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간송미술관 2011 가을 전시회 - 풍속인물화대전 (上)

Lesley 2011. 11. 3. 00:12

 

  지난 봄에 다녀왔던 간송미술관에서 가을 전시회를 연다기에 다시 다녀왔다.

  사실, 먼저번 전시회가 사군자 그림을 전시하는 자리라, 나같은 문외한이 감상하기에는 많이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풍속인물화를 전시해서 '저 그림이 도대체 뭘까?' 하고 머리 굴리는 일 없이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

 

☞ 간송미술관 2011 봄 전시회 -  사군자대전(四君子大展) (http://blog.daum.net/jha7791/15790813)

 

 

  간송미술관이란 곳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이 2008년의 일이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이 방영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해 간송미술관의 가을 전시회에 신윤복의 그림이 나왔다.  덕분에 그 전에는 미술계 인사나 미술 공부하는 학생 등 소수의 사람들이나 알던 간송미술관이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어떤 계기로 인해 갑자기 대중적인 지지를 받게 된 상황이랄까? (아, 이거랑 그거랑은 좀 다른가... ^^;;)

 

  이 간송미술관의 전시회는 나처럼 그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도 여건만 된다면 가야할 이유가 많다.

  1년에 오직 두 차례만 소장품목을 공개하고(5월, 10월 각각 2주일만 공개함), 소장품목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그런 대단한 소장품목을 보여주면서도 무료(!)다.  또 간송미술관이 우리집과 같은 구(區)라는 지역적 연고에, 공교롭게도 매년 정기 전시회가 풍광 좋은 봄 가을에 열리기 때문에 미술관 가는 김에 그 근처에 있는 길상사 등 여러 곳도 둘러볼 수 있고... ^^

 

 

 

  지금부터 간송미술관 2011년 가을 전시회의 그림을 소개하되, 아는만큼 보인다고 혜원 신윤복 그림 위주로 소개할 수 밖에 없다.

  함께 소개된 다른 화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 하는데다가, 신윤복만큼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전시회에 나온 그림의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이도영(李道榮)의 그림 같은 겨우가 그러함.)

  그래서 '신윤복 그림' '비 신윤복(?)' 그림으로 나누어서, 비 신윤복 그림부터 이 포스트에 소개하고, 나머지 신윤복 그림은 다음 포스트에 소개할까 한다.  

 

 

 

1. 김홍도(金弘道)의 과로도기(果老到驥)

 

 

 

  김홍도의 그림 중 내가 처음 본 거라서 올려봤다. ^^;;

  김홍도의 다른 그림처럼, 이 그림도 배경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대상만 강조해서 그렸다.

  과로도기(果老到驥)란 그림 제목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중국 당나라 때 신선인 장과(張果)가 당나귀를 거꾸로 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장과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러 개 전해지고 있다.

  우선, 장과는 유명한 신선이었는데, 소문을 들은 당나라 태종(太宗)과 고종(高宗)이 여러 번 불러도 나오지 않고 계속 은거했다.  나중에 측천무후(測天武后)가 억지로 불러내려고 하자, 도술을 펼쳐 자기가 이미 죽어 썩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측천무후의 부름을 피한 후에, 나중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장과는 항상 흰 당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타지 않을 때에는 당나귀를 몇 겹으로 접어 작은 상자 속에 보관해두었다가, 당나귀를 탈 일이 있을 때에는 물을 뿌려서 원래 크기로 불렸다고 한다. (이건 마치 요즘 나오는,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 같은... ^^)

  또한 장과는 애초에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함께 생겨난 흰 박쥐의 정(精)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박쥐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기 전에는, 이 그림 위쪽 왼편에 박쥐가 그려진 것도 몰랐다. ^^;;  장과와 박쥐의 사연을 표현하느라, 함께 그린 모양이다.

 

 

 

 

2. 김명국(金命國)의 비급전관(祕笈展觀) 

 

 

 

  두 노인이 비급(祕笈)을 펼쳐보고 있는 그림이다.

  비급이란 무협영화에 흔히 나오는 그 무공비급의 비급과 같은 글자다. ^^  무협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주 중요한 책이나 문서를 말한다. 

 

  그런데 이 그림이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저 노인들의 머리 모양 때문이었다.

  전부터 사극 볼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상투를 틀었던 옛날에 나이가 들어 대머리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  그런데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저 노인의 머리를 보니, 저렇게 머리 정중앙이 아닌 뒤통수 쪽으로 상투를 틀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이 활동하기 이전 시대까지는, 우리나라 그림의 주인공들이 중국식 머리 모양과 옷 차림새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날 간송미술관에서 본 그림 중 상당수가 그랬다.  저 김명국의 그림만 해도, 두 노인의 차림새는 분명 중국식이다.  이래저래 우리네 풍습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그림을 남겨준 김홍도와 신윤복에게 감사하게 된다. ^^

 

 

 

3. 조영석(趙榮祏)의 노승헐각(老僧歇脚)

 

 

 

  이 그림은 그림 그 자체보다는, 그림의 제목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노승헐각(老僧歇脚)이란 '늙은 승려가 다리를 쉬고 있다' 라는 뜻인데, 헐각(歇脚)이라는 두 단어를 중국어 공부하면서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어차피 한자라는 게 중국의 문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어와 겹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중국어에서 쓰는 한자와 고대 중국어에서 쓰는 한자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는 쉽게 변하지만, 문자는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아, 말과 글자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승헐각을 그린 조영석에 대해 좀 특이한 사연이 있다.

  조영석은 신윤복이나 김홍도 같은 전문적인 화인이 아니라, 양반 계급의 관료였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그냥 그랬고, 오히려 그림 솜씨와 그림을 보는 안목으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이 이 사람 관직 생활에 문제가 되었다.  영조(英祖) 때, 세조(世祖)의 어진을 모사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거부했다가 감옥살이(!)까지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숙종(肅宗)의 어진 모사 작업에 감동(監董, 지금으로 치면 관리 감독을 맡는 사람)으로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고서 '사대부로서 화공의 말예(末藝, 변변치 않은 재주)로 임금을 섬기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다.' 라며 거부해 영조를 당황하게 했다.

  그림 쪽으로는 분명 훌륭한 재주를 가졌던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 시대 사람답게 '양반이 할 일이 따로 있고 상것들이 할 일이 따로 있다' 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임금의 명령을 그렇게 당당히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이 대단했던 인물인 것 같기도 하고... ^^

 

 

※ 신윤복의 그림은 下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