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북한노래 '임진강' - 남한, 북한, 그리고 일본

Lesley 2012. 2. 28. 00:02

 

  최근 임형주와 김용우가 부른 '임진강' 이라는 북한의 노래를 무한반복(!)해서 듣는 중이다. ^^

 

  원래도 이 두 사람의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듣는 편이었는데, 어쩌다가 두 사람의 노래 중 '임진강' 이라는 동일한 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형주는 유명한 팝페라 가수이다.  그리고 김용우는 우리 민요를 현대식으로 편곡해 부르는 가수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기에는, 전혀 다른 분야의 노래를 하는 두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불렀다는 게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팝페라는 서양의 전통음악인 오페라와 대중가요인 팝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고, 개량국악(적당한 용어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즉석에서 발명한 용어. ^^;;) 역시 우리 전통민요와 대중가요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같은 곡을 선택한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이 부른 같은 곡을 각각 한 번 듣고 반해버렸다.  따뜻한 선율, 우리 민족이 겪는 분단의 아픔이 녹아있는 가사 등 전혀 다른 것들이 함께 이루는 조화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질적인 요소의 조화를 추구하는 두 가수가 모두 이 곡에 끌렸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음악인이라, 비록 동일한 곡을 노래했다지만 듣는 이에게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임형주의 임진강은 다른 악기 없이 오직 피아노 반주만으로 불렀다. (임형주의 임진강이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 중 내가 들은 것이 피아노 버전이라... ^^)  그 피아노 반주가 이루마의 피아노곡을 연상시키는 맑은 느낌이라, 거기에 임형주의 미성까지 더해지니, 굉장히 깔끔하고 청아한 느낌이 든다.

  그에 비해 김용우의 임진강은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재즈풍 반주에, 우리 전통악기인 해금의 애절한 소리가 섞인다.  재즈와 국악이라는 전혀 다른 것들이 섞였는데도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리고, 거기에 김용우 특유의 구성지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도 함께 하니 호소력 짙은 느낌을 준다. 

 

 

 

  자, 아직도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때에 이 북한노래가 남한에 알려지게 된 파란만장(!)한 사연을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백하(白河) 박세영(朴世永)이라는, 우리 귀에는 낯설게 들리는 인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세영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인 1907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시인이다. 

  그런 유명한 인물의 이름이 왜 우리에게 낯설게만 들리는가 하면...  박세영이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국어의 문학사 시간에 배웠던 카프(KAPF), 즉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소속의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공산주의자였다.  게다가 해방 직후 월북했으며 나중에는 북한의 국가까지 작사했다.  그러니 반백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남쪽에 사는 이들에게는 잊혀진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박세영은 월북한 후 '임진강' 이란 시를 지었다.

  임진강은 휴전선에 있는, 남북한 모두를 흐르는 강이다.  또한 박세영의 고향인 경기도 고양은 임진강에서 무척 가깝다.  그러니 북한땅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는 박세영의 마음이 각별했을 것이다.  그렇게 임진강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임진강' 이라는 시를 썼고, 나중에 그 시에 '고종환' 이라는 북한 음악가가 곡을 붙여 노래가 되었다.

 

 

 

임진강(臨津江)

 

                              박세영 작사, 고종환 작곡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강 건너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울고

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협동벌 이삭바다 물결우에 춤추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그런데 이 '임진강' 이 1960년대 일본에 널리 퍼지게 된다.

 

  일본에서 이 노래에 심취했던 계층은 대학생, 그 중에서도 특히 그 당시 무척 격렬했던 학생운동에 몸담은 이들이었다.

  일본과 북한의 관계도 남한과 북한의 관계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결코 좋지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노래가 일본에서 유명해지게 된 것만으로도 뜻밖이다.  그런데 북한 노래가, 더구나 분단의 아픔과 그로 인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노래가, 마치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 자주 불리운 '아침 이슬' 이나 '바위처럼' 처럼 일본 학생운동권에서 널리 애창되었다니, 이야말로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드라마 같은 사연은, 얄궂게도 1960년대 일본 교토에서 자주 벌어지던 재일교포 고등학생들과 일본 고등학생들간의 패싸움에서 시작한다.

  1960년대는 일본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했던 때이며, 재일교포들 역시 식민지 백성으로 온갖 핍박을 다 받던 한이 절절이 남아있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컸던 때이기도 하다.  재일교포가 가장 많은 오사카에서 특히나 두 민족간 충돌이 격렬했다고 하는데, 오사카에서 비교적 가까운 교토에서도 두 집단 간의 충돌이 종종 벌어졌다.  특히 한창 혈기가 끓어오르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양쪽의 고등학생 사이의 충돌이 심해서, TV나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때 마츠야마 다케시(松山猛)라는 일본 고등학생이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양쪽의 친선 축구시합을 주선하게 되었다.

  마츠야마는 축구시합을 제의하려고 조총련계 조선학교에 갔다가 그 학교 여학생들이 연주하는 '임진강' 을 듣게 되었다.  마침 학교 밴드부의 트럼펫 연주자였던 마츠야마는 임진강의 선율에 반해서 그 곡의 선율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절대음감의 소유자도 아닌데 딱 한 번 들은 곡을 무슨 재주로 기억하겠나... ^^;;  한적한 다리 위에서 트럼펫으로 어떻게든 그 선율을 재현하려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한 재일교포 고등학생도 색소폰 연습을 하려고 그 다리 위로 왔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인연으로, 그 재일교포 학생이 마츠야마에게 '임진강' 의 악보와 가사를 알려준다.

 

  훗날 대학생이 된 마츠야마는 자기 친구가 The Folk Crusaders라는 3인조 대학생 그룹을 만들자 그들에게 이 곡을 주었다.

  The Folk Crusaders는 겨우 1년 밖에 활동 안 하고 해체했지만, '임진강' 은 이들의 대표곡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이 그룹이 해체했다지만 워낙 인기가 있어서, 레코드사에서는 이들의 음반을 내기로 했다.  1집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2집 앨범도 내기로 하고, 이번에는 앨범 이름을 아예 '임진강(イムジン河)'으로 하기로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일이 꼬이게 된다.

 

 

 

  임진강 앨범 발매는 그 당시의 복잡한 국제정치상황 때문에 무산된다.

 

  우선, 조총련에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조총련 측에서는 '임진강' 은 엄연히 작사자와 작곡자가 있는 곡인데 그 동안 The Folk Crusaders가 무단으로 불렀으니, 이제부터라도 앨범에 정식으로 작사자와 작곡자의 이름을 밝히고 가사도 원문에 가깝게 제대로 번역하라고 요구했다.

  애초에 이 곡을 The Folk Crusaders에게 줬던 마츠야먀는, 이 곡을 북한의 민요라고 여겼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요라는 것은 작곡자나 작사자가 알려지지 않은 게 보통이니, 마츠야마도 원작자를 밝히고 허락을 받는 것 같은 문제는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마츠야마에게 이 곡을 알려준 재일교포 학생이 1절의 가사만 알려줬기 때문에, 그나마 1절은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는데, 2절은 원문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었고, 거기에 원래 이 곡에 없던 3절까지 덧붙여졌다.

 

 

 

イムジン河  (임진강)

 

                                     - The Folk Crusaders -

 

 

イムジン河 水きよく とうとうと ながる 
임진강 맑은 물은 도도히 흐르고 
みずどり 自由に むらがり とびかうよ
물새들 자유롭게 무리지어 넘나드네

我が祖國南の地 おもいは はるか
내 조국 남쪽 땅 추억은 머나먼데

イムジン河 水きよく とうとうと ながる
임진강 맑은 물은 도도히 흐르네

 

 

北の大地から南の空へ
북쪽의 대지에서 남쪽의 하늘로

飛びゆく鳥よ自由の使者よ
날아다니는 새들이여 자유의 사자여

誰が祖國を二つに分けてしまったの
누가 조국을 둘로 나누었느뇨

誰が祖國を分けてしまったの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뇨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은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네


    

イムジン河空遠く 虹よかかっておくれ 
임진강 하늘 멀리 무지개여 뻗어주오

河よ思いを傳えておくれ
강이여 내 마음을 전해주려오

ふるさとをいつまでも忘れはしない
내 고향을 언제까지나 잊지는 않으리오

イムジン河水きよく とうとうとながる
임진강 맑은 물은 도도히 흐르네

 

 

※ 2절과 3절 사이의 한국어 가사는, The Folk Crusaders가 2000년대 들어 재결합해서 이 곡을 싱글앨범으로 내놓으면서 덧붙인 것임.

 

※ 2절의 '誰が祖國を分けてしまったの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뇨)' 는 부분을 놓고, 북한이 남한에게 분단의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해석한 글이 몇몇 블로그나 게시판에 올라온 것을 봤음. 

  하지만 그런 해석은 이 일본 가사가 북한의 가사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는 오해에서 나온, 잘못된 해석으로 보임.  북한 성악가가 이 노래를 부른 동영상도 인터넷 여기저기에 떠있던데(분위기 보아하니, 아마 중국을 통해 들어온 노래방 영상인 듯... ^^;;), 그 북한의 가사는 이 포스트 앞부분 박세영의 일생을 짤막하게 설명하며 올린 임진강의 원문 그대로라서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뇨' 라는 부분이 안 나옴. (오직 맞춤법만 다를 뿐임)  그리고 일본판 노래의 2절 가사가 원문과 너무 달라서 조총련에서 제대로 해석할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2절의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뇨' 는 북한에서 만든 가사가 아님.

  또한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뇨' 가 북한의 원래 가사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부분만으로 남한에게 분단의 책임을 전가하는 의도가 실린 가사라고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함.  저 가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  강대국들이 제멋대로 힘없는 우리나라를 두동강 낸 것에 분노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한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

 

 

  만일 이 문제가 단순하게 '작사자와 작곡자를 명기하고 가사를 제대로 번역할 것' 에 관한 것이었다면, 어쩌면 앨범은 예정대로 발매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총련은 앨범에 이 노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노래라는 사실도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과 북한은 안보문제에서 치열하게 대립하며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 적성국 관계다.  그러니 앨범에 북한의 정식 국호를 넣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일본이 북한에 머리 숙이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 노래에 관한 문제는 저작권이 얽힌 단순한 '경제문제' 에서 미묘한 '정치문제' 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이 노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는 걸 알게된 남한정부가 일본정부에 이 노래를 금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이제는 '외교문제' 까지 되어 버렸다.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려는 남북간 경쟁이 치열했던 1960년대, 남한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노래가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다른 나라' 가 북한이 아닌 남한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일본이라는 사실이 황당하기도 했을테고...  또한 일본에서 정식으로 발매된 앨범이라면, 남한에서 아무리 금지한다고 해도 바로 옆나라이며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남한에까지 퍼질 가능성도 컸을 테니까...  

 

  게다가 일이 그리 되려고 그랬는지, 이 앨범을 내려던 레코드 회사가 소속된 그룹에서 한국 진출을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 앨범 발매를 재고하게 된다.

  그 레코드 회사는 일본의 유명 전자회사 '도시바' 와 같은 그룹 소속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시바 전자가 마침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 하는 상황이었다.  만일 한국정부의 눈 밖에 난다면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레코드 회사는 결국 앨범 발매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일본에서도 금지곡이 된다. (하지만 이 노래는 금지되기 전에, 이미 유명해진 상태였음.)

 

 

 

  이렇게 한동안 지하(!)로 내려갔던 이 노래는, 2000년대 들어서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부활(!)했다.

 

  위의 일본어 가사의 아래에 붙인 설명처럼, 2000년대 들어 The Folk Crusaders가 다시 결합하여 이 노래를 싱글앨범으로 냈다.

  그들이 이 노래를 처음 부르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이 곡을 합법적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4년도에 재일교포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갈등을 소재로 한 일본 영화인 '박치기! (パッチギ! / We Shall Overcome Someday!)' 에 이 노래가 삽입되면서 다시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도 조만간 블로그에 올릴 생각인데, 재일교포들과 친분을 쌓은 일본 남학생이 울먹이며 부르는 '임진강' 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일본 학생들과 조선학교 학생들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에서는 없던 민족의식도 샘솟아날 지경이다.  그 영화의 감독도 배우도 모두 일본인인데, 그 정도로 재일교포의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감정이입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 동안 운동권 학생들이나 재야인사들 틈에서 알음알음 전해지던 이 노래가 밝은 햇살 아래로 나오게 되었다.

  인터넷 자료마다 '최초로 합.법.적.으로  임진강을 부른 사람은 누구이며, 언제였나' 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 어느 쪽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에서는 2000년에 곧 다가올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가수 김연자가 이 노래를 부른 게 최초였다고 한다.  또 어디서는 2006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서울 1945' 에서 가수 '적우' (이런 가수도 있었나? 연예계에 깜깜한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이름임. -.-;;)가 불러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그 후로는 '아침 이슬'의 가수 양희은도 이 노래를 불렀고, 가장 최근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용우와 임형주가 불렀다.

 

  다만, 여러 사람이 부르다보니 곡이나 가사를 개작하는 게 잦아서 여러 버전이 있다. 

  다른 버전은 차치하고, 당장 내가 요즘 계속 듣고 있는 김용우 버전, 임형주 버전, The Folk Crusaders 버전만 들어봐도 그렇다.  김용우 버전과 임형우 버전의 곡의 분위기 차이는 이 포스트 맨 위에서 이미 설명했다.  그리고 The Folk Crusaders 버전은 The Folk Crusaders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포크풍이다. ^^

  일단 김용우 버전과 임형주 버전의 경우, 1절 가사는 원곡의 가사 그대로다.  하지만 김용우 버전의 경우, 2절을 원곡의 가사 그대로 쓰되, 그 다음에 1절에 나온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와 대구가 되는 듯한 '내 고향 북녁땅 가고파도 못가니' 를 덧붙였다.  그리고 임형주 버전의 경우, 2절을 원곡과 많이 바꾸었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원곡 2절에 나오는 '협동벌 이삭마다 물결우에 춤추니' 중 북한의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협동벌' 이란 단어 때문에, 좀 더 서정적인 느낌이 나는 가사로 바꾼 것이 아닐까 싶다.  The Folk Crusaders 버전 가사에 대해서는 이 그룹의 일본어 가사를 위에 올리면서 설명했으니,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임진강

 

                            - 김용우 -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강건너 강밭에선 갈새만 슬피울고
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협동벌 이삭바다 물결우에 춤추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하리라

 

 

내고향 북녁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하리라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하리라

 

 

 

 

임진강 (Piano Ver.)

 

                          - 임형주 -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임진강 하늘 높이 무지개 서는 날
옛 친구 들판에서 내 이름 부를 때
내 마음 고향모습 추억속에 사라져도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그 동안 나에게 휴전선 부근의 강 중에서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강은 '한탄강' 이었다.

  강 이름부터가 '한탄하다' 의 그 한탄과 같지 않나...! (물론 한자로는 다르게 씀. ^^;;)  이건 마치,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한탄강이 있는 휴전선 쪽에 모여 서로 남쪽 또는 북쪽을 바라보며 한탄하게 될 것을 미리 예언하는 듯한 이름 같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다.  특히 휴전협상을 할 때에 조만간 휴전이 되었을 때를 위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휴전선 부근에서 양쪽이 치열하게 싸우며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니, 정말 한탄강이 이름값 제대로 한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한탄강에, 임진강까지 더해서, 분단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간직한 채 흐르는 강으로 생각하게 될 듯하다.

 

 

박치기! (パッチギ! / We Shall Overcome Someday!)(http://blog.daum.net/jha7791/15790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