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그대,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을 아는가?

Lesley 2012. 2. 12. 00:15

 

  여보게, 자네 혹시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이라고 아는가?

 

  만일 알고 있다면, 자네는 1980년대 초반 이전 출생자가 분명하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의 5인조 아이돌 그룹이라네.  특히 'Step by Step' 는 전세계적으로 히트친, 미국 팝계의 전설같은 곡이지. 

 

 

 

 

  내가 중학생이던 1990년대, 연예계와 담 쌓고 살던 나조차도  '뉴 키즈 온 더 블록' 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네.

  같은 반 학우 중 상당수가 이들의 얼굴이 떡하니 박힌 책받침을 지니고 다니는 통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의 얼굴을 볼 수 밖에 없었거든.  그들을 추종하던 학우들은 쉬는 시간마다 나처럼 '뉴 키즈 온 더 블록' 에 무심한 이들을 붙잡고는 '얘가 조단, 그 옆은 조다단, 뒤에는 대니...' 하면서 열정적으로 '뉴 키즈 온 더 블록'  전도활동(!)을 했다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어르신들이 어린 손자들 앞에 앉혀놓고 '너의 6대조 할아버지 00공께서는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역임하셨고, 5대조 할아버지 XX공께서는 율곡 이이 선생의 수제자로 명망 높은 대학자셨느니라~' 하던 것과 같이 자부심으로 얼굴을 빛내가면서 말이네.

 

 

 

  그러다가 1992년, 이 5인방과 관련한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세상을 향한 통로라고는 TV에서 해주는 9시 뉴스가 전부다시피 해서, 중학생이었던 나조차 9시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봤다네. (정말일세! 허구헌날 '천사들의 합창' 과 '빨강머리 앤' 만 봤던 게 아닐세...!)

  그런데 뉴스에 속보로 전해지는 소식, 아, 글쎄, 바로 이 '뉴 키즈 온 더 블록' 의 내한공연장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것 아닌가?  팬들이 서로 밀고 밀리며 수십명이 혼절하여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게야.

 

  이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의 전세계 순회공연지에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땅 수많은 이팔청춘들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네.

  그 공연의 표 가격이 당시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거금인 10만냥에 육박했던 걸로 기억을 하네. (호빵 하나에 200냥, 에이스 크래커는 300냥 하던 시절이었지.)  하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팬들의 일편단심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몇 달치 용돈에, 설날 세뱃돈까지 탈탈 털어 표를 구입해 공연장으로 향했던 그 시절 처자들...!

 

  그래도 경제활동 못 하는 학생들이 목돈을 득(得)할 수 있는 설날 겨우 몇 주 뒤에 공연 날짜가 잡혔던 게 천만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그 5인방의 내한공연 즈음하여, 당시 유행하던 승마바지와 땡땡이 무늬 상의를 입은 처자들이 은행을 터는 사건이 줄줄이 벌어졌을게야.  혹은 "부모님 전상서. 불초 소녀 '뉴 키즈 온 더 블록' 을 제 눈으로 보기 위하여 부득불 집문서(혹은 부모님의 혼례 패물)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었나이다.  이 불효녀식 처음부터 없었던 셈 치고,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라는 서찰 한 장 남기고 가출을 감행하는 처자들이 줄을 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암, 분명히 그랬을게야. 

 

  그렇게 처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공연이 벌어졌지.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원래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공연이 시작된터라, 그 5인방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던 팬들은 잔뜩 조바심이 난 상황이었다지.  그러다가 5인방이 등장하니, 기쁜 마음에 미친듯이 앞으로 달려나갔던 모양이야.  게다가 공연을 유치한 기획사가 재물에 눈이 멀어, 공연 장소에 비해 많은 사람을 받아들였다고 하더구만.  의자가 부족해서 관객석과 무대 사이 바닥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던데, 쯧쯧쯧...  그 거금을 주고 가서 자리 하나 못 차지하고, 마치 걸인처럼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닌가?

 

  여하튼 뒤에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밀려드니, 앞에서 바닥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밀리고 깔리는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앞자리의 상황을 모르는 뒷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밀고나갔다고 하더군.  오호, 통재라~  그렇게 그 밤에 아비규환이 벌어진게야.  그 와중에 쓰러진 사람 숫자가, 어디에서는 대략 60명이라 했고, 또 어디에서는 족히 100명은 된다 했지.  구급차가 수십대나 불빛 번쩍이며 출동을 하고, 급기야 꽃다운 나이의 처자 하나가 압사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네. 

 

  그 난리 북새통 속에서도, 나머지 팬들은 중단된 공연이 계속 될 것을 기다리며 자리를 뜨지 않았지.

  경찰청의 높으신 양반도 놀라서 달려와 그만 집에 돌아가라 설득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더군.  그러던 중 이 소식이 9시 뉴스로 보도되는 통에, 전국의 많은 부모들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일을 겪었지.  자식이 5인방 공연에 간 것을 알고 있던 부모님들은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 차림으로 허겁지겁 공연장으로 뛰어갔고, 그 시간까지 자식이 귀가하지 않았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는 경우에는 '혹시 우리집 아이도?' 하며 가슴을 쥐어 뜯어야 했다네. (휴대폰은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자식과 연락할 방도가 없었거든.)

  공연 초반에 벌어진 불상사 때문에 공연 재개를 거부하며 호텔로 돌아갔던 5인방은, 기획사의 간곡한 설득으로 공연장에 돌아왔다네.  그렇게 공연은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지.

 

 

 

  자, 각설하고, 다시 9시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전해듣던 때로 돌아가서...

 

  내 옆에서 부모님이 '요즘 아이들 제정신이 아냐.' 하고 한탄하시는걸 듣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군.

  받아보니, 평소 나와 그다지 친분이 없던 학우가 아니겠나...  뜻밖이라 놀라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하늘 같으신 우리 교장 선생님의 명령으로 각 반별로 비상연락망을 가동했다더군.

 

  위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그 때는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인지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반마다 비상연락망이란 것을 두고 있었다네.

  담임교사와 반장을 정점으로 해서, 10명 내외의 인원을 한 조로 묶어 갑순이가 을순이에게, 을순이는 병순이에게, 병순이는 또 정순이에게... 전화를 돌려 전달사항을 알리는 형태였지.  혹시 중간에 연락이 안 되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던 사람이 제일 꼭대기 조장에게 연락하고, 그러면 그 조장은 반장 또는 담임교사에게 보고를 하는 식이었지.

  군사정권시절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군대문화 냄새가 다소 풍기는 것은 사실이네만, 그래도 집 전화기 외에는 별다른 연락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 나름 유용한 방법이었던 듯하네 그려.

 

  이런, 사설이 너무 길었구만 그래...  

  여하튼 전화를 한 그 학우는 내가 공연장에 안 가고 집에 있음을 확인했고, 나 역시 내 다음 차례의 학우에게 연락하여 그 학우가 조신하게 집안에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음을 확인했다네.  전화를 끊으면서 우리 반에도 그 5인방 공연을 보러 간 학우가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였다네.

 

  다음 날 학교를 갔더니, 모두들 그 일로 설왕설래하고 있더군.

  그러다가 교실 스피커에서 학생주임 선생님 목소리가 흘러나오더군.  '1반 김 아무개, 2반 이 아무개와 박 아무개, 3반 최 아무개...  이상 호명한 학생들은 지금 학생부실로 오기 바랍니다.'  우리반 학우 두 사람도 호명되었다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모두 어리둥절해 하던 중, 아침 조회를 위해 들어오신 선생님께 사정을 들었다네.  호명된 이들은 모두 그 전날 5인방의 공연장에 간 것으로 확인된 학우들이었던게지.  나중에 들으니, 평소처럼 학생부실에서 학생주임 선생님이 야단을 치신 게 아니라, 무려 교.장.실.씩이나 되는 곳에서 교.장. 선.생.님.씩이나 되는 분이 일장 연설을 하셨다더군!

 

  뿐만 아니라, 공연장에 간 이들이 대여섯 명이나 되었던 어떤 반의 경우는, 그 학생들 뿐 아니라 담임 선생님마저 교장 선생님께 혼쭐이 났다더구만.

  당시 전교조에 동조하고 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전교조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던 물리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한탄하셨다네. (아, 참고로, 그 시절에는 전교조가 불법단체라, 전교조 소속 많은 교사들이 줄줄이 해직당했었거든.)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 공연장 간다고 허락 받고 가는 것도 아니고, 하교 후에 한 일에 대해 교사들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런데 공연장에 간 학생이 여럿인 반은 그 담임교사가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비난하는 게 말이 되는가.' 라고...  사실 말이야 맞는 말이지, 참 여러가지로 융통성 없고 딱한 시절이었네.

 

 

 

  그런데 그 사건이 비극적인 건 비극적인 것이고, 한창 호기심 넘치는 우리는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이 너무 궁금했다네.

 

  하여, 그 날 점심시간에 공연에 다녀온 두 학우 중 하나를 교탁 앞에 세워놓고 자세한 사연을 털어놓게 했다네.

  눈 앞에서 수많은 또래 처자들이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던 일하며, 그렇게 실려가는 와중에서도 자기는 공연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다고 울부짖으며 불굴의 정신력(!)을 발휘하는 몇몇 용자들하며, 잠옷 차림으로 택시 타고 달려와 울먹이며 자식 찾아 헤매던 부모들하며, 무슨 대학생 시위 현장처럼 잔뜩 몰려든 경찰과 기자들하며...

 

  그런데 그런 이야기야 이미 전날 9시 뉴스에서 다 들은 소식이고, 나에게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많은 팬들이 당시 유행했던 오리털 파카를 무대 위로 내던졌다는 이야기였다네.

  1990년대 유행한 오리털 파카는 요즘 유행하는 오리털이나 거위털 파카처럼 얇게 만든 것이 아니라네.  몸매가 어지간히 날씬한 학우가 아니고서는, 이 옷을 입으면 걸어다니는 드럼통처럼 보일 정도로 두툼했지.  생각해보면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기능성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오히려 요즘 나오는 옷보다 충실했던 듯하이.  가격은 생각 안 나네만, 입고 싶어도 못 입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서민들에게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던 듯싶으이.  헌데 그 날 수많은 처자들이 그 비싼 오리털 파카를 무대 위로 벗어던졌다는게야.

 

  그 당시에는 오리털 파카를 왜 내던졌다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네.

  가수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옷이랑 가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하지만 머리가 굵어진 지금은 그 심정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차서 가뜩이나 더울 텐데, 또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기나 하나...  5인방의 노래와 율동에 맞춰어, 모두들 소리도 질러야 하고 방방 뛰기도 해야하고...  그러면 자연히 몸에서 열이 오르겠지.  게다가 그토록 보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던 이들이 자기 눈 앞에서 화려한 공연을 보이고 있는데, 제 아무리 얼음공주 같은 처자라도 그 순간만큼은 가슴 속에서 불덩이가 마구 치솟았을게야.  하여,  몸의 열기와 마음의 열기를 다스리지 못 하고 옷을 벗어부치고, 자기도 모르게 내던진게지.

 

  그 일이 있고서 몇 년 안 되어, 그 5인방은 해체했다네.

  학생들 사이의 '카더라 통신' 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불상사가 저주가 되어 그리 되었다고도 하였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문이네만, 아직 세상사에 어두운 학생들이었고 또 인터넷의 부재로 인하여 바다 밖 소식에 어두웠던터라, 다들 그런 소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네.

 

 

 

  말 나온김에 덧붙이자면,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에 무슨 놈의 카더라 통신이 그리 자주 떠돌 수 있었던지...

 

  더 웃긴건, 그런 카더라 통신 중 유독 에이즈 관련 소문이 많았다는 점일세.

  가령 미드 '맥가이버' 의 주인공 '리처드 딘 앤더슨' 이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이 아저씨 에이즈에 걸려 죽기는 커녕, 10년 쯤 후에 미드 '스타게이트' 시리즈로 화려하게 다시 등장하셨지~)에, 역시 미드 브이(V)에서 우아하게 흰쥐를 날로 잡아드시던 '다이애나' 역을 맡았던 여배우도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 했고, 가깝게는 국내가수 중 트로트의 여왕 '주현미' 역시 에이즈 사망설에 휩싸였지.  아마 에이즈란 병명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직후라서,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 때문에 그런 밑도 끝도 없는 헛소문들이 났던 듯하이.

 

  최근에 '박치기!' 란 일본영화를 보았다네.

  영화 도입부에 그 시절 인기 있던 아이돌 그룹 공연에서 일본 여학생들이 비명 지르고 울고불고 하다가, 결국 기절까지 해서 구급차가 출동하는 장면이 있더군.  그것을 보니 문득 내 소시적 일이 떠올라, 두서없이 붓 가는대로 적어보았다네.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