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마지막 단풍 / 역시 나는 '길치+방향치'다...! ㅠ.ㅠ

Lesley 2012. 12. 15. 00:15

 

  지난 달의 어느 토요일 혼자서 의릉과 천장산에 갔다가, 마지막 단풍이 너무 예뻐서 폰카로 찍어봤다.

  겨우 한달 전만 해도 그렇게 울긋불긋했던 단풍이 지금은 다 떨어지고 눈까지 펑펑 오다니, 정말 시간 가는게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이미 한겨울인 지금에 와서 이 날 찍은 사진들을 보면, 분명히 내가 찍은 사진인데도 사진 속 풍경이 정말로 겨우 몇 주 전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

 

☞  의릉(懿陵) - 왕릉과 안기부의 기묘한 동거 (http://blog.daum.net/jha7791/15790831)

     천장산(天藏山) - 40년여만에 시민에게 돌아온 산 (http://blog.daum.net/jha7791/15790840)

 

 

천장산으로 올라가는 의릉 내 오솔길을 따라 걷던 중 발견한 단풍나무.

(폰카로 찍었더니만, 역시 2% 부족함. 어째 나뭇잎들이 다닥다닥 붙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

 

  이미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들어서는 때라서, 어지간한 나무는 잎이 없는 앙상한 모습이다.

  무성한 초록잎 가득한 나무들 사이에 있어도 저렇게 붉은 단풍나무라면 눈에 확 띌텐데, 주위에 앙상한 나무들만 가득하니 아예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이다.  그래서 화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질감이 좀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 색의 단풍에 둘러싸인 의릉 안의 오솔길. (오솔길 오른편 너머로 봉분이 보임.)

 

  그런데 이 날의 천장산 나들이에는 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

  처음 올라간 산도 아니고, 높고 험준한 산도 아니건만... 그 위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내려왔다. -.-;;  작고 얕으막한 산이라,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1시간 15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날은 헤매다가 내려오는 통에 2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이거야 원...

  산 위에서 안내판에 그려진 지도를 몇 개 보기는 했다.  하지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동서남북 구별이 안 되니, '전설의 고향' 속에 나오는 여우한테 홀린 선비 마냥 그 작은 산에서 뱅뱅 맴돌다가 겨우 내려왔다. 내가 천하의 '길치 + 방향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날이었다. ㅠ.ㅠ

 

  그리고 이 날 산에 올라가면서 스마트폰 속에 저장된 영화 '늑대소년' 의 OST를 들었는데, 그렇잖아도 길 잃고 당황한 나에게 이 음악이 은근히 공포심을 부추겼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북한산이나 관악산 정도 되는 산도 아니고 동네 야산 수준의 천장산에서, 맹수가 나타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주말인데도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없는 산 속에서, 나 혼자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려니, 어디서 늑대 한 마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닮아 이리도 겁이 많은가... -.-;;)

  하얼빈 일당 M에게 내 상황 설명하는 카톡을 날리면서 "어쩌면 늑대소년과 마주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날 잡아먹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냐" 하고 우는 소리 했다.  그러자 M의 답장이 걸작이었다.  "그러면 늑대소년에게 '기다려!' 를 가르쳐주면 된다." 라니...! (이것은 '늑대소년' 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재치 넘치는 대답임. ^^)

 

 

나무에 달린 단풍도 아름답지만, 마치 눈처럼 땅을 덮어버린 단풍도 정말 아름다움. ^^

 

  다행히도 늑대소년에게 "기다려!" 란 말이 통할런지 시험해 볼 기회(?) 없이, 무사히 천장산을 내려와 의릉으로 컴백했다. ^^

  내려오는 오솔길 끝으머리에서 본 단풍잎이 잔뜩 진 풍경이 어찌나 예쁘던지...  보통 단풍이 지면 좀 지저분하다는 느낌 또는 스산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날 의릉 안에서 본 땅바닥에 단풍잎이 잔뜩 내려앉은 풍경은, 단풍잎으로 만든 요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예쁘고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얼른 그 폭닥폭닥해 보이는 단풍요 위에 드러눕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

 

 

  이미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단풍 관련한 사진을 올리는 것이 무척 때 늦은 감이 든다.

  솔직히... 11월 중에 올리려던 포스트였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다른 포스트에 치이고 밀려서 이제야 올리게 된 것도 있고... ^^;;  하지만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예쁘게 장식했던 단풍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달래고, 또한 일 년 후에나 다시 보게 될 단풍에 대한 기대를 품으면서, 이 한 발짝... 이 아니고 세 발짝 쯤 늦은 단풍 사진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