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포(鄭誧)라는 고려시대 사람이 지은 이별시 '梁州客館別情人(양주객관별정인)' 를 소개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하는 이의 절절한 마음을 그린 시다. 고려시대 이별시라고는 고등학교 때 한문 시간에 배운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 한 편 밖에 몰랐다. 아니, 고려시대의 시라고는 그거 한 편 밖에 몰랐다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 시를 발견했다.
먼저 지은이 정포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정포라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 ^^;;
정포는 20살도 되기 전에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나갔다가, 충혜왕 때 그 당시 정치가 문란하다는 상소를 올린 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유배가 풀린 후 다시 출세하려는 꿈을 갖고 원나라로 갔고, 원나라 승상의 호감을 사서 황제에게 추천이 되기까지 했지만, 곧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문학활동을 활발히 했던 인물이지만 그의 문집이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아서, 그의 작품이나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단지 고려시대 유명한 문인이며 정치가인 이제현이나 이색 같은 인물이 정포의 작품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梁州客館別情人 (양주객관별정인)
양주객관에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다
- 鄭誧(정포) -
五更燈燭照殘粧 (오경등촉조잔장)
오경 등잔불은 화장기 남은 얼굴을 비추는데
慾話別離先斷腸 (욕화별리선단장)
이별을 말하려니 먼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구나.
落月半庭推戶出 (낙월반정추호출)
지는 달이 뜰을 반은 비추고 있는데 지게문 밀고 나가려니
杏花疎影滿衣裳 (행화소영만의상)
살구꽃 성긴 그림자가 옷을 가득 채우네.
역시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인간의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조선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운 고려시대라 그런지, 이별시의 내용도 훨씬 농염한 것 같다.
조선시대에도 남녀가 이별하거나 그리워하는 시가 있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情人(정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는 시가 몇 수 안 되어 못 본 걸 수도 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내가 알만한 아주 유명한 시 중에서는 정인이란 말이 드러나는 시가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 시가 남녀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는 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내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는... ^^) 내가 아는 조선시대 시를 보면, 온갖 사람을 다 가르키는 이인칭 대명사 君이란 말을 쓴 것이 대부분이라, 도대체 상대가 연인인지 친구인지 임금인지 또 다른 누구인지 참 애매하다.
하지만 고려시대 작품인 이 시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정인이란 말이 나와서, 시 속 화자와 이별한 사람이 화자가 사랑하는 여인(시의 내용을 보면, 그 정인이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으니 여인임.)임을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그 정인과 이별한 장소도 제목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냥 자기 집도 아니요, 어디 뒷동산 은행나무 아래도 아니요, 요즘으로 치면 여관이나 호텔쯤 되는 객관이라고 한다. 객관에서 五更(오경 : 새벽 3~5시)까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봐도, 두 사람이 그저 가볍게 사귀는 사이가 아닌 아주 깊은 사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이 보다 직접적이라고 해서, 너무 과한 것은 아니다.
이별의 아픔을 그려내는 것을 가지 말라고 붙들며 대성통곡 한 것으로 끝맺지 않고, 살구꽃이 달빛에 젖어 옷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 끝냈다. 슬픔을 드러내긴 드러내되, 적절히 감정을 통제하기도 하는, 감정적인 면에서 너무 넘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미를 잘 지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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