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단종(端宗)의 영월군루작(寧越郡樓作)

Lesley 2010. 8. 29. 23:19

 

 

 

  하얼빈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첫번째 학기, 뜻밖에도 온라인 벗님 중 한 분이 우편물을 보내주셨다.

  김별아의 '영영이별 영이별'이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정순왕후(定順王后)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정순왕후는 파란만장하고 애닲은 삶을 살아 우리나라 사극의 단골 주인공이 되어버린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의 아내이다.  정순왕후의 눈으로 바라본 단종의 기구한 인생과 그 밖의 다른 왕실 사람들, 특히 왕실 여인들의 험난한 생이 주요 소재이다.

 

 

  이 소설은 내가 오래 잊고 있던 시 한 수를 생각나게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교지에 단종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영월군루작(寧越郡樓作)이 실렸다.  시 같은 거 전혀 흥미없어하던 그 때에도 인상 깊었던 시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잊고 있다가, 단종을 소재로 한 소설 때문에 다시 떠올린 것이다.

 

  잠깐 삼천포로 빠져, 그 시를 교지에 올리신 한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연말에 교지를 낼 때마다, 두세 분의 선생님을 선정해 그 선생님들이 담당하는 과목에 대한 내용을 실게 했다.  당연히 그 부분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안 읽고 통째로 넘겨버리곤 했다.  그런 건 수업시간에 듣는 것만으로도 지겨웠으니까... ^^;;

  하지만 그 해에는 달랐다.  그 해 그 부분을 담당한 한문 선생님은 비록 외모는 그냥 그랬지만, 여학교에서는 산삼(!)이나 다름 없는 대학 갓 졸업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심 봤다~~~~~ ^0^)  게다가 성격 또한 소탈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이셔서, 요즘 한류 스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다.  그렇게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어린 왕자로 대접받을 정도인 한문 선생님이 그 부분을 맡았으니,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그 부분을 읽었다. ^^

  특히 1학년 때 우리반은 12반 중 반평균 꼴찌를 해서 담임 선생님을 경악시킬 정도로 공부와는 담 쌓은 반이었는데, 그런 우리반이 1,2위를 다투는 과목이 딱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체육이었고, 또 하나가 바로 한문이었다. ^^  교사생활 20년에 이렇게 공부 못 하는 반은 처음이라고 화를 내던 담임 선생님도 과목별 평균과 등수 보시고는, 왜 이렇게 한문 성적만 좋냐고 어이없어 하실 정도였으니... ^^

 

 

  하여튼 그렇게 읽은 영월군루작(寧越郡樓作)은 꼭 그 한문 선생님이 올리셔서가 아니라, 그 내용의 절절함 때문에라도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월군루작(寧越郡樓作)

 

 

                                                                         단종(端宗)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한 마리 원통한 새가 궁궐을 나와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외로운 몸의 그림자를 푸른 산 속에 드리웠다.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밤마다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을 못 이루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해마다 한을 삭이려 해도 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에 지는 달만 하얗고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봄골짜기에 흐르는 피 떨어진 꽃을 물들인다.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하늘은 귀를 먹어 슬픈 하소연을 못 듣는데

 

何乃愁人耳獨聽 (하내수인이독청)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의 귀만 홀로 듣는가.

 

 

 

 

  다만 이 시가 정말로 단종이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모양이다.

  김별아의 '영영이별 영이별'에도 정말 단종이 지었는지 부인인 정순왕후가 의구심 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학 또는 국문학 연구하는 이들 중에서도 단종이 직접 지었다기 보다는, 단종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누군가가 짓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일단은 단종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이 지었다 한들 단종의 비참하고 억울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에는 제목이 없다.

  제목처럼 쓰이는 '영월군루작(寧越郡樓作)'은 제목이라기 보다는, 단종이 영월군의 누각에 올라 이 시를 지었다 하여 그렇게 불리는 것 뿐이다.

 

 

 

  그럼, 이 절절한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연, 둘째 연은 궁궐에서 쫓겨난 단종의 외롭고도 비참한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궁에서 쫓겨난 자신을 一自寃禽(일자원금 : 한 마리 원통한 새)에 비유했는데 내용상 이 새는 강한 기상을 내뿜는 제왕에 어울리는 독수리 같은 새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작고 힘없는 참새 같은 새일 것이다.  작고 힘없는 것만으로도 애닲은데, 이제는 거기에 원통함까지 더해졌다.  (※ 알고보니 이 시에서 말하는 새는 참새가 아니라, 자규(두견)였음.  자세한 건 이 포스트에 딸린 댓글 참조...^^)

  그리고 그냥 '자신의 몸' 이 아닌 孤身隻影(고신척영 : 외로운 몸의 그림자)를 푸른 산에 드리웠다고 표현했다.  외로운 몸(孤身)의 짝(隻)이라고는 자신의 그림자(影) 밖에 없을 정도니, 외로워도 외로워도 이렇게까지 외로울 수 없을 정도이다.

 

 

  셋째 연, 넷째 연은 억울함과 분노로 몸부림치는 모습에 관한 부분이다.

  단종은 밤마다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하고, 해마다 잊을 수 없는 한을 없애보려 애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으나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는 억울함, 한 때는 모두가 자신을 만인지상의 귀한 몸으로 떠받들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핍박하려들거나 피하려드는 기막힌 상황에 대한 분노로, 잠도 이룰 수 없고 한도 삭힐 수 없다.

 

 

  다섯째 연, 여섯째 연은 슬픔과 한을 절절히 그리고 있다.

  聲斷曉岑(성단효잠 :  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라는 구절에서, 이 세상에 오직 자신만 남겨진 것 같은 고독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의 소리도 안 들리는 새벽의 산 봉우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무서운데, 거기에 차음 지고 있는 달만 하얗게 빛나니(殘月白 :잔월백) 더욱 처연한 느낌이다.

  血流春谷 (혈류춘곡 : 봄골짜기에 흐르는 피)에서 피는 단순한 상처에서 나는 피가 아니라, 슬픔과 한을 못 이겨 토한 피일 것이다.  또한 꽃이라는 것은 원래는 아름답게 보이는 꽃인데, 그런 꽃도 결국은 떨어져 시들 수 밖에 없다.  슬픔과 한 때문에 토한 피 그 자체로도 애절한데, 그런 피가 역시나 애절한 떨어진 꽃(落花 : 낙화)를 붉게 물들여서, 슬픔과 한이 더 깊어진다.

 

 

  일곱째 연, 여덟째 연은 그 전 부분에서 묘사한 억울함, 분노, 슬픔, 한을 극심하게 느끼다 못 해, 이제는 아예 절망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는 흔히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천벌(天罰)이 내릴 것이다' 라는 말로 분노를 표현했다.  그만큼 하늘은 인간세상의 선악을 판단하고 그에 걸맞는 상이나 벌을 내려주는 정의의 심판자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런 하늘조차 귀가 먹어(天聾 : 천롱) 슬픈 하소연(哀訴 : 애소)을 못 듣는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귀가 밝은(耳獨聽 : 이독청) 사람은 수심이 많은 이(愁人 : 수인), 즉 단종 자신 뿐이다.  자신의 슬픈 하소연을 오직 자신 밖에 못 듣는다니, 이제는 정말스러울 뿐이다.

 

 

 

  조선왕조에는 단종 말고도 보위에서 쫓겨낸 왕이 둘이 (연산군, 광해군) 더 있다.

  하지만 그 두 명의 왕은 적어도 소년 시절에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또한 왕이 되어서도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펴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둘째치고, 그 기회를 활용해서 '왕노릇'을 했다.

  그러나 그 두 명의 왕과는 달리, 단종은 너무 어린 시절 보위에 오른 탓에 어떤 기회도 가질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를 정치에 반영할 기회는 커녕, 자신을 아껴주고 보호해주려 했던 몇몇 가까운 이들을 지키는 기회도,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지킬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소년왕 단종의 사연은 다른 두 왕의 사연보다 더 기구하고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