 보는 이에게 힘도 팍팍 주는 글이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