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간송미술관 2012 봄 전시회 - 진경시대(眞景時代)회화대전

Lesley 2012. 5. 22. 00:22

 

  5월 13일에 시작된 간송미술관 봄 전시회인 '진경시대 회화대전' 에 다녀왔다.

  다만, 이번 후기는 과거에 올린 간송미술관 전시회 후기와는 다르게, 작품 위주의 후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전시회 분위기라든지 하는 부차적인 면에 치중해서 써볼까 한다. ^^;;

 

  ☞ 간송미술관 2011 봄 전시회 -  사군자대전(四君子大展) (http://blog.daum.net/jha7791/15790813)

      간송미술관 2011 가을 전시회 - 풍속인물화대전 (上) (http://blog.daum.net/jha7791/15790842)
      간송미술관 2011 가을 전시회 - 풍속인물화대전 (下) (
http://blog.daum.net/jha7791/15790846)

 

 

 

◎ 점점 늘어나는 관람객

 

  이번 전시회와 지난 전시회의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가 관람객 숫자였다.

  원래도 1년에 두 차례(매년 5월, 10월), 그것도 각각 2주일씩만 일반인에게 소장 작품을 선보이는 간송미술관의 전시회라서, 전시회 기간 내내 관람객이 북적거린다.  그런데 몇 년 전 신윤복과 김홍도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 이 방영된 때에, 때맞쳐서 간송미술관에서 신윤복의 여러 작품을 전시했다.  이 일로 간송미술관이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졌다.  이번이 세번째로 간송미술관에 간 것이었는데, 갈 때마다 관람객이 늘어나는 게 눈에 확 띄일 정도다.

 

  전에도 관람객들이 몇 백 미터씩 늘어서서 한참을 기다리는 풍경이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진풍경은 보통 주말에나 볼 수 있었고, 평일에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여기서 한산하다는 의미는 적.어.도. 줄은 안 서도 된다는 것이지, 전시회장 내부에 사람이 적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님. ^^;;)  하지만 이번에는 평일 낮 시간이건만 줄까지 서서 기다려야 했다...! -0-;;  전시회장 입구에서 간송미술관 정문(혹은 대문? ^^)까지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줄서있는 풍경은, 차라리 장관이었다. ^^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한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간송미술관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전시회장 들어가는 길목에 공작새 몇 마리가 있는 큰 우리가 있다.  전에 갔을 때는 조용한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뜬금없이 큰소리로 울어댔다.  꼭 어린 아이의 비명처럼 들려서, 공작새가 울 때마다 줄선 사람들이 기겁하곤 했다. ^^;;

  평소에는 관리인원과 연구인력이나 드나들던 곳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니, 공작새들도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했는지, 공작새가 날카롭게 울 때마다 깜짝 놀라면서도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얼른 보고 갈게~~' 하며 공작새에게 농담을 했고... ^^

 

  간송미술관 측에서는 안전사고가 날 것을 걱정해서인지, 관람객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히 감상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인지, 출입인원을 제한했다.

  한번에 20명 정도만 들여보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20명 정도를 들여보내는 식이었다.  줄서서 기다릴 때에는 왜 빨리 안 들여보내주나 답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가 생각해냈는지 참 좋은 생각이었다.

  작년 전시회 때는 줄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번보다는 관람객이 적었건만, 전시회장 안은  오히려 이번보다 훨씬 복잡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미술 전시회장이 아니라 동네 재래시장 분위기였다. ^^;;  하지만 이번에는 적절하게 내부에 들어가는 인원을 제한한 덕에, 지난번보다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그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관람객이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무언가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마침 올해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상 뜬지 60주년 되는 해라는데, 간송미술관이 개인 소유라고는 해도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서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점점 높아지는 관람문화

 

  전에 두 차례 간송미술관 전시회를 가서도, 요 근래 우리나라 관람문화가 부쩍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전에는 미술 전공자들이나 관심 갖던 전시회를, 미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들도 찾아가서 열심히 관람한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작년 간송미술관 전시회 때, 겨우 첫돌 지난 듯한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온 젊은 엄마나,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발걸음 떼어놓는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시회장이 지난번보다 좀 한적해서 그런지, 다른 관람객들이 주고받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일행이 아닌 게 분명한데도, 서로 그림 위에 써진 한자를 놓고 어떻게 읽는 것이며 뜻은 무엇이냐 하서 열심히 의논(?)하는 아저씨들...  역시 전시회장에서 처음 만난, 이제 미대 신입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과 50대는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각자 지니고 있는 그림에 대한 지식을 다 꺼내놓고 서로 맞추어가며 즉석토론을 벌인다든지...

 

  하지만 이 날 나와 내 동행의 관람수준은, 이렇게 나날이 높아지는 우리나라의 평균 관람수준을 깎아먹기나 했으니...

  누구의 그림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당나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타원형으로 생겨서 양옆으로 축 처진 눈 하며, 역시 힘없이 양옆으로 늘어진 귀가 어찌나 웃기던지...  우리는 '이 당나귀 너무 웃기다.', '얼굴이 당나귀가 아니라 원숭이 같아.' 하며 깔깔댔다.  우리의 방정맞은 태도에, 우리 바로 뒤편에서 무슨 화법이 어떻고 기법이 어떻고 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감상하시던 연세 있으신 분들이 우리를 살짝 째려보셨다. ^^;;

  하지만 이 날 전시회에서 봤던 그림 중 드라마 '바람의 화원' 에도 나왔던 김홍도의 '화묘농접도' 다음으로 이 당나귀 그림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 당나귀 생김새가 너무 재미었으니 어쩔 수 없다. ^^ 

 

  사람들이 어느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문화적인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경제적인 요소는 분명히 아주 중요한 것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는데 '난 행복해~' 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하지만 그 경제적인 요소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간송미술관에서 매년 두 차례씩 여는 전시회는, 문화적 요소에 목마른, 그러나 유료 전시회 쫓아다니기에는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  

 

 

 

김홍도(金弘道)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위에도 쓴 것처럼, 이 날 본 그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가지고 장난치다)다.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인터넷에 떠나니는 그림이 실물의 섬세함을 절반도 못 살린 것이 무척 아쉬움.)

 

  처음에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봤던 그림이라 반가운 마음에 쳐다봤는데, 곧 고양이의 털에 시선이 꽂혔다.

  그만큼 고양이 털을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했다.  붓이라는 게, 펜이나 연필과는 달라서 아무리 붓털이 몇 가닥 안 되는 것이라도 기본적으로 나오는 두께가 있다.  그런 붓으로 털 한가닥 한가닥을 어찌나 자세히 그려냈던지, 실물을 보면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림들이 하나 같이 실물보다 못 한 것이 너무 유감임. ㅠ.ㅠ)  그림을 둘러싼 유리판을 치우고 그림 속 고양이 등을 건드리면, 털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질 것만 같다.  그리고 고양이가 쳐다보는 나비의 날개 표면의 무늬는 또 어찌나 섬세하던지...

 

  보통 김홍도 그림 하면, 대담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배경은 전부 생략해버리고, 색채가 풍부한 신윤복의 그림과는 달리 색의 사용을 자제한다.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대상을 간결하게 묘사한 김홍도의 '씨름도' 와 '대장간'.

(이 두 그림은 예시로 올리는 것일 뿐, 간송미술관 전시회에 나온 그림이 아님. ^^)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 나온 '황묘농접도' 는 그런 다른 김홍도 그림과는 너무 다르다.

  나 같은 문외한은 황묘농접도가 김홍도 그림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 만일 그런 사실을 미리 알지 못 하고 그림을 봤더라면, '씨름도' 나 '대장간' 을 그린 사람이 황묘농접도도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부자의 '잉어도'

 

 

  '진경시대회화대전' 이라는 전시회 명칭에 걸맞게,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진경산수화' 라고 배운 그림들이 이 날 전시회에 많이 나왔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간략하게 배운 바에 의하면, 진경산수화라는 것은 '진경(眞景)' 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적인 풍경' 을 그려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즉,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풍경화라는 것이, 중국의 풍경화를 모방하거나 또는 직접 모방은 안 하더라도 실제 풍경은 보지도 않은 채 중국 풍경화에 나오는 모습과 비슷하게 상상(?)해서 그린 것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 숙종 때부터 정조 때까지 약 120여년의 세월 동안, 조선 후기의 사회.문화적 변동 속에서 풍경을 직접 보고 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이 많이 나타나게 되고, 그래서 '진경산수화' 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안목이 비루하고 졸렬해서 그런지 어떤건지...

  이 날 전시회에서 수많은 산의 풍경(절반 이상이 금강산이었던 듯함.)을 그린 그림을 봤지만, 내 눈에는 도대체 어디가 '사실적인 풍경' 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ㅠ.ㅠ  그저, 진경시대 이전의 그림이 어떤 특정 장소가 아닌 막연하게 산, 강, 들판 식으로 그린 그림이라면, 진경시대의 산수화는 금강산, 인왕산 등 특정 장소를 그렸다는 것 정도의 차이 밖에는 모르겠다.

 

  이 날 전시된 그림 중 내 눈에 사실적이었던 그림은 풍경을 그린 산수화가 아니라, 생물화(?)였다.

  즉, 위에 소개한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와 그 아들 이영익(李令翊)이 함께 그린 '잉어도' 등 살아 숨쉬는 것들을 그린 그림 말이다.  이 두 그림 외에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그린 동.식물의 그림이 더 있었지만, 이 두 가지가 가장 생각난다.

 

무척 사실적이라 서양화적인 느낌까지 나는 '잉어도'.

(아버지 이광사가 잉어를 그리다가 머리 밖에 못 그렸는데, 훗날 아들 이영익이 몸통까지 마저 다 그렸다고 함.)

 

  이광사라는 인물을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알게 되어 집에 돌아와 찾아봤더니, 참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대대로 관직을 지낸 소론계 명문가의 자손이지만, 그가 출사할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영조가 즉위한 후 소론이 몰락한 상황이라 초야에 묻혀 지내야 했다.  그래도 양명학을 연구하고 서예와 그림에 몰두하며 비교적 평탄하게 지냈지만, 그가 50세 되던 해에 나주벽서사건이 터지면서 귀양을 가게 되었다.  평소 주모자 윤지와 친하게 지냈고, 또 이광사의 백부도 이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연좌죄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큰 비극이 생긴다.  이광사의 부인이 자결을 한 것이다...!  남편이 역모에 버금가는 사건에 연루된 것을 보고, 남편도 다른 연루자처럼 사형을 당하고 가문이 완전히 망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영조가 특별히 감형해줘서 이광사는 유배만 떠나게 되었다니, 부인이 너무 급하게 자결한 셈이다. ㅠ.ㅠ

  이광사는 20년 넘게 죽는 날까지 유배 생활을 했는데, 중간에 유배지를 바꿔야 했다.  비록 죄인이라고는 해도 그의 학식과 서예와 그림이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는 통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유배지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번 간송미술관 전시회는 5월 13일에 시작했고, 27일에 폐막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그림을 무료로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며칠 안 남은 때를 놓치지 말고 간송미술관으로 가시기를...  마침 다음 주로 다가온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간송미술관 근처에 있는 길상사가 수많은 연등 장식으로 축제 분위기 자아내는 중이니, 간송미술관 관람 후에 길상사에 들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