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벗님 중 한 분의 블로그에서 영화 '호우시절'과 그 영화 속에 나오는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 관한 포스트를 읽었다.
처음에 이 '호우시절'이라는 영화가 한국 배우 정우성과 중국 배우 가오위안위안(高圓圓 :고원원)이 공연한 영화라는 부분까지만 읽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국 배우와 외국 배우가 공연한 영화는 별 볼 일 없는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영화 중 제대로 된 영화를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가오위안위안은, 내가 중국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 '난징! 난징! (南京! 南京!) (http://blog.daum.net/jha7791/15790503)' 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인터넷에 뜨는 영화 속 가오위안위안의 얼굴만으로는 도무지 '난징! 난징!'에서 어떤 역할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독일 의사를 돕던 중국 여선생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래도 내가 심각한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는게 맞는 모양이다... ㅠ.ㅠ)
만일 이 영화의 배경이 지난 여름 내가 여행했던 쓰촨성(四川省 : 사천성)의 청두(成都 :성도)가 아니었다면, 그 온라인 벗님의 포스트를 잠깐 훑어보는 걸로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포스트에도 '영화를 보고 중국 청두에 가고 싶어진다면, 대나무 숲의 초록색 때문일 것이다'라고 나와 있듯이, 나에게도 청두는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와 함께 남방의 식물답게 커다랗고 무성하고 푸르른 대나무로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청두가 배경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두보가 이 '춘야희우'를 쓸 때 머물렀던 두보초당 ('두보초당(杜甫草堂), 영릉(永陵) (http://blog.daum.net/jha7791/15790579)' 참조) 또한 내가 청두에 갔을 때 잠시 들렸던 곳이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이 영화의 제목은 두보의 '춘야희우' 첫 구절인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에서 따온 것이다. 솔직히 두보초당에 들렸을 당시에는 그 곳에 대해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두보의 시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 두보초당에 대한 특별한 느낌도 있지... -.-;;), 이 영화를 본다면 그냥 훑어보듯 지나친 두보초당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까...
두보초당 안의 대나무 숲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아치를 이루고 있다.
春夜喜雨(춘야희우) 봄날 밤의 기쁜 비
杜甫(두보)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곧 내려 만물을 소생하게 하네.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만물을 적시는데 가늘어 소리조차 없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에 묻혀 온통 어두운데
江船火燭明 (강선화촉명) 강에 뜬 배의 불빛만이 홀로 밝구나.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새벽녘에 붉게 젖은 곳을 바라보면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봄비에 젖어) 늘어진 꽃들이 금관성에 가득하겠지.
이 시를 읽으며 마지막 연에 나오는 '금관성(錦官城)' 이 어디이기에, 하필이면 그 곳에 봄비 맞은 꽃들이 활짝 핀다고 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금관성이 바로 '청두(城都)' 를 일컫는 말이었다. 청두를 중심으로 한 쓰촨성은 비단 및 비단을 이용한 수예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런 수예작품을 촉수(蜀繡)라 한다. (이 촉수(蜀繡)에 대해서는 '문수방(文殊坊)과 문수원(文殊院) - 1 (http://blog.daum.net/jha7791/15790557)' 참조) 그래서 중앙정부에 바칠 비단을 관리할 금관(錦官)이라는 관직을 두었는데, 이런 이유로 청두를 금관성이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즉, 두보는 자신이 이 시를 지을 당시 머물렀던 청두가, 밤새 촉촉히 내린 봄비로 인해 활짝 핀 꽃들로 가득찰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두보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음에도 난세를 만나 평생을 불행히 지냈으며, 그런 현실을 개탄하는 어두운 내용의 시를 많이 지었다.
그런데 이 시는 그런 두보의 시 중 드물게 밝고 희망찬 시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제목만 봐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묻어나온다. '봄비'란 뜻의 春雨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인데, 그냥 봄비도 아니고 '좋은 비(때 맞춰 내려주는 비 ^^)'란 뜻의 好雨란 말을 써서, 밝고 희망찬 앞날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시를 읽어보면 잔잔한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강물 위의 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제외하면 온통 어두운 밤에, 때 맞춰 내리는 봄비가 만물을 촉촉히 적시어, 다음 날 새벽에는 그 봄비를 맞아 화려하게 피어날 꽃에 대한 기대감이, 마치 화선지에 번지는 먹물마냥 서서히 배어나온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북국(北國)이어서, 10월 중순인 지금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 내린 비가 겨울을 재촉해서 약하게나마 눈발이 날렸으니, 곧 매서운 추위가 불어닥칠 것이다. 그렇게 이른 겨울로 스산해진 마음에 이 시를 보니,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지고 봄꽃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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