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 있으면 또 정월대보름을 맞게 되니, 정월대보름을 소재로 한 무척 낭만적인 중국 송사(宋詞)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뜻밖에도, 고대 중국에서는 원소절(정월대보름의 중국식 이름)이 지금의 발렌타인 데이 비슷한 날이었다고 한다.
아직 유교사상이 깊이 뿌리 내리지 않아 남녀간 교제가 그래도 자유로운 편이었던 그 시절, 연인들은 원소절 밤에 함께 거리에 나가 즐거운 축제를 즐겼다. 오늘 소개할 고문은 그런 원소절 밤의 화려한 거리 모습과, 그런 복잡한 거리에서 한참 찾아헤매던 연인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찾아내게 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송사(宋詞)란 것이 무엇이냐...
사(詞)라는 것은 원래 노래의 가사를 의미했다.
하지만 당나라 때 하나의 문학 장르로 틀이 잡히게 되었고, 송나라 때에는 이런 형식의 시가문학이 최고조로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하면 당연히 송사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지금도 중국 고전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두 부문으로 당시(唐詩 : 당나라 때 쓰여진 시)와 송사(宋詞 : 송나라 때 쓰여진 사)를 꼽는다.
당시와 송사는 중문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학자 등 머리에 먹물 든 사람들만 읊어대는 어렵고 고상한 시가가 아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당시와 송사의 많은 구절을 일상회화, 학교의 작문, 신문 기사 등 현실에서 곧잘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송사는 중국문학은 물론이요, 중국어라는 언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중국 서점에 가보면 '당시 300수' 니 '송사 300수' 니 하는 책들이 서너살짜리 어린이용부터 어른용까지 온갖 버전으로 나와 있을 정도임.)
그럼 송나라 때의 신기질(辛棄疾)이 지은 유명한 송사인 청옥안·원석(靑玉案·元夕)을 소개하겠다.
청옥안·원석(靑玉案·元夕)
- 신기질(辛棄疾) -
東風夜放花千樹 (동풍야방화천수)
동풍 부는 밤, 천 그루의 나무에 핀 꽃(등불)이
更吹落, 星如雨 (경취락, 성여우)
바람에 흩날리는데, 별이 비가 되어 쏟아지는 것 같네
寶馬雕車香滿路 (보마조거향만로)
좋은 말이 끄는 독수리 문양의 화려한 마차가 온거리를 향으로 뒤덮는데
鳳簫聲動 (봉소성동)
봉소(퉁소의 명칭) 소리 울리고
玉壺光轉 (옥호광전)
옥항아리 같은 달빛이 구르며
一夜魚龍舞 (일야어룡무)
하룻밤 내내 어룡무(물고기와 용 모양의 등불을 흔들어 춤추는 모양을 나타내는 공연)가 계속되는구나
娥兒雪柳黃金縷 (아아설류황금루)
아아, 설류, 황금루(모두 여자들이 머리에 꽂던 장신구)로 치장한 여인들이
笑語盈盈暗香去 (소어영영암향거)
담소를 나누며 사뿐히 걸어가니 은은한 향기도 지나가네
衆裏尋他千百度 (중리심타천백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을 백번 천번 찾다가
驀然回首 (맥연회수)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那人却在 (나인각재)
그 사람이 뜻밖에도 있네
燈花爛珊處 (등화란산처)
등불이 잦아드는 그 곳에...
이 사는 축제의 풍경과, 애타게 찾아헤매던 연인을 갑자기 찾게 된 광경을, 상당히 화려하고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선, 원소절 밤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축제를 묘사하고 있는 첫 번째 연...
천 그루나 되는 나무(정말로 나무가 천 그루라는 뜻이 아니라, 수많은 나무라는 정도로 새기는 게 옳을 듯함.)에 등불이 화려하게 걸려있는 것이, 아직 겨울인 원소절이건만 수많은 화려한 꽃이 활짝 핀 것만 같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오는 동풍에 그 수많은 등불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의 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장관이다.
축제의 밤거리에는 귀한 댁 아가씨나 도련님을 태운 것이 분명한 호화로운 마차(그 호화로움을 '좋은 말이 끄는 독수리 문양을 새긴 마차(寶馬雕車)' 라고 묘사했음.)가 줄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1년 중 가장 밝은 보름달의 빛이 찬란한 가운데, 퉁소로 대표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어룡무로 대표되는 온갖 춤과 기예가 한바탕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의 화자가 애타게 연인을 찾다가 결국 만나게 되는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두 번째 연...
화려하게 치장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연인을 찾으려니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수백 수천번씩이나 찾아도 못 찾아 답답하고 걱정되던 차에,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뜻밖에도 점점 잦아드는 등불 아래 연인이 서있는 것이다...!
이 두 번째 연은 낭만적인 느낌과 함께, 마치 눈 앞에서 그 광경을 보는 것 같은 시각적 느낌도 무척 강하다. 애타게 연인을 찾던 사람이 무심코 얼굴을 돌렸더니 뜻밖에도 자신의 연인이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안도와 반가움을 동시에 얼굴에 드러내는 모습이, 내 머리 속에서 좌르르~~ 자동재생이 되니 말이다. 정말 이 정도면 현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으로 써도 괜찮지 않을까? ^^
송사 중에서도 이 청옥안·원석이 특히 유명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사의 마지막 부분인 衆裏尋他千百度(중리심타천백도) 驀然回首(맥연회수) 那人却在(나인각재) 燈花爛珊處(등화란산처)라는 구절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을 백번 천번 찾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이 뜻밖에도 있네, 등불이 희미해진 그 곳에...' 라는 뜻의 이 구절은 중국에서 지금도 유명한 관용어구다.
오랫동안 어떤 사람(또는 물건, 진리, 이치, 해답 등)을 찾으려 애썼지만 찾지 못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찾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또한 그렇게 무언가를 계속 찾아헤매지만 여전히 못 찾고 있을 때, 그래도 끝까지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둘째, 이 부분이 무척 재미있는데,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 Baidu)의 이름이 이 사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바이두는 중국 인터넷 검색시장의 점유율 70%대를 자랑하는,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처럼 유명한 검색엔진이다. 그런데 이 바이두라는 이름의 유래가 바로 衆裏尋他千百度(중리심타천백도 :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을 백번 천번 찾다)다.
이 사 속의 화자는, 대보름 밤거리를 채운 인파 속에서 자신의 연인을 찾을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찾아다녔다. 그것처럼, 이 바이두라는 회사도 고객이 원하는 검색어에 대해서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열심히 찾아주겠다는 뜻으로 百度라는 단어를 회사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
이 회사 사장 리옌홍이 베이징대학과 미국의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리옌홍 사장의 작명 센스(혹은 사장의 명령으로 회사이름을 지은 어떤 사람의 센스... ^^)가 정말 대단하다. 이과 출신은 그저 수치와 그래프 같이 눈에 확 보이는 것만 잘 알아볼 뿐 감성적인 부분으로는 꽝이라는 나의 편견을, 아주 제대로 부수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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