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학습, 중국어 노래

중국어 교재 '교량(橋梁)' (2) - 중국어 교재의 전설!

Lesley 2011. 11. 16. 00:25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교량(橋梁)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해볼까 한다.

 

  ☞  중국어 교재 '교량(橋梁)' (1) - 안목(眼光) (http://blog.daum.net/jha7791/15790838)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낸 이미지인데, 왜 하(下)권 이미지는 비뚤어져있는지... ^^;;

 

  나는 하얼빈 흑룡강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중국어 학습계의 전설(!)인 교량(橋梁)으로 공부하지 못 했다.

  원래는 흑룡강대학에서도 중급 2반과 고급 1반의 정독 교재로 각각 교량 상(上)권 및 하(下)권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중급 2반에 올라가자, 교재가 신계제 중급한어교정(新階梯 中級漢語敎程 : 階梯는 계단 또는 단계란 뜻이니 '새로운 단계의 중급 중국어 과정' 정도로 번역하면 맞을 듯.)라는 책으로 바뀌어 버렸다.

 

  문제는... 그렇게 교재가 바뀔 줄 모르고, 미리 교량을 구입했다는 점이다. -.-;;

  중급 2반으로 올라가기 전에 어떤 책을 사러 흑룡강대학 근처의 서점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200위앤어치 이상을 구입하면 20%인지 30%인지를 할인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 금액 채우느라고 교량을 덥썩 사버렸다.  어차피 다음 학기에 구입할 책인데 미리 구입해서 할인받으면 좋은 거라고 여겼다.  설마 그 다음 학기부터 교재가 바뀔 줄이야... ㅠ.ㅠ

  이왕 산 책인데 그냥 두면 아까우니 푸다오 시간에 교재로 썼는데, 5과였나 6과까지 공부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귀국한 후로 내 책꽂이에 장식품 노릇이나 하고 있던 이 녀석을 지난달부터 다시 보게 되었다.  중국어를 복습하려는데, 흑룡강대학에서 배운 교재는 너무 딱딱해서, 한 번 배운 책인데도 도무지 눈에 안 들어오기 때문이다.

 

 

 


 

 

 

  자, 여기까지는 서론이었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

 

  교량은 중국어 교육의 메카인 북경어언대학(北京語言大學)이 1996년에 출간한 책이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교량이라는 책이름부터가 이 책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  중국어 중급 수준에서 고급 수준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위의 사진을 보라...! 책 표지에도 육지와 섬을 잇는 교량 사진이 실린 것이, 중국어 학습계의 교량 역할 하겠다는 의지가 팍팍 보이는 것 같지 않는가...! ^^)

  중국어 교재가 점점 다양해지면서, 오래된 교량 대신 다른 교재를 채택하는 학교 또는 학원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중급, 또는 중고급반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교재가 교량이다.

 

 

 

 

  교량의 장점은...

 

  출간된지 15년이나 지났는데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어 학습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북경어언대학 말고도 중국의 여러 대학에서 각각 다양한 중국어 교재를 펴내고 있다.  그렇게 쏟아져나오는 교재들을 제치고 출간된지 15년이나 된 교량이 여전히 중급 교재의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내용과 수준이 그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내용들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소책자로 내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내용이 괜찮다.

  우리나라 전철역에서 많이 판매하는 '좋은 생각' 같은 잡지에 실릴만한 종류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의 현실(물론 이 책이 나왔던 1996년을 기준으로 하는 현실)을 장점이든 단점이든 잘 보여주면서, 그 속에 감동과 해학을 버무려넣어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다.  그래서 분명히 학습을 위한 교재이건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교량의 단점은...

 

  하지만 출간된지 15년이나 지난 책이기 때문에, 교재에 나오는 단어나 본문 내용이 현재의 중국 상황과 동떨어지게 되었다는 단점도 있다.

 

  먼저 도로교통에 관련된 것을 예로 들어보겠다. 

  교량에 나오는 빵차(원래는 다마스 같은 소형 봉고차를 의미하는데, 일반 봉고차를 그렇게 부르기도 함. 전에는 이 빵차가 무허가 영업차량으로 많이 동원되었음.)의 요금은 10킬로미터에 10위앤(한화 약 1,850원)으로 나온다.  하지만 요즘 중국에 가서 그 가격에 그 거리를 가겠다고 말했다가는, 빵차 기사에게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주요도시 중 낙후된 편인 하얼빈조차 택시 기본요금이 8위앤임...!  거기에 유류할증료로 1위앤 추가되어, 사실상 9위앤~~ ㅠ.ㅠ)

  그리고 택시 기사의 수입이 어지간한 사무직 종사자의 수입을 넘어서기 때문에, 다른 직업 종사자들이 택시 기사로 전업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개혁개방정책 초기인 1980년대에는 일부 대학교수 또는 국유기업 직원들 조차 택시 기사로 직업을 바꾸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중국인에게 택시 기사 수입이 상당히 높지 않느냐는 질문한다면, '이게 웬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냐?' 하는 대답 듣기 딱이다. ^^;;  

 

  또한 자전거도 좋은 예다. 

  자전거가 중국 교통에서 중요한 역할 맡고 있던 시절에 나온 책이니만큼, 자전거에 관련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것도 그냥 자전거라는 단어만 되풀이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자전거 체인, 자전거 체인 덮개, 자전거 수리점 등 자전거와 관련된 단어들이 참 자세하게도 나온다.  교량의 편저자들이 책을 만들 때, 중국에서 생활하거나 중국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그 정도 자전거 관련 단어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IT와 관련된 단어들이 있다.

  교량에는 지금 우리 생활에서 사용 빈도가 높지 않은 카세트, 녹음기, 테이프, 무선호출기 같은 구식 전자제품이 나온다.  그 대신 위에서 쓴 흑룡강대학 중급 2반의 새 교재 '신계제 중급한어교정' 에는 나오는 액정화면, 인터넷, 휴대폰, 원격조종 같은 IT 관련 단어는 안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1996년도에 그런 단어는 일반인들과는 별 상관 없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난 역시 교량이 좋다!

 

  '신계제 중급한어교정' 이 교량에 비해 딱히 내용이 부실하거나 덜 체계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흥미롭기까지 한 교재가 좋지 않은가...!  아무리 문법 설명이 잘 되어 있고, 단어를 잘 정리해놓았어도, 재미가 없으면 책을 들쳐볼 마음이 안 나니 말이다.

 

  비슷한 수준인 '신계제 중급한어교정' 하권의 1과 본문과 교량 상권의 1과 본문을 비교해보자.

 

 

  '신계제 중급한어교정' 의 1과 본문은 '관용을 배우다' 는 제목의 글이다.

 

  제목부터가 어쩌면 이렇게 교훈적이냐... -.-;;  

  주인공이 친형제나 다름없던 대학 동창과 절교했다가 화해하는 과정에서 관용 정신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정말 도덕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글이다.  글의 내용이 도덕적이라는 점에 태클 거는 것은 아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모두 개탄하는 이 시대에, 도덕성을 강조하는 게 뭐가 나쁘겠나...  문제는, 그 도덕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도무지 독자가 공감하거나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 각자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절친한 동창과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그 회사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동창이 비열한 방법으로 그 공을 독자치하고 벼락승진까지 했다.  그래서 배신감과 분노로 오랫동안 그 동창을 미워하며 지냈는데, 그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자신도 괴로워져서 힘들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너는 관용을 베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를 용서하는 것이 너 자신도 고통에서 헤어나오는 길이다' 라고 충고한다.  당신이 그 충고에 따라 그 동창과 화해한 후에, 당신 스스로도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을 다시 되찾게 된다.

 

  이 이야기에 공감이 가는가? -.-;;

  문제의 동창을 용서하고 화해한 주인공과 그 주인공에게 그렇게 하라고 충고한 친구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등장인물이나 내용 전개가 너무 교과서적이고 평면적이라는 게 문제다.  차라리 그 나쁜 동창과 대판 싸우는 장면이 나온 후 화해가 이루어졌거나,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이 말을 트고 지내게 되었는데 어떤 계기가 생겨서(가령 마음에 빚을 지고 있던 그 동창이 주인공을 위해 큰 일을 했다든지...) 진심으로 화해하게 되었다면 공감이 되었을 것이다. 

  과연 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현실에서 몇 명이나 존재할까 싶다.  저런 인물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런 더러운 사바세계에 머물기에는 너무 고결한 영혼들이라, 조만간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단어나 문법은 분명히 중급 단계의 중국어 학습자에게 적합한 것들이지만, 학습 흥미도 측면에서 본다면 완전히 빵점짜리다.

 

 

  '교량' 의 1과 본문은 '나의 희망 프로젝트' 라는 제목의 글이다.

 

  위에 소개한 '관용을 배우다' 는 글제목과는 다르게, '이게 뭐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나? (아, 나만 그런가... ^^;;)

  가난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 하는 중국 농촌 아이들을 위해 기금회를 만들어 '희망 프로젝트' 라는 후원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프로젝트의 후원자로 참여한 어떤 대학생과 그 대학생에게 후원받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소재 자체가 보다 현실적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때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중국 농촌에서는 의무교육기간도 못 채우고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하니 말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아이가 첫 후원금을 받고 대학생에게 편지를 보내 한 말은, 감사의 인사도 아니고 장차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의 말도 아니었다.  "아저씨, 저 학교에 갔어요!" 가 전부다.  너무 짤막한 문장이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감정과 의미가 함축된 문장이다.  대학생은 저 짧은 편지를 받고 엄청난 의무감과 시대적인 책임감을 느낀다고 나오는데, 전혀 과장되거나 뻔하다는 느낌이 안 든다.  나 같아도 "정말 감사합니다,  장차 성공해서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식의 편지보다는, 오히려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 기쁨만을 표현하는 저런 내용의 편지를 보고 더 감동을 느끼고 반드시 이 아이를 끝까지 후원해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낄 것 같다. 

  또한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농촌 아이들에 대한 묘사도 절절하다.  "그 머나먼 산골 마을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어하고,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가!  그들은 자기 부모에게 애원한다. - 저는 동생을 데리고 수업에 갈 수 있어요...  저는 반드시 밭일을 끝내고서 학교에 갈거고, 수업이 끝나면 물을 긷고 땔감을 모을게요...  일요일에는 집안일을 도울 수 있으니, 초등학교를 마치게 해주세요."  오죽하면 어떤 블로거는 이 교량 1과를 배우면서, 자신도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너무 슬퍼서 울었다고 썼다. ^^;;

 

 

  나 개인적으로는, 북경어언대학에서 교량을 좀 업데이트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난 15년 동안 오탈자 잡아낸 것 말고는 업데이트가 없었다는 건 좀 심했다... ^^;;  적어도 5, 6년에 한 번 정도는 시대에 뒤쳐지게 된 단어와 본문을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닐런지...   그런 식으로, 전체 15과(상, 하 각권이 15과씩으로 이루어짐.) 중 몇 년에 한 번씩 3, 4과씩만 시대에 맞는 이야기로 바꿔줘도 좋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