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Lesley 2011. 11. 25. 00:17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10대 때 미국으로 이주한 '할레드 호세이니' 의 소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2007년에 영화로 각색, 제작되어서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소설과 영화 중 내가 먼저 접한 것은 영화다.

  영화를 보고서 친구에게 '그 영화 괜찮더라.' 라고 말했다가, 마침 그 친구가 원작소설을 갖고 있다고 하기에 빌려 읽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와 소설은 좀 다르다.  영화라는 매체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는 소설 속에서 활자로만 나와서 독자가 알아서 상상해야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 옷, 집, 풍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 대신 소설은 영화가 시간 관계상 일일이 보여주지 못 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해준다. 

 

  오늘 포스트에서는 소설과 영화를 버무려서(!) 소개할까 한다. ^^

 

 

 

  내가 처음으로 한 말은 바바였다.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내 이름 아미르였다.

 

  주인공 '아미르' 는 아직 왕정체제였던 196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아미르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두 사람이었다.  아미르의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 그리고 아미르 집안의 하인 '알리' 의 아들인 '하산' 이다. 

 

  아미르가 '바바' 라고 부르는 아버지는 완벽한 사람이다.

  사업상 큰 성공을 거두어 아프가니스탄 상류층의 주요인사 중 하나가 되었고, 왕가의 피를 이은 교양 높고 기품있는 여자와 결혼했다. (비록 그 아내가 아들 아미르를 낳고 곧 세상을 뜨긴 했지만...)  신체적으로도 매우 건장해서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인데(단, 영화에서는 좀 허약해 보이는 배우가 아버지 역을 맡았음.^^;;), 외모와는 달리 성품이 사교적이고 부드러워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준다.  어디 그것 뿐인가...  고아원을 직접 세우고 꾸려나가는 자선가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갚을 생각 말라며 금전적인 도움을 준 것이 부지기수다.  이쯤 되면 세속적인 기준으로 봐도, 도덕적인 기준으로 봐도, 흠을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다.

 

  아미르에게 이렇게 완벽하기만 한 아버지는 넘어서기 힘든 벽이어서, 그 기대에 부응하기가 벅차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전형적인 아프가니스탄 남자처럼 축구에 열광하기도 하고 시비거는 이웃집 아이들에게 주먹을 날리며 맞서 싸우기도 하는, 그런 '남자다운 남자' 로 자라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미르는 다른 소년들과 많이 다르다.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하며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아버지는 때때로 아들에게 실망감을 표시하며 다소 냉담하게 군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던 아미르는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성격상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와 거리감을 느끼며 성장한다.   

 

  하산은 아미르 집안의 하인인 알리의 아들인데, 아미르보다 한 살 어리며, 아미르와 한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친구 같은 사이' 이기도 하다.

  친구면 친구고 친구가 아니면 아닌 거지 '친구 같은 사이' 는 또 뭐냐 싶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일단 아미르는 주인집 아들이고 하산은 그 집 하인의 아들이라는 계급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주요민족인 파쉬툰인이고 하산은 소수민족인 하자라인이라는 민족적인 차이도 있다.  또한 아미르는 이슬람 세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지만, 하산은 수니파에서 이단으로 보는 시아파라는 종교적인 차이까지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 갓난아이 시절부터 함께 자란 두 소년의 우정에 항상 위태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도 두 아이가 아프가니스탄 사람인 이상, 아프가니스탄이란 사회의 각종 규칙, 제도, 통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두 아이는 항상 함께였고, 아미르 마음 속에 하산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미르는 단 한 번도 하산을 '친구' 라는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이런 신분, 민족, 종교적인 차이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의 방향과 크기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아기였던 아미르가 처음으로 했던 말은 '바바(아버지)' 였다.  어머니의 정을 모르고 자란 아미르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하산이 처음으로 한 말은 '아미르' 였다.  하산에게 아미르는, 함께 자란 형제이며 친구였고, 문맹인 자신에게 각종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세상을 향한 문이었다.

  그런데 아미르의 아버지가 이 두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미묘하다.  정작 자신의 아들 아미르에게는 냉랭하고 무관심하게 굴면서, 하인의 자식인 하산에게는 언제나 살가운 태도를 보인다.  감수성 예민한 아미르는 아버지가 자신보다 하산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닫고, 그에 대해 슬픔과 질투를 느끼며 자랐다.  그래서 하산을 좋아하긴 하지만 때때로 하산에게 심술궂은 짓을 하곤 한다.

  이렇게 아미르에게는 아버지가 제일 중요한데, 하산에게는 아미르가 제일 중요하다는 점...  비록 하산 스스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하산이 아미르가 받을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가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아미르도 하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산이 아미르를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라는 점...  이 모든 사실이 이후 벌어진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에 앞선, 비극의 간접적 원인이며 동시에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아미르가 12살 되던 해 겨울,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에 나가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이들의 연싸움 대회는 중요한 전통 행사다.  여기에서 승리하면 아이들 세계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부모도 남들에게 자식을 자랑할 정도로 집안의 명예가 되기까지 한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는 기를 쓰고 노력해서 우승을 한다.

  우승자가 끊어낸 상대편의 연은 전쟁으로 치면 전리품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집 거실을 장식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하산은 평소에도 끊어진 연을 쫓아가 잡는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래서 아미르가 어서 연을 잡아오라고 외치자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라고 외치며 뛰어간다.

 

  그런데 연을 손에 넣은 하산 앞에, 평소에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을 잔인하게 괴롭히던 '아세프' 가 나타난다.

  연을 뺐으려는 아세프와 아미르를 위해 연을 안 뺐기려는 하산...  하산이 순순히 연을 내놓지 않자, 아세프는 건방진 하자르인 꼬마에게 버릇을 가르쳐주겠다며 하산을 강간한다.  하산을 뒤쫓아 왔던 아미르는 그 광경을 보고도, 아세프가 무서워서 감히 하산을 도울 엄두도 못 내고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나중에 연을 들고 나타나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하산과 역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는 아미르...  두 아이는 서로 상대방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눈치채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날, 연싸움에서 승리한 아미르를, 아버지는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함박웃음을 지으며 꼭 안아준다.

 

 

 

  여기가 하산의 집이고, 우리가 하산의 가족이다. 

 

  연싸움 후에 벌어진 일 때문에 두 소년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아미르는 하산을 볼 때마다, 하산이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을 모른 척 했던 자신의 비열함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괴로워진 나머지 하산을 자꾸 피하게 된다.  그리고 하산은 아미르가 예전과 달리 자꾸 자신을 밀어내는 것에 고민하며, 어떻게든 관계를 풀어보려고 아미르를 쫓아다닌다.

  이 상황이 1년 넘게 계속되자 아미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 하산을 자기 눈앞에서 치워버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하인을 바꾸자고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산을 다른 곳으로 절대 보내지 않을 거다.  여기가 하산의 집이고, 우리가 하산의 가족이다." 라며 불같이 화를 낸다.  이 일로, 연싸움 승리 후 한결 부드러워졌던 부자지간이 다시 싸늘하게 식어 버린다. 

 

  그러자 아미르는 엄청난 짓을 벌인다.

  생일선물로 받은 값비싼 시계를 하산의 잠자리에 몰래 가져다 놓는 방법으로, 마치 하산이 도둑질을 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아버지는 평소에 도둑질을 모든 죄의 기본으로 생각했다.  가령, 살인은 피해자의 목숨을 도둑질한 것일 뿐 아니라, 피해자의 아내와 아들에게서 남편과 아버지를 도둑질한 것이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도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훈계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아버지라면 아무리 평소에 하산을 아꼈다고는 해도 도둑질을 한 것으로 보이는 하산을 반드시 내쫓을 거라고, 아미르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미르가 원했던대로 하산은 아미르네 집을 떠나게 되지만, 아미르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떠나게 된다.

  아버지가 정말 시계를 훔쳤느냐고 묻자, 뜻밖에도 하산은 순순히 그렇다고 인정한다...!  민감한 성격의 아미르는, 이 일을 꾸민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하산이 다 알고 있음을 눈치챈다.  또한, 자신이 하산에게 누명을 씌웠음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며 희생하려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아미르는 그런 하산의 태도에 무척 당황해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감격해 하는데, 곧 이어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버지가 너무나 간단하게 도둑질을 용서한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대할 때와는 달리 하산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관대하기만 한 것에 분노를 느끼는 중에, 또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버지가 용서했는데도, 하인 알리가 아들 하산을 데리고 떠나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아미르는 알리의 차가운 표정을 보며, 알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알리는 자기 아들이 강간당했을 때 아미르가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과 아미르가 자기 아들에게 도둑 누명을 씌었다는 것을 알고, 아들이 더 이상 봉변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려고 떠나려는 것이다. 

 

  이 날 아미르는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다.

  아프가니스탄 상류사회의 저명인사이며 항상 남자답게 당당했던 아버지가, 제발 떠나지 말고 같이 살자며 하인 알리에게 울면서 애원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알리와 하산은 하자라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떠나고, 아버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린다.

 

 

 

  하산이 오늘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후로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점령하게 되자, 18세가 된 아미르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탈출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호의호식할 때에는 냉랭했던 부자지간이, 미국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 오히려 돈독해진다.  아버지는 맨손으로 온 낯선 땅에서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평생 해본 적 없는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낸다.  마침내 아들이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어렵게 모은 돈을 털어 중고 자동차를 사준다.  대학에 가게 되면 자동차가 꼭 필요할 거라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에 감격해서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겨우 삼키는 아미르에게, 아버지는 그 감격을 싸늘하게 식게 하는 말을 한다.  "하산이 오늘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아미르는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상류층 집안의 딸인 '소라야' 와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아미르가 청혼을 했을 때 소라야는 한 가지 사실을 고백했다.  자신이 한창 부모에게 반항하던 시절에 가출을 해서, 어떤 남자와 한 달 동안 동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말을 들었으니 자신과 결혼할 마음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  아미르는 망설임 없이 결혼하고픈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고 대답해서, 소라야를 감격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영화와 소설의 차이에 대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영화 속에서...

 

  영화만 보면, 소라야의 혼전순결 문제가 불거지고 해결되는 장면이 정말 황당하게 느껴진다.

  아미르는 보수적이고 남녀차별이 만연한 이슬람 사회에서 성장한 남자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을 듣고서 충격을 받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어." 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또한 이 영화의 큰 줄거리가 하산에 대한 아미르의 배신과 속죄인데, 어째서 소라야의 혼전순결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건 마치 모두 한복을 입고 찍은 단체 사진 중간에, 뜬금없이 양복 입은 사람 하나가 끼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상영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원작의 앞뒤 상황을 다 쳐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에 비해 소설 속에서는...

 

  소설에서는 아미르의 태도가 훨씬 개연성 있게 묘사되고, '소라야 사건'(?)이 전체 줄거리 속의 한 부분으로 잘 끼워져 있다.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아미르가 진작부터 소라야의 동거 경험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보수적인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도 열심히 남의 집안일에 대해 뒷담화를 해댔기 때문에, 아미르 역시 그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아미르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니, 소라야가 다른 남자와 동거했던 것을 고백했을 때 충격을 받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아미르는 청혼하기에 앞서 그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라야와 결혼하고 싶다.' 라는 결론을 냈기 때문에, 소라야 앞에서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라야의 고백은 아미르로 하여금 소라야에게 존경심을 품게 하고, 동시에 자신의 비열함과 나약함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소라야는 아미르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면서도 동거 경험을 솔직히 말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아미르는 자신의 비열한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아미르는 자신이 다른 아프가니스탄 남자들과는 다르게 여자의 혼전순결 문제에 대해 관대한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과거 자신이 하산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 한 과거를 갖고 있으면서, 남의 과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아버지는 아미르가 결혼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2000년이 되어 이제는 작가로 자리 잡은 38세의 아미르에게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라힘 칸' 이다.  그는 아미르가 어렸을 적에, 아미르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아미르의 외로움을 이해해줬던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리고 아미르가 하산의 곤경을 모른 척하는 죄를 짓고 괴로워 할 때, 그 일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암시를 흘리면서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라힘 칸은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세상이 된 후에 파키스탄으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미르에게 파키스탄으로 와서 자신을 만나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어떤 용건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전화를 끊기 전에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라고 덧붙인다.  아미르는 직감적으로 하산과 관련된 일임을 알아챈다.  과연 과거의 그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회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라힘 칸을 만나러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라힘 칸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충격적인 두 가지 사연...

  우선, 하산의 비참한 최후가 밝혀진다.  하산은 아미르에게 그런 배신을 당하고도 그 후로도 아미르를 그리워했으며, 나중에 아미르네 집을 지키려다가 결국 아내와 함께 탈레반에게 총살당했다고 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미르는 망치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라힘 칸이 털어놓는 두번째 사연은 아예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핵폭탄급 비밀이다. 

  알고 보니, 하산은 아미르의 이복동생이었다...!  아미르의 아버지가 알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러 하산이 태어났던 것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유부녀와 통정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불명예인데, 더구나 그 유부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천시당하는 하자라인 여자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아미르의 아버지는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하산을 알리의 아들로 자라게 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았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사람으로 통했던 아버지, 도둑질은 나쁜 짓이라고 아미르에게 누누이 강조했던 도덕적인 아버지...  그 아버지가 사실은 다른 남자의 아내를 훔치고, 친아들(하산)한테서도 훌륭한 환경 속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랄 권리를 훔쳤던 것이다...!

 

  그제서야 아미르는, 어린 시절 자신 주변에 이 비밀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널려있었음을 깨닫는다.

  그저 하인의 아들일 뿐인 하산에게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고, 매년 하산의 생일을 챙기고, 심지어 언청이로 태어난 하산을 수술까지 시켜주고, 하산이 떠나던 날 남자로서의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눈물을 줄줄 흘리던 아버지...  아버지의 그러한 각별한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때는 바보처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가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보기에, 아미르는 아버지가 가진 모든 재산과 명예를 물려받을 수 있는, 한 마디로 복이 넘쳐흐르는 아들이었다.  그에 비해 하산은 아미르와 똑같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서 무엇 하나 물려받지 못 하고 평생 밑바닥 계층의 삶을 살아야 하는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아들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차갑게 대하고, 어떤 것도 누리지 못 하는 아들에게는 미안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애정을 보였던 것이다.

 

  라힘 칸은 하산의 아들 '소랍' 이 아직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며, 그 아이를 구해달라고 한다.

  처음에 아미르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로 화를 내며 거절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산에게 갚지 못 했던 마음의 빚을 하산의 아들에게 대신 갚겠다는 심정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다. 

 

 

 

  당신의 마음에 호소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산의 아들 이름이 '소랍' 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산은 문맹이었던 어린 시절, 아미르가 읽어주는 이야기책 내용을 듣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페르시아 신화에서 유래된 유명한 서사시 '로스탐과 소랍'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훗날 결혼해서 얻은 자기 아들에게, 그 서사시의 등장인물에게서 따온 소랍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의 소랍은 사실은 무척 비극적인 인물이다.

  소랍은 뛰어난 전사 로스탐과 어떤 나라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모른 채 자랐다.  그리고 성장해서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 한 아버지 로스탐의 칼에 찔려 죽게 된다.  로스탐은 소랍에게 치명상을 입힌 후에야 소랍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슬퍼하는데, 소랍은 그런 로스탐에게 "저는 계속해서 당신에게 사랑을 구했고, 당신의 성을 붙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세히 설명해준 아버지의 표시들을 당신에게서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호소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죽게 된다.

 

  이 소랍의 마지막 말이야말로, 아미르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애정을 품고 있던 하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산은 아미르를 위해 연을 지키려다 아미르의 외면 속에서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 후로도 아미르를 원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을 멀리하는 아미르에게 어떻게든 다시 다가가려 애썼다.  하지만 아미르의 두번째 배신 때문에 아미르 곁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아미르를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야말로 이야기 속 소랍이 죽어가면서 남긴 말 그대로 "저는 계속해서 당신에게 사랑을 구했고" 이며 "당신의 마음에 호소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인 상황이다.  어린 시절 하산이 그토록 '로스탐과 소랍'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은, 하산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20여년만에 고향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아미르는 또 한 번 충격에 빠지게 된다.

  아미르는 소랍이 아프가니스탄의 어떤 고아원에 있는 것으로 알고 갔다.  그런데 극심한 혼란과 빈곤 속에서, 고아원 원장이 소랍을 탈레반에게 노리개로 넘겨버렸다.  더구나 소랍에게 성적 학대를 하고 있는 변태 탈레반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옛날 소랍의 아버지 하산을 강간했던 아세프다...!

 

  아미르가 소랍을 풀어달라고 하자, 아세프는 그 대가로 자신과 결투를 해야 한다며 아미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아미르의 갈비뼈가 몇 개나 부러지고 얼굴뼈에 금이 가고 치아도 여러 개 빠질 정도니, 그야말로 죽도록 두들겨 팬 것이다.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한 아미르를 어린 소랍이 구해낸다...!  어린 시절 아미르가 아세프에게 봉변을 당할 상황에 처했을 때, 하산은 뛰어난 새총솜씨로 아세프를 위협해서 아미르를 구해냈다.  그 때의 하산처럼, 이번에는 하산의 아들 소랍이 하산에게 물려받은 그 새총솜씨로, 또 다시 아미르를 구해낸 것이다.   

 

  영화에서는 아미르와 소랍이 곧장 미국으로 가지만, 소설에서는 그 전에 소랍의 자살미수사건이 일어난다.

  아미르는 소랍을 데리고 탈레반 지역을 탈출해 파키스탄으로 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소랍을 합법적으로 미국으로 데려갈 길이 없어 고민하다가, 그 방면에 밝은 변호사의 충고대로 편법을 쓰기로 한다.  즉, 일단은 소랍을 파키스탄의 고아원에 잠시 맡겼다가 입양하는 형식을 갖추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소랍은 아프가니스탄의 고아원에서 탈레반에게 팔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고아원이란 말에 극도로 거부감을 나타내며 공포에 질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살을 기도한다.

 

  겨우 살아난 소랍은 아미르와 미국으로 가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구의 말이나 행동에도 반응을 안 하게 된다.

  아미르와 소라야 부부는 어떻게든 소랍에게 다가가려 애쓴다.  하지만 자신들을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소랍의 태도에 차츰 지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계 주민들의 야외모임에 나갔다가, 아이들이 연싸움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미르가 연을 사다가 소랍에게 건네주며 말을 붙이자, 자살기도 후 처음으로 소랍의 얼굴에 희미한 표정이 떠오른다.  아미르는 이 작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옛날에 소랍의 아버지 하산이 얼마나 연싸움 솜씨가 좋았는지 그리고 연을 얼마나 잘 쫓았는지 설명해주며 다른 사람의 연을 끊어내는데 성공한다.

  아미르가 연싸움에서 이기자, 아주 잠깐 소랍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  그 작은 미소에 들뜬 아미르가 끊어져 날아가는 연을 잡아다줄까냐고 묻자,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소랍...       

 

  그 옛날 아미르를 위해 하산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하고 연을 잡으러 달려갔다.

  수십 년이 지나 이번에는,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을 위해 연을 잡으러 뛰어간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라고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