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커피전문점의 습격(!)과 배신(?)

Lesley 2013. 10. 8. 00:01

 

 

1. 커피전문점의 습격 -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다!

 

 

  요즘 같아서는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에서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다.' 로 바꿔야 할 판국이다.

  그만큼, 어디를 가나 커피숍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커피숍이라는 게 예전부터 있기야 했지만, 이제는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통칭 커피전문점)이 우리나라를 습격해서 점령하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시내 중심으로 나가야 볼 수 있었던 커피전문점이 이제는 변두리 지역인 우리 동네에도 잔뜩 들어와서, 거짓말 좀 섞어 말하면 식당보다 커피전문점이 더 많아 보일 지경이다.

 

  내가 처음으로 커피전문점이란 곳에 갔던 것이 7,8년 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대학시절 친구가 자기 언니 따라서 '아주 특이한 커피숍' 에 다녀왔다면서, 나를 그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그 곳이 바로 스타벅스 명동점이었다.

  친구의 말대로 정말 특이하긴 특이했다.  3층 건물이었나 4층 건물이었나, 하여튼 그런 건물 하나가 통째로 커피숍이었다.  그리고 거리쪽으로 향한 외벽 전체를 유리로 해놓아서, 그 매장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면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훤히 보였다.  나중에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그 스타벅스 명동점이 전세계 스타벅스 매장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살인적으로 뛴 임대료 때문에 사라졌다고... 잘 나가는 스타벅스도 팍팍 밀어내는 명동의 부동산 임대료!)

 

  솔직히 처음 가 본 스타벅스에 대한 인상은 꽝이었다. ^^;;

  종업원이 없는 것도 아니요, 가격도 일반 커피숍에 비해 훨씬 비싸건만, 건방지게(!) 손님보고 직접 커피를 가져가라는 것이다!  종업원이 '맛있게 드세요~' 라는 싹싹한 말과 함께 커피를 날라주는 것에 길들여져있던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다가 그 때까지 커피숍 하면 당연히 떠올랐던 푹신한 쇼파나 등받이 달린 의자 대신, 너무 높은데다가 등받이도 없어서 앉아있기 불편한 요상한 의자만 잔뜩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 스타벅스 매장 중에서도 명동점이 초기에 생긴 매장이라서, 테이크 아웃이라는 신개념(?) 위주로 매장을 꾸며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불편한 의자들이 마치 '손님, 여기에서 오랫동안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생각일랑 마세요~~  커피 후딱후딱 마시고 얼른얼른 나가주세요~~' 하는 것만 같았다. -.-;;

 

  스타벅스에 대한 첫인상이 안 좋았던 탓에, 커피전문점이라는 것이 길바닥에 널린 세상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스타벅스가 나중에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서, 미국 본사에서까지 주목하고 해외 언론에서 한국의 특이한 스타벅스 집착증(?)에 대해 다룰 정도가 될 줄이야...  그리고 된장녀라는 신조어도 스타벅스 열풍 때문에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나중에 커피빈이니 엔젤리너스니 하는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우후죽순으로 등장할거라는 것 역시 예상 못 했다.

  커피전문점이 지천으로 깔리다피시피 늘어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 급증한 유학 경험자들이 해외에서 스타벅스류의 커피전문점을 이용했던 경험을 한국에서 되살리고 싶어하는 점, 꼭 유학 경험자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우리나라 커피숍과 색다른 형태의 커피전문점에 대해 사람들이 호기심을 일으켰던 점, 대학도서관과 일반 공공도서관을 막론하고 좌석이 부족하다는 점,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혼자서 혹은 두세 명의 사람이 시간을 보낼만한 장소가 부족하다는 점 등등...

 

  처음 스타벅스에게 악감정(?) 품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나도 커피전문점을 종종 이용한다.

  한 동안 이 땅의 남정네들이 커피전문점을 좋아하는 여인네들을 '된장녀' 라고 비난했다.  요즘이야 커피전문점을 애용하는 남정네 숫자도 만만찮아서, 커피전문점에 자주 드나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된장녀라고 욕먹지는 않지만...

  사실, 푹푹 찌는 여름날에는 커피전문점을 애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따졌을 때 오히려 경제적인 선택이다.  공공도서관은 공공기관의 절전 의무니 뭐니 해서 그저 밖보다 좀 견딜만하다 수준으로만 에어컨을 틀어줄 뿐이고, 그나마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찌감치 좌석을 점령해서 조금만 늦어도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집에서는, 절전을 부르짖는 정부의 잔소리 아니더라도 누진세가 무서워서, 잠자리 들기 두세 시간 전부터나 겨우 에어컨을 틀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몇 천원의 돈을 투자(?)해서 서너 시간 동안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커피전문점에 앉아 녹차라테 홀짝거리며 책 한 권 읽고 있자면, 정말이지 천국이 따로 없다. ^^ 

 

  이제 커피전문점의 확산은 개인의 호불호나 상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나라의 문화현상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농어촌 지역이라면 모를까, 도시에서는 중심부 뿐 아니라 변두리까지 커피전문점이 없는 곳이 없다.  커피전문점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라 앞으로는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문 닫을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도 젊은 직장인들 상대로 직장을 그만 둔 후에 어떤 일을 할 생각인지 설문조사했더니만, 가장 많은 간택(?)을 받은 업종이 커피전문점이었다나 뭐라나...  이런 상황을 뒤집어 생각하면, 이제는 그만큼 커피전문점이 완전히 한국에 정착해서 '뿌리 뽑기'(!) 힘들다는 뜻도 된다. 

 

 

 

2. 커피전문점의 배신 - 개성 넘치는 커피전문점, 그러나...

 

 

  요즘 거리를 가득 채운 커피전문점 대부분이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인데, 간혹 가다 개성 넘치는 개인 커피전문점도 보인다.

  몇 년 전에 우리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선 후로, 학생들 상대로 하는 가게가 줄줄이 문을 열었다.  그 중에는 아주 재미있는 커피전문점도 있었다.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 바로 앞에 있는 Cafe DeArt(카페 디아트)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재미있게 바꾸어 장식해놓은 것 때문에 신선한 느낌을 주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 달에 이 특이한 커피전문점이 사라져버렸다. ㅠ.ㅠ

 

 

카페 디아트 입구.

※ 출처 : 오리맘맘(orimommom)님의 블로그(http://orimommom.blog.me/120164815007)

 

  카페 디아트의 사진을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 유감이다.

  폰카로 몇 장 찍었던 것 같기도 한데, 따로 저장해놓지 않고 그냥 삭제했나 보다.  다행히도,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른 블로거가 이 카페 디아트에 대해 포스팅 한 것이 있다.  그래서 그 블로거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얻어왔다. ^^

 

 

카페 디아트의 특이한 그림들.

※ 출처 : 오리맘맘(orimommom)님의 블로그(http://orimommom.blog.me/120164815007)

 

  보다시피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명화에 재미있는 변화를 주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신체 일부가 그림의 틀을 박차고(?) 나온 것으로도 흥미로운데, 입체적으로 꾸며놓아서 더 사람의 눈길을 잡아끈다.   

 

 

 

카페 디아트의 특이한 그림들.

※ 출처 : 오리맘맘(orimommom)님의 블로그(http://orimommom.blog.me/120164815007)

 

 

카페 디아트의 특이한 그림들.(특히 오른쪽 뭉크의 '절규' 는... ^^)

※ 출처 : 오리맘맘(orimommom)님의 블로그(http://orimommom.blog.me/120164815007)

 

  내가 이 카페 디아트에서 제일 좋아했던 그림이 오른쪽에 보이는 뭉크의 '절규' 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현대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강렬하게 표출한 수작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이 무섭고 괴기스럽게만 보이는 그림이 어떻게 명화의 반열에 올랐는지 도통 모르겠다. -.-;;

  그런데 그 '무섭고 괴기스럽게만 보이는 그림' 을 저렇게 해학적으로 바꿔놓다니,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다.  만인 앞에서 속옷을 노출하게 된 주인공의 표정이라니, 이쯤 되면 그림의 제목을 '절규' 대신 '멘붕' 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지... ^^

 

  그런데 카페 디아트에 대한 사연에는 한 가지 반전이 있으니...

  카페 디아트가 문을 닫은 것이 나에게 타격(?)을 준 이유가, 그저 이런 재미있는 그림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는 것 뿐만은 아니다.  카페 디아트에서는 단골 손님들에게 쿠폰을 지급해서, 커피 등의 음료수 한 잔을 시킬 때마다 그 쿠폰에 도장을 하나씩 찍어줬다.  도장 10개가 찍힌 쿠폰을 가져가면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도장 9개를 받은 상태에서 카페 디아트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0-;; (이건 배신이야, 배신...! 이럴 수는 없어...! ㅠ.ㅠ) 

 

  지난 번에 카페 디아트 있던 곳을 지나치면서 보니, 그 자리를 반으로 갈라서 그 중 한쪽에 또 다른 커피전문점을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커피전문점도 카페 디아트처럼 나 홀로 한가로움을 즐기는 나만의 아지트 노릇을 하게 될런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