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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 명품 타임슬립 드라마

Lesley 2013. 3. 30. 00:01

 

  나는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드라마고 뭐고 간에 TV 자체를 거의 안 본다. (내가 죽기 전에 구입할 가능성이 0.01% 정도 밖에 안 되는 가전제품이 바로 TV임...!)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몇몇 프로그램 외에는 안 봤는데, 내 개인용 노트북을 장만해서 인터넷 서핑에 재미를 들인 후로는 더욱 안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달 TV 시청시간이래봤자 한 시간 남짓 밖에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별히 볼 것이 없는데도 '심심해서' 또는 '집에 혼자 있는 게 어색해서 TV에서 나오는 소리라도 들으려고' 라는 이유를 대며 습관적으로 TV를 틀어놓는 사람들을 보면, 도통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그렇게 TV를 안 보는 대신, 어떤 드라마랑 한 번 눈이 맞게 되면 아예 익사(!)할 수준으로 푹 빠져 버린다. ^^;;  그리고 그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한참 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곤 한다. 

 

  요즘 들어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으니, 케이블 방송 tvN에서 하는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이다. 

 

 

 

 

  공중파 방송국 드라마도 거의 안 보는 내가, 어쩌다가 케이블 방송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느냐...

  종종 드나드는 블로그에서 이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의 감상문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도 못 들어본 드라마라 그냥 지나쳤는데, 어쩌다가 1회 감상문을 읽게 되었다.

  이 드라마 장르가 '타임슬립물' 이라고 해서 시큰둥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작년부터 우리나라 방송계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타임슬립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  신의, 옥탑방 왕세자, 닥터 진, 인현왕후의 남자 등등... (그 중 내가 제대로 본 것은, '신의' 와 '옥탑방 왕세자' 였음.)  그래서 '또 타임슬립이야?' 하며 심드렁해 했다.

  그런데 '약 30분간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9개의 향' 을 소재로 했다는 부분을 읽는 순간 '어, 이 드라마는 좀 다르네?' 하는 느낌이 파바박~~~!!!  그렇게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을 1회부터 정주행하게 되었다. (아, 이 드라마는 20회짜리인데, 지금 6회까지 방영된 상태임. ^^)

 

 

 

 

  이 드라마는 기존의 타임슬립물과 여러모로 다르다.

 

 

  첫째, 시간여행의 수단이 다르다.

 

  보통, 타임슬립물에서 시간여행이라는 것은 '타임머신' 이나 '시간의 통로(형태는  매우 다양함. 동굴, 오래된 집의 벽장이나 우물, 심지어는 마법의 책 등등)', 아니면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폭풍우, 신비한 빛)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에서는, 위에 이미 쓴 것처럼 '향' 을 통해서 시간여행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의 형이 어찌어찌하여 2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신비한 향을 하나 얻게 되었는데, 히말라야산에 그 향이 9개나 더 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것을 찾다가 조난을 당해 죽는다.  나중에 주인공이 형 대신 그 9개의 향을 손에 넣어, '현재 자신에게 닥친 불행' 과 '과거 가족에게 닥쳤던 불행' 을 막으려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인 최첨단 시대에, 제사나 불공 또는 정신수양을 위해 쓰는 향이라니...  향이라는 물건 자체가 과거의 느낌을 짙게 풍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런 향이 과거로의 여행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참 멋진 아이디어 같다.

 

 

  둘째, 건너뛰게 되는 시간의 간격이 얼마인지, 그리고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원했는지 여부가 다르다.

 

  다른 타임슬립물에서는, 과거로의 여행이든 미래로의 여행이든 간에 보통 수백년을 뛰어넘게 된다.

  게다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떨결에' 혹은 '강제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졸지에 다른 시간대에 떨어진 주인공은 '이건 분명히 꿈이야.' 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며 온갖 풍상을 다 겪게 된다.  또 그렇게 시대에 안 맞는 행동으로 좌충우돌하며 벌어지는 온갖 에피소드가, 시청자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기도 하고...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향을 피우는 시점을 기준으로 오직 20년 전 시간으로만 가게 된다.

  그것도 단순히 연도 정도만 따져서 20년 전인 것이 아니라, 월, 일, 시, 분, 초까지 정확하게 계산된 20년 전 시간으로...  이렇게 건너뛰게 되는 시간대가 확실히 정해져있고,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시간여행은 주인공의 의지로 이루어지게 된다.  과거에 그 신비한 향으로 시간여행을 했다는 미지의 인물도, 9개의 향을 찾으려다 죽은 선우의 형도, 이제 9개의 향으로 시간여행을 시작하게 된 선우도, 모두 '20년 전으로 돌아가, 현재의 불행을 초래한 과거의 사건을 바꿔놓겠다.' 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시간여행에 나섰다. (혹은 시간여행에 나서려고 했다.) 

 

  그렇게 주인공이 가고자 하는 시간대와 가고자 하는 목적이 명확하기에, 이 드라마는 속도감 넘친다.

  즉, 주인공이 장차 무슨 일을 하려는지 장황하게 설명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없이, 불과 3회만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빠른 전개를 보이는 것이다. 

 

 

  셋째,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기간이 다르다.

 

  기존의 타임슬립물에서는 일단 다른 시간대로 떨어지게 되면,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갈 기약이 없다.

  어디까지나 자기 스스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돌아갈 방법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니 시간여행을 얼마나 하게 되는지는, 주인공이 돌아갈 방법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짧아봤자 며칠, 어쩌면 몇 달, 심지어는 1년 이상이나 시간여행을 하다가, 겨우 자신이 살았던 시간대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향이 다 타면 시간여행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 향이 다 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이다.  그렇게 때문에, 9개의 향을 손에 넣은 선우는, 한 번에 30분씩, 총 9번에 걸쳐서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고, 한 번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그 30분이란 시간에 맞춰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끝내야 한다.  30분씩 9번이라고 정해져 있는 시간과 횟수는, 그렇잖아도 빠르게 전개되는 드라마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2012년 방송국 대기실에서 향을 피웠다가, 1992년 방송국 대기실로 넘어가게 된 선우.

그리고 대기실에 있어야 할 선우는 보이지 않고, 뜬금없이 향만 하나 타고 있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방송국 후배.

 

 

  1, 2회만 봐서는, 이 드라마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처음 부분이다 보니, 주인공의 현재 상황 및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그 설명 과정에서 주인공 '박선우(이진욱)' 의 러브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  선우와 막 사랑을 시작한 '주민영(조윤희)' 이 앞으로 벌어질 시간여행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듯하니, 그런 민영이 선우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데...

  두 사람이 연애하면서 하는 행동이나 말이, 무슨 중학생 눈높이에 맞춘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할 법한 수준이다.  그래서 도무지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 저런 식으로 연애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긴 한거니... ㅠ.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드라마 전개가 빠른 편이라서, 손발 오글거리는 러브 스토리 속에서도 드라마의 본론이랄 수 있는 장면이 제법 나왔다는 점이다.  

  1회 뒷부분에서 선우가 숙적인 '최진철(정동환)' 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장면은 무척 박진감 넘친다. (이 최진철이라는 인물과 그가 저지른 비리는, 예전 황우석 박사 사건에서 아이디어 따온 것이 분명함.)  그리고 2회에서 선우가 과거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서 어머니와 형과 마주치는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제작진이 연출이나 영상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보이는 장면이었다.  만일 이런 장면들이 없었다면, 1회와 2회 내내 선우와 민영의 순정만화식 밀땅을 보면서 하품이나 씹어 삼켰을 것이다. 

 

 

뉴스 앵커 선우는 줄기세포 연구로 국민영웅으로 대접 받는 진철에게, 생방송 중에 선전포고를 하고...

 

 

  그러다가 3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다.

 

  보통, 타임슬립물에서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받아들이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향이 있다.' 라는 형의 수첩에 적힌 말을, 보통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만한 그 말을, 선우는 아주 쉽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 전에 형의 유품으로 얻은 향의 효과를 몇 번 경험한 일도 있고, 또 죽은 형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 때문에 자기 한 사람이라도 형의 말을 믿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스스로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라서,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에, 그런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를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선우는 자신을 과거로 인도해 줄 9개의 향을 손에 넣게 된다.

  그 9개의 향은, 눈앞에 닥친 죽음으로 인한 절망,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초조함에 시달리던 선우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다.

 

 

9개의 향이 들어간 통은 물론이고, 덤으로 영화 '보디가드' 의 OST 레코드판까지 얻은 선우. ^^

 

 

  4회에서는 신비로운 향이 선우에게 축복이 될 뿐만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강인한 정신력' 과 '사려 깊고 조심스러운 성격' 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선우는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고도, 울고불고 하거나 절망에 빠져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계속해서 업무를 볼 만큼 말이다.  그런데 신비의 향을 손에 넣게 되자,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못 해 경솔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짓을 벌인다.

  선우는 향이 9개나 된다는 점에 안심하고,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간여행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향을 함부로 쓴다.  제일 중요한 두 가지 일(스스로의 목숨을 구하는 일, 과거에 있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막는 일)을 해결하려 할 때, 어쩌면 향이 여러 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못 하는 것 같다.

 

  선우의 그런 경솔함과 안일함 덕분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발단은, 선우가 20년 전에는 몰랐던 형의 아픈 사랑을 우연히 알게 된 일이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형이 못 다 한 사랑을 이루어주겠다고 나선다.  자신이 1992년의 세상에서 하는 행동이 2012년의 세상에 뜻밖의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다른 타임슬립물에서는 주인공이 역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별 것 아닌 일 하나 하는 데에도 온갖 고민을 하던데, 선우는 정말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임. -.-;;)

  사실, 나로서는 선우의 이런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1992년 당시, 형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게 되어 무척 괴로워 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20년이나 지난 2012년까지도 그 여자를 못 잊었다든지, 혹은 형이 시간여행을 하려던 게 그 여자와 다시 이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라든지 하는, 그런 생각을 선우가 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그런 결론을 내릴만한 근거가 없는데 말이다...! (행동력과 모험심 뛰어난 사람 중 사고력은 아주 단순한 사람들이 제법 있던데, 선우도 그런 사람인 듯함. -.-;;)

  결국, 선우가 형에게 과거의 사랑을 되찾아주겠다며 한 행동은, 정작 선우 스스로가 현재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4회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소름끼치게 충격적이었다!

 

 

민영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조금 전까지 바로 옆에 있던 민영을 잃게 된 선우.

 

 

  5회는 선우의 무모함 때문에, 선우 뿐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한영훈(이승준)' 까지 이중기억의 덫에 걸려 허덕이게 되는 내용이다.

 

  선우가 1992년의 세상에서 형을 위한다며 한 작은 행동이 2012년의 세상에서 많은 부분을 바꿔놓으며, 이른바 '나비효과' 를 일으킨다.

  어차피 나비효과로 2012년이 이전과 다르게 바뀔거라면, 차라리 선우와 영훈도 다른 사람들처럼 바뀐 상황만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우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곳에 함부로 손을 댄 벌을 받게 되었고, 영훈은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친구를 말리지 않은 벌을 받게 되었다.  즉, 두 사람 모두 모든 일이 바뀌기 전의 기억과 바뀐 후의 기억을 이중으로 갖게 된 것이다...!

  선우는 민영을 연인으로 사랑했던 기억을 품은 채, 이제는 민영을 조카로 대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다.  영훈은 선우의 형이 죽었다는 기억을 그대로 갖은 채, 그 죽었던 사람이 자기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며 자신에게 미소 짓고 말을 건네는 공포영화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그리고 은근슬쩍 나오는 복선 하나...

  '단순돌이 + 둔탱이' 인 선우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바뀐 상황 중에서 중요한 일 한 가지를 그냥 지나치고 있다.  아버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죽은 후, 형은 아버지가 생전에 그토록 반대했던 여자와 결혼해서는 곧장 미국으로 떠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와 아직 미성년자인 동생을 남겨둔 채...  보기에 따라서는, 형이 어머니와 동생을 버렸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최소한 선우보다는 덜 단순하고 덜 둔한 내가 보기에, 큰 비극을 겪은 가족에게 거리를 두는 형의 행동은 이후 이야기의 복선이 될 것 같다.

 

 

겁에 질린 영훈은 안 나가던 성당에 가서 신에게 매달리고, 선우 역시 누구에게든 매달리고픈 마음이 되는데...

 

 

  6회에서는 과거를 바꾸는 문제로 고민하는 선우와 영훈의 모습, 그리고 선우가 예상치 못했던 형의 모습이 나온다.

 

  영훈은 선우가 과거를 바꾸는 일이 현재에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체험한 후,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전에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위험성을 생각하기는 커녕, 마냥 좋은 일로만 여겼다.  왜냐하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절친한 친구 선우가 죽음을 피할 수도 있을테니까...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선우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큰 의문과 분노를 품고 살았나 지켜봤기에, 그런 끔찍 과거를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겼으니까...  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선우는 그런 친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 한다.  차라리 이전처럼 과거를 되돌릴 방법이 아예 없다면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불행을 없앨 방법을 찾았는데,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영훈 : "너희 아버지만 살아나는 게 아니라, 또 생각지도 못 했던 것이 바뀌면 어떻게 하냐고!"

선우 : "근데... 아버지가 한 시간 후면 돌아가시고, 나는 그걸 알아.  알면서 가만히 있는 자식이 어디 있어?"

영훈 : "형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어,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우리 영역 밖이라고!"

선우 : "네 말대로 이건 선악과가 맞을지도 몰라. 근데 어떻게 먹지 않을 수가 있냐고! 난 신이 아니라 인간인데."

 

  이 와중에, 선우는 형에게서 전혀 생각 못 했던 모습을 보게 된다. 

  선우 때문에 모든 게 바뀌기 전, 형은 아버지가 죽자 병원도 그만 두고 폐인처럼 외국을 떠돌다가, 마침내 히말라야에서 죽었다.  그런데 이제는 번듯한 의사 노릇을 하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선우는, 비록 자신은 사랑을 잃었지만 불행했던 형이 행복해졌으니 괜찮은거라고, 스스로를 억지로 위로한다.

  하지만 형은 겉보기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알고보니 프로포폴에 중독될 정도로 심한 조울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수퍼 울트라 둔탱이인 선우는 눈치채지 못 하지만, 어째서인지 형은 몇 년 만에 만난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도, 아버지의 유골을 모신 납골당을 찾아가는 것도, 전부 불편해한다. (5회에 이어, 형의 행동이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2년의 선우와 1992년의 선우가 마주하게 된다...!

  2012년의 선우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죽기 직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막 잠에서 깨어나 당황해 하는 1992년의 자신을, 반은 애틋하게 반은 슬프게 미소 지으며 바라본다.  이 6회의 마지막 부분은, 4회의 마지막 부분과 함께, 지금까지 방영된 부분 중 최고의 장면이었다.  내용, 연출, 연기, 배경음악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형이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프로포폴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선우.

 

 

2012년의 선우, 1992년의 선우를 만나다!

"이야~ 참 오랜만이네.  반갑다.  내 이름은 박선우야."

 

 

  이 드라마는 20회짜리인데 현재 6회까지 방영했으니, 지금 드라마 전체의 감상문 쓰기에는 상당히 이른 편이다.

  하지만 모처럼 접하게 된 '독특한 소재의, 뛰어난 영상미의, 구성이 치밀한' 명품 드라마에 대한 감상을 계속 묻어두기 힘들어서, 이렇게 상.당.히. 일찌감치 감상을 올리게 되었다. ^^

  사실은, 케이블 방송국에서 만든 드라마에 대해 막연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케이블 방송국은 공중파 방송국만큼 돈이 넉넉치 않아서, 드라마 질이 떨어질거라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질이 떨어지기는 커녕 최고다!  대본은 탄탄하고, 연출은 세련되었고(화면을 상하 또는 좌우로 분할하는 기법이나 어색하지 않는 CG를 보면, 어지간한 미드도 부럽지 않을 정도임.), 연기자 중 그 누구도 수준 이하의 연기(일명 발연기)를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카메라를 좋은 걸 썼는지, 아니면 후보정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는지, 하여튼 영상마저 화려하다.  이제는 오히려, 케이블 방송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공중파 방송국 드라마보다 훨씬 낫다는 선입견이 생길 지경이다. ^^

 

  이제 3분의 1이 진행된 이 드라마에게 바라는 바는 딱 한 가지다.

  제발, 시간여행이라는 주된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에 파묻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드라마 중에는, 분명히 시작은 정치 드라마, 법정 드라마, 의학 드라마 등이었는데, 결국 끝에서는 멜로 드라마로 변신하는 경우가 제법 많아서 말이다. -.-;;  원래 장르 드라마는 멜로적인 요소가 양념 수준으로만 나와야, 드라마 전체도 살고 멜로도 사는 법이다.  멜로가 드라마 전체를 휘감는 순간,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이상한 맛이 나오게 된다. 

  "너를 되찾기 위해 아홉번의 시간을 되돌린다." 라는 공식 포스터의 문구도 그렇고, 5회와 6회에서 민영이 자신의 조카가 되어버린 일로 선우가 가슴앓이 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아마도, 앞으로는 선우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면서, 동시에 민영을 원래대로 자신의 연인의 위치로 되돌려 놓으려고 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멜로의 분량과 수준을 적절히 조절해 주기 바란다.

  그렇게 멜로에 파묻히지 않고 장르물로서의 특성을 잘 보여주면서, 4~6회에서 보여준 속도감과 긴장감을 계속 유지한다면, 틀림없이 2013년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