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석관동 도당(石串洞 都堂) : 21세기 서울 속 무속신앙의 흔적

Lesley 2012. 3. 7. 00:01

 

  먼저번 올린 한국예술종합학교 관련 포스트로, 석관동에서 가볼만한 곳 시리즈(?) - 의릉, 천장산, 한국예술종합학교 - 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  의릉(懿陵) - 왕릉과 안기부의 기묘한 동거 (http://blog.daum.net/jha7791/15790831)

      천장산(天藏山) - 40년여만에 시민에게 돌아온 산 (http://blog.daum.net/jha7791/15790840)

      한국예술종합학교 (http://blog.daum.net/jha7791/15790837)

 

 

  그런데 뜻밖에도 천장산 관련해서 포스팅할거리가 또 하나 튀어나왔으니, 바로 석관동에 있는, 이 지역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도당(都堂)이다. ^^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이 근처에서만 살았지만(이사는 수도 없이 다녔지만 언제나 이 근처에서만 이사갔다, 이사왔다... ^^;;), 석관동에 도당이란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아파트(레미안, 파밀리에) 사이의 길을 걷다보니(석관동 지구대 바로 건너편임.), 작은 집이 하나 보였다.  보통 가정집이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지나치려다, 문득 유적지 같은 곳에 붙여놓는 안내판이 보이기에 잠깐 멈추고 읽어봤다.  그랬더니 이 곳이 뜻밖에도 무속의 신을 모신 제당 같은 곳이다.  오~~~ 무속신앙이 많이 남아있는 시골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도 이런 것이 있다니! @.@

 

 

성북동 도당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아파트 비슷한 건물이 한국예술종합학교임. 대문 옆에 내 눈길을 끈 안내판이 붙어있음. ^^)

 

  저 설명판과 인터넷 뒤져 알아낸 사실을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도당에서 모신 신은 도당 할머니이고, 이 도당 할머니가 원래는 천장산(天藏山)의 산신이었기 때문에 도당 역시 천장산에 있었다.  하지만 천장산에 의릉이 들어서면서,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해야 했고 그 때 도당 역시 이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당의 위치가 바뀌면서, 도당 할머니의 지위 역시 산신(山神)에서 동신(洞神)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도당신은 부부신이라, 도당 할아버지도 따로 있다. (노부부가 나란히 신 노릇을 한다니, 어쩐지 좀 귀여운 느낌이... ^^)  도당 할머니가 워래 천장산신이었듯이, 도당 할아버지는 봉화산(烽火山)신이다.  동신으로 바뀐 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산신 역할을 수행(!) 중이시다. ^^ 

 

 

※ 잠깐 옆길로 새서, 이 봉화산(烽火山)이란 지명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 포스트에 쓴 봉화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곳으로 유명한 그 경상남도 김해의 봉화산은 아무 상관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건 이후로, 봉화산이라는 지명 들으면 김해의 봉화산을 떠올릴 것이기에...)

  알고보니 봉화산이란 지명은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다.  위에 쓴대로 서울과 경상남도 김해는 물론이고, 강원도 춘천, 전라북도 남원과 장수, 황해도 신계, 경상남도 함양, 충청북도 영동 등등...  애초에 이 봉화산이란 이름 자체가, 옛날 국가의 비상연락망으로 전국에 그물처럼 퍼져있던 봉화(烽火)를 피웠던 산이란 뜻으로 생긴 이름이기 때문이다.  즉, 옛날에 봉화대가 위치했던 산 중 상당수의 이름이 그 전에 무엇이었던간에, 나중에 봉화산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전국 각지에 계신 봉화산 여러분, 서로 자기가 원조고 나머지는 짝퉁이라고 싸우지 마시고, 같은 봉화산끼리 사이 좋게 지내시기를... ^^;;)

 

 

도당 옆 담벼락(!)에 올라서서 도촬(!)한 모습. ^^;; 

 

 

  설명판의 내용을 보면, 저 건물 안에는 신주 대신 벼가 가득 든 항아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그렇게 곡식이 든 항아리를 신의 상징으로 모시는 경우, 그 신은 여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자와는 달리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의 특징, 항아리 안에 가득 찬 곡식, 이 두 가지가 그 옛날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농업의 번성, 즉 풍년을 상징한단다.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저 도당에서 도당 할머니를 위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제사 지내기 열흘 전에 미리 여러 명의 제관을 선출하는데, 그 열흘 동안 매일 목욕재계해야 하고, 집밖 출입을 삼가하며,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한단다.

 

  저 도당의 제사는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끼리만 비교적 조용히 치르는 모양이지만, 도당 할아버지의 산신제는 매년 두 차례 큰무당까지 불러다가 공개적인 지역행사로 치르는 모양이다.

  여지껏 이 지역에서 살면서도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올해는 기회가 닿는다면 산신제에 가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몇 장 찍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