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시경(詩經)의 '모과(木瓜)'에 얽힌 짤막한 사연들

Lesley 2010. 11. 30. 12:18

 

  모과(木瓜)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문집이라는 시경(詩經)에 실린 위풍(衛風 : 위나라의 민요) 중 하나이다.

 

 

  이 모과를 '제대로' 접한 것은 2008년 말이었고, '처음' 접한 것은 그 전이었다.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에서 다른 책을 찾던 중에 문득 신영복 교수가 쓴 '강의'란 책이 눈에 띄어 충동구매를 했다. ^^;;  집에 도착한 이 책을 보다가, 모과라는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때가 제대로 접한 때)  몇 년 전에 상영한 한국영화 '궁녀(박진희 주연)'에서 본 시였기 때문이다. (이 때가 처음 접한 때)

 

 

  그런데 모과가 한자어라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 

  좀 이상하다.  木瓜라면서 왜 '모과'라고 읽는 걸까?  국어사전 찾아봐도 그 이유는 안 나오고, 그냥 모과라고 한단다.  다만, 한방에서는 같은 한자어 木瓜를 '목과'라고 읽는다니, 이게 무슨... 

  덧붙임 : 알고 보니 활음조 현상 때문이다. 자음동화나 두음법칙처럼 일정한 규칙이 있는 국어 발음 현상이 아니라, 그저 발음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다소 무작위적으로 한자의 음이 바뀌는 현상이라고 한다

 

 

 

 

木瓜(모과)

 

 

                                                                    - 詩經(시경) 中 -

 


 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匪報也 永以爲好也

(투아이목과 보지이경거 비보야 영이위호야)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네.

 답례가 아니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라네.

 

 

 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

(투아이목도 보지이경요 비보야 영이위호야)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네.

 답례가 아니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라네.

 


 投我以木李 報之以瓊玖 匪報也 永以爲好也

(투아이목이 보지이경구 비보야 영이위호야)
 나에게 오얏을 던져 주기에,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네.

 답례가 아니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라네. 


 

 

  자... 먼저 이 시를 처음 접하게 된 '궁녀'라는 영화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다.

 

 

  한 마디로 관객을 기망한 영화다. -.-;;

  친구와 함께 종로의 영화관에 가서 이 영화를 봤는데, 우리는 '범죄 수사물' 또는 '스릴러물'로 생각하고 갔다.  조선시대의 과학적인 수사법이 어쩌고, 국왕 이외의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금지된 궁녀들의 숨겨진 욕망이 저쩌고... 그런 식으로 TV와 인터넷에서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분명히 그렇게 범죄 수사물로 시작했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궁녀의 시신을 검시하는 걸로 말이다.  그런데 중간부터 뭔가 좀 이상해진다 싶더니만, 급기야 '전설의 고향' 같이 긴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물로 변신...! (도대체 이게 뭥미~~~ ㅠ.ㅠ)

 

 

  그리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왕자 아기씨...

  심각한 장면에서도 갓 태어난 왕자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만 하면, 관객들이 뒤집어져서 깔깔대고 웃어댔다.  사실 나와 내 친구도 '무슨 왕자가 저래?' 하면서 낄낄거렸고... -.-;;

  나중에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요즘 아이 답지 않게 참 구수하게(?) 생겼더라.', '어디서 그런 우량아를 데려왔느냐, 캐스팅 아주 죽이더라.', '심각한 장면에서도 그 왕자만 나오면 빵 터져버렸다.' 등등...  심지어 영화의 주인공인 박진희조차 인터뷰에서 '정식 개봉 전 기자들 모아놓고 시사회 하는데, 왕자만 나오면 사람들이 웃어서 당황했다.' 라고 할 지경이었으니...

  그 왕자 역할 맡은 아기의 엄마가 그런 글 보면 참 속상해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다 들었다. -.-;;

 

 

  하도 기막히고 어이없게 전개된 영화라 줄거리도 제대로 기억 안 나는데, 그래도 저 시만은 기억한다.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다 들켜 감금된 벙어리 궁녀가, 자기 허벅지를 피투성이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저 시를 허벅지에 수 놓는 끔찍한 장면 때문이다. ㅠ.ㅠ  그 남자가 연서를 보낼 때 저 시를 적어보낸 적이 있기에 그리 한 것 같은데, 솔직히 왜 그걸 굳이 바늘과 실로 생살에 수놓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참...

  그 장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목표만은 제대로 달성한 듯 하다.  시에 어린 낭만적인 감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피빛 허벅지가 끔찍할 정도로 대비되는 통에, 깊은 인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충격적인 인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

 

 

 

  어쨌거나 그 엉터리 영화를 보면서 건저낸 것은 딱 하나, 바로 이 '모과'라는 시다.

 

 

  그 엉터리 영화를 보면서도 이 시만은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 영화를 볼 때는 이 시가 시경에 실린, 정말로 존재하는 시인지도 볼랐다.  그저 영화상의 그 사내가 궁녀를 꾀어내기 위해 지은 시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저 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요가 불리웠던 시절에는 남녀간의 교제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 남녀가 마음에 드는 이에게 과일을 던지는 걸로 구애를 했다 한다.  조금 유치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낭만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풋풋한 젊은이들이 잘 익은 과일을 지나가는 이성에게 던져주는 걸로 마음을 전하는 것은, 커다란 꽃다발 잔뜩 안겨주거나 값비싼 장신구 선물하는 것과는 다른 싱그러운 감성이 한가득 느껴진다. ^^

 

 

  그리고 같은 대목이 반복되어 운율감을 느껴지게 하면서, 중간 중간 살짝 변화를 준 것도 마음에 든다.

  모과(木瓜), 복숭아(木桃), 오얏(木李) 등 던지는 과일의 종류가 달라질 뿐, 그 외의 구절은 거의 같다.  그저 패옥을 나타내는 단어를 瓊玖, 瓊瑤, 瓊玖라고 다양하게 해서 변화를 줄 뿐이다. 

 

 

 

 

  아,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패옥을 의미하는 두 번째 단어 瓊瑤(경요)에 얽힌 사연이다.

 

 

  '강의'에 실린 이 시를 읽을 때, 저 '경요'란 단어를 보면서도 내가 알고 있는 '경요' 란 인물과 미처 연결짓지 못 했다. 

  대만에는 '경요'라는 유명한 드라마, 영화 작가 겸 소설가가 있다.  쓰는 극본이나 소설마다 너무 뻔한 삼각관계에 전부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 아줌마께서 쓴 드라마와 영화는 무조건 히트를 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황제의 딸'이나 '안개비연가', 과거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만든 '금잔화'도 전부 이 경요의 작품이다.  영화 '동방불패'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해진 '임청하'도 이 경요의 작품으로 데뷔해서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하얼빈에서 어학연수를 받으면서, '한어(중국어)와 중국문화'라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이 작가의 본명은 따로 있는데, 이 모과란 시에 나오는 '경요'란 단어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필명으로 삼은 것이다.  경요의 작품성이 높고 낮고, 경요의 작품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그렇게 필명으로 삼을 생각을 했다니,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고 상상의 나래를 잘 펼치는 사람일 거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