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간송미술관 2011 가을 전시회 - 풍속인물화대전 (下)

Lesley 2011. 11. 4. 00:27

 

드디어 신윤복의 그림 시작이다...!

 

 

4. 신윤복(申潤福)의 미인도(美人圖)

 

 

 

  이번 전시회에는 신윤복의 그림이 많았는데, 대부분 2층에서 전시하고 있었고, 1층에는 미인도(美人圖) 하나만 있었다.

  그런데 이 날,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는 물론이고, 이 전시회에 나온 그림을 통틀어, 이 미인도가 가장 인기가 높았다.  미인도 앞에는 계속 사람이 바글거려서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살박이로 보이는 애기를 포대기로 업은 엄마부터, 지팡이 짚고도 위태롭게 걸음 내딛던 할아버지까지 꿋꿋이 미인도 앞을 계속 지키실 정도였으니... ^^

  드라마 '바람의 화원' 과 영화 '미인도' 때문에 이 그림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탓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드라마나 영화가 없었더라도 사람들 눈길을 가장 많이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만큼 흡인력 있는 작품이다.

  내가 지금까지 직접 본 그림 중 '사진으로 보는 걸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하는 그림' 을 꼽아보라면, 이 신윤복의 미인도와 이쾌대의 군상Ⅳ을 들겠다.

 

☞  화가 이쾌대 - 군상 Ⅳ, 봄처녀 (http://blog.daum.net/jha7791/15790818)

 

  

 

  이 그림 속 여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여인의 초상화가 드물었고 내외가 심했던 시절에 저렇게 화가 앞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점, 옷차림새가 그 시절 유행에 무척 충실하다는 점 등으로 보아, 아마 기생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있다.  그리고 그림 왼편에 쓰인 화제(畵題)로 보았을 때, 신윤복이 이 여인에게 사랑 또는 그 밖의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화제는 다음과 같다.

 

  盤薄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반박흉중만화춘, 필단능여물전신)

  아찔하게 얇은 가슴 속 온갖 정이 봄이 되었나니, 붓끝으로 능히 그 마음까지 그리노라.

 

  분명, 신윤복에게 이 여인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나 보다.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여인의 가슴 속에, 사실은 온갖 감정이 담겨있음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 감정이 봄이 되었다고 표현할 만큼, 따스한 시선으로 이 여인을 바라봤다.  게다가, 이 여인의 외모 뿐 아니라 그 마음마저도 화폭에 담으려 했으니 말이다.

 

 

 

 

  내가 이 그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제일 놀란 것은 바로 머리 부분 때문이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볼 때에는 모르겠던데, 직접 보니 머리에 얹은 가채를 한올 한올 어찌나 정교하게 그렸던지...!  게다가 귀 아래로 보이는 뒷목의 몇 가닥 머리카락까지 정말 섬세하게 표현했다.  서양화에서는 저렇게 뒷목의 머리카락까지 일일이 그리지 않는 것 같던데...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신경써서 보지 않아, 미처 못 본 걸까?

 

  그리고 전에는 이 미인도의 주인공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물을 보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얼핏 보면 무표정해 보이는데, 계속 쳐다보면 뭔가 쓸쓸한 감정을 내색 안 하려고 일부러 무표정하게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면 어째서 쓸쓸한 걸까?  사실은 이 여인도 신윤복을 좋아했는데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서로 이어질 수는 없고, 이렇게 그림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슬퍼서?  아니면 기생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온갖 서러움 때문에?  이제와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각자 알아서 상상하는 수 밖에...

 

 

 

 

 

  이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모양새다.

  이 시대 여인들은 윗옷은 몸에 딱 맞게 해서 가슴 부위를 강조하고, 대신 아래옷은 풍성하게 입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 부분의 움직임이 커보이도록 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섹시미를 강조한 셈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저고리부터 살펴보자면...

  대학 때 교양과목으로 들은 한국민속사 시간에, 이 시대 여인들이 요즘식으로 말하면 '쫄티+배꼽티 또는 나시티처럼 노출 심한 옷' 에 해당하는 '몸에 딱 맞는데다가 길이까지 짧아서, 팔을 어느 정도 위로 들면 가슴이 다 보이는' 저고리를 입었다고 배웠다.  그래서 길이도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길고 품도 넉넉했던 저고리를 입은 조선 초기 여인들한테는 볼 수 없었던 가슴띠(저 그림 속에 나오는, 저고리와 치마 사이의 하얀색 띠)를 두를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팔을 들어올릴 때마다 가슴의 맨살이 다 보일테니 말이다.  이런 저고리는 처음에는 기생층에서만 입었는데, 차츰 서민층으로 번지더니, 급기야 체통과 법도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양반층에게까지 퍼졌다.

  덕분에, 그 시절 상대적으로 머리가 깨었다던 실학자들조차 사대부 여자들의 저고리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남겼을 정도다.  저 그림이 그려진 18세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모든 게 개방적인 20세기에 들어서도, 미니스커트니 배꼽티니 하는 옷이 처음 유행할 때마다 어르신들은 혀를 찼고 언론에서는 그런 풍조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기존의 것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

 

  그리고 그림 속 여인은 한 손으로는 옷고름을, 다른 한 손으로는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요즘으로 치면 마치 군대의 증명사진 찍은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근엄한 표정으로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고 앉아, 두 손을 차렷 자세로 늘어뜨리거나 아니면 몸 앞에 모아 잡거나 하는 식이다.  하긴 대부분이 임금이나 고관대작의 초상화라서, 더 그렇게 권위적이고 딱딱한 모습으로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런 높으신 분들의 딱딱한 초상화와는 다르게 손 모양이 아주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흔히 어색하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괜히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 만지작거리는 식으로, 이 여인도 옷고름과 노리개를 만지고 있다.  마치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 속에 온갖 감정이 넘나드는 것을 다 숨기지 못 한 것처럼 말이다. ^^

 

 

 

 

 

  원래, 어떤 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자주 접하게 되면, 자신이 그것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나에게 이 미인도가 그렇다.  미인도는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 교과서와 국사 교과서에 반드시 실렸던 작품이다.  그러니 미인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만, 단 한 번도 신경써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인도 속 여인의 치마 밑으로 버선발이 하나 나와있는 것을 쭉 몰랐다가, 몇 년 전에 이 미인도에 대한 다른 블로거의 포스트를 보고 겨우 알게 되었다. ^^;;

  미인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걸어놓은 링크 클릭해서 그 블로그 방문해 보시기를...

 

붓끈으로 옮겨놓은 봄같은 여인의 정 <미인도> 신윤복 作 (http://blog.naver.com/chosangwon89/100061276020)

 

 

 

5. 신윤복(申潤福)의 문종심사(聞鐘尋寺)



 

  그림 자체가 내 마음에 들었다기 보다는, 신윤복의 그림 중 처음 보는 그림이라 올려본다. ^^;;

  그림의 제목 '문종심사(聞鐘尋寺)' 는 '종소리를 들으며 절을 찾다' 는 뜻인다.

  아마 말을 탄 여인이 불공이라도 들이려고 절을 찾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여인 정말 위풍당당하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여인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말을 탔다고 하는데, 성리학이 완전히 뿌리 내린 조선 중기부터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가마를 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여인은 말을 탄 것만으로도 모자라, 너울을 뒤로 확 젖혀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아니면 말을 타고 얼굴을 드러내도 되는 신분의 여인, 즉 기생인걸까?

 

 

 

 

 

6. 신윤복(申潤福)의 쌍검대무(雙劍對舞)

 

 

 

  '두 개의 검으로 맞서 춤을 춘다' 는 뜻의 이 쌍검대무(雙劍對舞)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림이다.

  검무를 추는 두 여자의 화려한 색깔의 옷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평면적인 그림인데도 어찌나 역동적인지 검을 들고 회전하고 있는 두 여자의 빠른 몸놀림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7. 신윤복(申潤福)의 주유청강(舟遊淸江)

 

 

 

  주유청강(舟遊淸江)은 '맑은 강에서 뱃놀이를 한다' 는 뜻이다.

  보통 조선시대 하면, 강한 유교사상 때문에 노인을 공경하고 어려워하는 풍습이 지금보다 짙었던 걸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젊은 양반들은 예쁜 기생들에게 풀 빠져서, 노인 공경 따위는 어디에다 내던졌나 보다. ^^;;  나이든 양반 한 사람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한 젊은이는 기생 어깨를 감싸안고 있고, 또 다른 젊은이도 나이든 양반이 한 배에 탄 것을 잊어버렸는지 물장난 하는 기생 얼굴 보기에 바쁘다.

  그리고 보통 풍속화에 나오는 악기는 가야금, 피리 등이 많은 것 같은데, 이 그림에는 특이하게 생황이 나온다.  배 끝머리에 혼자 떨어져 앉은 기생이 생황을 불고 있는데, 질펀한 양반님네들 놀이를 보며 '어이구~~ 잘들 논다~~'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

 

 

 

8. 신윤복(申潤福)의 단오풍정(端午風情)

 

 

 

  말 그대로 단오의 풍경을 그린 단오풍정(端午風情)을 이번 전시회에서 직접 보고 좀 의외의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오풍정이 꽤 커다란 그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번 포스트에 올린 신윤복의 그림 중, 미인도를 제외한 모든 그림이 모두 가로 28㎝, 세로 35㎝의 초등학교 시절 도화지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해서 달리 설명할 것도 없다.

  단오에 여자들끼리 모여서 상반신을 드러낸 채 시원하게 목욕을 하고, 그네를 타고, 앉아서 쉬고 있다.  그리고 바위 뒤에는 이 여자들을 몰래 훔쳐보며 킬킬거리고 있는 젋은 승려 두 명이 보이고... ^^;;

  신윤복의 그림 중 아마도 색채가 가장 화려한 그림일 것이다.  그네 타려는 여자의 저고리와 치마의 색만 화려한 게 아니라, 냇가에서 씻고 있는 여자들 주위의 풀숲까지 색이 선명하다.

 

 

 

9. 신윤복(申潤福)의 상춘야흥(賞春野興)

 

 

 

  상춘야흥(賞春野興)은 '봄날 들판의 여흥을 즐기다' 라는 뜻이니, 한마디로 봄소풍에 대한 그림이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을 바로 밑에 소개할 '청금상련' 으로 잘못 생각했다.  청금상련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의녀(醫女) 머리를 한 여자가 안 보여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다른 그림이었다. ^^;;

  이 그림에 나온 젊은 양반들은 저 위의 '주유청강' 에 나온 젊은 양반들에 비해 노인 대접할 줄 아는지, 수염 길게 기른 나이든 이들은 앉아있고 젊은이들은 서있다. ^^ 

 

 

 

10. 신윤복(申潤福)의 청금상련(聽琴賞蓮)

 

 

 

 

  위의 '상춘야흥' 과 헷갈렸던 청금상련(聽琴賞蓮) 이다.

  '거문고를 들으며 연꽃을 감상한다' 는 뜻이다.  상춘야흥이 들판에서 벌어지는 연회라면, 이쪽은 잘 나가는 양반네 저택인지 어디 관청인지, 하여튼 어떤 건축물의 마당에서 벌어진 연회다.

  노란 저고리 여자는 기생으로 보이는데, 그 옆의 흰 저고리 여자는 머리에 쓴 가리마로 보아 약방기생, 즉 의녀다.  의녀는 지금으로 치면 간호사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연산군 때 의녀들을 연회 자리에 끌어내어 춤추고 노래하고 술시중 들게 하면서부터, 약방기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생 취급 받았다.

 

  그런데 이 그림은 내가 아는 신윤복 그림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그림이다.

  맨 왼쪽에 앉은 양반을 보라...!  아~~주~~ 신났다~~  서있는 다른 양반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기생을 자기 다리 사이에 앉혀놓았다.   게다가 이 양반의 손은 지금 어디에 가있느냔 말이다. -.-;;  이쯤되면 신윤복의 그림을 당시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게 이해가 간다.  도덕군자들은 도덕군자들대로 점잖지 못 한 그림이라고 혀를 차고 못마땅해했을테고, 겉으로만 선비인 척 하고 뒤로는 별 짓 다 하던 이들은 그들대로 마치 자기네를 비꼬는 것 같은 그림에 찔려서 싫어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신윤복과 김홍도를 소재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에서 이 청금상련과 관련된 황당한 일이 하나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는 종종 신윤복의 그림을 그대로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이용하곤 했는데, 이 청금상련 역시 그렇게 브라운관에 옮겨졌다.

  문제는...  드라마에서는 한겨울에 저 장면이 나온다는 점이다. -.-;;  저 청금상련을 보면, 나뭇잎들이 파릇파릇하고 연꽃도 피어있으며, 무엇보다 야외에서 연회를 연 것으로 보아, 분명히 따뜻한 계절인데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연회 참석한 양반들이 부채까지 천천히 부치고 있건만,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잔뜩 나오는데, 참 보기 난감했다.  어차피 드라마가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났으니 계절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여기까지는 억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을 한밤중에 촬영했다는 게 또 기가 막혔다. -.-;;  아마 빡빡한 촬영일정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깜깜한 밤에 입에서 입김 하얗게 뿜어가며서도 부채질 하고 있는 양반들과, 꽁꽁 언 손으로 열심히 가야금 연주하는 기생, 불을 밝혀봤자 지금처럼 전기불이 아니라 뭐가 제대로 안 보일 게 뻔한데도 그 연회 광경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신윤복...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ㅠ.ㅠ

 

 

 

11. 신윤복(申潤福)의 월하정인(月下情人)

 

 

 

  신윤복의 다른 그림처럼 화려한 느낌은 덜하지만, 대신 가장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월하정인(月下情人)이다.

  그림의 제목 그대로 달 아래에서 만나고 있는 정인이란 상황 자체가, 상당히 은밀하면서 낭만적이다.  그런데 그림의 화제가 그런 느낌을 몇 배나 더 크게 만든다.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월심심야삼경, 야인심사양인지)

  달도 흐릿한 삼경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저 은은한 그림과 저 화제가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초승달이 뜬 밤이라 그렇잖아도 어두운데, 밤중에서도 가장 깊은 삼경(밤 11시~새벽 1시)이다.  이런 밤에 은밀히 만나는 남녀라면, 남들 앞에서 떳떳이 만나기 곤란한 사이일 것이다. (하긴 조선시대가 대낮이라고 해서 남녀가 떳떳이 만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긴 했지만... ^^;;)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가진 정인들이며, 어떻게 해서 저 밤에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저 정인들의 앞날이 어떠할런지... 그건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화제에 나온 그대로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 뿐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나오는 젊은 남자가 조선 명종(明宗), 선조(宣祖) 때 고위관직을 지낸 김명원(金命元)이라는 설도 있다.

  김명원이 관직에 오르기 전에 한량으로 유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림의 화제가 김명원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의 원작소설에서도 이 시가 나온다.  그 소설에서는, 김명원이 월하정인의 주인공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대신 신윤복이 김명원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월하정인의 화제를 짓는 걸로 나온다.

 

  窓外三更細雨時 (창외삼경세우시)  창 밖은 야삼경 부슬비 내리는데

  兩人心事兩人知 (양인심사양인지)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歡情未洽天將曉 (환정미흡천장효)  기뻐하는 마음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지려 하니

  更把羅衫問後期 (경파라삼문후기)  나삼자락 부여잡고 훗날의 약속을 묻네.

 

  이 시 속 정인들은 월하정인 속 정인들보다 더 절절하다.

  월하정인 속 정인들은 어두컴컴한 초승달 아래 만나는 게 전부였는데, 이쪽은 서글프게도 부슬비까지 내린다.

  그리고 월하정인 속 정인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한밤중에 몰래 만났다는 사실만 알 뿐 그 후의 이야기는 모른다.  어쩌면 시 속의 정인들보다 더 애절한 분위기로 헤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밝은 마음으로 헤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 속의 정인들은 어렵게 만나 기뻐하는 마음을 아직 제대로 나누지도 못 했는데 벌써 날이 밝아와서, 당장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다시 만날 수 있을런지도 불확실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상대의 소맷자락 붙잡고 훗날의 기약을 묻고 있다.  

   

 

 

12. 신윤복(申潤福)의 연소답청(年少踏靑)

 

 

 

  연소답청(年少踏靑)이란 '연소한 이들(젊은 선비들)이 푸른 새싹(봄날의 들판)을 밟는다' 는 뜻이다.

  이런 봄날 소풍이 조선 후기의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있는 젊은 한량들의 놀이 문화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기생들은 말을 타고 가고 있고, 양반들은 그 말을 이끌거나 기생에게 담뱃대를 바치는 등 기생들 환심 사기에 바쁘다.  하긴 양반들 체면 떨어지는 건 떨어지는 거고, 기생들 입장에서는 평소에 세상 사람들에게 천시 받으며 살았을텐데, 가끔은 저렇게 공주님 대접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런데 이 그림 볼 때마다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 드는 것이, 그림 제일 아래 보이는 기생은 왜 장옷을 두르고 있는 걸까?  양반집 여자라면 모를까, 기생이라면 얼굴 내놓고 다닌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13. 신윤복(申潤福)의 휴기답풍(携妓踏楓)

 

 

 

  휴기답풍(携妓踏楓)은 '기생을 태우고 단풍을 밟다' 는 뜻이다.

  즉, 위의 연소답청이 봄소풍에 관한 그림이라면, 이 휴기답풍은 가을 단풍놀이에 관한 그림인 것이다. 

  이 그림은 '쌍검대무' 처럼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다만, 쌍검대무에서는 등장인물들(검무 추는 두 여자)의 움직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데 반해, 이 휴기답풍에서는 선비의 갓끈과 옷이 바람에 날리는 것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다.

 

  이 그림은 양반과 기생이 함께 단풍놀이 가는 걸로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보고 싶다. 

  멋을 제대로 아는 기생이 시끌벅적한 단풍놀이는 원하지 않아서, 가마꾼 두 사람만 데리고 호젓하게 단풍놀이를 떠났다.  그런데 역시 홀로 단풍을 감상하려는 선비와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풍류를 즐기는데 있어서 이미 신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끼리 서로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한 눈에 알아챈다.  그리고는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함께 단풍을 즐겨도 될 것 같은데...' 하면서, 서로 상대방에게 말을 붙일 기회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

 

 

 

PS. 

  내년이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50주년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간송 선생이 모은 수많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낡은 간송미술관에 국고 지원을 해주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간송 선생은 어려웠던 일제시대, 우리 문화재가 일본 수집가 또는 상인들 손에 줄줄이 일본으로 반출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문화재를 지키는 것 역시 독립운동이라는 생각으로 개인 재산으로 문화재를 수집한 분이다.   그 분의 유지로,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간송미술관의 수많은 문화재를 무료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아기를 입은 엄마부터, 지팡이 짚고 어렵게 걸음 옮기는 할아버지까지, 그 많은 사람들이 저런 귀한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문화재 보호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고 애쓴 간송 선생 덕분이다.

  부디, 간송미술관 지원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