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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백 페이지 (マイ・バック・ページ / My Back Page)

Lesley 2012. 6. 25. 00:07

 

  지난 3월에 봤던 일본 영화 '마이 백 페이지 (マイ・バック・ページ My Back Page)' 의 감상문을 어쩌다보니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이 영화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전에 감상문을 올린 '봄의 눈' 의 주연배우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聡)와 함께 마츠야마 켄이치(松山ケンイチ)라는 배우가 공동 주연을 맡았다. 

☞ 봄의 눈(春の雪, Spring Snow) (http://blog.daum.net/jha7791/15790803)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과 199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

 

  이 영화는 1960년대 격렬했던 일본 대학가의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솔직히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데도 그 주요 줄거리에 쓸데없는 잔가지를 상당히 많은 붙여서, 전체적으로 지루한 편이다.  혹은 그 시대를 관객에게 제대로 설명해주기 위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보여줬던 것 뿐인데,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내가 잘 몰라서 지루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

 

  그렇게 지루하다는 느낌으로 본 영화지만, 흔히 '전공투 시대' 라고 하는 1960~7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나에게는 언제나 감정적으로 끌리는 시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공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든지, 그 격렬하고 과격한 학생운동에 찬성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대나 그 학생운동 자체보다는 그 시대 젊은이들이 겪었던 고뇌에 동조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생운동이 다 저물어져가던 1990년대 후반에 대학생활을 했는데, 그 때의 우리나라 대학가 분위기가 전공투 시대 일본의 대학가 분위기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공투 시대 일본의 운동권 학생들이나 내가 대학 다니던 때의 한국 운동권 학생들이나, 비슷한 원인 때문에 일반인들의 지지를 잃었다.

  양쪽 모두 앞에 내 건 대의명분은 그럴 듯했지만, 투쟁수단이라는 것이 변한 시대에 걸맞지 않게 너무 과격했다.  게다가 스스로가 변혁을 부르짖으면서도, 어느새 기성세대의 안 좋은 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생각만 옳고, 거기에 비판을 가하는 세력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완고한 태도까지...  

 

  그리고 그런 학생 지도부를 바라보는 일반 학생들의 고뇌도 두 나라가 비슷했다.

  운동권에서 부르짖는 주장에 대해 털끝만큼도 공감을 하지 못 했더라면, 차라리 고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학생회를 외면하면 그만일 뿐...  하지만 분명히 대다수 학생들이 운동권에서 내세운 명분에는 공감을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누릴 권리를 찾아주고, 썩어빠진 정치인들을 타도하자는데, 그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그들이 평소에 보여주는 행동거지라든지 그들의 투쟁방법에 대해서는 공감은커녕 거부감만 잔뜩 드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운동권 밖에서 그냥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니 스스로가 비겁자가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운동권에 뛰어들자니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고...  이래저래 많은 학생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름대로 고민을 끌어안고 혼자만의 방황을 거쳐야 했다.

   장소와 시간만 다를 뿐,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이다.  1960년대 일본 대학가의 모습과 1990년대 한국 대학가의 모습을 가지고 평행이론에 대한 영화나 소설 한 편 뽑아내도 될 것만 같다.  그런 일본 전공투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동지애(?) 비슷한 감정이, 이 지루한 영화를 인상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줬다.

 

 

 

  격동의 시대에서 주변인으로 고뇌하는 지식인,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과격한 운동권 학생

 

  명문 도쿄대학을 졸업한 '사와다(츠마부키 사토시)' 는 신문사의 햇병아리 기자다.

  사와다는 그 시절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학생들의 열정과 투쟁이 이 잘못된 세상에 큰 변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운동권 학생들에게 마음의 빚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 투쟁의 열기를 온몸으로 맛보고 운동권 학생들을 간접적으로라도 지원하기 위해,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신문사에서는 사와다를 신문사 산하의 주간잡지 쪽으로 발령내어,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생뚱맞고 허접한 일(적어도 사와다가 생각하기에는 그러함. ^^)이나 하게 한다.

 

  그런던 어느 날, 친한 선배기자의 일을 돕던 중에 '우메야마(마츠야마 켄이치)' 라는 운동권 학생을 알게 된다.

  중요한 기사거리가 있다면서 먼저 접근한 우에야마를 보고, 노련한 선배기자는 대단한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접근했다는 것을 금세 간파한다.  하지만 그런 우에야마일지라도 학생운동 취재에 나름 쓸모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일단은 연락을 유지하기로 한다.  그래서 선배기자는 사와다에게, 머물 곳이 마땅찮은 우에야마를 하룻밤만 사와다의 자취방에서 묵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선배기자-우에야마' 의 관계를 '사와다-우에야마' 로 바꿔버린 자취방에서의 하룻밤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감상문들을 훑어보니, 사와다와 우에야마의 관계를 그저 '서로에게서 원하는 바를 취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 로 보는 시각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우에야마는 자신의 조직과 자신이 조만간 실행할 과격한 계획을 세상에 홍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와다의 선배기자에게 접근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선배기자보다 사와다가 자신의 계획에 보다 공감을 표시하는 것을 보고, 사와다로 목표물을 바꾼다.

  또한 사와다는 사와다대로 특종기사를 터뜨려 신문사에게 인정받고 사회부로 옮겨가고 싶은 욕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우에야마와 거리를 두라는 선배기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우에야마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다만, 두 사람의 마음 속에 그런 불순한 의도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용하려는 마음 말고도, 감정적으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차라리 서로가 서로를 철저히 이용할 생각만 했더라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서 조금은 영악하게 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렇게까지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게 된 계기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에야마가 사와다의 자취방에서 하룻밤 신세지게 된 일이다.

 

  제법 지루한 편인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사와다의 자취방에서 이 두 사람이 보낸 하룻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밤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소소한 일들 몇 개가 이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가는 부분이다.  나에게도, 관심사나 취향 등 커다란 부분에 있어서는 나와 별로 맞지 않지만, 이런저런 작은 부분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서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의외로, 처음부터 좋은 감정을 느낀 상대보다는, 처음에는 그냥 그렇거나 심지어 못마땅하기까지 했는데  그 후에 좋은 면을 발견하게 된 상대에게 더 깊숙히 끌리게 되는 것 같다.  사실은 생각이나 성격에 큰 차이가 있는 이 두 사람도, 서로에게서 발견한 뜻밖의 모습으로 급속히 친밀해진다. (문제는, 그 우호적인 감정의 시너지 효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점일 뿐... -.-;;)

 

  먼저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발견한 의외의 면모...

  사와다가 선배기자를 배웅하고 돌아와보니, 우에야마가 사와다의 책을 들쳐보고 있다.  폭력투쟁으로 세상을 뒤바꾸겠다는 과격분자가 손에 든 책이란 것이, 훗날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의 모티브가 되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이다. (다소 지루한 이 영화에 내가 호감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은하철도 999 관련된 것이 조금 나와서인지도... ^^)  운동권 학생이 그런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동화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사와다는 의외라는 생각과 함께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호감이 사와다만의 일방통행성 감정이 아니었다.  우에야마는 신문기자란 사람들은 모두 날카롭고 냉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부드럽고 친절한 사와다를 보고 역시 호감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이 CCR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 을 함께 부르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은 더 깊어진다. (이 노래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던진 유명한 록음악임.)

  우에야마가 사와다의 기타로 위의 노래를 연주하고, 어느 새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하며 두 사람은 통(!)하게 된다...!  노래를 끝마치고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우에야마를 바라보는 사와다의 눈빛, 기타줄에 손을 그대로 댄 채 그런 우에야마를 바라보는 사와다의 표정...

  이 자취방에서의 장면을 보면, 두 배우가 내면연기를 잘 소화해내는 훌륭한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별 대사가 없던 이 장면에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면서 감정적으로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짝퉁(?)투사 우에야마

 

  사실, 우에야마는 제대로 된 투사가 아니라 짝퉁(!) 투사였다. -.-;;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을 혁명으로 바로잡겠노라며, 과격하지만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무슨 사상 연구회도 하나 만들어 그 지도자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유치한 본모습을 보여 빈축을 산다.

  즉, 운동권의 과격한 투쟁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다른 학생과 논쟁을 벌이던 중에 받아칠 말이 마땅치않자, "이 연구회는 내가 만들었으니 이 연구회에 남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는 어린애 같은 말을 한다.  그러자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설전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어이없어 하며 야유를 퍼붓고는 줄줄이 떠나버린다.   

 

  우에야마에게 학생운동이란 그 시대를 휩쓴 유행 같은 것이고, 학생운동 속 작은 조직을 이끄는 역할은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다는 정도의 의미였던 듯하다.

  그는 진정 이 사회의 모순에 정의감을 불태우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아픔을 느껴서 투쟁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 속에서 뭔가 특별한 존재로 우뚝 서고 싶다는 치기 어린 욕망 때문에 학생운동에 투신한 것이다.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여자 후배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질 때 그 조직의 장이라는 권위와 특권을 이용하는 점에서, 우에야마의 그릇이 드러난다.

  우에야마의 그런 유치하고 자기과시적인 성향은,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유명한 운동권의 지도자를 만났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우에야마는 그 지도자 앞에서 투쟁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너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만난 여중생 같이 들뜬 모습을 보인다.  우에야마는 그 지도자의 사상을 정말로 이해하고 존경했다기보다는, 그 지도자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자기도 대단한 인물이라고 으쓱거리고 싶어했을 뿐이다. (나중에 우에야마가 대형사고를 치면서 괜히 이 지도자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통에, 그 사건과 아무 상관없는 이 지도자는 졸지에 살인사건의 배후자 혐의를 받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됨. -.-;;)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

 

  영화가 차츰 결말로 치달으면서,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부추기게 된다.

  사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일을 추진하던 우에야마는, 곧 현실의 벽(일을 저지를 무기와 자금을 구할 길이 막막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래, 너같은 젊은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전사야.' 하는 듯한 사와다의 표정에 자기도 모르게 힘을 얻고, 무리한 계획을 계속 밀어붙인다.

  사와다는 사와다대로, '이게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과 발각되었을 때의 두려움을 마음 한 켠에서 떨쳐낼 수 없다.  하지만 항상 늠름하고 굳건해보이는 우에야마의 태도(사실은 아무 대책 없이 덮어놓고 큰 소리 탕탕치는 것에 불과했지만... ^^;;)에 용기를 얻어서, 엄연히 '범죄' 인 우에야마의 행동을 묵인한다.  

 

  결국 이 짝퉁 혁명투사와 그의 후배 조직원들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원래 계획은 한밤중에 자위대 부대에 잠입해서 투쟁에 쓸 무기를 훔쳐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설픈 행동으로 보초를 서던 자위대원에게 발각되자, 얼떨결에 그 자위대원을 살해해버린다...!  이 살인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수사에 나선다.

 

  이제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패닉상태에 빠진다.

  우에야마와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커지자, 너무 두려운 나머지 서로를 탓하며 싸운다.  경찰이 이들을 체포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의 내분으로 먼저 망할 지경이다. -.-;;

  사와다는 신문에 실린 사건현장의 사진 속에서 눈에 익은 헬멧을 발견한다.  전에 그 헬멧을 우에야마의 방에서 본 적이 있어서, 우에야마가 자위대원 살해사건의 범인임을 눈치챈다.  그 동안 이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을 혁명을 그토록 열망했건만, 그리고 그런 혁명이 무수한 개인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았을텐데, 막상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희생되자 큰 충격을 받는 사와다... 

 

  이 엄청난 상황 속에서, 사와다와 우에야마 사이를 굳건하게 묶어주는 것 같던 호감의 끈도 맥없이 끊긴다.

  사와다가 우에야마에게 추궁하 듯 묻는다. "네가 진정 원하는게 뭐냐?  그리고 너의 진짜 모습은 도대체 뭐냐?"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을 비난하는 이 질문에, 이번에는 우에야마가 사와다를 질타한다.  "당신도 특종을 원하지 않았는가?"  너도 너의 욕심 때문에 은근히 내 계획에 동조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다른 소리 하느냐는 뜻이리라... 

 

  사와다는 완전히 사면초가에 빠진다.

  경찰은 사와다 역시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 사와다 주위를 맴돈다.  신문사에서도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사와다에게 있는대로 눈치를 준다.  까딱하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호적에 빨간줄 그어지고, 신문사고 뭐고 간에 사회생활에 종지부 찍을 판국이다.

  게다가 이런 현실적인 문제 말고도, 사와다를 미치게 하는 문제가 한 가지 더 있다.  자신이 그 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것, 즉 투쟁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들이 정말 100% 옳기만 한걸까 하는 회의감 때문에, 사와다는 정신적으로도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 처한다.  이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형사가 사와다에게 말한다.  "살해당한 자위대원의 아버지가 왜 자신의 아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라도 설명해달라고 했다.  전쟁터에 나간 것도 아니고 그저 보초나 서고 있었을 뿐인데, 도무지 아들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형사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고개를 떨구는 사와다...

 

 

 

  환멸과 허무함 속에서 식어버린 두 사람의 정열

 

  결국 우에야마와 그 조직원들은 체포된다.

  그들이 어찌되었는가 하는 설명은 겨우 몇 줄짜리 자막으로 처리된다.  마치, 이런 한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들여 영상과 음향으로 설명하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이...

  재판 과정에서, 우에야마와 조직원들은 '인간이란 동물이 궁지에 몰리면 얼마나 비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심리학적 화두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다 바치겠다던 식의 패기는 전부 어디에 내다버렸는지, 이제는 법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 지기 위해 다들 몸부림을 친다.  즉, 법정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라, 옛 동료간에 온갖 너저분한 비난과 폭로를 해댄 것이다. -.-;; 

 

  사와다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자신의 죄값을 달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름없는 작은 신문사로 옮기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사와다 역시 세월이 흐르자 젊은 시절의 패기와 열정 대신 그날 그날을 메꾸는 식으로 적당히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영화 첫머리에 나왔던, 사와다가 히피족의 생활을 자세히 취재하려고 위장잠입했던 히피 무리에 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  그 사람은 이제 히피 생활을 청산하고, 자그마한 술집을 열어 아내와 아이와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사와다가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격렬했던 시대 속에서 그저 무언가 믿고 싶었고, 무언가 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사와다와 우에야마의 편에 서서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그저 무언가를 믿고 싶어했고 무언가가 되고 싶어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는 꿈도 많지만 방황도 많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무언가 확실한(혹은 확실해 보이는) 것을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젊은이 특유의 들끓는 피는 모순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올바르게 고쳐놓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만들었다.  사와다가 믿고 싶어하던 그 무언가가, 바로 운동권 사상으로 무장되어 순수하게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우에야마였다.  하지만 그 무언가를 믿은 댓가는 너무 참담했다.

  그리고 우에야마가 정신적으로 유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남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 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남보다 훨씬 더 강했고, 역시 남보다 더 한 무모함과 미숙함, 거기에 비뚤어진 자존심까지 더해져서,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나락에 빠뜨렸다.  

 

  비록 사와다와 우에야마는 가공인물이지만, 아마 전공투 시대의 일본이나 1990년대의 한국이나, 얼굴과 이름만 다를 뿐인 사와다와 우에야먀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들이 한 짓은 잘못된 행동이다.  우에야마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직접적으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사와다조차 '나는 우에야마가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어요.' 라는 것만으로 용서받기에는, 영문도 모른 채 살해당한 한 젊은이의 목숨이 너무 무겁고 너무 아깝다.  그런데도 덮어놓고 나쁜 놈들이라고 욕하지 못 하고 측은지심조차 드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 속에, 그리고 나와 같은 시기에 대학생활을 했던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우에야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와다가 겪은 것과 비슷한 고민 한 자락이 스쳐간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