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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탕산대지진(唐山大地震)' 과 일본만화 '몬스터(Monster)'

Lesley 2011. 12. 15. 00:11

 

 

  탕산대지진(唐山大地震)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중국영화다. (단, 우리나라에서는 '대지진' 이란 제목으로 상영되었음.)

  그런데 이 영화가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 그 자체가 완성도 높고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오래 전에 본 만화 한 편과 공통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의 소재는 꽤 괜찮았고, 전반부는 박진감 넘치며 흡입도가 높았고, 후반부도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중반부가 너무 길고 군더더기가 많아서, 영화가 전체적으로 축축 늘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좋지도, 그렇다고 아주 형편없지도 않은, 그냥 그런 수준의 영화' 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괜찮았던 전반부에서 이 영화 속 가족이 헤어지게 된 원인이 되는 사건이, 대학시절에 봤던 일본만화 몬스터(Monster)에서의 사연과 무척 흡사하다.

 

 

  엄마와 쌍둥이 남매...  엄마는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위험에 빠뜨려야 하는가...

 

  두 작품 모두 엄마와 쌍둥이 남매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엄마가 두 자식 중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저울질 해야 하는 잔인한 상황에 처한다는 점이 같다.

 

 

  영화 '탕산대지진'

 

  조만간 초등학교에 입학할 쌍둥이 남매 팡덩(누나)과 팡다(남동생)는 단잠을 자던 중 탕산지진을 맞게 된다. (탕산지진은 1976년에 중국 탕산(唐山, 당산)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지진인데, 20세기에 일어난 전세계의 지진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음.)

  지진이 났을 때 아빠는 세상을 떴고, 쌍둥이는 무너져내린 건물 콘크리트 벽에 파묻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쌍둥이가 콘크리트 벽 양쪽 끝에 제각각 묻혔고, 콘크리트의 어느 한 쪽을 들어내면 다른 한 쪽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즉, 쌍둥이 중 하나를 구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엄마에게 누구를 구할지 선택하라지만, 어떻게 선택하겠는가?  여기에서 '누구를 살릴지 선택하는 것' 은 곧 '누구를 죽일지 선택하는 것' 이다! 

 

  처음에 엄마는 반드시 두 아이 모두 구해야한다며 울지만, 시간을 끌면 두 아이 모두를 잃게 되는 상황에서 결국 아들을 선택한다.

  동생 팡다를 선택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팡덩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팡다를 구하기 위해 팡다 쪽의 콘크리트를 들어올리자, 팡덩의 몸 위로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져내린다.  

  나중에 폐허에서 꺼낸 팡덩은 분명히 죽은 것으로 보이고, 엄마는 팡덩을 끌어안고 미안하다며 대성통곡한다.  하지만 팡덩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묻어줄 시간도 없다.  구조된 팡다의 상태도 무척 안 좋아서, 계속 시간을 끌면 딸을 희생해가며 구한 아들마저 잃을 판국이다.  그렇게 딸을 죽은 남편과 다른 희생자들 곁에 둔 채, 엄마는 아들을 업고 떠난다.

 

 

  만화 '몬스터'

 

  동유럽에 공산주의 정권이 건재하던 시절,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비밀경찰이 일종의 우생학적인 실험을 한다.

  완벽한 아이를 얻기 위해 두뇌와 육체 모두 우수한 남자를 선발해서, 역시 두뇌와 육체 모두 우수한 여자에게 접근해 임신시키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자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여자에게 모든 걸 털어놓은 후 함께 도망치려고 한다.  문제는, 이 실험을 계획한 자들이 워낙 교활해서, 남자가 정말로 사랑에 빠지는 상황도 '이 실험 중 발생할 수 있는 변수' 로 생각해두고 미리 대비했다는 점이다.  결국 남자는 처리되고(아마도 살해당한 듯...), 여자는 쌍둥이 남매인 요한과 안나를 낳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엄마는 쌍둥이를 데리고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비밀경찰이 이들을 찾아내고, 여기에서 영화 '탕산대지진' 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비밀경찰은 쌍둥이 중 하나만 데려가겠다면서, 엄마에게 누구를 내놓을지 결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상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아이를 내어줄 수가 있겠나...  엄마는 누구도 데려갈 수 없다며 소리 지르지만, 이미 발각된 이상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계속 어떤 아이도 안 내놓겠다고 하다가는, 아예 두 아이 모두 빼앗길 수도 있다.

  결국 엄마는 딸아이를 내어준다.  그리고 딸 안나는 며칠 동안 끌려가 있으면서 몸서리 치는 광경을 목격하고, 다시 엄마와 쌍둥이 오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두 작품의 차이는? 

 

  엄마가 자식들을 두고,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포기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몇 가지 미묘한 차이점도 있다.

 

 

  첫째, 엄마가 한 사람을 선택할 때, 엄마의 정신상태가 어떠했는가 하는 차이다.

 

  '탕산대지진' 에서 엄마는 분명히 제정신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버리는지를 알고 있었다.

  엄마가 왜 아들 팡다를 선택했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우리나라와 같이 전통적으로 아들선호사상이 강하다는 점과 지금보다 아들선호가 강했던 1970년대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어차피 한 아이를 구할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아들을 구하자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에 비해 '몬스터' 의 엄마는 자신이 보낸 아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 한다.

  엄마는 탈출한 뒤로 비밀경찰의 추격을 피하느라, 아들 요한에게 긴 가발을 씌우고 여자옷을 입혀 딸 안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게 했다.  평소같으면 아무리 변장했다고 해도 자신의 아들과 딸을 구분 못 할 리 없다.  하지만 자식들의 목숨을 놓고 저울질을 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완전히 이성을 잃고, 누구 누구인지도 모른 채 딸 안나를 보낸다. 

 

 

  둘째, 엄마의 선택이 쌍둥이 중 어느 쪽에게 더 큰 정신적 타격을 주었는가 하는 차이다.

 

  우선 '탕산대지진' 에서는 선택받지 못 한 쪽, 즉 딸 팡덩이 큰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엄마가 쌍둥이 남동생 팡다를 데리고 떠난 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팡덩이 눈을 뜬다...!  모두들 팡덩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잠시 가사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겨우 6살 밖에 안 되는 이 아이에게, 지진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사실보다는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구조대로 투입된 군인들이 아이를 발견하고 이름이 무엇인지, 가족이 있는지 물을 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듯이, 자신 또한 6살 밖에 안 된 나이에 엄마를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곧 아이가 없는 군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새로운 성(姓)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몬스터' 에서는 오히려 선택되었던 아들 요한이 더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요한은 안나만 끌려가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점에 안도한다.  문제는, 위에도 썼듯이, 엄마는 두 아이 중 누가 요한이고 누가 안나인지 몰랐다는 점이다.  자신이 도대체 누구를 보낸건지 몰라 극도로 혼란스러워하는 엄마를 보면서, 요한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그야말로 '우연히' 그리고 '운좋게' 선택되었던 것 뿐이다. 

  만일 요한이 평범한 아이였다면 그냥 놀라는 정도로 끝났겠지만, 이 예민하고 천재적이며 싸이코패스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이 때의 경험으로 '이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 오직 나와 내 여동생 안나 뿐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후로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끔찍하고 교활한 연쇄살인을 일으키게 된다.

 

 

 

  시작은 같았지만, 결말은 달랐다.  

 

  이유는 다르지만, 엄마가 쌍둥이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몰려 시작된 비극...

  하지만 두 작품에서 그 비극의 끝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 '탕산대지진' 

 

  '탕산대지진' 에서는 무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팡덩이 엄마에게 돌아가게 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험은 팡덩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성장기 내내, 그리고 탕산대지진 후 30년이 지나 대학생 자식을 둔 엄마가 된 뒤에도...  하지만 2008년에 일어난 쓰촨성대지진이 모든 걸 바꿔놓는다.

 

  자원봉사자로 구조작업에 참여한 팡덩은, 그 옛날 자신이 폐허에 묻혔을 때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아이가 한쪽 다리만 매몰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빨리 다리를 빼내지 못 하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하지만 아이 다리 위에 쌓인 건물 잔해들이 너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서, 서둘러 구조작업을 하다가는 잔해가 무너져서 아이와 구조대원들 모두 죽을 판국이다.  결국, 아이의 엄마가 최후의 방법을 내놓는다.  사실 그 방법은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어놓지 못 했던 것이다.  엄마가 울음을 삼키며 말한다.  딸아이의 다리를 잘라내라고...  딸아이가 나중에 엄마를 저주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다리가 잘린 채 실려나가는 어린 딸 옆에서 미안하다고 울던 엄마는, 딸의 잘린 다리가 묻힌 폐허로 돌진하며 '우리 딸의 다리도 가져가야 해!' 하고 울부짖는다.  그런 아이 엄마를 등뒤에서 붙잡고 말리면서, 팡덩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우리 엄마 역시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 선택으로 나 뿐만 아니라 엄마 역시 큰 고통을 받았던 게 아닐까' 하는...

 

  그리고 자기처럼 구조작업에 참여한 남동생 팡다를 만나게 되면서, 친엄마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30여년만에 만난 모녀는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빌게 된다.

 

 

  만화 '몬스터'

 

  '탕산대지진' 과 달리 '몬스터' 에서는 명확한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딱히 해피엔딩이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드엔딩이랄 수도 없다.  어찌 보면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내어주는 열린 결말이지만, 좀 더 다른 방향에서 보면 참 애매한 결말이다. 

  요한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고, 쌍둥이 여동생 안나는 이전의 평범했던 대학생활로 돌아간다.  요한의 정체를 밝히고 요한의 살인행각을 막으려 애썼던 덴마만이 쌍둥이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과연 이 몬스터라는 작품의 진정한 몬스터는 뭐였을까?

  싸이코패스 요한?  히틀러의 광기 어린 우생학적인 실험을 아이들에게 했던 동유럽의 비밀경찰들?  혹은 비록 강요당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아이들의 목숨과 안전을 두고 저울질을 한 엄마?

  아니, 어쩌면 인간이란 생물 그 자체가 몬스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 나온 요한과 비밀경찰들이 저질렀던 끔찍한 행위 그 자체가 아닌, 그런 행위를 같은 인간에게 태연히 할 수 있었던 인간이란 생물 자체가 가장 무서운 몬스터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