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관련 책, 유적지, 기타

국립중앙박물관의 '천하제일 비색청자(天下第一 翡色靑磁)'

Lesley 2012. 11. 12. 00:08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천하제일 비색청자(天下第一 翡色靑磁)' 전시회를 관람했다.

  전시회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전시품목은 고려청자다.  지난 달에 종영한 드라마 '신의' 가 비록 엉망진창인 드라마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고려 말기를 다룬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스레 고려사에 관심 두고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러던 참에 마침 고려청자 관련한 전시회를 한다고 하니,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얼른 가서 관람했다. ^^ 

 

  그런데 이 전시회 요금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보통 미성년자와 성인으로만 나누어서 요금을 매긴다.  그런데 이 전시회는 만 18세까지는 1000원, 만 25세까지는 2000원, 만 26세부터는 3000원이다.  내가 "똑같은 성인인데 왜 만 25세 넘은 사람은 더 많이 내야 돼? 이건 차별이야!" 하고 분노(?)하자, 함께 간 친구가 "만 25세 아래면 아직 대학생이네.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요즘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비싼데, 이런거라도 저렴하게 해줘야지." 라고 면박줬다. ^^;;

 

  우리는 이 날 전시회장을 두 번 둘러봤다.

  우선, 공교롭게도 우리가 가이드가 해설해주는 시간 직전에 전시회장에 들어섰기 때문에, 가이드 쫓아다니며 한 시간짜리 설명을 들었다.  그 후에는 우리끼리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둘러보며 복습(!)을 했고...

 

  그런데 우리가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일단 가이드 복이 있었다.  우리에게 설명을 해준 나이 지긋한 가이드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잘도 설명해주셨다.  나중에 우리끼리 돌아다니면서, 좀 젊은 가이드가 다른 관람객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참 듣기 난감한 목소리였다.  함께 간 친구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찢어지는 목소리에, 짜증나는 말투까지 갖춘 가이드' 다. ^^;;

  그리고 전시품목 복도 있었다.  이 날 우리가 구경한 전시품목 중에는 간송미술관 또는 일본의 몇몇 박물관에서 대여해온 것들이 제법 많았다.  그것들은 그 다음주(즉, 이 글이 블로그에 올라온 시점 기준으로는 지난주)에 다시 돌려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전시회 가는 관람객들은 그것들을 볼 수 없다.

 

 

 

  그 많은 고려청자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인상적이었던 것들만 소개하자면...

 

 

 오리 모양 연적. (12세기)

 

  전부터 박물관 가서 각 시대별 도자기를 볼 때마다 느꼈던건데, 확실히 고려시대 도자기가 훨씬 화려하다.

  조선시대 백자도 예술적 가치 높은 것은 고려시대 청자보다 더 한다지만, 나처럼 심미안 없는 사람 눈에는 무덤덤한 하얀색 도자기보다는 녹청색으로 빛나는 도자기가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저 오리모양 연적을 보면, 날개 깃털을 참 정교하게도 만들었다.  청자 빛깔 그 자체로도 화려한 느낌인데, 정교한 모양새 때문에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저런 연적을 이용해서 서예를 한다면, 나 같은 사람도 한석봉 수준의 글씨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

 

 

화장품류를 담았던 작은 고려청자.

 

  사진으로만 보면 그냥 예쁜 꽃병처럼 보이는 위의 청자 및 금속제 병은, 실제로 보면 겨우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크기다.

  조그마한 크기를 보았을 때, 각종 화장품을 담아두는데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화장품 용기들은 실물로 보면 정말 깜찍하다. ^^  가이드의 성명처럼 미니어처로 보일 정도로 앙징맞게 생겼으면서, 동시에 그 표면의 문양이 무척 정교하다.  

 

  우리가 흔히 '고려도경(高麗圖經)' 이라 부르는 책의 원래 이름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이다.

  1123년에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개경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지은 책이다.  고려시대에 나온 책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게 별로 없어서, 그 시절 고려의 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은 외모를 가꾸는 것을 매우 중시해서 면약(面藥)을 사용하고 염모(染毛)를 했다고 한다.  면약은 요즘의 밀크로션 비슷한 화장품일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남녀 모두 사용했을 거라 한다.  또한 염모는 지금의 염색에 해당하는 것으로, 젊어보이기 위해 염색하는 풍습이 서민층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한다. (흐음~~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열망은... ^^)

 

 

보물 제452호(왼쪽)와 국보 제96호(오른쪽)인 거북 모양 주자(注子 : 주전자) (12세기)

 

  사실, 안내판이 설명과 가이드의 해설 덕분에 거북 모양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냥 봤으면 통통한 용이라고 생각할 뻔했다. ^^;;

  줄을 꼬은 것 같은 손잡이 부분의 모양새 하며, 거북 머리 뒷부분의 비늘(거북이에게 비늘이 있던가, 그렇다고 깃털은 아닐테고, 저게 도대체 뭔가... -.-;;) 하며, 거북 등판이나 앞가슴의 문양이 정말 세밀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에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물과 국보의 차이를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막연하게 보물은 지방급 유물이고 국보는 국가급 유물인 줄 알았다. ^^;;  그런데 보물이란 온전한 형태를 갖춘 역사적 가치 있는 유물이고, 국보란 그런 역사적 가치 있는 유물 중에서도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뛰어난 유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자기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내 눈에는 저 보물 거북이나 국보 거북이나 뭐가 다르다는건지 모르겠다.  굳이 질적인 차이를 들라고 한다면, 보물 거북이 등판 뒷부분에 금이 가있다는 것뿐이다.  혹시 그 금 때문에 두 거북이의 운명(?)이 보물과 국보로 나뉘어진 걸까... ^^

 

 

국보 제61호인 어룡 모양 주자(注子 : 주전자) (12세기)

 

  내 눈에는 위에서 본 거북이와 이 여룡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룡은 뒤에 물고기 꼬리가 달렸고 비늘이 굉장이 많고 세세하다는 것 정도나 다를까? (그런데 쓰고보니, 그 정도면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드는... ^^;;)  이 어룡이 이 날 봤던 고려청자 중 정교하기로는 제일 가는 녀석이었다.

 

 

국보 제68호인 구름학무늬(雲鶴紋) 매병(梅甁). (13세기)

 

  간송미술관에서 대여해온 소장품인(그래서 지금은 이미 돌려보내서 이 전시회에서 볼 수 없을...) 구름 학무늬 매병이다.

  아마 고려청자에 대해 털끝만큼도 관심 없는 사람도 이 매병을 보면 '아, 이거 사진으로 본 적 있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교과서 또는 국사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국보에 속하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과서나 다른 책, 잡지, TV 등에서 너무 자주 봤기 때문에, 이 날도 오히려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가이드가 "원 안의 학은 위로 날아오르고 있고, 원 밖의 학은 아래로 날아내리고 있다." 라고 설명하는데 눈이 번쩍 띄였다.  코흘리개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진을 통해 질리도록 본 매병인데도, 지금까지 한 번도 눈치채지 못 했다.  가이드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이 매병을 구입하는데, 그 당시 시가로 큰 기와집 20채를 살 수 있는 값을 치렀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런 엄청난 문화재가 일본에 넘어가지 않도록 사재까지 털어가며 수집한 전형필 선생께, 우리 국민들은 마땅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국보 제270호인 원숭이 모양 연적. (12세기)

 

  이 원숭이 모자 형상을 한 연적에 대해서는, 가이드 설명 안 들었으면 중요한 사실을 놓칠 뻔했다.

  연적의 앞부분을 찍은 왼쪽 사진을 보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옆부분을 찍은 오른쪽 사진을 보면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 모두 머리에 구멍이 나있음을 알 수 있다.  연적에 물을 채울 때는, 어미 원숭이 머리에 난 큰 구멍을 통해 물을 흘러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벼루에 물을 따를 때는, 저 연적을 기울여서 새끼 원숭이 머리에 난 작은 구멍으로 물을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인데, 왜 하필 그런 원숭이의 모양을 본 딴 연적을 만들었는가 하면...

  원숭이를 나타내는 후(㺅)와 제후를 나타내는 후(侯)는 발음도 같고 글자 모양도 비슷하다.  그래서 중국의 귀족들은 입신양명을 꿈꾸며 원숭이 모양 연적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풍습이 고려에까지 넘어와서, 고려의 귀족이나 문인들 역시 원숭이 모양 연적을 애용했다고 한다.  

 

 

  이 전시회는 10월 16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열린다.

  특히, 수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관람 가능해서 바쁜 직장인들도 관람하기 편리할 듯하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촌역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서 찬란한 고려청자에 둘러쌓이는 호사를 누려보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