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이것도 일종의 모럴 해저드...?

Lesley 2011. 7. 25. 22:48

 

 

 

  오늘 하마터면 약정기간이 1년이나 남은 핸드폰을 잃어버릴 뻔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과 식사를 하고서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누구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찾아보니 안 보였다.  알고보니 식사를 했던 그 식당에 두고 온 것이다. -.-;;

  만일 이전의 나였다면, 핸드폰을 식당에 놓고 온 것을 안 순간 기겁하면서 얼른 그 식당으로 뛰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느긋하게 주문한 녹차라테 마시면서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서, 지인에게 시원한 커피전문점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나 혼자 식당에 가서 핸드폰을 찾아왔다.

 

 

  원래 소심한 내가 이렇게 용감무쌍(?)하게 행동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 쓰는 핸드폰은 스마트폰이다.  아이폰이니 갤럭시니 하는 누구나 다 아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응? 그런 스마트폰도 있어?' 라는 반응 보이는 사양도 낮고 인기도 없는 모델이지만, 하여튼 스마트폰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음. ^^;;)

  내 인생 최초의 이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스마트폰 판매업소에서 권하는대로 스마트폰 보험이라는 것에 가입을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지금 KT의 회원이니, KT의 스마트폰 보험인 '쇼폰케어' 에 가입을 한 것이다.  이런 보험에 가입을 하면, 나중에 스마트폰이 파손 또는 분실되었을 경우, 약간의 금액만 지불하면 새로 스마트폰을 받을 수가 있다. (단, 원래 쓰던 모델만 받을 수 있다고 함.)

  그래서 나처럼 핸드폰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사람조차 '에이, 만일 못 찾으면 보험 이용해서 새로 하나 봤지, 뭐~' 하고 느긋하게 굴 수 있었던 거다. ^^;;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모럴 헤저드(moral hazard)' 가 만연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보통 이런 경우의 모럴 헤저드란 말은, 이 말을 한국어로 직역한 '도덕적 해이' 란 의미로 쓰인다.  즉,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서 사람의 도리 같은 것은 내팽개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세태를 개탄할 때 많이 쓴다.

  하지만 원래 이 모럴 헤저드란 말은 '사람의 도리' 란 도덕적 의미와는 별 상관없이 쓰던 경제용어다.  경제 분야, 그 중에서도 특히 보험업계에서 쓰이던 용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화재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전에는 화재가 나지 않게 항상 조심했는데, 이제는 화재가 나더라도 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화재 가능성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경향을 '모럴 헤저드' 라 한 것이다. (한 마디로 '에잇, 알게 뭐야, 나도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하는...^^)

 

 

  아무래도 오늘의 내 행동도 일종의 모럴 헤저드가 아니었나 싶다.

  스마트폰을 잃고 보험처리해서 새 스마트폰 얻는 며칠이 불편해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게 이익이다.  비록 내 돈을 몇 만원 들여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1년 사용해서 슬슬 여기저기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는 고물딱지(?) 스마트폰 대신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새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리요~~  사실, 그 식당에서 스마트폰을 다시 찾았을 때의 내 기분은 '가벼운 안도감 + 가벼운 실망감' 이었다. ^^;;

  요즘 사람들 멀쩡한 물건도 너무 유행에 뒤졌네 어쩌네 하면서 팍팍 내다버리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나였는데, 그런 나에게도 이런 면이...  반성 좀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