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살다보니, 이런 일도...

Lesley 2011. 9. 21. 00:15

 

 

1. 잘못 걸려온 전화

 

  지난 토요일(9월 17일) 새벽에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잠결에, 그대로 눈감고 누운 채 손만 겨우 이불 밖으로 내밀어 핸드폰을 더듬어 잡았다.  웬 젊은 남자가 "이른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이사 문제로 사다리차를 대어야 하는데, 차 좀 빼주시겠습니까?" 라고 했다.  겨우 눈을 뜨고 탁상시계 봤더니, 아직 6시도 안 되었다. -.-;;

  
  한창 자다가 깨서 제 정신도 아니었고, '무슨 놈의 이사를 이 시간에 하나...' 하는 귀찮은 생각 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죄송한데요, 지금 집에 차 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했다.  (이 몸은 이 나이 되도록, 개나 소나 다 갖고 다닌다는 운전면허증이 없음. -.-;;  게다가 이 날, 공교롭게도 우리집의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집을 비운 상황.)  그러자 그 사람이 "그러면 오늘 차 쓰실 일 없는 겁니까?"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알겠다며 핸드폰을 끊었다.

 

  다시 자려고 이불 뒤집어 쓰는데, 그제서야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도 쓴 것처럼, 나는 운전면허증 같은 것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집 차에 내 핸드폰 번호가 붙어있을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내 핸드폰으로 차 빼달라는 전화가 올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졸려서 그냥 무시하고 잤다.

 

  나중에 아침 먹고 이 닦는데, 밖에서 악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아파트 단지 건너편 동에서 사다리차로 짐을 빼고 있는데, 주부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사다리차 주인 사이에 싸움이 난 것이다.  여자는 "남의 차 빼지도 못하게, 차 바로 뒤에 사다리차를 대어놓으면 어쩌냐" 며 화내고 있고, 사다리차 주인은 "그래서 아까 빼달라고 했더니, 어차피 오늘 차 쓸 일 없다며 그쪽에서 거절하지 않았냐" 하며 역시 화내고 있었다. -0-;;  "도대체 언제 전화를 했다는 거냐, 나는 그런 전화 받은 적 없다", "분명히 전화 받아놓고서는, 이 여자가 왜 이제와서 딴소리 하는 거냐", "아니, 지금 누구보다 이 여자 저 여자 함부로 말하는 거냐". "그럼, 이런 경우 없는 상황에 내 입에서 좋은 말 나오게 생겼냐" 등등... -.-;;
 

  정말 별 일도 다 있다.

  우리나라 거의 전 국민이 핸드폰을 쓰고 있는데, 그 문제의 자동차에 붙여놓은 핸드폰 번호로 전화 걸려다가 하필이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에게 잘못 걸 확률이 얼마나 되려나... (대충 백만분의 일 정도? ^^;;)

  일단 전화번호를 잘못 눌러 나에게 전화를 한 그 남자에게 1차적인 잘못이 있고,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잠의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그냥 넘긴 나에게 2차적인 잘못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전화를 받은 적이 없은데, 졸지에 거짓말쟁이로 몰린 그 젋은 여인네는 순수한 피해자...  대충 이렇게 정리되는 상황인건가? ^^;;

 

 

 

2. 하얼빈에서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했다...!

 

  하얼빈 흑룡강대학에서 어학연수 할 때, 주로 C취 기숙사 옆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의 학생식당에서는 쌀밥을 무게별로 가격을 매겨 팔았다.  막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주문하는 건지 몰라 중국학생들이 하는 것을 살펴보니, 여학생들은 보통 '얼량(2兩)' 이라고 하고, 남학생들은 '산량(3兩)' 또는 '쓰량(4兩)' 이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여학생들도 학생식당을 이용할 때면, 언제나 2량을 주문해서 먹었다.

  단 한번도 량(兩)이라는 단위가 얼만큼을 뜻하는 건지, 사전을 찾아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2량이라는 게 밥 한 그릇 수준은 되겠거니 했다.  보통 쌀밥 한 그릇이 200그램 정도 되니까, 2량이란 것은 200그램 정도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량(兩)이라는 단위가 100그램을 뜻하는구나 하고 여겼다. 

  하얼빈 시절 친한 일당 중 밥을 유별날 정도로 좋아하는 B는, 여학생으로는 특이하게 3량이나 시켜 먹는 경우가 많았다.  1량을 100그램이라고 치면 3량은 300그램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B가 3량을 시킬 때마다 '쟤는 몸이 많이 말랐으면서 참 많이도 먹는다.' 하고 생각했다. ^^;;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중한사전에는 안 나오는 단어의 뜻을 찾느라, 중국 포털 사이트를 뒤지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1량은 50그램이었다...! -0-;;  마침 네이트온에 접속한 역시 하얼빈 시절 일당인 M에게 "너는 1량이 50그램 밖에 안 되는 거 알고 있었니? 그럼 우리는 2량씩 먹었으니까, 한 끼에 100그램만 먹은 거잖아?" 라고 물었다.  M의 말인즉슨, 1량이 정확히 얼만큼인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우리가 먹던 2량이 한국의 밥 한 그릇보다 더 적은 양인 건 알고 있었단다.

  그리고나서 M이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2량을 밥 한 그릇이라고 생각할 수 있냐? 딱 보면 모르냐, 한국의 밥 한 그릇보다 훨씬 적지 않았냐?"  사실 M의 말이 전부 맞다.  분명히 내 눈에도 적어 보였다.  문제는, 나는 밥의 양이 정말로 '적다' 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적어 보인다' 라고만 생각했다는 점이다.  즉, 밥그릇이 아닌 접시에 담겨 나온 밥이라, 눈으로 보기에 적을 뿐 실제로는 밥 한 공기는 될 거라고 여긴 것이다. -.-;;  

 

  하얼빈 생활을 하면서 그 전보다 살이 좀 빠졌는데(그래봤자 여전히 눈사람과 닮은 나의 튼실한 몸매~~ ㅠ.ㅠ), 그저 활동량이 늘어 그렇다고만 여겼다.

  하얼빈으로 떠나기 1년 전쯤에 발에 문제가 좀 생겨서 깁스까지 하는 등,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 해 체중이 많이 불었다.  다행히 하얼빈으로 떠날 무렵에는 많이 좋아져서 움직이는 데 별 문제도 없었고, 게다가 흑룡강대학이 좀 넓은가...  C취 기숙사에서 A취에 있는 강의실까지 하루에 두어 번씩 왕복하고, 며칠에 한 번씩 교문 밖 은행이나 마트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운동이 되었다.  그러니 엄청나게 쪘던 살이 어느 정도 빠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난 하얼빈에서 밥을 반 공기씩 먹는 걸로,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