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리!

Lesley 2011. 10. 5. 00:12

 

  10월의 첫번째 일요일,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성북동을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먼저번 다녀온 길상사와 그 때 미처 가보지 못 했던 그 근처의 다른 곳들을 둘러보는 거였다. (☞ 길상사(吉祥寺) (http://blog.daum.net/jha7791/15790814)그런데, 어쩌다보니 정작 길상사는 못 가고, 대신 서울성곽과 대학로 등 엉뚱한 곳만 돌아다니게 되었다. ^^;; 

 

 

 

  그런데, 서울성곽 위에서 다시 성북동으로 내려왔다가 발칙하고 망칙하고 깜찍한 멍멍이와 마주쳤으니...

 

 

바로 요 녀석...! (언제 봤다고 친구 앞으로 바짝 당겨앉아 친한 척을... ^^)

 

  서울 성곽 아래 주택가를 걷는데,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저 개는 아마 그 카페에 사는 것 같던데, 사진 찍느라고 뒤쳐진 나보다 앞서서 걷던 친구에게 쪼르르 다가가서는, 저렇게 오도가도 못 하게 그 앞을 가로막아 버렸다.  그러고는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을 마구 쏘아댔다.  마치 '이 길을 가려거든 통행세(먹이)를 내놓으시오~' 하는 것 같다.

  원래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그다지 예뻐하지 않는 친구는, 이 뻔뻔스러운 멍멍이의 행태에 너무 황당해하며 헛웃음소리만 내고... ^^;;

 

 

눈빛 작전이 안 통하자, 이번에는 발라당 작전~~ *^^*

 

  애처롭게 빤히 쳐다봐도 아무 것도 나오는 것이 없자, 아예 온몸으로 '나에게 먹을 것을 달라~' 고 시위하고 나선다.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어하던 친구도 이쯤되자 재미있어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서 발라당 드러누워버린 녀석의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카페에서 살면서 이 손님 저 손님에게 먹을 것 하나씩 얻어먹는 게 버릇이 된 듯하다.  그런 경험 속에서, 먹을 것을 더 많이 득하려면 자신도 반대급부로 단독 재롱잔치라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체득해버린, 말하자면 구걸의 세계에서 이미 득도의 경지에 오른 멍멍이다. ^^ 

 

 

애교 어린 자세와는 달리, 상당히 불량한 눈빛...!

 

  그런데 이 녀석 구걸하는 와중에서도 사람을 좀 가리는 것 같다.

  좀 떨어져서 사진 찍던 내가 큰 사진 찍겠다고 가까이 다가갔더니, 저렇게 불량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친구에게는 하트가 마구 날리는 눈빛을 보내더니, 어째서 나에게는 '야, 넌 뭐냐? 뭘 봐?' 하는 눈빛을 던지는 거냐... -.-;;  사실 개를 좋아하는 쪽은 바로 나고, 개를 싫어하는 쪽이 내 친구인데, 뭘 기준 삼아서 먹이 구걸의 대상자를 선정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카페 앞에서 기념으로 독사진 찍겠다는 친구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녀석. ^^

 

  친구도 저 아담하고 소박한 카페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앞에 선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뻔뻔스러운 녀석 좀 보게나...  독사진 좀 찍겠다는데, 기어이 그 바로 앞으로 바짝 다가서서 떡하니 버티고 앉아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  게다가 앉은 자세에서 뒷다리 하나를 살짝 들고 있는 게 사진으로도 보인다.  여차하면 또 다시 발라당 작전을 펼칠 기세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아직 얻지 못 했으니, 끝까지 달라붙겠다는 심보일 것이다.

  사진 찍는 내 쪽에서는 녀석의 뒷모습 밖에 안 보여서 못 봤는데, 친구 말로는 저렇게 앞에 버티고 앉아서는 이까지 드러내며 '먹을 것 빨리 달란 말이야~' 하더란다. (네가 무슨 빚이라도 받으러 온 멍멍이냐? ^^)   

 

  하지만 먹을 것이 있어야, 녀석에게 주든지 말든지 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과자라도 한 봉지 사올 걸 그랬다고 아쉬워하다가, 혹시나 해서 생수통의 물을 손바닥에 쏟아서 줬다.  처음에는 혓바닥 할짝대며 달게 마시더니, 곧 시큰둥한 분위기~~ ^^;; (네 이놈! 내 귀한 손을 네 물그릇으로 썼건만, 그리 시큰둥해하다니...!) 

  그러자 친구가 가방 안에 츄파춥스가 있는 게 생각났다며 가방을 뒤졌다.  내가 '개가 어떻게 츄파춥스를 먹냐?' 하고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친구는 그거라도 줘야 민망하지 않을 것 같다며 사탕 껍질을 벗겨내고 멍멍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사탕을 냉큼 받아물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카페 마당 안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녀석...  그렇게 원했던 먹을 것 얻어냈으니, 이제는 우리에게 더 볼 일 없다는 식이다. ^^;;   

 

 

 

 

  저 껌딱지 같은 녀석을 보자 생각나는 또 다른 녀석이 있었으니, 작년 봄 하얼빈 흑룡강대학에서 공부할 때 자주 봤던 C취(區)의 길고양이다.

 

  흑룡강대학은 A취, B취, C취 그렇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고양이의 구걸 장소가 바로 C취,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C취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문 근처다.

  슈퍼마켓이란 곳이 먹을 곳 잔뜩 쌓여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먹이 구걸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  그 녀석은 언제나 학생들의 등교시간에 맞춰서 그 슈퍼마켓 문 근처에서 자신의 호구(!)를 물색한다.  그러다가 적당한 대상자가 눈에 띄면 다가가서는, 가던 길 못 가게 막고 먹이 내놓으라고 시위를 한다.

  아직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세속의 물이 덜 든 이 순진한 흑룡강대학의 중국학생들, 저 녀석에게 간택(!)되자마자 얼른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1위앤짜리 소세지(성인 남자의 엄지손가락보다 좀 더 크고 뚱뚱한 크기임.)를 사다가 껍질까지 벗겨서 바친다.  그러면 이 도도한 녀석은 얻어먹는 처지에, 촉박한 등교시간에도 불구하고 자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잘 먹나 지켜보는 학생 처지는 나 몰라라 하며, 아주 느긋하고 우아하게 소세지 조찬을 즐긴다.  그러고는 자기 배 다 차면 '이제 너에게 볼 일 없어' 식의 매몰찬 태도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흥분해서 고양이 뒤에다 대고 '骗人的!(사람을 속였어/사기꾼이야)' 하고 외치는 중국 여학생도 본 적 있음. ^^;;) 

 

 

(위) 구걸 작전 1단계 : 지나가는 사람 주위 얼쩡대며 못 가게 하기.

(아래) 구걸 작전 2단계 : 부비부비하며 사람 애간장 녹이기.

 

  구걸 수준에 있어서, C취 고양이는 성북동 멍멍이보다 몇 단계 위의 고수다.

  발라당 드러눕는 모습 보이는 걸로 시각적인 구걸 하던 성북동 멍멍이와는 달리, 이 C취 고양이는 자기 몸을 지나가는 흑룡강대학 학생들 몸에 부비부비하면서 촉각적인 구걸을 한다. -.-;;

  그런데 이 촉각적인 구걸 방식이 의외로 잘 먹힌다...!  저 녀석이 나를 좋아해서 부비부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어떻게든 먹이를 받아낼 심산으로 그런 짓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게 잘 알면서도, 막상 녀석이 부비부비 작전으로 나오면 먹을 것을 반드시 구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절로 솟아난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돈이 한 푼도 없다면, 지나가는 중국학생들 삥(!)을 뜯어서라도 소세지를 사서 바쳐야만 할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드는 거다...! ^^;; 

 

 

(위) 평소와는 달리 부비부비를 해도 먹을 것은 안 주고 사진만 찍는 나에게 슬슬 짜증난 모습.

(아래) 사진 더 잘 찍겠다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자 '먹을 것 안 주고 어디를 도망쳐~~' 하는 모습.

 

  뉴스나 신문에 일부 노숙자 또는 구걸자들이 사실은 상당한 재력가라는 보도가 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저 C취 고양이도 그런 부류다.

  보통 길고양이 하면 제대로 못 먹어 비쩍 마른 모습을 떠올리지만, 저 녀석은 그 동안 흑룡강대학 학생들에게 얼마나 잘 얻어먹었는지 비만에 가까운 모습니다. ^^;;  위의 사진만 봐서는 그저 중간 정도의 몸매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특히 뒷모습 보면)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위) 가끔은 호구 아닌 자를 호구로 착각하고 들러붙었다가 내쳐지기도 하고...

(아래) 드물게 겪는 내쳐짐을 당하고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뒷모습이 토끼를 닮았음. ^^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처럼, 우아한(?) 구걸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구걸 대상자를 잘못 선정해서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마음 여리고 동물을 사랑하는 호구를 고른다는 게, 그만 잘못 골라서 '너는 누구냐? 언제 봤다고 부비부비거려? 지금 나한테 성희롱 하는 거야?' 하며 내쳐진다.

 

  이 녀석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흑룡강대학 C취에서 우아하고 도도한 태도로 구걸하며 지내고 있을지, 새 보금자리를 찾아 어디론가 떠났을지...  지난 겨울이 한국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무척 혹독했다고 하는데, 길고양이 신세로 그 겨울을 잘 넘겼을런지 걱정이다.

  혹시라도 지금 흑룡강대학 C취에서 거주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저 녀석의 근황 좀 알려주셨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