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성북천의 봄

Lesley 2013. 3. 8. 00:28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겨울은 유독 혹독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려나봐~'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북반구 전체가 폭설이나 비정상적인 추위로 몸살을 앓았다.  예년 같으면 2월에 들어서면서 슬슬 날씨가 풀렸을텐데, 올해는 2월에도 내복 껴입고 다녀야 할 정도여서 '도대체 여기가 서울이냐, 하얼빈이냐?' 고 스스로에게 몇 번씩이나 묻곤 했다.

 

  그렇게 계속 될 것만 같던 추위가 3월 들어서 갑자기 물러나면서, 봄이 성큼 다가왔다.

  물론 앞으로 꽃샘 추위가 몇 번 찾아오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야상점퍼 안쪽에 붙인 털내피가 거추장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언제는 추위 때문에 웅크리느라 몸이 화석처럼 굳어버리는 기분이더니, 이제는 기온이 갑자기 오른 통에 오히려 몸이 축축 늘어져 고생한다. ^^;;

 

  최근에 혜화동 쪽으로 나갈 일이 있었는데, 이왕 나간 김에 한성대입구역 근처에서 성북천을 끼고 산책을 했다.

  화창한 날씨도 즐길 겸, 며칠간 실내에만 있어서 굳어진 몸 좀 풀어줄 겸 해서 말이다.  마침 나처럼 확 풀어진 날씨를 즐기느라 산책 나온 시민들이 제법 많았다.  오리니 비둘기니 하는 날짐승들이 봄이 왔다고 활개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

 

 

성북천변에서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 중인, 나무와 지푸라기로 만든 한 쌍의 사슴 모형.

 

 

성북천 다리 아래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

 

  이건 조형물계의 모자이크라 할만한 것이다. ^^

  멀찍이서 보면 물고기 모양인데, 자세히 보면 접시 크기의 나무판에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려 하나씩 실로 매달아 만든 것이다.  보는 사람 눈은 즐겁지만, 만드는 사람은 어지간히 고생했겠다 싶은 조형물이다. 

 

 

야생동물답지 않게 너무 새하얗고 깔끔한 오리떼도 봄을 만끽하는 중이고... ^^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나무다리.

 

  나는 철다리 보다는 돌다리가, 돌다리 보다는 나무다리가 마음에 든다.

  튼튼하기와 관리하기를 생각한다면야 반대 순서가 맞는 것이겠지만, 철다리에서는 예스러운 느낌이나 목가적인 분위기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아, 그러고보니 청계천, 정릉천, 중랑천, 성북천 등 서울의 개천에 걸린 많은 다리 중에서 저 다리 빼고는 나무다리를 못 본 듯하다.  고로... 저 다리는 아주 특별한 다리? ^^

  아담하고 소박한 나무다리에, 겨울을 난 마른 갈대밭까지 겹치니, 여기가 북적북적한 서울인지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그리고 새 건물이 즐비한 강남의 풍경보다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귀족 신분은 아니었던 듯하다. ^^;;  

 

 

성당답게(?) 생긴 돈암동 성당.

 

  성북천 옆을 걷다가 문득 위의 도로 쪽을 쳐다보니 성당이 보여서, 얼른 올라가 한 컷 찍었다.

  성당이든 교회든,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앙활동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얼마나 충실한가가 중요한 것이겠지만...  웬지, 교회는 몰라도 성당은 저렇게 고풍스럽게 생겨야 할 것 같다. ^^  길을 가다 보면, 상가건물이나 연립주택 비슷하게 생긴 현대식(?) 성당이 눈에 띌 때가 있다.  그 성당 안에서 건전한 신앙생활 꾸려나가는 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인데, 볼 때마다 좀 웃기게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

 

 

  그리고, 성북천 산책 끝나고서 찍은, 봄풍경과는 아무 상관없이 올리는 서비스컷~~!

 

고려대 근처에서 사거리에서 본 개미떼(!) 같은 행인들.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천으로 내려가 보문역 근처까지 걷다가 인도로 올라갔는데, 고려대 쪽으로 가다가 '인간 개미떼'(!)와 마주쳤다.

  원래 대학 근처라는 곳이 사람이 많기는 한데, 이 날 저 사거리에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사진 속 사거리 쪽으로 얕으막한 내리막길을 걷다가 새까맣게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니,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횡당보도를 건너 저 인파 속에 들어갔더니, 제대로 걷지를 못 하고 그냥 사람들이 걷는대로 떠밀려 움직이게 되었다. ^^;;

 

  내가 사람들 잔뜩 몰려있는 것을 보면서 '질린다' 는 느낌 제대로 받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운동장에서 조회를 마친 후 전교생이 한꺼번에 교실로 돌아가게 되었다.  뒤쪽에서 보니, 저 앞의 오르막길로 바글바글 올라가는 학생들 모습이 확 눈에 들어오는데...  초록색 교복코트(산뜻한 초록색이 아니라, 칙칙해보이는 초록색이었음!)가 무슨 바다나 초원처럼 쫙 깔린 가운데, 그 위로 검은색 머리카락으로 뒤덮힌 뒤통수들이 둥둥 떠있는데, 공포영화와는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ㅠ.ㅠ  한국전쟁 중에 우리쪽 병사들이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맞닥뜨린 순간, 어떤 심정이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저 날 저 개미떼 덕분에 오랫 동안 잊고 있던 추억(!) 하나를 떠올렸으니, 개미떼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