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이삿짐 정리하면서 학창시절 추억 떠올리기

Lesley 2011. 8. 12. 00:25

 

 

 

  8월말에 이사를 할 예정이라, 요즘 이삿짐 정리로 바쁘다.

  하얼빈에서 지낼 때 혼자서 이사하려해도 짐이 정말 많아 고생했는데, 온식구가 다 이사하려니 오죽하겠나...  짐정리가 이제 절반쯤 된 것 같은데, 쏟아져나온 안 쓰는 물건의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미 두 차례 고물상에 잔뜩 가져다가 팔았는데, 앞으로도 두 차례 더 가져다줘야 할 듯...

  정리하다 보니 주인인 나조차 '아니, 이게 아직도 있었네?' 하며 놀라게 되는 물건들이 계속 쏟아져나오는데, 중학교 때 쓰던 물건들이 나올 지경이니 말 다했다. -.-;;  그런데 옛 물건들 보니 '이런 것들을 안 버리고 살았으니 항상 방이 엉망이지.' 하며 한숨 쉬게 되기도 하지만, 나름 옛 추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첫 번째, 중학교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였나 가정 시간에 실기시험으로 만든 '개더 스커트' 발견...!

 

 

  하얼빈에서 친하게 지냈던 M에게 내가 직접 손바느질해서 만든 개더 스커트를 이번 짐정리 중 찾아내어 처분했다고 했더니 '그런 물건은 당연히 인증샷을 남겼어야 한다!' 라고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지긋지긋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 인증샷 따위 남길 생각 없다...!  각자 자기 치수에 맞춰서 천을 마름질해서 한 달 넘게 손바느질을 했으니, 십자수니 뜨개질이니 하는 뭔가 여성스러운 일에는 전혀 관심없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정말 고문이 따로 없었다. ㅠ.ㅠ 

 

 

  더구나 이 고문(!)을 그저 가정 수업시간에만 겪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바느질 같은 거 할 일 없는 시대에 태어난 덕에 손바느질 솜씨 서투른 중학생들이 하려니, 작업 속도가 제대로 나올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툭하면 '다음 시간에는 허리단까지 완성해와라' 식의 숙제가 떨어지곤 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틈틈히 바느질 하는 것은 물론이요, 집에 가서도 무슨 조선시대 가난한 양반집 여인들이 삯바느질 하듯이 졸린 눈 비벼가며 손을 놀려야 했다. ㅠ.ㅠ  그러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은근슬쩍 자기 엄마의 도움을 받곤 했다.  나처럼 눈치껏 엄마의 손바느질 솜씨만 빌린 사람들은 선생님의 심사를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지만, 지나치게 용감한(?) 몇몇 아이들이 엄마와 미싱(!)의 합동 지원으로 너무 예쁘고 똑바르게 박아와서 딱 걸려 감점을 당하곤 했다. ^^;; 

 

 

  게다가 사춘기 여자 아이들의 특성상, 몸매에 민감하게 굴어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각자 자기 치수대로 재단해서 만들고, 완성한 다음 자기가 직접 입고 심사 받는다' 라는 선생님 말씀을 분명히 듣고 시작했건만, 무슨 배짱인지 자기 허리 둘레에서 5,6센티씩 줄여 만든 아이들이 있었다. -.-;;  이런 아이들은 옷을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선생님 앞에서 심사받을 때 스커트를 입었더니 허리 지퍼가 안 올라가는 '예견된 비극' (!)을 겪고서 점수가 왕창 깎였다. ^^ 

 

 

 

  두 번째, 중학교 때 입었던 청치마 발견...!

 

 

  나는 이른바 '교복 자율화 세대' 와 '교복 부활 세대' 에 걸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최근 인기를 끈 영화 '써니' 속 등장인물들의 7,8년 아래 세대인 셈~ ^^ )

  덕분에 중학교 때는 사복을, 고등학교 때는 교복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사복을 입던 중학교 시절에도, 그 학교가 여학교라는 특성에, 무진장 보수적인 여자 교장 선생님이 계신 학교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매주 월요일에는 청치마를 입고 오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그런데 왜 꼭 청치마여야 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중에 이 지침이 흐지부지 되어, 1학년 때 말고는 나도 그렇고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 일부러 치마 입고 등교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

 

 

  그런데 이 청치마 문제 말고도 교복 자율화라는 게 말이 자율화지, 사실 이런저런 규제가 많았다.

  물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안 된다든지 하는 거야, 학교에서 학생에게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복장지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복장지침이 여러 개 있었다.

  예를 들면, 학생복장으로는 청바지가 가장 무난하니 가급적 청바지를 착용하되, 검은색 청바지는 피하라는 규정 같은 것 말이다.  '학생다운 복장' 이란 문제에서, 파란색과 검정색의 차이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더 황당한 건, 같은 학교 5,6년 선배인 사람들은 청바지가 불량배 옷차림이라는 이유로 등교할 때 청바지 입는 걸 금지당했다고 한다.  5,6년 차이가 참 무섭다. -.-;; 

  그리고 그 당시 '날라리'(내 학창시절에 '일진' 이란 단어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음. ^^)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승마바지(진짜 승마복 바지가 아니라, 승마복 바지처럼 허벅지는 풍성하고 무릎부터 발목까지는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나 땡땡이 무늬 티셔츠(작은 동그라미 무늬가 잔뜩 그려진 티셔츠)를 금지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  그런 옷을 입는 게 딱히 점잖은 옷차림이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불량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제일 이해가 안 갔던 복장지침은 '원색 상의과 무채색 상의를 입지 말아라' 였다.

  원색으로 된 옷은 그 선명한 색이 중학생답지 못하게 유치해보인다는 이유로, 무채색 옷은 불량스러워 보인다는 이유였다. -.-;;  원색도 안 되고 무채색도 안 된다면, 가엾은 우리 학생들은 도대체 무엇을 입으라는 건지... ㅠ.ㅠ  파스텔톤의 옷이나 채도가 흐린 옷만 입어야 한다는 건지 어떤 건지...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같은 무채색이라도, 검정색이나 회색은 안 되지만, 흰색은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었다.  '된다' 와 '안 된다' 의 기준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

 

 

  그리고 이해가 안 갔다기 보다는 무척 웃겼던 지침이 하나 있으니, 바로 '한복을 입고 등교하지 말아라' 다. -0-;;

  일단, 그런 지침이 없더라도 과연 한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기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국인이 한복 입겠다는데 그걸 굳이 막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이런 복장지침은 올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한복은 다른 손님들에게 위험한 옷이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을 이용하려는 손님은 한복을 입어서는 안 된다' 는 말도 안 되는 규정으로 대한민국 전국민을 뒷목 잡게 만들었던 신라호텔의 한 뷔페식 레스토랑 사건 말이다. ^^;;

 

 

 

  세 번째, 내가 처음으로 빠져든 스타 장국영의 뮤직 비디오 테이프 발견...!

 

 

  고등학교 2학년 때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 를 보고는 완전히 장국영에 푹 빠져버린 나...!

  대학생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되자, 열심히 장국영 영화를 찾아다녔다.  요즘도 그런 행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영화 개봉일 첫 번째 상영시간에 선착순으로 이런저런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종종 있었다.  선물은 주로 영화의 포스터, 영화 관련 뮤직 비디오와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 감독의 코멘트 등이 들어간 비디오 테이프 등이었다.

  나는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풍월' 과 '성월동화' 의 뮤직 비디오를 얻기 위해서, 그런 영화에 별 관심 없어하는 친구들을 재촉해서 개봉일 조조 영화를 봤다.  그것도 선착순이라기에, 행여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몫이 사라질까 걱정되어 조조 시간보다도 1시간 이상은 일찍 나갔었으니...  장국영에 별 관심 없는데도 나에게 끌려서 아침 댓바람부터 시내로 나가야 하는 친구들 입이 댓발은 나오곤 했다. ^^  

 

  그런데 그 때는 CGV나 메가박스처럼 체인점 형식의 대형 영화관이 없을 때였다.

  내가 장국영의 영화를 비롯해 이런저런 영화를 감상했던 서울 종로 바닥의 극장들이 지금도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단성사와 서울극장은 아직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흥행성과 상관없이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많이 상영하던 코아아트홀 같은 영화관은 경영난 끝에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읽은 듯하다. (코아아트홀에서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를 봤었는데...! ㅠ.ㅠ)

  헐리우드극장은 극장의 위치가 워낙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데, 대형 영화관이 판치는 지금도 아직 남아있는지 어떤지...  돼지머리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 안의 순대들이 잔뜩 늘어선 낙원상가의 칙칙한 골목길을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낙원상가의 옥상(?) 한쪽에 자리잡은 헐리우드 극장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그 옥상 반대쪽에 뜬금없이 캬바레가 극장을 마주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화 보러 올라가는 젊은이들과 캬바레로 올라가시는 어르신(?)들이 서로 어색한 표정 지으며 뒤엉켜있는 광경도 연출되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