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덕수궁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 : 꿈과 시' (中)

Lesley 2012. 9. 14. 00:25

 

 

8. 손응성의 <여래상>(1954)

 

화려하게 빛나지 않고 세월의 때가 묻은 듯 해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던 그림임.

 

  이 그림은, 사실 그림 그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기 보다는, 그림의 소재가 특이해서 눈길이 갔다.

  그러고보니, 불교의 탱화를 빼놓고는 불상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단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  우리나라의 불교 역사가 천년을 넘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좀 의외일 정도로...  아무래도 현재 남아있는 그림 대부분이 숭유억불을 국시로 하던 조선시대의 것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그렇게 특이한 소재의 그림이라고 해도, 불상이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색이었다면 그냥 잠시 보고 지나쳤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그림 속 불상은 시대의 흐름이 남긴 둣한 다소 칙칙한 색깔 때문에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아, 물론, 어쩌면 저 칙칙한 색깔은 저 불상이 놓인 방이 어두운 탓에, 혹은 그림의 전체적인 톤이 무척 어두운 황색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 

 

 

 

9. 주경의 <파란>(1923)

 

 '근대미술' 을 보여주겠다는 이번 전시회 취지와 가장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던 그림임.

 

  이 그림은 이번 전시회에서 본 그림 중 가장 이질적인 그림이었다.

  다른 그림들은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등 대부분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십장생도나 이 그림 외의 다른 추상화 등 비현실적인(?) 그림이 서너 점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조차 이렇게 파격적이지는 않았다.  이 그림을 근대미술전에서 봤으니 망정이지, 만일 이 그림만 따로 보았더라면 최근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 혼자만 이 그림의 시대적 이질감을 느낀 것이 아닌 모양이다.  주경이란 화가가 이 그림을 1923년도에 그렸다고 알려져있는데도, 그림이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실험적이라 그림의 제작연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한다. 

 

  나란 사람이 원래도 형이상학적인 것과 좀 거리가 멀어서, 저 추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도 못 잡겠다. ^^;; 

  그저 가장 먼 배경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인 것 같고, 왼쪽으로 칼이나 창 등이 보이는 듯하며, 가운데와 아랫 부분에 보이는 붉은색으로 된 것들은 망토 또는 깃발인 것 같다. (아님 말고~~~ -.-;;)

 

 

 

10. 이영일의 <시골소녀>(1928)

 

비단 화폭에 식민지 조선의 어린 세 남매를 애처롭고 아련하게 담아냈음.

 

  이 그림 역시 2009년 초에 덕수궁미술관의 '한국 근대미술 걸착선 : 근대를 묻다' 에서 봤던 그림이다.

  그런데 당시 좀 황당했던 것이, 이 그림 속 소녀의 얼굴이나 손등에 긁힌 듯한 자국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가 가난한 시골 소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일부러 그리 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즉, 어린 시절부터 온갖 노동에 시달려서, 아이 얼굴과 손등에 자잘한 상처가 많이 낫다고 생각했음.)  나중에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그 전시회의 감상문을 읽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그림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긁힌 듯한 자국이 많이 나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런데 이 그림에 드러나는 애처롭고 아련한 느낌에 대해, 당시 화단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모양이다.

  이영일은 뜻밖에도 조선의 고위 관료인 아버지와 일본의 귀족 집안 핏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일찌감치 일본에 유학해서 당시 일본 화단의 기법을 제대로 공부한 이였다.  그래서 조선 화단에서는, 그의 그림에 실린 가련하고 애처로운 분위기를 고생 모르는 귀공자가 가난한 민중을 보면서 느낀 어설픈 동정심과 연결지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이영일의 가족사는, 그의 부모가 조선인과 일본인이었다는 것 빼고도 특별한 편이다.

 

  우선 그의 아버지 이규완은 친일파였다...!

  이규완이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고 해서, 관찰사란 관직명이 주는 옛스러움에 '개화기 전에 이미 외국 여자를 맞았들여 아이까지 낳았다는거야?' 하고 놀랐다.  그런데 역시나 이규완은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 때의 사람이었다. ^^;;

  그는 몰락한 왕족 집안에서 태어난 일자무식이었는데, 박영효의 도움과 지도로 갑신정변에 참여하고,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에는 박영효 등과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렇게 일본과 밀접한 연줄을 맺은 덕분에 친일내각이 들어섰을 때, 기초적인 학식 밖에 없는데도 강원도 관찰사 '씩'이나 될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함경남도 장관(과거의 관찰사, 지금의 도지사)도 지냈으니, 조국의 쇠망이 이규완에게는 출세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덕분에,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여러 정부기관 또는 시민단체에서 발표한 어지간한 친일파 명단마다 이름을 다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는, 이영일이 해방 후 장기간 작품 활동을 접었다는 점이다.

  일제시대에는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해방이 되면서 뜻밖에도 접골원(!)을 운영하며 붓을 꺾는다.

  1980년 7월 16일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 붓을 안 들었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영일이 엄연히 생존해있는데도 어떤 서적에는 사망한 걸로 나오고, 분명히 남자인데 어떤 서적에는 여류화가로 기재되기도 했단다. -.-;;  이영일은 이 인터뷰에서 작품활동을 중단한 이유를 밝혔다.  즉, 해방 후 한국 화단이 이영일의 출생 문제와 채색을 많이 쓰는 화법을 문제 삼아 이영일의 그림을 일본화로 간주하며 따돌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즉 이 기사가 작성된 1980년 기준으로 10여년전) 수원미술협회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하는 등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이영일에 대한 자료가 워낙 적어서, 현재도 이영일이 생존해있는지 모르겠다.

 

 

 

11.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

 

천재시인이며 동시에 괴짜시인으로 유명한 '이상' 의 초상화


  구본웅은 소설가이며 시인인 이상과 절친한 사이여서, 이렇게 이상의 초상화를 남겼다.

  이상은 정신적인 불안정함과 결핵이라는 난치병으로 3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을 평탄치 못 하게 살았다.  그리고 구본웅은 어린 시절 그만 척추 장애인이 되면서, 남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서로가 큰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식으로 통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양쪽 모두인지 몰라도, 어쨌거나 두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친구 사이일 뿐만 아니라, 인척 사이이기도 했다.  이상의 아내가 구본웅 계모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라니, 구본웅은 이상의 처조카뻘이 되는 셈이다.

 

  여담이지만, 이상과 구본웅의 의붓 이모인 변동림의 결혼 생활은 짧고도 불행했다.

  이상은 사랑하던 기생 금홍과 이별을 겪고 결핵도 더 심해지면서 심신이 피폐해진 때에, 당시 인텔리 여성이며 자유연애주의자였던 변동림을 만나 결혼했다.  이상의 건강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변동림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바에 나가 일하면서 생활비와 병원비를 벌었다.  하지만 결혼한지 4개월만에 이상이 갑자기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파경을 맞았고, 바로 다음 해 이상은 도쿄에서 사망했다.  변동림이 도쿄까지 가서 시신을 수습해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지만, 훗날 묘지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 초상화는 거칠고 굵게 한 붓질 때문에, 무척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나는 이상의 사진을 본 적이 없어서 이상의 실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상이 지은 난해한 시와 이상의 기행을 생각했을 때, 그의 생김새는 몰라도 그의 인상만큼은 정말로 이 초상화처럼 거칠고 강렬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12. 권영우의 <폭격이 있은 후>(1957)

 

 

오직 검은색만으로 그려서, 전쟁의 참혹함을 더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음.

 

  화가 권영우가 한국전쟁 중 종군화가단 소속으로 그린 스케치를 기초로 해서 그린 그림이다.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된 용산역의 모습을 먹으로 묘사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본 그림 대부분이 동양화, 서양화를 가리지 않고 채색화였다.  오직 이 그림만이 먹을 이용한 검은색 한가지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전쟁의 참상을 더 잘 표현해 낸 것 같다. 

  전에 남경대학살을 다룬 중국영화 '난징! 난징(남경! 남경!)' 을 보면서, 그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것에 대해 감탄했다.  보통의 경우, 컬러영화가 흑백영화보다 더 강렬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 그것도 끔찍한 사건을 묘사하는 데에는 흑백영화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이 그림 역시 종이의 누런색(세월이 흘러 바래서 그렇지, 아마도 처음에는 하얀색이었을 것임.)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 사물들이 그림 속에 빽빽히 들어차있지 않아 단순한 느낌까지 주기에, 오히려 더 비극적이고 더 강렬하다.

 

 

 

13.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1951)

 

피난지 부산의 풍경을 굵고 검은 윤곽선으로 강하게 표현했음.

 

  화가 박고석이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해서 그린 부산 범일동의 풍경이다.

  이 전시회를 처음 갔을 때 동행한 이가 부산 출신이어서, 가이드의 "범일동이 어디지요?" 하는 질문에 부산이라고 얼른 대답해서 가이드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이 피어나기도 했다. ^^ 

 

  얼핏 보면 동화책 삽화 정도로 보일만큼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기에, 오히려 가난한 피난지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사람, 집, 전신주 등의 윤곽선이 투박하고 굵은 검정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윤곽선 아니더라도 지붕이나 그림자 등이 검은색이다.  또한  땅은 깔끔히 포장되지 않은 황토빛 흙길이고, 저 멀리 보이는 산도 피난민들이 나무를 땔감이나 먹는 용도로 모두 베어냈는지 황토빛이며, 하늘 또한 황혼 무렵이라 그런지 황토빛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물이 검정색과 탁한 노란색으로 이루어져, 가난하고 암울했던 임시 수도 부산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

 

 

 

14. 이철이의 <학살>(1951)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나 그들의 행동이 뚜렷하지 않아, 오히려 섬칫한 느낌을 더 강하게 함.

 

  이 그림은 충격적이었다.

  너무 잔인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나 그들의 행동을 명확히 그려내지 않고, 대충 그린 것마냥 배경과 제대로 분간 안 되게 그려놓은 듯하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끔찍한 느낌이 든다.  하늘의 달이 구름에 가려지고 다른 불빛도 없는 어두운 밤...  그 어슴푸레한 달빛에 하얗게 빛나는 흉기가 피해자들을 인정사정 없이 찔러, 그 어두움조차 가리지 못 하는 새빨간 피가 흐른다...   

 

  이런 학살은 군인들간에 벌어지더라도 끔직한 법인데, 민간인간에 벌어진 사건이라서 더 소름끼친다.

  누구는 등장인물들 모습이 저렇게 명확하지 않건만, 학살의 대상이 양민인지 군인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면에서 가장 앞에 쓰러진 사람을 보면, 입고 있는 옷이 하얀색 치마(아마도 한복 치마일 것임)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민간인 여자를 죽인 것이다.

  또한 학살의 주체, 즉 가해자 역시 군인이 아니다.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가해자들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복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이 반동분자로 생각되는 양민들을 죽이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의 와중에 북한군에게든 남한군에게든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이, 반대편에 선 자들의 가족들에게 복수하는 것일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이다.   

 

 

 

15. 안승각의 <피난민>(1942)

 

한바탕 공격당해서 다치고 지친 상태로 피난민 수용소에 머물게 된 이들를 그린 듯함.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군복색으로 쓰고 있는 국방색과 카키색이다.

  화면 맨 앞 가운데에는 머리와 손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국방색 담요를 두르고 있다.  그 뒤편으로 짐을 지고 가는 사람과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 또한 국방색 옷을 입고 있다.

  화면 왼쪽을 절반 이상 채운 텐트는 카키색이다.  그리고 지친 듯이 엎드려 있는 개의 털색이나 몇 사람의 맨살도 카키색에 가까운 색이다.  텐트 뒤편으로 펼쳐져있는 땅도 카키색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하다못해 개마저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이 수용소를 감돌고 있는 분위기는 절망도 슬픔도 아니고, 그냥 '피곤함' 뿐이다.  모두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무언가에 절망하거나 슬퍼하는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는 것이다.  그저 다들 머리를 푹 숙이거나 피난짐에 기댄 채, 힘없이 앉아있다. 

 

  군대를 상징하는 두 가지 색깔이 이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피곤함 이외에는 어떠한 감정도 못 느끼게 된 피난민들의 모습... 이 두 가지 사실이 이 그림의 주제가 전쟁의 참상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