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신(李紳)의 민농(憫農)

Lesley 2012. 1. 15. 00:30

 

 

  요즘 소값이 폭락한 일로, 축산농가와 정부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축산농가에서는 나날이 늘어나는 수입 소고기와 치솟는 사료값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니, 정부가 제도적으로 해결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소값 폭락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소에게 일.부.러. 사료를 안 줘서 굶어죽게 하는 것은 동물학대라며 맞서고 있고... (그런데 이 상황에서 동물학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뭔가 좀 뜬금없는... -.-;;)

  그리고 산지에서는 그렇게 소값이 폭락해서 축산농민들이 울분을 터뜨린다는데, 우리 소비자가 먹는 소고기값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 이익이 다 어디로 갔을지는 뻔한 일이다.  중간의 유통업자들이 가져간 것이다.  생산자 손에는 몇 푼 안 되는 돈만 남고 유통업자 손에는 큰 돈이 남는 일이, 오직 공산업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소값 관련해서 쏟아지는 심란한 기사들을 읽다보니, 중국시 한 수가 떠올라 블로그에 올려보려고 한다. 

  당나라 시대 이신(李紳)이란 사람이 쓴 민농(憫農)이란 시다.

 

 

 

  그런데 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상하기 전에,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

  나는 이 시를 하얼빈에서 어학연수 마치고 귀국할 때 사온 중국시 모음집 VCD에서 알게 되었다.  중국도 우리나라 못지 않은 조기교육 열풍으로, 어지간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입학 전 당시(당나라 시대 시) 300수 정도는 외우게 한다고 한다. @.@  보통 조기교육 하면 영어부터 떠올리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보통화 교육 문제...

  중국은 지역별로 방언이 심한 탓에 보통화(중국 표준어)를 익히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라는 건 소설, 논설문, 설명문 같은 글과는 달리 운율감이 있어서 반복해서 소리내어 읽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수백편이나 되는 시를 반복해서 읽게 하는 걸로 보통화 발음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둘째, 중국에 불고 있는 국학(國學) 바람...

  자기 나라의 문화를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접하기 위해서이다.  1980년대 이전에는 봉건적인 요소가 포함된 것은 뭐든지 사회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자기네 나라 전통 문학조차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개혁개방으로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며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고, 동시에 경제발전 과정에서 만연하는 물질만능주의와 심한 경쟁에 지쳐서, 중국인들이 다시 전통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인민의 적으로 찍혔던 공자니 노자니 하는 전통 사상가들의 책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당시(唐詩)니 송사(宋詞)니 하는 것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이런 전통 사상과 문화 그 자체를 말할 때, 또는 그런 것들을 배우는 것을 국학이라고 한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이신의 민농을 살펴보자면...

 

 

 

 

憫農 (민농)   

 

                              - 李紳 (이신) -

 

 

      其一 (첫 번째 수)

 

春種一粒粟  (춘종일립속)  봄에 한 알의 곡식을 심어

秋收萬顆子  (추수만과자)  가을에 만 알의 곡식을 거두었네.

四海無閑田  (사해무한전)  세상에 놀고 있는 땅은 없건만

農夫猶餓死  (농부유아사)  농부는 아직도 굶어죽는다네.

 

 

      其二 (두 번째 수)

 

鋤禾日當午  (서화일당오)  논에 김을 매다보니 한낮에 이르렀는데

汗滴禾下土  (한적화하토)  땀방울이 벼 아래 흙으로 떨어지네.

誰知盤中餐  (수지반중찬)  누가 알까, 그릇 속의 음식이

粒粒皆辛苦  (립립개신고)  알알이 전부 괴로움인 것을...

 

 

 

  어느 나라에서나 근대산업이 발전하기 전에는 농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지만, 정작 농부들은 힘든 삶을 꾸려야 했다.

  국가에서는 농부들에게 농사 열심히 짓도록 독려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 농사짓는 사람은 천하의 근본이다)라는 표어(?)를 다 만들었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농사짓는 사람 대신 양반이니 귀족이니 하는 지배계층이 천하의 근본이었다. -.-;;  농부들은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난하게 살았고, 대신 농사를 안 짓는 높으신 분들은 배 두들기며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이다.

  '세상에 놀고 있는 땅은 없지만, 농부는 아직도 굶어 죽는다네' 라는 첫 번째 수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연에 그런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는 속담이, 유감스럽게도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통하는 것이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밥 먹다가 밥알을 흘리면 '농부 아저씨가 이거 농사 짓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하는 말을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들어야 했다. 

  두 번째 수의 세 번째 연과 네 번째 연에 나오는 '누가 알까, 그릇 속의 음식이 알알이 전부 괴로움인 것을...' 은 밥 질질 흘려가며 먹는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유치원 벽에다가 커다랗게 붙여놓아도 될만한 교훈적인 글이다. ^^

 

 

  가깝게는 소값 폭락 문제가 해결되어 축산농가의 시름이 덜어지기를 바라고, 멀게는 축산농가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되놈이 아닌 곰이 자기 몫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