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삼청각 - 성북동의 늦가을

Lesley 2014. 11. 19. 00:01

 

  가을의 끝무렵이었던 지난 주, 오래간만에 성북동 나들이에 나서 삼청각에 가봤다.

  성북동은 내가 사는 동네와 같은 성북구라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한동안 발걸음을 안 했다.  그러다가 지난 달 의릉에 갔는데, 거기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성북동 관광 안내도를 보게 되었다.  의릉의 가을 풍경(http://blog.daum.net/jha7791/15791135) 

  그 안내도에 나온 성북동의 명소를 살펴보다가, 지금껏 삼청각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청각이란 곳이 성북동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성북동을 여러 번 다녔으면서 왜 지금까지 가볼 생각은커녕 안 가봤다는 것도 모르고 지냈을까? -.-;;  하여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왕 그 사실을 깨달은 김에, 지금까지 내가 가 본 성북동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수연산방을 넘어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미개척지(?)를 탐험해보기로 했다.  ☞ 수연산방 - 성북동 한옥 전통찻집, 소설가 이태준의 옛집(http://blog.daum.net/jha7791/15790926)

 

  삼청각에 가려고, 번호부터 범상치 않은 1111(!)번 버스를 타고 성북동으로 출발했다.

  집 근처를 지나는 1111번 버스가 성북동으로 간다는 것을, 재작년에야 겨우 알았다.  그 전까지는 정말 복잡하고도 무식한(!) 방법으로 성북동을 다녔다.  다른 버스를 타고 미아삼거리역까지 가서, 거기에서 전철 4호선을 타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린 후, 걸어서 간송미술관 또는 길상사로 올라가는... -.-;;

  그런데 알고 보니 1111번 버스가 간송미술관 바로 앞 '성북초등학교' 정류장은 물론이고, 수연산방 근처의 '동방대학교대학원' 정류장도 지난다.  한번에 갈 수 있는 성북동을 그렇게 복잡하게 다녔으니...  삼청각으로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면 1111번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인 '명수학교' 에서 내리면 된다. (이 정류장서 버스가 유턴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게 됨.)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삼청각 가는 길.

 

  버스에서 내려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이번에는 얕으막한 오르막길이 나온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는 헉헉 대며 걷느라 사진 찍을 엄두를 못 냈다. (나날이 떨어지는 체력... ㅠ.ㅠ)  그러다가 한결 가뿐히 걸을 수 있는 얕으막한 오르막길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사진 찰칵~~!  마치 일부러 깔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은행잎이 가득해서, 보는 눈도 즐겁고 신발 아래 바삭바삭 밟히는 느낌도 좋다.  샛노란 은행잎으로 뒤덮힌 한적한 길이 늦가을 분위기를 돋우는 것까지는 참 좋은데, 고약한 은행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게 좀... ^^;;

 

 

은행잎이 깔린 보도블록 한쪽으로는 귀여운 강아지풀이 옹기종기 모여있음.

 

 

드디어 북악한 기슭에 자리 잡은 삼청각에 도착!

 

  1970년대 초반에 건립되었다는 삼청각은 원래는 요정이었다.

  대원각(현재는 '길상사' 라는 절로 바뀜.) 등과 함께 군사정권 시절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들이 드나들던 고급 요정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일반 음식점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2000년대 들어서는 서울시에서 인수해서 세종문화회관이 운영을 맡는 전통문화예술 공간으로 바뀌었다.  

  ☞ 길상사(吉祥寺)(http://blog.daum.net/jha7791/15790814)

     길상사(吉祥寺)의 단풍 구경하세요!(http://blog.daum.net/jha7791/15790845)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통 울긋불긋 단풍만 보임...! 

 

 

화려한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 아래에는 단풍잎들이 가득한 쓰레기 봉투가 우두커니 서있는... ^^;;

 

  좀 우스우면서도 서글프고, 또 예쁘다.

  위에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고 노란 단풍이 눈이 부실 지경인데, 아래에는 뜬금없이 쓰레기 봉투에 한 가득 담긴 단풍잎이 우습고...  화려한 단풍잎도 마지막에는 쓰레기 신세가 되는구나 생각하니 서글픈데...  저렇게 투명봉투에 단풍잎을 꽉꽉 넣어둔 것을 보니, 나름 예뻐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 봉투 채로 그냥 집에 들고가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

 

 

요즘 이상하게 전통 담벼락에 꽂혀버린 나... ^^

 

 

화려한 단풍 사이로 부끄러운 듯 모습을 슬쩍 비친 한옥이 멋스러움을 더 하고... (지화자~♩ 좋다! ♬)

 

 

새파란 하늘!  새빨간 단풍잎!

 

 

잿빛 바위 위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단풍잎들도, 보는 이의 마음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최근 들어 니콘 P300에 불만을 갖게 되었는데, 이 사진을 보니 P300도 쓸만한 듯... ^^)

 

 

역시 높으신 양반들이 드나들던 요정이었던 곳이라, 운치가 철철 넘쳐흐름.

 

 

우리집 베란다에 있는 항아리는 그냥 항아리일 뿐인데, 여기에 있는 항아리는 예술품으로 보임.

(그래서 사람이나 물건이나 자리가 중요한 것이야~ ^^)

 

 

옛스런 담벼락 위를 휘감고 있는, 잎이 다 떨어진  담쟁이 덩쿨도 가을 분위기를 더 짙게 만들고...

 

 

담장 위에 사슴뿔처럼 돋아난 이름 모를 식물.

(마치 담장 뒤에 있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담장 위에 뿌리를 내린 식물임.)

 

  이 포스트에 올린 사진을 찍은 게 지난주였다.  

  저 곳에 다녀오자마자 바람이 쌩쌩 불며 기온이 뚝 떨어져 초겨울에 들어섰으니, 이제는 삼청각의 알록달록한 단풍이 다 졌을 것이다.  이번 가을이 끝나기 직전에 삼청각을 다녀와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저렇게 화려한 삼청각의 단풍 풍경을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했을테니까... (역시 인생은 타이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