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덕수궁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下)

Lesley 2012. 9. 17. 00:03

 

16. 채용신의 <십장생도>(1922)

 

실물은 대규모인데, 가로로 긴 작품이라 이 정도 크기로 밖에 못 올리는 게 무척 아쉬움. 

 

  이 그림을 그린 채용신은 뜻밖에도 무과에 급제해서 관직 생활을 한 무인이다.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그림 중 작가 미상인 경우를 제외하면, 도화서 화원 같은 정식 화가 또는 관료나 학자 같은 문인 계층의 사람들이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무인 출신으로 그림을 그리다니, 더군다나 취미 수준의 그림도 아니고 전문적인 화인들도 평생동안 꿈만 꾸다가 못 하는 어진화사(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까지 맡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칼을 휘둘러 적을 무찌르는 무인과 붓을 휘둘러 그림을 그리는 화인 사이에는, 우리 은하에서 안드로메다 은하 만큼이나 먼 거리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일종의 편견인가... ^^;;

 

  그리고 한 가지 또 특이하고도 재미있는 사실은, 유명 탤런트인 채시라가 채용신의 5대손이라는 점이다! ^^

  이 할아버지의 예술혼과 무예 실력이 후손에게 전해져서, 채시라가 연기를 잘 하는 것은 물론이고 활쏘기(사극 출연 중 필요해서 활쏘기를 배웠다고 함.)도 빨리 배웠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있다. ^^ 

 

  이 그림을 직접 본 사람은 동양화와 서양화가 뒤섞여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분명히 이 그림은 비단에 그린 수묵담채화이다.  하지만 서양화처럼 원근법과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우리가 동양화 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동양화들과 사뭇 다르다.  게다가 십장생 하면 흔히 떠올리는 동물 말고도 원숭이, 앵무새, 공작새 같은 동물들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이 십장생도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아본 다른 그림(주로 고위 관직자들의 초상화)을 봐도, 그렇게 서양화 기법을 많이 섞어 그린 것이 보인다.

  채용신이 무과에 급제한 때가 흥선대원군이 하야한 직후였다.  흥선대원군이 물러서면서 조선에는 외래문물이 점점 빠르게 유입되었고, 채용신 역시 외국에서 들어온 서양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17.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1960)

 

초, 중, 고등학교 미술교과서마다, 이중섭의 황소와 함께 꼭 등장했던 그림임. ^^

 

  이 그림은 캔버스에 그린 유채화인데, 얼핏 보면 모자이크 같다.

  독특한 붓질 덕분에 그림 전체의 질감이 거칠어서, 마치 화감암으로 된 벽 위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독특한 질감이 한국적인 정서로 인식되어, 박수근의 그림은 한국 그림에 관심 있는 외국 수집가들에게 무척 인기있다고 한다.

  그림이 모자이크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림에 바짝 다가서면 그림 속 사람들과 배경이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뒤로 물러서서 감상해야, 바닥에 앉은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다리 사이에 앉은 손자, 그리고 그 뒤편의 사람들이 보인다.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다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점점 또렷해지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

 

  내가 박수근이란 화가에 관심 갖게 된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사실, 오랫 동안 박수근이란 화가는 중.고교 시절 미술 필기시험 때 반드시 외워야 하는 화가 정도의 의미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박완서의 수필과 자전적 소설을 읽으면서, 박수근이란 인물에 대해 제대로 된 관심을 갖고 되었다.

  박완서는 젊은 시절에 미군기지 내 초상화 가게에서 통역일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무명화가이던 박수근도 그 곳에서 초상화 그리는 일을 했다.  당시 박완서는 다른 화가들(사실 화가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대부분 영화관의 간판 그림 그리는 일 하던 사람들이었음.)과 여러모로 다른 박수근에게 특별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훗날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나목' 이 어떤 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정식 소설가로 등단했다.

 

  다른 화가들도 그렇듯이, 박수근도 생전에는 가난에 시달린 무명화가였다가 세상을 뜨고서야 유명해졌다.

  생전에는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졸업 후에 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가난에 시달리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 박수근이 세상을 뜨고서 엄청나게 유명해지며 그의 그림 한 점이 45억원에 팔릴 정도가 되었다니, 정말 얄궂은 일이다.

  영화 '타이타닉' 에서 여주인공(케이트 윈슬렛)의 약혼자가 했던 '화가가 죽으면 그림 가치가 뛰어오른다.' 는 대사가, 영화 속과 다른 의미로서 정말 실감난다.

 

 

 

18. 장욱진의 <마을>(1956)과  <까치>(1958)

 

<마을> 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추상화보다도 더 난해한 추상화임.

(놀랍게도 이 그림은 추상화임! -.-;;)

 

 

<마을> 보다는 덜 당황스럽지만, <까치> 역시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임. ^^;;

 

  사실 장욱진의 그림은, 내가 이번 전시회 감상문에 올리는 다른 그림들과는 좀 다르다.

  이번 감상문에 올리는 약 20점의 그림은 전시회에서 본 100여점의 그림 중 인상이 깊은 것으로 추려낸 것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장욱진의 그림은 좀 특이한 점 때문에 인상이 깊었다.  이번 전시회가 구한말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의 작품을 보이는 자리라서 추상화는 별로 없는데, 그 몇 안 되는 추상화 중에서도 장욱진의 작품은 정말 독특했다.

  보통 추상화 하면, 그림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삼각형, 사각형, 원 등 온갖 도형화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그림은 추상화인데도 추상적인 이미지는 없고, 대신 초등학생이 그렸음직한 구체적인 형상이 보인다.  동심을 주제로 한 추상화이기 때문에 그렇다는데...

  솔직히 추상화 쪽으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보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니 그런 평가가 따랐지, 내가 그린 그림이라면 똑같이 그린 그림이라도 유치하다는 평 밖에 못 들었겠다.' 하는 느낌 밖에 안 들었다. ^^;;

 

 

 

19. 진환의 <천도와 아이들>(1940년대)

 

바로 위에 소개한 장욱진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동심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임.

 

  마포에 크레용으로 그려냈다는 이 작품도, 장욱진의 그림처럼 나를 좀 당황하게 했다.

  그래도 장욱진의 그림과 다른 느낌도 좀 받기는 했다.  벌거벗은 아이들이 과일(그림의 제목으로 보아 천도복숭아겠지...)을 따고 있는 모습 때문에 그런지, 이 그림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20. 이중섭의 <부부>(1953)

 

이 그림은 몇 년 전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 근대를 묻다' 에도 전시되었던 작품이라고 함.

(하지만 그 전시회를 두 번이나 관람한 나는 어째 난생 처음 보는 듯한... ^^;;)

 

  위에서 소개한 박수근과 함께 우리나라 미술 교과서마다 꼭 나오는 이중섭의 그림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많은 예술가들이 생전에는 인정을 못 받고 가난에 시달리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죽고나서야 유명해진다.  이중섭 역시 그런 불행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이중섭의 아내는 일본인이었는데, 한국전쟁 중 극심한 가난 때문에 처자식은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이 그림은 이중섭이 아내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작품이다.  위의 푸르스름한 날개의 새가 수컷이고, 아래의 붉으스름한 날개의 새가 암컷인데, 공중에서 만나 손을 맞잡듯이 서로의 날개를 상대방 날개에 대고 입맞춤을 하는 광경이다. 

 

 

  다만 한 가지 황당했던 사실...

 

  나는 그림 속 이중섭 부부를 상징하는 저 한 쌍의 새를 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그림을 보면서, 해오라기난이라는 난초를 떠올렸다. 이 난초의 꽃은 새하얀색인데, 그 모양새가 날개를 펼친 해오라기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독특하게 생긴 꽃의 모양만으로도 눈길이 가는데, 꽃말이 '꿈속에서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습니다.' 라고 해서 더 인상적이다.

  학이나 해오라기나 하얀색 새이기는 마찬가지고, 그래서 아내와의 재회를 꿈꾸며 그린 저 그림 속 한쌍의 새를 학이 아닌 해오라기로 봐도 되겠구나 싶었다.  해오라기난의 꽃말에 담긴 의미를 함께 더해서 말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림 속 두 마리 새는 학이 아니라 닭(!)이라고 한다...! -0-;;

  닭이라는 동물에 딱히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닭이라는 동물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많이 당황스러웠다. (흔히 머리 나쁜 사람 보고 '닭대X리' 라고 하니까... -.-;;)  왜 하필이면 자기네 부부를 닭으로 나타냈 것인지, 지극히 평범한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부부간의 그리움과 애정을 그려낸 작품에 대한 경외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ㅠ.ㅠ 

 

 

 

21. 김환기의 <산월>(1960)

 

전체적인 색조가 푸른색이어서 좀 차가우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줌.

 

  설명판에는 이 그림이 산, 달, 땅, 인간을 묘사한 것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내 눈에는, 잔물결조차 없는 고요한 바다 위로 떠오르는 푸른 태양이 먹구름까지 헤쳐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석은 보는 사람 마음대로~~ ^^)  대체적으로 푸른색을 썼고 그 외의 검은색과 붉은색이 조금 있을 뿐이며, 그림의 대상이 무척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몇 가지 안 되는 색으로 몇 가지 안 되는 대상을 그려서, 오히려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깔끔하고 강렬한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 그림을 그린 김환기와 그 부인 변동림의 사연 쪽에도 눈길이 간다.

  지난 포스트에서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을 소개하면서, 이상과 그 부인 변동림의 사연도 짤막하게 적었다.  ☞ 덕수궁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中) (http://blog.daum.net/jha7791/15790929)  그런데 이 변동림은 첫 남편 이상이 세상을 뜨고 몇 년 후에 김환기와 재혼했다...!  첫 남편 이상과의 결혼 생활은 이상의 기벽 때문에 겨우 몇 달 만에 파탄났지만, 두번째 남편 김환기와는 평탄하게 해로했다. 
  즉, 변동림이 인연을 맺었던 두 남자는 각각 한국 문학계와 한국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었으니, 식민지라는 상황에 구습과 신문물이 뒤섞였던 특수한 시대를 살았던 이 변동림이라는 신여성도 나름 특별하면서도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셈이다.

 

 

 

덧붙임

 

  최근에 친구와 시내에서 만나 다시 한번 덕수궁에 갈 일이 있었다.

  밥 먹고나서 산책도 할 겸, 아직 이 전시회를 못 본 친구에게 관람도 시켜줄 겸, 문제의 '대동아전쟁' 관련 문구를 정말 수정했는지 확인도 할 겸 말이다. (나 은근 뒤끝 있는 성격? ^^;;)  그런데 덕수궁은 관람이 가능했지만, 덕수궁미술관은 무슨 내부수리 중이라고 했던가 전시회 준비라고 했던가... 하여튼 관람이 불가능했다.  스마트폰으로 그 자리에서 당장 검색해보니 그 날 관람불가라는 공지는 없던데,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애초에 12월 초까지 전시회를 한다고 했으니(※ 10월 28일에 끝나는 것으로 변경되었음...!), 아마 그 때까지는 계속해서 할 것이다.  이런 대규모 전시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많지 않으니, 관심 있는 이들은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쾌적한 가을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좋은 작품으로 눈을 정화시키고, 이왕 나선 김에 덕수궁도 한 번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가 덕수궁 돌담길, 성공회 성당. 정동교회, 배재학당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