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학습, 중국어 노래

중국어 교재 '교량(橋梁)' (3) - 복권을 사다(買彩票)

Lesley 2011. 12. 3. 11:28

  오늘 소개할 교량의 본문은 아주 재미있는 글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한 편의 고품격 시트콤처럼 우스우면서도 은근히 현실 비판적이다.  덕분에 읽으면서 몇 번이나 웃었고, 또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 

 

 


 

 

복권을 사다(買彩票)

 

 

 

  우리 시골 마을에는, 일찍부터 도박이니 복권이니 하는 것들이 성행했다.

  누구인들 운수대통해서 대박 터지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당신도 좀 들어봐라, 항공복권의 경우 1등이 50만위앤(한화 약 9,000만원)이나 되니, 얼마나 사람들이 끌리겠는가!  둘째 언니가 앞장을 서서 모두 함께 돈을 모아 복권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언니가 먼저 2위앤(한화 약 360원)을 냈다.  나는 먼저 직접 점을 쳐봤는데, 점괘가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게 나와서, 4위앤을 냈다.  언니와 한참 동안 계산을 해봤는데, 아무리 해도 부족해서, 94위앤이 더 있어야만 겨우 복권 1장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부분에서 좀 놀란 게, 그러면 복권이 1장당 100위앤(한화1만8천원)이라는 건데, 우리나라 복권에 비해서 상당히 비싸다.  더구나 이 교량이라는 책이 1996년에 처음 출판된 것을 생각하면, 그 때에는 중국돈 100위앤이 지금보다 훨씬 가치 높은 액수였을텐데...  중국 복권은 원래 이렇게 다 비싼 건지, 어떤 건지...)

  나와 언니는 분담해서 선전을 하러 나갔다. "50만이에요, 50만!  비록 50명이 함께 나눠가져도 한 사람당 1만위앤을 받을 수 있고, 2위앤이 1만위앤으로 바뀐다고요!"  온 마을이 미친 것만 같았다.  개조차도 '50만' 이란 소리에 익숙해져서, 누가 '50만' 이라고 말하면 설사 낯선 사람일지라도 즉시 꼬리를 흔들기만 할 뿐, 앞으로 나가 한 입에 그 사람 다리를 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내가 처음으로 빵 터진 부분. 개조차 50만위앤이란 말을 알아들을 정도라니... ^^)  꼬박 일주일을 요란하게 보낸 후에 결국 100위앤이 모였는데, 지분이 제일 많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셋째 외할머니는 겨우 50전을 내셨는데, 넷째 이모와 다섯째 이모와 함께 함께 모아서 낸 것이었다. ('셋째 외할머니' 라는 말은 외가쪽 할머니들을 모두 외할머니라고 해서, 서열상 세번째인 할머니를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함께 낸 돈 중 누구의 몫이 얼마인지를) 장부에 적기까지 했다.

 

 

  어디로 가서 복권을 사야 할까?

  또 다시 점을 쳐야 했다.  둘째 언니는 내가 점괘 뽑는 것을 믿지 못 해서, 50전을 내고 장님 왕씨에게 점괘를 뽑게 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무언가 일을 벌일 때 점 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듯... -.-;;)  장님 왕씨가 말하기를, 기쁜 일이 동북쪽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시내 전체에 복권 판매소가 모두 4곳이 있는데, 리청상점이 시의 동북쪽에 있다.  의논한 결과, 그 곳으로 가서 사기로 했다.  하지만 리청상점은 4곳의 판매소 중 가장 작은 곳으로, 담배나 비누 같은 물건이나 파는 곳이다.  만일 100위앤을 사기쳐서 도망친다든지, 또는 거기서 판매한 것이 가짜 복권이라든지 하면, 어떻게 하나? (복권 살 돈을 가로챈다든지, 가짜 복권을 판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가짜 물건이 워낙 많아서...)

  또 다시 장님 왕씨에게 50전을 주고 새로 점을 치게 했다.  그가 말하기를, 서북쪽도 괜찮다고 했다.  또 말하기를, 서북쪽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자세히 점을 쳐보니 동북쪽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번째로 빵 터졌다.  손님의 의향에 따라 금새 바뀌는 점괘... ^^)  서북쪽에는 헝샹상가라는 큰 상점이 있어서, 둘째 언니가 시집갈 때 쓴 비단으로 된 붉은색 얼굴가리개(중국영화에 흔히 나오는, 결혼식 때 신부 얼굴을 전부 가리는 너울 같은 가리개) 도 거기에서 산 것이다.

 

 

  누가 가서 사야할까?

  이것도 역시 문제였다.  관례대로라면 당연히 내가 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지분이 제일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소띠인데 올해는 닭띠해라서, 반드시 닭띠인 사람을 찾아야 했다. (여기에서 우리 풍습과 마찬가지로 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전통문화를 알 수 있고...)  그리고 남자여야 했다.  여자는 운수가 좋지 않으니까. (역시 우리네 풍습 비슷한, 중국의 뿌리 깊은 남존여비사상을 알 수 있고...)  오직 이씨 집안의 셋째만이 닭띠해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평소에 그 많던 닭띠들이 다른 띠로 변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닭띠는 찾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세번째로 빵터졌다. ^^)

  그 어린 이씨네 셋째를 혼자 보내려니, 사람들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몸이 건장한 남자 두 명을 이씨네 셋째에게 붙여서 호위를 하도록 결정했고, 세 사람은 시내로 나가서 복권을 샀다.

 

 

  복권을 사왔으니, 누가 보관해야 할까?

  우리 마을은 단체로 일을 할 때 한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으니, 즉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믿지 못 한다는 것이다.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토론을 한 끝에, 결국 셋째 외할머니에게 드리기로 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인품이 반드시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셋째 외할머니는 노인이기 때문에) 어쨌든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몰래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게 아닌가? (아, 진짜... 이 본문의 원문을 쓴 사람은 시트콤이나 코미디 작가였나 보다. ^^)

 

 

  복권 번호를 발표하는 그 날까지, 모두들 누구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가 1등에 당첨되지 않을까?  당첨된다면, 나는 2만위앤을 받게 되겠지.  그 2만위앤을 어떻게 써야 할까?  그래, 집을 사는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집의 위치, 모양, 어떻게 꾸밀지를 꼬박 밤을 새우며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집을 사지 말고 장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상점을 어디에 열지, 얼만큼의 규모로 할지, 어떤 장사를 할지, 어떻게 돈을 벌지, 돈을 번 후에는 어떻게 더 불릴지를 또 한참 동안 생각하며 밤을 보냈다. (로또를 산 경험 있는 사람으로서, 비록 이렇게 밤잠 설칠 지경까지 간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 심정이 좀 이해가 간다.)

  하늘의 별과 강가의 물방울이 전부 지폐로 변했고, 새벽의 새 지저귀는 소리와 한밤의 벌레 울음소리도 전부 "50만! 50만!" 하고 외쳤다.  어쩌다 잠이 들게 되면,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잤는데, 여러 무더기의 지폐에 내 몸이 눌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헐떡거리는 꿈을 꾸었다. (또 빵 터지고...)

  아무 때나 점을 칠 수 있도록, 특별히 점치는 도구를 한 세트 사서는, 점을 치고 또 쳤다.  나쁜 점괘가 나오면, 그 괘를 뒤집어 버리고 새로 괘를 뽑았다.  그래서 점괘는 언제나 좋게 나왔고, 이런 식으로라면 반드시 대박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쯤되면 처절하기까지 하다. ^^)


  번호가 발표됐다.

  신문에 5등까지 나왔는데, 우리가 익숙하게 외운 번호는 없었다.  집, 점포... 모두 진땀과 함께 흘러가버렸다.  그러면 6등과 7등을 보자.  5등까지는 당첨되지 않았지만, 설마 별 것 아닌 6등마저 당첨되지 않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점괘를 뽑아봤는데, 이번에도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게 나왔다.  6등은 500위앤이니, 외투 한 벌 장만해서 입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6등과 7등을 기다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5등까지의 번호를 반복해서 읽었다.  5등까지 당첨된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큰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하고 계산했다.  아무래도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당첨된 사람들은 어쩌면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그 돈 때문에 큰 재앙을 겪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가 당첨되지 않은 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자기 합리화의 극치! ^^)  물론 자신이 당첨된다고 해서 반드시 재앙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말해봤자, 결국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6등과 7등도 발표되었는데 우리의 번호가 아니었고, 그제서야 제일 마지막 숫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숫자조차 우리를 놀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숫자는 3인데, 당첨된 것은 하필이면 2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둘째 언니와 나는 주동자였다!

  셋째 외할머니가 우리에게 자신의 50전을 돌려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물어줬다.  셋째 외할머니에게 물어주자, 다른 사람들 역시 2위앤을 헛되이 버리지 않으려 했다. (즉, 모두 자기가 낸 2위앤을 물어달라고 했다는 뜻.)  둘째 언니는 요 며칠 사이 갑자기 병이 났다.  언니는 이런 쪽으로 능력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즉시 병이 날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약삭빠른 사람은 꼭 한 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

  남은 것은 나 한 사람이고, 어쩔 수 없이 나 혼자서 모두가 2위앤을 요구하는 데 대처할 수 밖에 없었다.  돈을 다 물어주고 나자, 둘째 언니의 병도 나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젯밤 아주 달콤하게 잘 잤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비록 금전적인 손해는 봤지만, 결국에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해피엔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