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박치기! LOVE & PEACE (パッチギ!part2)

Lesley 2012. 4. 2. 00:15

 

  박치기! LOVE & PEACE (パッチギ!part2)는 2004년도 영화인 '박치기!' 의 후속편이다.

 

  ☞ 박치기! (パッチギ! / We Shall Overcome Someday!) (http://blog.daum.net/jha7791/15790883)

 

 

 

 

 

 

  다만, 이 두 영화는 분명 전편과 후편의 관계이건만,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일단, 주인공인 '리안성' 과 '리경자' 남매가 전편의 타카오카 소스케(高岡蒼甫)와 사와지리 에리카(沢尻エリカ)에서 '이사카 슌야(井坂俊哉)' '나카무라 유리(中村ゆり)' 로 바뀐 것부터 이질감을 준다.

  단순히 주인공들 얼굴만 바뀐거라면야, 전편과 후편 사이에 6년이라는 간극을 보다 확실히 보여주기 위한 장치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전편의 주인공들이 그 동안 더 유명해져서 출연료도 올라가고 시간도 없어진 나머지, 다시 캐스팅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임. ^^;;)

  하지만 후편의 주연 배우들 연기력이 전편의 주연 배우들만 못 해서, '원래 영화라는 게 후편이 전편보다 못한 법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가 차마 눈뜨고 못 봐줄 정도였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 보는 내내 좀 어색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안성 역의 이사카 순야는 기쁜 장면에서도 슬픈 장면에서도 표정이 묘하게 굳어있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경자 역의 나카무라 유리는 예쁜 눈 강조하려 일부러 그랬는지, 신인이라 연기가 아직 서툴어 그랬는지, 영화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뜬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썼듯이, 이 후편은 전편에서 6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사이 변한 주인공들의 처지 때문에 분위기도 확 달라진다.

  전편이나 후편이나 모두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교포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편에서는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다보니, 보기에 따라서는 발랄한 영화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즉, 재일교포의 차별받는 삶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재일교포를 통해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보여주는 영화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받는 이들을 다룬 영화이건만 우울하거나 삭막하지 않고, 오히려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기운으로 활기찬 느낌마저 준다. 

  그에 비해 후편의 주인공들에게는, 일본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어느 정도 막아주던 '학생' 이라는 신분의 방패 조차 없다.  이미 졸업을 한 주인공 남매는 자신들이 일본 사회의 비주류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오빠 안성은 학생시절과 마찬가지로 건달처럼 살며, 난치병에 걸린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밀수에 뛰어든다.  그리고 여동생 경자는 많은 재일교포들이 생계수단으로 삼은 불고기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한편으로는 병든 조카의 치료비를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이 구질구질한 바닥을 벗어나 창공을 날고 싶은 마음에, 우연히 찾아온 연예계 데뷔라는 끈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래서 이 후편의 분위기는 전편보다 더 심각하고 어두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 구성도 전편과 다르다.

  전편이 1968년의 교토에서 벌어진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후편은 1974년의 도쿄와 일제시대 말기의 제주도 및 남태평양의 섬을 넘나든다.  즉, 안성 일가가 1974년 현재 겪고 있는 일과, 안성과 경자 남매의 아버지로 오래 전 사망한 '진성(송창의)' 이 징병을 피해 제주도와 남태평양에서 겪은 일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일제가 식민지 백성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일제의 야욕이 식민지 백성은 물론이고 자기네 국민에게까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분명히 괜찮은 시도였다. 

  문제는 이 교차편집이 매끄럽지 못 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두 이야기가 매끄럽게 접목되었다면, 영화의 완성도를 보다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상영시간에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하려니 제작진의 마음이 급해서 그랬는지, 두 이야기가 동떨어져 버렸다는 느낌이다.  덕분에, 일제시대 진성의 사연이, 1974년 진성의 아들딸이 겪고 있는 사연에 뜬금없이 끼여들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분명 볼 가치는 있었다.

 

 

  우선 조연 배우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연 배우들 연기력이 다소 처지는데 비해, 조연 배우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연기력을 자랑한다.

  그래서 겨우 몇 번 얼굴 비췄을 뿐인데도, 영화를 보는 이에게 주인공들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주연 배우는 겉모습만 번지르 하고, 연기력 탄탄한 조연 배우들이 그 주연 배우 때문에 숭숭 뚫린 구멍을 열심히 메꿔주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임. ㅠ.ㅠ)

 

 

  먼저, 안성 일가 주변의 재일교포 중 한 사람으로 나왔던 우리나라 배우 '김응수' 가 있다.

  사실은 전편에서 재일교포 역을 몽땅 일본배우들이 맡았기도 하고, 이번 후편에서도 앞부분에 나온 재일교포들이 다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하기에, '이번에도 전부 일본배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성의 아들이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자, 한 배우 입에서 '어, 잘 갔다와.' 하는 한국어가 나오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들렸다.  '저 배우는 한국어 발음이 괜찮네.' 하며 보는데, 뒤로 돌아서있던 그 배우가 정면으로 돌아서는 부분에서 '헉~~' 했다.  우리나라 중견배우인 김응수였다! @.@

  김응수는 주로 사극에서 강한 개성 지닌 역할을 맡는 배우다. (어쩌면 현대극에도 자주 출연했을 수도 있지만, 내 눈에 띌 때에는 언제나 사극에 출연 중이었음. ^^)   드라마 '한성별곡-正' 에서 이조판서인지 예조판서인지 하는 역을 맡아 부귀영화를 위해 정조와 정순왕후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역을 맡았던 것이,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게 된 이 배우의 모습이었다.  그 후, '바람의 화원' 에서는 신윤복과 김홍도를 무척 미워하는 도화서의 별제로 나왔고, '추노' 에서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해 청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좌의정으로 나왔다.  그리고 큰 인기를 끌다가 지난 달에 종영한 '해를 품은 달' 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자신의 딸을 중전 자리에 올린 영의정으로 나왔다. 

  알고보니 김응수는 그 나이의 배우로서는 드물게,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이였다.  배우를 딴따라로 취급하던 시절에 연기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배우가 몇이나 되었겠나...  하지만 김응수는 한국에서도 연극영화과를, 일본으로 유학가서 영화연출을 배웠다니, 연기에 대한 열정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아마도 그 7년간의 일본 유학 경험이 인연이 되어, 일본인 감독과 일본인 배우들이 찍은 이 영화에 출연한 모양이다.  

 

  그리고 '신야 에이코(新屋英子)' 도 딱 한 번 나왔을 뿐이지만,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할머니 배우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 여주인공의 할머니 역할로 처음 보고서, 이번 '박치기! LOVE & PEACE' 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는 앞부분에만 나오는 조연급 역할인데다가, 내내 대사도 별로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만 나왔건만, 엄청난 포스(!)가 풍겼다.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내 의견에 100% 동의할 거라 생각함. ^^)

  그리고 나는 이 배우가 두 영화 모두에서 무척 고달픈 삶을 사는 할머니 역을 소화하느라 더 늙게 보이도록 분장을 했을 뿐, 실제로는 60대 정도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1928년생이다...! @.@  즉,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을 찍었을 때나, 이 '박치기! LOVE & PEACE' 를 찍었을 때나, 이미 80에 가까운 고령이었다.  참 여러가지로 대단한 할머니시다. ^^

  이 영화에서 이 할머니는 안성의 아버지와 같은 고향(제주도) 사람으로, 4.3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성의 아버지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이제는 늙은 몸으로 도쿄의 환락가(보아하니 주로 재일교포들이 많은 지역인 듯)에서, 교포들 상대로 급전을 빌려주기도 하고 밀수쪽 일을 알선해주기도 하며 지낸다.  그렇게 암흑가의 대모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살벌하고 음침해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모두의 할머니 같은 따뜻함이 어린 카리스마를 내뿜는 인물이다.  자신을 가리키며 '미스 제주' 라고 하는 썰렁한 농담도 던져주시고... ^^  또한 보통의 경우 젊은이들이 노인보다 외국어 발음 익히기 쉽다고들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청년층 또는 중.장년층인 다른 재일교포역 일본 배우들보다 이 할머니 배우의 한국어 발음이 훨씬 좋아 재미있었다. ^^   

 

  또한 안성과 경자의 어머니 역을 맡은 '키무라 미도리코(キムラ緑子)' 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의사가 손자의 병세를 절망적이라는 식으로 말하자, 아들에게 '전에 교토에 살 때 내가 백사를 죽여서 그 저주를 받아 이렇게 된거다.' 라고 울면서 말하는 장면, 그리고 그 저주를 풀겠다고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면서 정신없이 비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비록 눈에 확 띄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서툰 한국어 빼고는 정말 우리네 어머니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그리고 경자의 연예계 생활을 보면서,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사실에 처음으로 생각이 미쳤다.

 

  바로 재일교포 중 연예계나 체육계로 진출한 이들이 제법 된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안성 일가가 가까운 친척 및 이웃들과 바닷가에 놀러간 날, 경자가 연예계에 데뷔할 생각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친지들은 일본 연예계 또는 체육계에서 성공한 재일교포들의 이름을 쭉 대면서, '연예계에는 재일교포가 많으니까 틀림없이 너를 도와줄거야.' 라고 응원해준다.  실제로 경자는 드라마 촬영 중에 한 선배 여배우를 만나 친절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 선배에게서 '나도 자이니치(在日 : 즉, 재일교포의 준말)야.' 라는 고백을 듣기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일본 연예계나 체육계의 인물 중 재일교포로 밝혀진 이 또는 재일교포로 추정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일본인과 재일교포가 각각 일본 연예계와 체육계에서 제법 인지도 있는 인물이 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총인구가 1억 2천만명이 넘는데 재일교포는 일본인 숫자의 0.5%를 겨우 넘기는 70만명 정도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재일교포가 연예계나 체육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비율이 훨씬 높을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설마하니 재일교포가 일본인보다 선천적으로 특별히 끼가 넘치고 운동신경도 발달해서, 그 방면에서 성공하는 비율이 높을 리는 없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미국의 스포츠계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뛰어난 성적 보이는 비율이 높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과거 미국의 언론과 학계는, 흑인들이 다른 분야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 하면서, 스포츠계에서는 스타로 성공한 경우가 많은 상황을 주시했다.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흑인이 백인보다 육체적인 면에서 뛰어나서 운동을 잘 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졌다. (백인보다 종아리가 길고 근육이 발달해서, 또는 아킬레스건이 훨씬 튼튼해서 등등 별 이야기가 다 있었음.)  하지만 나중에 이런 현상은 육체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사회적.경제적 조건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단, 백인은 출세하기 위해서 반드시 스포츠계로 진출할 필요가 없었다.  경제계, 법조계, 학계, 정치계 등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했기 때문에, 스포츠계에 투신하는 사람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하위계층에 속한 이들이 많은 흑인 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소위 '빽' 이라고 하는 사회적 연줄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서 튼튼한 몸이라는 밑천에, 본인이 노력만 하면 되는 스포츠계로 진출하는 사람이 백인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정말로 흑인이 육체적 조건이 우수하기 때문에 운동을 잘 한다면, 모든 종목의 스포츠에서 흑인이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게 맞다.  하지만 승마, 요트, 골프 등에서는 '우수한 흑인 선수' 는 고사하고, 흑인 선수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다.  대신 달리기나 멀리뛰기 같은 육상, 또는 농구, 권투, 미식축구  등의 종목에서는 유별날 정도로 우수한 흑인 선수가 많았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흑인들은 값비싼 장비가 필요한 종목은 거의 선택하지 않고(말이나 요트가 얼마나 비싼가...!), 공이나 글러브 등 간단한 장비와 건강한 몸만 있으면 되는 종목으로 몰렸던 것이다.

 

  재일교포들이 일본 연예계와 체육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도, 미국의 흑인들과 같은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재일교포의 경우는 흑인들과 달리, 거주국 주류사회의 사람들에 비해 교육 수준이 특별히 낮지는 않았다. (한국인들의 미친듯한 교육열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활활 타오르니... ^^;;)  하지만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받은 차별이나, 20세기 중반 이전 흑인들이 미국에서 받은 차별이야 크게 다를 것이 있나...  고등교육을 받았어도 일본인과 동등한 수준의 취업 기회를 잡기는 힘이 드니, 상대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고(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는 예명이라는 이름의 가명을 쓰는 일이 비교적 흔하니까...), 개개인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기여한 바가 수치로 확 드러나서(연예계는 시청률, 스포츠계는 점수) 차별이 덜한 분야로 몰렸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국내에서의 관심이 너무 적은 게 아쉽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전편은 제주도 쪽에서만 개봉했던 모양이고, 이 후편은 서울에서 단관 개봉했다고 한다.

  정작 일본에서는 관객들 반응도 괜찮았던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개봉관 자체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개봉 당시에는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던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영화관에서야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지만, 영화의 내용과 주제가 많은 한국인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인데 그렇게 푸대접을 받았다니 무척 아쉽다.  비상업영화를 위한 영화관을 따로 지어야 하네 마네 하는 논란이 영화인들 사이에 있는 모양인데, 고상하고 심오한 예술영화까지 갈 것도 없이, 이렇게 상업성 띤 영화라도 메이저 배급사의 관심 밖인 영화를 위한 대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에도 썼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내 눈에 차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야 에이코를 어머니라 부르던 술집 아가씨와, 역시 밀수일을 하며 신야 에이코를 빗대어 '어머니를 봤다' 라고 읊조리듯 말하던 안성의 모습...  그리고 경자가 힘들어 하는 장면에서 배경으로 깔리던 임형주의 아리랑...  그것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박치기! (パッチギ! / We Shall Overcome Someday!)(http://blog.daum.net/jha7791/15790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