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덕수궁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上)

Lesley 2012. 9. 11. 00:12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를 관람했다.

  처음에는 서울 나들이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지인과 함께 광복절에 갔다.  사실 내 주위에 미술관 관람을 즐기는 이가 많지 않아서, 이 지인이 찾아오는 때와 이 전시회 개최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은 큰 행운이었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란 말을 쓰기 딱 좋은 상황이었음! ^^)

  하지만 내가 원래 그림에 조예 있는 사람이 아니라 최근에 관심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수십 명의 화가가 그린 100여점이나 되는 그림을 한 번에 보고나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  그래서 그 다음주에 나홀로 다시 가봤다.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의 개관 및 '대동아전쟁' 이란 용어 관련 사건

 

 

  이 전시회는 지난 5월 26일에 시작했고 12월 2일에 끝날 예정이다. (※ 10월 28일에 끝나는 것으로 변경되었음...!)

  50여명의 화가가 그린, 구한말인 1900년대부터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인 1950년대까지의 작품 100여점을 관람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덕수궁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 중  2008년도 12월 하순부터 2009년도 3월까지 개최했던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 근대를 묻다' 이후로 가장 큰 규모의 근대미술전이다.  그리고 두 전시회 모두 '한국근대미술' 을 주제로 하고 있는 만큼, 겹치는 화가와 작품이 많았다. 

 

  이런 대규모의 전시회라는 게 항상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관람료가 무료이기까지 하다. ^^

  그러니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호주머니 사정상 전시회에 자주 가지 못 하는 이들이라면, 12월 초까지 계속 하는 이번 전시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또한 미술 그 자체에는 큰 관심 없더라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꼭 가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근대문물이 흘러들어오던 구한말, 일제의 침탈에 신음했던 일제시대, 기쁨과 혼란이 뒤범벅되었던 해방시기,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가 이번 전시회 그림 속에 다 녹아나 있다.  마침 그림의 배열 순서가 시대순으로 되어 있어서, 그림 속 우리 역사의 흐름을 쫓기가 수월하다. 

 

  이전에, 광복절에 이 전시회 보러 가서 겪었던 '대동아전쟁' 이란 용어 관련한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 광복절에 보고 들은 어이없는 단어 '대동아전쟁' (http://blog.daum.net/jha7791/15790922)

  나중에 다시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도 그 용어가 그대로 남아있기에 안 되겠다 싶어서, 민원을 넣었다.  다행히도 곧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차피 12월까지 하는 전시회니,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한 번 가볼 생각이다. (좋은 책, 영화, 그림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봐도 질리지 않는 법이니... ^^)  그 때 미술관측 답변대로 정말로 '소위 대동아전쟁' 또는 '태평양전쟁' 이란 말로 수정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다...!!!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에 전시된 작품 중 인상적이었던 것들

 

 

1. 휴버트 보스(Hubert Vos)의 <서울풍경>(1898년)

 

이 전시회의 작품 중 유일한 서양인 화가의 그림인데,

서울 정동에 있던 미국공사관에서 바라본 경복궁과 광화문 앞의 풍경을 그렸음.

 

  이 시기의 우리나라 풍경을 그린 그림이 많지 않아 사료적인 가치도 크지만,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특이한 이력과 이 그림이 한국에 소장되게 된 사연도 남다르다. 

 

  휴버트 보스(Hubert Vos)는 네덜란드 출생으로 유럽에서 활약하다가 훗날 미국으로 옮겨 작품 활동을 계속한 화가다.

  그런데 보스의 부인이 하와이의 마지막 왕이며 유일한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여왕의 딸 카이킬라니(Kaikilani) 공주였다.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되는 것을 막으려고 여왕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카이킬라니 공주도 어머니를 수행했다.  그 때 보스가 공주에게 반해서 만난지 3일만에 청혼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 부부는 신혼여행으로 아시아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그 여행지 중 한국(물론 당시는 대한제국 시대였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 부부는 서울에 있는 미국 공관에 머물면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그런데 이런 가치있는 작품이 197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 미술계에 알려졌다.  

  미국의 한 여류 언론인이 보스의 유고 전시회에 나온 그림 중, 보스가 한국에 머물 때 그린 <서울풍경>, <고종황제 초상화>, <민상호 초상화> 등 3점의 작품을 보고 한국의 영자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제서야 이 세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된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스의 후손과 협의해서, 몇 년 후에 한국에서 이 세 작품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중 <서울풍경>은 2003년에 보스의 후손에게서 구입하는데 성공해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이번 전시회 그림 중, 느낌이 가장 많이 변한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지금의 광화문 앞과 너무 다른 옛 모습에 이질감을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포스팅을 위해 휴버트 보스에 대해 알아보면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보스 부부가 서울에 머물 때, 아내 카이킬라니의 조국 하와이는 미국에 합병된 상태였다.  이미 망한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둔 화가가, 머지 않아 아내의 나라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한 또 다른 나라의 궁궐을 그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화가가 '나는 황제(고종 황제)로부터 받은 선물, 그리고 황제와 그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슬픈 예감을 안고 한국을 떠나왔다' 라고 자서전에 쓴 것으로 보아, 서울의 미국 외교관들에게 조선이 조만간 일본에게 망할 것이라는 예측을 들은 듯하다.

  서울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 풍경을 담았다는 저 그림이, 내게는 다르게 보인다.  곧 명말할 것이 분명한 나라에 대해, 화가가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담아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2. 이상범의 <초동>(1926년)

 

분명히 화선지에 그린 수묵담채화인데도, 서양화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임.

 

  이 그림은 우리 전통의 풍경화(산수화)로는 드물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을 담고 있다.

  보통 우리 전통의 그림 속에 나오는 풍경이란,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이든 혹은 그래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른바 진경산수화)이든 간에, 황소 등에 걸터앉아 하얀 수염 휘날리는 신선이 당장 튀어나올 것만 같은 무릉도원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이다. ^^  그런데 이 그림의 풍경은 지금도 우리나라 농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너무 평범한 광경이다.

  아마도 그래서 분명히 수묵화이건만, 서양화 같은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그림의 재료는 분명 전통적인 것들이지만, 그림의 소재가 우리의 전통과 이질적인 것이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동양화가 이래?' 하는 식의 생가은 안 든다.  오히려 동양화 특유의 고요하고 아련한 느낌과 서양화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감이 잘 어우러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그림 제목에 얽힌 좀 웃기고 황당한 이야기 하나...

  나는 이 그림 제목 <초동>을 '樵童(땔나무 하는 아이)' 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의 소재가 시골 벌판이라서 더 그런 생각을 했던건지 어떤건지...  그래서 지게에 땔나무 잔뜩 얹어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아이를 찾느라고, 저 그림을 샅샅이 살펴봤다.  그런데 그런 아이고 어른이고간에,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다.  그런데 이번 포스트 위해 자료 찾아봤더니만, 樵童이 아니고 '初冬(초겨울)' 이었다는... ㅠ.ㅠ 

 

 

 

3. 이마동의 <남자)(1931)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임.

 

  이 그림은 2009년도에 관람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 근대를 묻다' 때도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이다.

  같은 양복이라도 현재의 양복과 20세기 초반의 양복은 모양새가 많이 다르다.  그래서 그 시절 나름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다는 신사들이 찍은 흑백사진을 지금 보면, 촌스러워 보이거나 어색해 보이기 일쑤다.  그런데 이 <남자> 라는 작품 속 주인공의 차림새는 무척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보인다.  아마 신사복 위에 걸쳐 입은 트렌치 코트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여 더 멋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

  게다가 그 시절 많은 사진 속 인물들이 그렇듯이 인위적인 자세나 부동자세 취한 것이 아니라, 그림 밖 시선을 전혀 의식 안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덕수궁미술관의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그림 속 남자가 한쪽 손에 말아 쥐고 있는 잡지가 이 남자가 근대의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고 한다.  그 설명 때문인지, 이 남자를 휘감고 있는 이지적이고 차분한 느낌 탓인지, 정말 지식인 계층의 사람으로 보인다. ^^

 

 

 

 

4. 임군홍의 <여인좌상>(1936)

 

이 그림의 주인공은 마치 일제시대 이화학당 같은 여학교의 사감 선생님 같은 느낌을 줌.

(아니면 'B사감과 러브레터' 의 B사감? ^^)

 

 

  사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이 그림을 그린 임군홍의 처제라고 한다. 

  이 그림의 설명판에는 주인공이 입은 개량한복, 손에 든 영문잡지, 벽에 걸린 새 그림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이 여인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그림의 색상이 화려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칙칙한 느낌까지 들어서 그런걸까...  혹은 주인공의 좀 우울해 보이는 표정 때문에 그런 것일까...  내 눈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그림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암울했던 일제시대의 지식인 계층의 절망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보인다. (개량한복과 구두를 신은 여인의 옷차림이나 영문잡지로 봤을 때, 이 여인은 그 시절 드물게 교육받은 계층의 사람일테니까...) 

 

 

 

5. 임군홍의 <고궁의 추광>(1940)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을 내려다본 듯한 풍경을 담은 그림임.


  이 자금성 그림은 무척 웅장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좀 답답한 느낌도 준다.

  이 그림 속 자금성 전각들의 기와는 가을 햇살에 저렇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금성 기와가 저런 색깔이다. ^^  거기에 더해, 가을이라 그런지 바닥도 나무도 노랗게 물들어(아마도 은행잎?),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한정된 공간의 화폭에 거대한 자금성을 통채로 집어넣으려 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자금성 안 전각들이 빽빽히 배치되어 있는지(자금성 구경한게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나는... ^^;;), 너무 여유가 없고 답답하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임군홍의 그림 중에서, 이 <고궁의 추광> 보다는 <중국 인상> 이라는 그림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중국 인상> 의 이미지를 구할 수가 없어서, 이번 포스트에 올릴 수 없다는 점...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ㅠ.ㅠ  <중국 인상> 이란 그림은 중국의 어두운 골목을 묘사한 그림이었는데(홍콩 느와르 영화에 흔히 나오는, 양쪽으로 한자가 써진 간판이 가득한 허름한 건물이 즐비한 골목을 생각하면 됨.), 암울한 느낌으로 가득차서 오히려 낭만적인 느낌도 주는 그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의 '토지' 속 주인공들이 독립운동 하느라 돌아다닌 하얼빈이나 장춘의 골목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

 

 

 

6. 오지호의 <남향집>(1939)

 

 

손을 그림에 가져다대면 따뜻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그림임.

 

  화가 오지호가 고향을 떠나 개성의 송도고보 교사로 지낼 때, 그 곳의 자기네 집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몇 년 전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 근대를 묻다' 에서 봤던 그림인데, 사실 그 때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마 올해 박완서의 책을 여러 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완서의 고향이 개성 근처 개풍이었고, 시골에서 살던 박완서가 난생 처음 본 도회지가 개성이어서 박완서는 개성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그림의 속에 담긴 집은 개성에 있는 집이다.  그리고 박완서가 자기가 살던 시골마을에 비하면 별천지 수준인 개성을 처음 본 것이 8살 때였기 때문에, 그림 속 어린 여자아이는 그 때의 박완서처럼 생각된다. ^^

 

 

 

 

7. 김중현의 <무녀도>(1941)

 

김동리의 무녀도를 연상케하는 그림임.

(이 작품 이미지는 인터넷에 드물어서, 네이버 마크가 찍힌 그림 밖에 구하지 못 함. ㅠ.ㅠ)

 

  이 김중현이라는 화가는 미술을 정규학교에서 배우지 못 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은 커녕 일반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 점원, 토지조사국 직원, 우체국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도 혼자서 미술을 공부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 4차례나 특선을 차지할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그렇게 차츰 재능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평생 가난에서 헤어나오지 못 했고, 폭음으로 마음을 달래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 가 떠올랐다.

  제일 큰 이유야 이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이 무녀가 굿을 하는 광경이기 때문이지만, 무녀의 얼굴과 그림 속 분위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렇잖아도 그림 속 인물들 모두 이목구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약간 기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녀의 얼굴이 유독 푸른 빛이어서 좀 더 무섭고 좀 더 차가운 느낌이 든다.

  소설 '무녀도' 는 우리 전통 신앙인 무속, 그것도 근대화의 바람 속에서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속의 무속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좀 섬칫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확 잡아끄는 강렬하고 처절한 느낌도 있었다.  그 무녀도의 무녀 '모화' 가 굿을 할 때, 이 그림 속 무녀처럼 저렇게 기괴하고 서릿발 같은 기상을 뿜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아, 그리고 이 무녀도가, 이 포스트 윗부분에 쓴 '대동아전쟁' 이란 말로 나를 멘붕(!) 상태에 빠뜨린 설명판 붙어있던 바로 그 그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