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시경(詩經) 중 '관저(關雎)'와 요조숙녀(窈窕淑女)

Lesley 2011. 1. 8. 16:48

 

 

  먼저번 한 인터넷 벗님 블로그에 올라온 소설(그 블로그 주인장이 창작한 소설)에 '정숙한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라는 뜻의 窈窕淑女 君子好逑 (요조숙녀 군자호구)란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구절은 시경(時經)에 가장 첫번째로 실린 관저(關雎)라는 시에서 나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는 아니고 고대 춘추전국 시대의 민요임.)  하얼빈에서 보낸 마지막 학기에 '한어(중국어)와 중국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잠깐 스치듯 들은 적이 있어 무척 반가웠다. ^^  설사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君子), 오매(寤寐 : '오매불망(寤寐不忘)'의 오매), 전전반측(輾轉反側), 금슬(琴瑟) 등의 말은 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말들의 출전이 바로 이 관저(關雎)라는 시다.

 

 

 

 

關雎 (관저) 

 

                                                 - 詩經(시경) 中 -

 

 

關關雎鳩 (관관저구)  꾸륵꾸륵 물수리는

在河之洲 (재하지주)  (황하의) 섬에 머무는데

窈窕淑女 (요조숙녀)  정숙한 아가씨는

君子好逑 (군자호구)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參差荇菜 (참치행채)  올망졸망 마름풀을

左右流之 (좌우류지)  이리저리 헤쳐가며

窈窕淑女 (요조숙녀)  정숙한 아가씨를

寤寐求之 (오매구지)  자나깨나 찾는다네

 

求之不得 (구지불득)  찾아봐도 찾지 못해

寤寐思服 (오매사복)  자나깨나 생각하며

悠哉悠哉 (유재유재)  그립고 그리워서

輾轉反側 (전전반측)  이리저리 뒤척이네

 

參差荇菜 (참치행채)  올망졸망 마름풀을

左右采之 (좌우채지)  이리저리 따면서

窈窕淑女 (요조숙녀)  정숙한 아가씨와

琴瑟友之 (금슬우지)  금슬(거문고와 비파)을 타며 친해졌네

 

參差荇菜 (참치행채)  올망졸망 마름풀을

左右芼之 (좌우모지)  이리저리 고르면서

窈窕淑女 (요조숙녀)  정숙한 아가씨와

鐘鼓樂之 (종고락지)  종고(종과 북)를 울리며 즐긴다네

 

 

 

  다만, 이 시의 해석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 포스트에 올린 것과 같은 '점잖은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 남녀상열지사 버전의 해석은 여기에 따로 올리지는 않겠다.  이 포스팅을 위해 자료를 찾던 중, 해석과 설명이 잘 된 다른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 링크를 여기에 걸어놓을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그 곳으로 가서 읽어보시기를... 

http://jangwujeong.blog.me/40111764992

 

  흔히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작가나 감독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그 작가나 감독의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주제가 누가 봐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인 경우를 제외하면,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온갖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이미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사실은 민요 ^^)의 해석도 굳이 둘 중 어느 것이 옳으냐를 두고 머리 터지게 입씨름 벌일 일은 아닌 듯 하다.  평범한 연애시로 보든지, 수위가 상당히 높은 성애에 관한 시로 보든지, 그거야 읽는 사람 마음이니 말이다.  혹은 같은 사람이 읽더라도,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매번 달리 해석할 수도 있을테고...

 

 

  그리고 이 시에서 나오는 말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요조숙녀(窈窕淑女)와 관련한 이야기 하나...

  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한 중국친구 진쥔과 지난 연말에 QQ(중국의 유명 메신저 프로그램)로 채팅을 하던 중, 어떻게 해서 진쥔이 '숙녀' 란 말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던대로 '숙녀'나 '요조숙녀'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요조숙녀'란 표현을 쓰며 대답했다. (중국어를 쓸 때, 사자성어를 섞어쓰면 웬지 뭔가 있어보이니까... ^^;;) 그런데 진쥔이 말하기를, 숙녀와 요조숙녀는 다르단다...! (오잉? @.@)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숙녀는 '품행이 방정하고 덕이 높은 여자'를 말하는 거고, 요조숙녀는 그런 덕성에 몸매가 날씬하고 아름답다는 조건도 들어가야 한단다.  한 번도 요조숙녀란 말뜻에 '아름다운 외모'가 포함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 포털의 한자사전을 찾아봤더니,  窈(요)와 窕(조)라는 두 개의 한자 모두가 '고요하다, 얌전하다'란 뜻이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요염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었다.

 

  음... 요조숙녀가 덕이 높고 외모도 아름다운 여인을 이른다는 사실을...

  혹시... 이거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있는데, 나 혼자만 몰랐던 건가? ^^;;

 

 

※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는 '요조숙녀'는 숙녀랑 같은 뜻으로 나옴. '말과 행동이 품위가 있으며 얌전하고 정숙한 여자' 라는 의미임.  요조숙녀란 말이 한국과 중국에서 다르게 쓰이는 모양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