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엄청나게 긴 성당 결혼식

Lesley 2012. 4. 19. 00:15

 

  지난 주말에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랑네 집안도 신부네 집안도 천주교 믿는 집이라서 결혼식장은 성당이었고, 덕분에 난생 처음 성당 결혼식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전부터 성당 결혼식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게 될 경우 15~20분이면 모든 식이 다 끝나버린다.  덕분에 좀 지각한 하객들은 아예 결혼식을 못 보는 일도 생기고, 아직 한 커플 결혼식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쪽에서는 다음 커플이 입장할 준비하고 있는 어수선함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식인데,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끝내는 걸 보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은 1시간은 걸린다고 들었기에, '그 정도면 일반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에 비해서 뭔가 제대로 갖춰서 결혼한다는 느낌이 들겠다.' 하고 괜찮게 생각했다.

  그러나...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그냥 옆에서 보고 듣는 것과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다른 법...! (BGM : 두두둥~~~~)

 

  이번 결혼식에서 새삼 느낌 것은, 결국 나도 성질 급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

  흔히 한국인의 국민성이니 민족성이니 하는 것들(혼자보다는 여러 명이서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라든지, 남의 일에 관심 많은 것이라든지(혹은 참견하는 것 좋아하는 것... ^^), 옷이나 화장 등 외모를 가꾸는 것을 중요시한다든지 등등...)이 나와는 영 거리가 먼 성질들이라, 어떤 때는 '내가 정말 한국인 맞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느린 것은 못 참는다는 점에서는 역시 나도 한국인이 맞다. ^^

  전에는 15분짜리 예식장 결혼식이 너무 정신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무척이나 기~~~다란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니 30분을 넘기고부터는 계속해서 손목시계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시계를 보면, 아까 시계 본 때에서 겨우 3,4분 지났을 뿐이고...  ㅠ.ㅠ)  무려 1시간하고도 20분이나 계속된 결혼식 동안, 그나마 편히 앉아있었던 시간은 3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꼭 일어나야 하는 기도 및 찬송가 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뒷자리의 다른 하객들도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난리났다.

  천주교 신자들은 아예 앞자리에 쭉 앉아서, 성당 측의 지시에 따라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문도 외우고, 혼인성사 집전하는 신부의 축복의 말 중간에 '아멘' 등의 구호(?)를 넣는 등 아주 적극적이고 경건하게 결혼식에 임했다.  모두 동시에 '아멘' 하는 말을 하는 걸로 보아서, 그런 말을 하는 순서가 따로 정해져있는 듯했다.  

  하지만 앞자리의 신자 하객들이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결혼식에 참여하는 동안, 뒷자리에 앉은 비(非)신자 하객들은 찬송가도 모르고 기도문도 모르고, 하는 일 없이 그저 멀뚱멀뚱 서있으려니 어색하고 지루하고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특히나 다른 결혼식 하객에 비해 유독 비율이 높았던 할머니 하객들이 웅얼웅얼 투덜투덜...  '배고파 죽겠는데 이거 언제 끝나냐~', '뭐가 이렇게 기냐~', '왜 자꾸 일어서라고 하는거냐, 그렇잖아도 무릎 쑤셔서 죽겠는데~' 등등... ^^;;

  결국 결혼식 시작하고 1시간 정도 되자, 뒷자리 하객들이 더 못 참고 나가기 시작했다.  예배당 밖으로 나가서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지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허기진 배 채우기 위해 지하의 식당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그래도 이 날 1시간 20분짜리 결혼식의 수혜자(?)도 있기는 했다.

  바로 신랑의 외할머니(동시에, 나에게도 외할머니가 되심.) 일행이시다.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라 서울의 결혼식 참석하려고 일찌감치 출발하셨다는데, 그만 길을 잘못 잡아 헤맨데다가 주말이라 고속도로가 많이 막히기까지 해서, 결혼식 시작하고 1시간은 지난 후에야 도착하셨다.  보나마나 결혼식이 다 끝났을거라고 생각하고 왔다는데, 그 때까지도 결혼식은 계속되고 있을 뿐이고... ^^  일반 예식장에서 치른 초특급 결혼식이었다면, 신랑 외할머니는 그 먼 곳에서 몇 시간이나 오셔서 헛걸음 하실 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