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간송미술관 2011 봄 전시회 - 사군자대전(四君子大展)

Lesley 2011. 6. 2. 00:51

 

 

  지난 주 집에서 멀지 않은 간송미술관에 갔다.

  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서울 성북구)에 있는 곳인데도 어째서인지 가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이 간송미술관은 공공 미술관이 아닌 개인 미술관이여서 1년에 봄가을로 두 차례만 소장품을 공개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갈 수도 없다.  올해에는 5월 15일부터 기획전을 개최한다는 보도가 났지만, 지금 내가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라 망설여졌다. 

  그러던 중 지난 주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를 맞아 덕수궁의 분향소 들렸다가, 기분이 울적해져서 '에잇, 기분 전환할 겸 간송미술관이나 가자~~' 하고 충동(!)관람을 했다. ^^;;

 

 

  이번 기획전은 간송미술관이 정기 전시회를 열게 된 지 딱 40년이 되는 80번째 기획전이다. (1년에 두 차례니까, 40년이면 80회...^^)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번 기획전이 사군자(四君子) 전시회였다는 점이다.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채색화가 감상하기 쉽다. (알록달록한 거 좋아하는 유치원 어린이 같은 느낌... -.-;;)  그리고 채색화 중에서도, 이 간송미술관을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한 일등 공신인 신윤복 그림 같은 풍속화가 제격이다. (미술 관련 종사자나 미술 애호가들이나 알던 이 미술관은, 신윤복을 소재로 한 2008년도 드라마 '바람의 화원' 덕분에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해짐.)  사군자라는 게 막상 빠져들면 그 오묘한 세계에서 못 벗어난다고 하지만, 문제는 일반인이 사군자에 빠져들 일이 거의 없다는 거 아닌가... ㅠ.ㅠ

  어찌되었거나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내 교양수준을 업그레이드하겠나...  이번 사군자전 덕분에, 짧은 시간이나마 고고한 동양의 정취를 맛보았다.


 

너무 검소한(?) 간송미술관 입구.

 

 

  좀 의외였던 것이, 간송미술관 입구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너무 허름했다.

  아무리 개인 미술관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미술관이라 뭔가 세련되거나 웅장한 입구를 상상했는데, 눈에 확 띄는 명패도 없다.  입구 왼쪽에 세로로 붙여놓은 '四君子大展' 이라는 종이(그런데 인쇄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쓴 것임. ^^;;)와 입구 앞에 주차공간이 없으니 대중교통 이용해달라는 표지판(이것도 역시 손글씨...^^;;) 없었으면, 저기가 간송미술관인지 몰랐을 것이다.

 

 

 

  자, 이제부터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서 관람 시작...!

  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역시 개인 미술관이라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덕수궁미술관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규모가 작고, 내부 시설도 뒤떨어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에 꽉 들어찬 온갖 수묵화 때문인지, 뭔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이었나,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우글거렸는데도 비교적 질서정연하고 조용했다.

  이 날 많은 사군자 그림을 봤지만, 원래 그림을 잘 모르고 더군다나 동양화 쪽으로는 더욱 더 아는 게 없어서, 기억에 남는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리고 언론에서 이 사군자대전을 소개할 때 꼭 눈여겨봐야 한다는 식으로 열거하는 김정희, 이하응, 이정, 어몽룡 등의 그림은 내 눈에는 영~~~  (역시 추상적인 그림을 이해하기에는 내 수준이 좀... ^^;;)

  그래도 이 문외한 눈에도 '아, 멋지구나!' 하는 그림을 몇 개 발견했다.  간송미술관 전시실 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에,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 그 그림들을 찾아봤다.

 

 

 

1.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매월만정(梅月滿庭)

 

  1층 전시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2층 전시관부터 먼저 둘러봤는데,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매월만정(梅月滿庭)이었다.

  매월만정을 그린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은 영조(英祖) 시절의 문인화가이다.  조선시대 명문가인 청송 심씨의 후예이며, 그 증조부가 영의정을 지냈을 정도로 쟁쟁한 집안 출신이다.  하지만 조부가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가 발각된 것만으로도 모자라(좀 깬다... -.-;;) 훗날 영조가 되는 왕세제를 해치려는 음모에 연루되어 사형되었기 때문에, 손자인 심사정은 관직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예술가는 배고파야만 예술을 할 수 있다더니...

  정말로 유명한 예술가들은 거의 불우한 환경에 처했던 듯 하다.  불우한 환경을 잊기 위해 예술에 몰두해서 좋은 작품을 남긴건지,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에 몰두할 정도로 예술혼이 넘치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남긴건지... 

 

 

매월만정(梅月滿庭)

 

 

  매월만정(梅月滿庭)은 '매화와 달이 뜰에 가득하다' 는 뜻이니, 제목부터 무척 감성적이다.  어쩌면 이 그림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가 그림의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

  서양화라면 당연히 검은색으로 칠했을 밤하늘인데, 동양화, 그 중에서도 검은색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수묵화이기에 오히려 매화나무보다 더 밝은 색이다.  어두워야 할 하늘은 안개 끼인 해질녘으로 보일 정도로 적당히 희뿌옇고, 어두움 속에 묻혀야 할 매화나무는 오히려 선명하게 보이니, 사물을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그려냈던 서양인들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그림이다. ^^

  내가 동양화에서 제일 신기하게 생각하는 게 달이다.  어디선가 얼핏 읽었는데, 서양화에서는 달을 그릴 때 선을 직접 그어 달의 형태를 그려내지만, 동양화에서는 그렇게 선으로 외곽 형태를 잡는 일 없이 직접 붓칠을 하며 먹의 농담을 이용해서 달을 그린다고 한다.  그저 먹의 농담만으로 밤하늘의 구름 낀 보름달을 저렇게 아스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2.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의 석란(石蘭)

 

  석란(石蘭)을 그린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은 신비(?)에 쌓인 인물이다.

  출신, 성장, 화계에 등단하게 된 경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하인이었다는 설만 있고, 그런 설 때문에 흥선대원군을 따라다니면서 흥선대원군의 석파란법(石坡蘭法)을 어깨너머로 익혔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어깨너머로 배운 걸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정도라니, 정말 천재인 모양이다...! @.@)

 

 

  재미있는 사실은 대원군의 난초 그림 중 상당수 가짜라는 사실과 김응원의 관계이다.

  원래도 유명했던 대원군의 난초 그림은 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뒤로는 그 가치가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그림을 요청하는 수많은 이들 때문에 골치 아팠던 대원군은, 자기만큼이나 난초 그림을 잘 그리는 김응원에게 대신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김응원의 그림에 자기의 낙관만 찍어, 마치 자기 그림인 것마냥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

 

 

석란(石蘭)

 

 

  대부분의 난초 그림과 달리, 김응원의 석란은 무척 세밀했다.

  보통 난초 그림은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며 난초의 특징만 붙잡아 그린 게 대부분이다. (미술에 안목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말했을 때 그렇다는 거고,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 눈에는 그저 대강대강 막 그렸다는 느낌만 드는... ㅠ.ㅠ)  동양화의 주요특징 중 하나가 '여백의 미' 라는 것도 알고, 그런 절제미야말로 사군자 등 문인화의 품격을 높여주는 요소라는 것도 안다.  이론적으로는 다 알겠는데, 내가 워낙 형이하학적(!)인 사람이다보니 난초 그림을 보면 뭔가 휑~~~ 하다는 느낌만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김응원의 석란은 달랐다.  길게 뻗어 늘어진 난초잎 하며, 난초잎 사이로 작게 피어난 난초꽃하며, 심지어 난초가 피어난 바위 절벽의 음영까지...  모두 어찌나 정교한지, 그림을 그린 이의 정성이 시대를 건너뛰어 느껴지는 듯 했다. 

 

 

 

3. 수운(峀雲) 유덕장(柳德章應元)의 통죽(筒竹)과 설죽(雪竹)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 사람인 수운 유덕장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까지 지낸 인물이다.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 후기의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친다고 한다.  동시대 인물인 신광수(申光洙)가 '석북집 石北集' 에서 그의 묵죽화에 대해서 '당세의 짙푸른 수운의 대나무는 속세를 벗어났으며 그 기세가 높다.' 라고 평했다.

 

 

통죽(筒竹)

 

 

  왕대(굵은 대나무)를 의미한다는 통죽(筒竹)은 대나무 줄기의 마디가 인상적이다.

  다른 대나무보다 굵다는 것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줄기의 마디와 마디 사이 부분이 유독 강렬하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눈길이 갔다.

 

 

 

설죽(雪竹)

 

 

  설죽은 말 그대로 눈 속의 대나무를 말한다.

  생각해보니 눈이 표현된 동양화를 처음 보는 듯 하다.  아니면 보기는 봤는데, 이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기억을 못하는 건가... ^^;;

  대나무가 사철 잎이 있는 식물이기는 해도 겨울철에는 잎이 누렇게 죽는데, 이 설죽 그림에서는 눈에 묻혀서도 잎의 푸르른 기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꼿꼿한 선비들의 기상과 자존심을 나타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4. 수월헌(水月軒) 임희지(林熙之)의 풍죽(風竹)

 

  임희지는 정조(正祖) 때 역관이었으며, 중인 출신 문인의 모임인 송석원시사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키가 8척이나 되고 구렛나룻을 길러서 남들 눈에 확 띄는 풍모를 지녔다.  중국어 실력이 뛰어나고(직업이 역관이니까... ^^), 생황을 악공 수준으로 잘 불었으며, 대나무와 난초도 잘 그렸다니,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임희지는 이런 다양한 능력 뿐아니라, 기행으로도 유명했다.

  한 번은 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는데 물이 솟지않자, 쌀뜨물을 부어놓고 '격식 갖춘 양반집 연못에 달이 뜨면 쌀뜨물 연못에도 뜰 것이다, 내가 달과 물(자신의 호인 수월(水月))의 뜻을 버리지 않았는데 달이 어찌 물을 가려 비추겠나' 라고 했다.

  또한 가난한 살림에도 첩을 두고는 '집이 가난하고 누추해서 꽃을 키울 정원이 없으니, 이 첩을 꽃 대신으로 하련다' 라고 하기도 했다. (임희지의 부인은 가난한 살림에 첩까지 들이는 남편 때문에 속 터졌을 듯... -.-;;)

  그런가하면 강화도로 가려고 바다를 건너던 중 큰 풍랑으로 배가 침몰될 상황에 처했는데, 남들은 무서워 우왕좌왕하는데 혼자서 즐겁게 춤추며 노래를 했다.  위기를 벗어난 후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죽을 수 있는 일이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기괴한 장관을 보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 한다.

  달 밝은 밤이면 쌍상투를 틀고서 맨발로 거리를 쏘다니며 피리를 불어대는 통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귀신이라며 피해다니기도 했다. (나 같아도 이런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면 좀 무서울 듯... -.-;;)

      

풍죽(風竹)

 

 

  임희지의 풍죽은 김응원의 석란만큼이나 세밀하다.

  다만 석란이 어떤 골짜기 바위에 피어 있는 난초의 정적인 모습을 세밀히 묘사한 것이라면, 이 풍죽은 바람에 흩날리는 동적인 모습을 잘 포착했다.  그림을 보면 대나무 잎 중 일부가 대나무 가지에서 떨어져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바람에 흔들려 떨어져나왔다고 볼 수도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려고 일부러 그리 그린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여러 장의 조금씩 다른 그림을 한 번에 주르륵 보여줘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애니메이션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