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Lesley 2012. 9. 4. 00:22

 

  몇 달 전에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라는 재미없을 것 같은 제목의 영화를 한 편 봤다.

  흔히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모성' 과, 그 무엇보다 절대적이고 끈끈하다는 '부모-자식 관계' 를,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본 영화다.

 

 

'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과 '당신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두 포스터에 각각 적힌 문구가 이 영화 속 모자 관계가 어떤지 함축적으로 보여줌.)

 

 

  먼저 이 영화 속 여주인공인 '에바'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이 낯이 익다 했는데...

  알고보니 대학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TV에서 방영해준 영화 '올란도' 에서 남성역과 여성역을 번갈아가며 맡았던 그 여배우다.  중성적인 느낌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많이 늙었다. ^^  원래 머리 색깔이 노란색인 듯한데, 이 영화에서는 아들 '케빈' 역으로 나오는 에즈라 밀러(Ezra Miller)의 머리색과 같은 검은색으로 나와서 얼른 못 알아봤다.  아마도, 머리 색깔을 같게 하여 서로 더 닮게 보이게 함으로써, 두 사람이 서로를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모-자식이라는 숙명을 안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1. 마음의 준비를 못 한 채 맞은 임신, 원하지 않았던 아이

 

  영화 속에서 에바와 프랭클린(에바의 남편이자, 케빈의 아버지)이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는 명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요란벅적한 토마토 축제 속에서,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의 에바...  축제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밤거리에서 포옹하고 키스하는 에바와 프랭클린...  허름해보이는 숙소에서 밀어를 속삭이며 침대로 쓰러지는 에바와 프랭클린...  여러 번 나오는 이런 단편적인 장면이, 두 사람이 젊은 시절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남국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나 좋아하게 되고 마침내 결혼하게 되었다는 힌트를 던져줄 뿐이다.   

 

  연애와 결혼까지는 별 문제 없었는데, 임신과 출산에서 그만 문제가 생긴다.

  에바의 임신과 출산 역시 단편적인 과거의 장면으로만 설명된다.  이 부부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때처럼 별 다른 대사도 없는 몇 장면일 뿐이지만, 에바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서로에게 부푼 배를 보여주며 잔뜩 들떠서 웃어대는 다른 임산부들과는 달리(아마 무슨 임산부 모임이거나, 임산부들 교육하는 자리인 듯함.), 에바는 암담하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자기 배를 내려다볼 뿐이다.  나중에 케빈을 낳았을 때도, 남편 프랭클린은 케빈을 안고 좋아하지만 에바는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해야 할 첫 아이건만, 엄마가 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는 그저 애물단지일 뿐이다.

  사실 임신과 출산을 기쁜 마음으로 맞는 엄마들조차 아이를 키우다보면 종종 힘겨워하는 법이다.  그런데 애초에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니 오죽하겠나...

  갓난아이가 울면,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살살 흔들며 달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에바는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는 케빈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자기 몸에서 최대한 떼어내고서는 입으로만 울지 말라고 한다. -.-;;  심지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케빈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서는, 공사장 착암기 옆에 서있기까지 한다.  착암기가 땅을 뚫느라 내는 굉음에 아이 울음소리가 묻혀서 안 들리기 때문이다. -0-;;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눈살 찌푸리게 되는 그 요란한 착암기 소리에 오히려 해방감을 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보자 비로소 유모차를 끌고 자리를 뜨는 에바...

 

 

 

 2. 모든 일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나 - 냉랭하고 무책임한 엄마?  집요하고 교활한 아이?

 

  이 영화 속 삭막하고 적대적인 모자관계와 나중에 벌어진 끔찍한 일은 누구 탓일까?

  물론 에바와 케빈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다만, 그 중에서도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걸까? 

 

  분명 영화 초반에 나오는 에바의 태도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너무 냉랭하고 무책임하다.

  비록 원했던 임신과 출산이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누가 강제로 임신 출산을 하게 한 것은 아니지 않나?  어찌되었거나 케빈을 이 세상에 내보낸 것은 에바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만들어놓은 결과물 케빈에 대해 그저 귀찮아하는 기색만이 역력하다.  심지어 겨우 두 돌 정도 된 듯한 아들이 말을 안 듣자, 그 앞에 대놓고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라고 말하는 모습이라니... -0-;; 

  하지만 영화가 초반을 넘어서 중반으로 접어들면, 에바 역시 다른 엄마들처럼 육아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뒤늦게 모성에 눈을 떴는지, 아니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어찌 되었거나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에바가 그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도, 이제는 케빈쪽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래서 타이밍이 중요함!)

  차라리 대놓고 떼쓰고 말썽피우는 아이였다면 '원래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하고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악의' 를 가지고 작정하고 반항하며 골탕 먹이는 모습은, 이 영화를 보는 이를 아연하게 만든다.

  더구나 겨우 서너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보이는 이중성은 소름끼칠 정도다.  케빈은 아빠 프랭클린 앞에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너덧 살 되도록 변을 못 가린다는 점 하나가 문제일 뿐, 퇴근한 아빠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뛰어가서 재잘대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그렇게 언제나 아들이 살갑게 구는 것만 본 프랭클린 눈에는, 케빈에 대해 항상 불평을 하며 힘들어하는 아내가 너무 이상해보인다.  하지만 엄마 에바와 단둘이 있을 때 엄마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는 그 고집스런 표정이나 엄마를 궁지에 몰아넣을 의도로 보란 듯이 힘을 줘서 기저귀에 대변을 보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어린애의 철없는 행동으로만 볼 수 없다.

 

  처음 에바의 잘못된 육아태도가 케빈을 애정결핍으로 인한 괴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에바의 잘잘못을 떠나, 케빈은 처음부터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아이였던걸까?

  아니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둘 중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3. 힘의 불균형을 깨달은 케빈, 단 한 순간의 온화함

 

  그렇게 반항만 일삼던 케빈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다.

  케빈이 엄마를 약올리려고 일부러 바지에 대변을 보자, 에바는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터져서 아이를 확 밀쳐버린다.  그런데 그만 케빈의 팔이 부러진다!  퇴근한 프랭클린이 아들의 팔을 보고 놀라서 어찌된거냐고 묻자, 에바는 차마 자기가 저지른 짓을 말하지 못 하고 머뭇거린다.  그런 엄마를 빤히 쳐다보던 케빈이 너무나 태연하게 말한다.  "내 잘못이야.  내가 또 대변을 봐서 엄마가 나를 탁자에 눞혀놓고 옷을 가지러 간 사이에, 탁자에서 떨어졌어." 라고...  엄마와 단 둘이 있을 때에는 엄마가 진심어린 사과를 해도 외면을 하던 아이가 말이다. 

  프랭클린은 에바를 끌어안고 위로해주는데, 그런 남편의 어깨너머로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에바의 눈빛은 '자기 아빠가 나를 나무랄까봐 저 어린 것이 나를 감싸주는구나' 하는 감동의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일로 무언가 약점을 잡힌 듯한 눈빛이며, 왜 아이가 안 하던 짓을 하는 걸까 좀 두려워하는 눈빛이다.

  그리고 그 날 밤, 케빈은 처음으로 제대로 변기에 변을 본다...!  에바는 뜻밖의 변화에 얼떨떨 할 뿐이고, 프랭클린은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잘 된 일 아니냐며 좋아한다. 

 

  내 눈에, 이 일은 케빈이 자신과 엄마 간의 현격한 힘의 차이(단순한 육체적인 힘이 아닌 권력도 포함한 힘)를 깨달아 생긴 사건으로 보인다.

  훗날 소년원에 갇힌 케빈이 그 때의 흉터를 보이면서 "엄마가 본성을 처음으로 드러낸 때였지." 하고 빈정댄다.  이 괴물 같은 아이는 엄마가 자기 팔을 부러뜨린 사건으로, 자신이 아무리 엄마를 괴롭혀봤자 결국 자신은 어린 아이일 뿐이며, 엄마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에게 큰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전.략.상. 자신의 공격적인 태도를 다소 누그러뜨려, 엄마를 완전히 이성을 잃는 지경까지는 몰아부치지 않도록 마음 먹었던 듯하다. (무서운 것...! -0-;;)

 

  그리고 영화 속 이 모자가 유일하게 따뜻한 감정교류를 했던 짤막한 순간...

  에바가 병이 난 케빈을 간호하면서 로빈훗에 대한 동화책을 읽어준다.  아무리 평소 자신을 미치게 했던 아들이라지만, 심하게 앓는 어린 아들 옆에서 에바는 정말 마음을 졸이는 듯하다.  그리고 케빈도 그 순간만큼은 엄마에게 의지하는 평범한 아이가 되어 응석부리듯이 에바 가슴에 기대며, 로빈훗을 계속 읽어달라 재촉한다.  그런 케빈에 태도에, 에바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피어난다.  아들을 살펴보러 왔던 프랭클린도 너무나 다정해보이는 모자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이 그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도록 얼른 물러간다.

  하지만 이 온화하고 행복했던 시간은 케빈의 병이 낫자마자 끝이나버린다.  케빈은 마치 엄마에게 살갑게 굴었던 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다시 예전의 차갑고 심술궂고 집요한 아이로 변해버린다.

 

 

 

 4. 극단적인 방식으로 터진 엄마에 대한 애증

 

  여기에서 정말 얄궂은 것은, 로빈훗에 대한 동화책이 두 사람이 가장 친밀했던 시간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훗날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의 복선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프랭클린은 어린 아들에게 장난감 활과 화살을 선물로 준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않던 아이는 이 선물에 완전히 반해버린다.  그리고 케빈이 성장하면서, 유치하고 조잡해보였던 장난감 활은 차례 차례 그럴 듯한 활로 바뀌고 아이의 활쏘기 솜씨도 눈에 띄게 좋아진다.  케빈이 고등학생이 되어 마지막으로 선물받은 활은 전문적인 양궁 선수들이 써도 될 정도로 정교한 것이다.  그 활로 쏘는 화살이 족족 과녁의 정중앙을 뚫는 것을 보면, 케빈의 실력이 이미 고등학생의 취미 수준을 훨씬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

 

  결국 케빈은 그 멋진 활로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같은 학교 학생들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다...!  차라리 평소 엄마에게 보였던 그런 도전적이고 악의에 찬 눈빛으로 그런 짓을 벌였더라면, 덜 끔찍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는 학생들에게 화살을 날리는 케빈의 눈빛, 표정, 태도는 어린 시절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 속의 로빈훗처럼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쩌면 케빈은 자신과 엄마 사이가 너무나 다정했던 시기에 무의식적으로 집착해서, 로빈훗과 자신을 동일시했는지도 모른다.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엄마가 어떻게든 자신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자신 쪽에서 거부했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게 아닌지...  사실은 그렇게 엄마의 애정을 갈구했지만, 자신이 가장 엄마를 필요로 했던 시기인 갓난아기 시절에 자신을 거부했던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기에, 엄마에 대한 애증을 그런 잔혹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던 것은 아닌지...

 

 

 

 5.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려고 애쓰는 엄마

 

  영화의 마지막은 에바가 케빈을 면회하고 헤어지는 장면이다.

  케빈은 그 동안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그래도 환경이 나은 편인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18세가 되어 성인 교도소로 옮겨가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던 케빈도 별의별 놈들이 우글거리는 성인 교도소로 가려니 좀 동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면회에서도 서로 어색하게 시선도 잘 안 맞추고 짤막한 말 몇 마디 던지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헤어질 시간이 되자 에바가 케빈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그래도 널 사랑할거야." 라고...  "그래도 사랑한다." 가 아니라 "그래도 사랑할거야." 다...!  사실은 이 괴물 같은 아들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들이기에 버릴 수가 없어서, 감정이 아닌 의지로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에바와 케빈 사이가 파국을 맞고 케빈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의 원인은, 사람마다 달리 생각할 것이다.

  누구는 애초에 에바가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나 애정이 없었던 탓에 이리 되었다 할 것이다.  또 누구는 부모가 냉랭하게 군다고 해서 모든 자식이 저런 무서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 케빈이란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내부에 악마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혹은 어머니의 문제와 아들의 문제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영화관을 나설 때 관객의 느낌이 어떨지는 확언할 수 있다.   

  관객의 느낌은, 그 관객이 지금 부모인지 아닌지에 따라 극명하게 갈라질 것이다.  만일 부모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 영화를 보고나서 감히 자식을 낳을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장담할 수 없는 법이라, 혹시라도 자기가 낳은 자식이 저런 만행을 저지른다면 너무 끔찍할테니까...  반대로 이미 부모가 된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 아이가 비록 공부는 좀 못 하고 때때로 말썽을 피우기는 해도, 적어도 저런 무서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라고 안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