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처음 탑승한 '누리로' - 무궁화호를 대신할 기차

Lesley 2013. 9. 21. 00:01

 

  9월 첫 번째 토요일 천안에 다녀왔다. 

  이 날 천안에 간 이유는 하얼빈 일당 B의 아기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하얼빈 일당인 M과 서울 용산역에서 만나서 함께 천안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돌잔치는 그냥 핑계일 뿐이고, 오래간만에 하얼빈 일당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포 푸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던 것 같다. ^^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천안을 다녀오면서, 전부터 한 번 타보겠노라 벼르고 벼르던 누리로('누리호' 가 아니라 '누리로' 임!!!)를 타 본 것이 큰 소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천안 다녀오면서, 누리로를 처음 탄 것 빼고도 기차 관련해서 자잘한 사건들이 있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벌어진 사건을 살펴보자면... 

 

  일단, 용산역에서 본 신통방통한 기차표 자동판매기...!

  나는 2008년에 경주와 부산을 다녀온 후로 기차를 타본 적이 없다. (최소한, 한국기차는 안 타봤음. ^^)  그래서 용산역에서 기차표 자동판매기를 보고서, 무려 쇼크(!)씩이나 받았다. ^^;;

  비록 기차표 자동판매기를 처음 보기는 했지만, 단순하게 출발지 및 도착지와 시간 정도만 입력하면 표가 나오는 판매기였다면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철역에서 그런 종류의 자동판매기를 이미 봤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  마치 컴퓨터로 코레일 홈페이지 접속해서 알아볼 때처럼, 각 시간대별로 어떤 등급의 열차가 몇 시에 출발해서 몇 시에 도착하고 표값은 얼마고 좌석이 몇 개나 남아있는지까지 좌르르 뜬다...! @.@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신기한 자동판매기의 터치 스크린을 이것저것 눌러가며 검색하는 M이, 내 눈에는 경이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M은 자동판매기를 태연히 다룬 것 말고도 나를 또 놀라게 했으니, 열차 등급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0-;;

  M은 20대 후반인데다가 최근에 친구들과 정동진으로 기차 여행을 즐기고 왔는데, 놀랍게도 '새마을호' 와 '무궁화호' 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  우리가 출발해야 하는 시간 무렵의 무궁화호 열차는 모두 입석표 밖에 없었다.  그래서 M이 좌석이 남은 새마을호의 표를 사려고 하기에 "천안까지는 새마을호가 무궁화호보다 겨우 3분 빠른데 3,000원이나 비싸잖아.  그냥 무궁화호 입석표 사자." 했다.  그랬더니 "새마을호가 왜 더 비싸요?" 라고 M이 나에게 물었다.  너무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

  조금 전까지 나 자신이 기차표 자동판매기 놓고서 어리숙하게 굴었던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M에게 이미 사라진 비둘기호와 통일호부터 시작해서 KTX까지 열차 등급에 관하여 한바탕 강의를 했다. ^^;;    

 

 

 

  자, 여기까지가 서론이었고, 이제부터 본론인 '누리로' 이야기로 돌아와서...

 

  누리로라는 이름은 누가 붙였나, 참 요상하게도 붙였다.

  아마 '세상' 이란 의미의 '누리' 에서 따온 이름 같은데, 왜 '누리호' 라고 하지 않고 '누리로' 라고 했을까?  무궁화호니 새마을호니 하다가, 누리로라고 하려니 혀가 안 돌아가서 발음이 안 된다. ^^;;

  기존의 우리나라 열차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입했거나, 혹은 그쪽 국가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제작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누리로는 특이하게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하여튼 이 누리로는 내가 이번에 처음 탈 수 밖에 없는 것이...  내가 2008년 10월에 경주와 부산을 다녀온 뒤로 한국에서는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데, 누리로는 2009년 6월부터 운행하기 시작했다.  오래되어 낡은 무궁화호를 대체하기 위해서 들여왔고, 2023년에 무궁화호를 완전히 대체할 때까지는 무궁화호와 병행해서 운행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우리가 천안에 내려갈 때는 무궁화호를 탔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누리로를 탔기 때문에, 구형인 무궁화호와 신형인 누리로를 비교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

 

 

천안역에서 승객을 태우려고 정차 중인 누리로의 화려한(!) 모습.

 

  모든 누리로가 다 저렇게 화려하게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이 날 우리가 탄 누리로는 서울의 용산역에서 전남의 여수EXPO역까지 왕복하는 열차다. (여수EXPO역이라는 기차역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음. ^^)  어쩌면, 여수 엑스포 때 누리로 이용하는 관광객들 보기 좋으라고, 여수EXPO역으로 가는 누리로만 예쁘게 칠해놓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올 때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이 날 은근히 자잘한 사건이 많았음. ^^)

 

  몇 년 전부터 수도권 전철이 천안까지 확장된 통에, 천안역에서는 전철과 기차 모두 다닌다.

  아, 참고로, KTX를 이용하려면 '천안역' 이 아니라 '천안아산역' 으로 가야 한다.  천안역은 무궁화호, 누리로, 새마을호 같은 일반 열차 및 전철만 선다.

  돌잔치가 끝나고서 하얼빈 일당 모두 택시로 천안역까지 함께 움직여서, 거기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전철 타고 돌아가겠다는 J군이 먼저 개찰구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당연히 기차 승강장도 그 개찰구 안쪽에 있겠거니 하면서, J군을 배웅하고서는 우리 기차 시간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조치원으로 가야 한다는 E가 전광판 표시를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역무원들에게 물어보니, 조치원행 기차는 J군이 나간 그 대합실의 개찰구가 아니라 복도를 돌아 나가 다른 대합실 개찰구로 나가서 타야 한단다.  놀란 E가 급하게 떠나고, 남은 M과 나는 "하마터면 쟤 기차 놓칠 뻔 했다." , "기차 출발하고 나면 표값 환불 안 해줄걸?" 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태평하게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탈 용산행 기차도 E가 간 그 대합실의 개찰구로 나가야 한단다...! -0-;;

  즉, 천안역은 용산역과는 달라서, '전철 승강장으로 가는 개찰구' 와 '기차 승강장으로 가는 개찰구' 가 다른 대합실에 있다.  천안역 이용하실 분은 주의하시기를...!

 

  그런데 이게 이 날 기차 관련해서 일어난 사건의 끝이 아니었다.

  M과 용산행 기차가 선다는 승강장에 내려가서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승강장 앞쪽에만 몰려있기에, 우리는 한가한 뒤쪽의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왜 사람들이 앞쪽에만 몰려있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뒤쪽 벤치가 텅텅 빈 것만 좋아했다.

  그 때 어떤 역무원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는 어디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냐고 물어보셨다.  9시 9분 용산행 누리로를 기다린다고 대답했더니, 역무원 아저씨 왈 "누리로는 4칸 밖에 없어서 저기 앞에만 서요.  뒤쪽에서 이러고 있으면 기차 놓쳐요." -0-;;  나중에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과연 누리로는 다른 열차와는 다르게 4량 1편성을 기본으로 해서 운행한다고 한다.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우리는 기차 못 탈 뻔했다.  그 역무원 아저씨께서 이 블로그 보실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그런데 누리로는 왜 이렇게 짧을까?  2023년에 현재의 무궁화호가 전부 사라지고 누리로로 대체되면,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라는 애들 노래 가사를 바꿔야 할 것 같다. ^^;;

  하여튼, 누리로는 달랑 4량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누리로를 타실 분은 승강장 앞쪽에서 기다리셔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승강장 뒤쪽에서 기다리다가는 기차를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누리로 겉면에 붙은 소지섭에게 완전히 반한 M양...이 아니고...

그저 기차 타려고 객차 출입구로 가려던 것 뿐인데. 절묘하게 이런 모습으로 찍혔음. ^^

 

 

누리로는 겉모습 뿐 아니라 열차 내부 천장도 독특했음.

 

  바탕의 빨간색과 파란색은, 아마도 태극무늬의 색에서 영감을 얻은 모양이다.

  거기에, 우리 전통적인 물건에 많이 쓰이는 囍자가 총총히 박혀 있고...  구름을 형상화 한 것 같은 하얀색 무늬도 있고...  빛을 의미하는 것 같은 노란색 무늬도 있고... (설마... 아무리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저 노란색이 황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 ^^;;)

 

 

객차 뒤편에 있는 짐 보관소 겸 입석승객을 위한 간이좌석(?).

 

  좌석 아래에 두거나 좌석 위의 선반에 올리기에는 덩치가 큰 짐을 놓아두라고 만든 공간인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좌석표를 못 구해서 그랬던지 저 짐 보관소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  저 자리가 원래 그런 용도는 아니어서, 코레일에서 알면 안 좋아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땅덩이가 넓은 게 아니라 승객들이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탑승할 일도 별로 없는데, 가끔은 좌석 없는 이들이 그렇게 간이좌석 비슷하게 써도 괜찮을 듯하다. ^^   

 

 

누리로 객차 사이의 문은 전철 객차처럼 투명하게 되어 있음.

 

  전에는 전철도 객차 사이의 칸막이 문은 윗부분만 유리로 되어 있고, 대부분은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문 전체를 유리인지 아크릴인지 하여튼 투명한 소재로 해서 이쪽 객차에서 저쪽 객차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대구 전철 방화사건 등 전철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몇 번 일어나서, 다른 객차에서 사고가 났을 때 인접한 다른 객차에서 그 상황을 빨리 알아챌 수 있게, 투명한 칸막이 문을 설치한 듯...)

  그런데 이 날 탄 누리로 역시 전철처럼 칸막이 문을 투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문을 투명하게 만든 진짜 이유가 뭐든지 간에, 뻥 뚫린 것이 시원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 

 

  대단한 여행도 아니었고 그저 당일치기로 돌잔치 다녀왔을 뿐인데, 자잘한 사건사고가 많았다.

  누구 말처럼, 하얼빈에서 나에게 질리도록 달라붙은 파란만장이가 나를 따라 몰래 한국행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따라 붙은 기분이다. ^^

 

 

전철로 천안 가기 / 오므라이스 만들 때, 계란 예쁘게 싸는 법(http://blog.daum.net/jha7791/15790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