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학습, 중국어 노래

중국어 교재 '교량(橋梁)' (1) - 안목(眼光)

Lesley 2011. 10. 16. 00:12

 

  오늘 포스팅 할 내용은 중국어 학습자들에게는 무척 유명한 교량(橋梁)이라는 책에 나오는 眼光이란 제목의 짤막한 이야기다. (眼光은 한국어로는 '안광' 이라고 읽고 '눈빛' 이라는 뜻이 되지만, 중국어에서는 '안목, 식견' 등의 뜻으로 쓰임.)  

 

  그런데 어째서 중국어 교재 속의 본문을 포스팅 할 생각을 다 했느냐...?

 

  요즘 이 교량의 상(上)권을 독학 중이다.

  독학이라고는 하지만, 이 교량 상권이 흑룡강대학에서 배웠던 책과 비슷한 수준이라, 문법이나 어휘에서 크게 막히지는 않는다.  내가 이 교량을 공부해보니, 교량이 왜 그렇게 중국어 학습자 사이에서 유명한지 알겠다.

  흑룡강대학에서도 원래는 교량을 교재로 채택했다가, 하필 내가 교량 배우기 시작할 학기부터 교재를 바꿔버렸는데, 정말 유감이다.  이렇게 저절로 공부하고픈 마음이 드는 교재를 버리고, 하품만 씹어 삼키게 되는 교재를 채택하다니...! ㅠ.ㅠ 

 

  전에 다른 중국어 학습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누구는 이 책을 공부하면서 울었다고 했고(너무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감동받아서... ^^), 누구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잠 안 자려고 할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을 번역해서 읽어줬더니 그 어린 아이조차 재미있어 하더라고 했다.  그런 글을 읽을 때는, 어학용 교재가 어학용 교재일 뿐이지 모두들 웬 오버냐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교량을 읽어보니, 수록된 글들이 정말 괜찮다.  교량에 실린 본문들은 그저 중국어 문법과 어휘를 가르치기 위한 글들이 아니라, 문학적인 글이다...!  글마다 감동이 있고, 해학이 있고, 반전이 있고, 중의적으로 해석할만한 여지가 있다.  오죽하면 어학교재에 실린 내용을 포스팅 할 생각을 다 했겠는가...

 

  사실 교량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무척 길어진다.

  어차피 오늘 포스팅 할 眼光 이외에도 포스팅 할만한 가치 있는 본문이 여러 개 있으니, 다음 기회에 그것들과 함께 교량이라는 교재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분석(?)도 올려볼까 한다. 

  오늘은 일단 맛보기로 眼光만... ^^ 

 

 

 


 

 

 안목(眼光)

 

 

 

  개막을 할 때의 열렬한 광경은 지나갔다.  왔던 손님들도 절반은 돌아갔으며, 남아있던 귀빈들도 오찬을 마치고서는 모두 한 사람씩 돌아갔다.  전시실은 텅텅 비어 한 사람의 관람객도 남지 않았고, 오직 그와 젊은 아내만이 남았다.

 

  아내는 원래 그의 학생이었는데, 그를 무척 숭배했다.  숭배가 애정으로 변했을 때, 그는 불안해 했지만, 결국 젊은 아가씨의 불같은 애정공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와 20년 넘게 생활한 옛 아내와 헤어졌다.  옛 아내는 중학교 교사였는데, 그림을 그릴 줄 몰랐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젊은 아내는 완전히 반대여서, 그의 모든 작품에 언제나 크게 칭찬을 했다.  이번 그림 전시회는 젊은 아내가 그를 위해 연 것인데, 그의 55세 생일선물로 바친 셈이었다.  그는 40년 넘게 그림을 그렸는데, 전부터 개인 전시회를 한 번 열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했다.  하지만 이전에 옛 아내와 이 일에 대해 의논할 때면, 그녀는 언제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비록 한 작품도 팔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개막을 했으니, 그의 일생일대의 희망이 실현된 셈이었다.

 

  "선생님! 집으로 돌아가요. 곧 폐관할 거에요!"  아내는 아직도 학생이었던 때처럼 그렇게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폐관한다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다가, 아내의 눈길과 마주쳤다.  아내의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고, 그녀의 마음 속 우상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이 며칠 동안, 전시회장은 무척 조용했다.  전시회장 문앞의 광고판을 제외하고는, 미술계 인사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송국과 신문도 모두 침묵했고, 관람객은 너무 적어서 불쌍해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직접 작은 신문사 몇 곳의 기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선물까지 보냈지만, 결국 작은 신문사 두어 곳에서 한두 줄짜리 간단한 기사를 실어준 게 전부였다.  전시회가 끝나기 며칠 전에, 그는 돈을 써서 또 한 차례 광고를 내어 사람들에게 이 전시회의 존재를 일깨웠지만, 관람객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  

 

  폐막실에 참가한 사람은 적었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학생 두 명이 그를 도와 작품을 정리했다.  그는 마치 사기꾼처럼 아내의 냉랭한 눈길을 피했고, 자신을 숭배한 사람과 결혼한 것을 정말 후회했다.  자신이 그녀를 속인 것처럼 생각되어,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녀가 얼마나 가여운지... 

 

 

 

  이 때, 전시회장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나와서 그들에게 말했다.  전날 저녁에 그림 20폭이 이름을 밝히려고 하지 않은 해외 소장가에게 팔렸으며, 그의 대리인이 이미 10,000위앤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사실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고, 한 편의 꿈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확실한 사실이었다.

 

  아내의 냉랭한 얼굴에 한 순간에 웃음이 피어나더니, 곧이어 어린 소녀마냥 뛰어올라 환호하고 남편을 부르며 달려들었다.  아내는 그의 목에 매달려 큰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잘못 본 게 아니에요.  선생님은 천재여서, 곧 인정받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녀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우상이 엄청나게 커진 것만 같았다.  그는 아내가 정말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발견하고, 또 자신을 선택한 것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도 역시 안목이 있었다.  공통된 화제라고는 조금도 없는 옛 아내를 과감하게 내버리고, 그녀에게 장가들었으니...

 

  그의 그림이 해외 소장가에게 20폭이나 팔렸다는 소식은 곧 기자들을 놀라게 했고, 큰 신문 작은 신문 할 것 없이 계속해서 이 일을 보도했다.  집안의 거실에는 날마다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고, 그림을 사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한 달이 못 되어, 출품했던 100폭의 그림이 전부 다 팔렸고, 심지어 밑그림조차 몇 폭이 팔렸다.  적지 않은 신문이 줄줄이 평론과 소개글을 발표하고, 그의 작품을 실었으며, 이 대화가를 칭찬했다.  그 자신도 완전히 어리둥절해져서, 하늘에 정말로 태양이 한 개 더 떠오른 것처럼 생각될 지경이었다. (이 모든 일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뜻인 듯함.)

 

 

 

  어느 날, 그가 혼자서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손님이 입은 옷은 매우 훌륭한데,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보통화(중국 표준어)로 말했다.  그는 '또 그림을 사려고 온 모양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손님에게 쇼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손님은 곧장 앉지 않고, 한참 동안 그를 바라봤다.

 

  "석달 전에 당신의 그림 20폭을 산 해외 소장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사람이 비밀스럽게 웃었다.  "바로 저입니다.  하지만 저는 원래 소장가가 아니라, 해외에 살고 있는 평범한 상인일 뿐입니다."

 

  그는 순간 멍해졌다가, 곧 열정적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몇 번이나 말했다.

 

  "저에게 감사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옛 아내의 부탁대로 했을 뿐입니다."  상인이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화가는 무척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당신의 전시회를 보고 나온 후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임종할 때, 자신의 각막을 제 어머니에게 기증했습니다.  제 어머니가 각막이식수술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옛 아내는 나보고 해외 소장가의 신분으로 당신의 그림 2폭을 사달라고 했지만, 결국 20폭을 샀습니다."  화가는 거의 기절할 뻔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그녀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손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옷주머니에서 테이프를 하나 꺼내어 카세트에 집어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옛 아내의 힘겨운 목소리가 나왔다.

 

  "... 그를 좀 도와주세요, 이 방법만이 그를 성공하게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너무나 평범해요..." 

 

  그는 한동안 몸을 떨었다.  마치 옛 아내의 냉정하고, 정곡을 찌르며, 예리한 눈빛을 다시 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불안하게 머리를 숙였다.

 

 

 

  손님이 떠나고 얼마 안 되어, 아내가 돌아와서 그에게 말했다.  "전시기간 동안 해외 소장가가 사갔던 그림 20폭이 최근에 벌써 다른 곳에 팔렸대요.  그런데 가격이 원래보다 3배가 되었대요."

 

  그는 또 다시 놀랐다.

 

  아내가 말했다.  "그 사람 정말 안목이 있어요!"

 

 


 

 

 

  이 글을 처음 읽을 때, 중간까지 보고서는 너무 뻔한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별 볼일 없던 시절 동고동락했던 옛 아내와 헤어지고, 원래는 자기 학생이었던 딸같은 여자와 결혼한 50대의 무명화가...

  처음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였지만, 반응은 영 신통찮을 뿐이고...  한 때 자신의 선생님이었던 남편을 우상으로 생각해던 젊은 아내는 사람보는 자신의 안목이 틀렸나 싶어 실망하고, 남편 역시 면목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데...  갑자기 많은 그림이 팔리면서, 남편은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고...  아내는 남편과 남편의 그림을 선택한 자신의 안목이 정확했다며 기뻐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그림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이해 못 하는 옛 아내와 헤어져 현재의 아내와 결혼한 자신의 안목이 대단하다고 자부하고...

 

  사실, 이쯤 되면 뒷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대강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일일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너무나 도식적인 이야기다.  '알고보니 그 많은 그림을 샀던 사람은 헤어진 아내였고,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이미 늦어서(가령 옛 아내가 병이나 사고로 죽었다든지 하여...) 남편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는 반전이 떠오르지 않나? (사실 이런 뻔한 내용을 반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사실 내 예상의 절반은 맞았다.  남편의 그림을 산 사람은 어떤 화교 상인이었지만, 그에게 그림을 사달라고 부탁한 것은 분명히 옛 아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아내가 죽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반전 및 묘미는 바로 그 다음에 있다.

 

  옛 아내는 이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남편을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하고 많은 방법 중 그런 연극 비슷한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이 이야기의 제목인 '안목' 과 관련되어 있다.  즉, 남편과 현재의 젊은 아내는 자신들이 안목이 있다고 기뻐했지만, 사실 정말로 안목이 있는 사람은 옛 아내였다.  성공할만한 그림 솜씨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에 있어서, 명색이 화가라는 남편이나 그림을 배웠던 젊은 아내(현재의 직업은 알 수 없지만 남편의 학생이었다니, 당연히 미술을 공부했겠지...)는 무능력했던 셈이다.  오히려 그림에 대해 문외한으로 생각되었던 옛 아내의 안목이 정확했다.  아내는 남편의 그림이 너무 평범해서, 평론가나 관람객에게 평가를 받는 식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예상한 것처럼 옛 아내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그리워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옛 아내의 예리하고 냉철한 안목을 깨닫고(더구나 그 안목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것이었으니...) 몸을 떨 정도로 불편함을 느낀다.  남편이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옛 아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전시회를 열고자 하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해서가 아니었다.  남편의 작품 수준이 그냥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안목 없는 사람이 남편과 현재의 젊은 아내뿐인가...

  남편의 그림에 아무 관심없어 하다가, 어떤 해외에 거주하는 소장가가 한꺼번에 많은 그림을 사들였다는 소식 하나에 부화뇌동해서, 남편의 그림이 훌륭하다는 식으로 평론과 소개글을 쏟아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그런 바보같은 기사만 읽고, 줄줄이 찾아와 그림을 구입한 다른 사람들의 안목은 어떠한가...

 

  이렇게 안목 없는 사람들이 넘쳐난 덕에 이익을 본 사람은, 처음에 그림을 구입했던 화교 상인이다. 

  옛 아내는 죽어가면서 그 화교 상인에게 전 남편의 그림 2폭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화교 상인은 부탁받은 것보다 10배나 많은 20폭을 샀다.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각막을 기증한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에서, 어차피 사주기로 한 거 많이 사주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화교 상인이 이왕 부탁 들어주는 거 인심이나 쓰자는 식으로 행동한 게 원인이 되어, 이제는 너도 나도 다 그 남편의 그림을 원하게 되고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게 된다.  그래서 화교 상인은  20폭의 그림을 원래 사들였던 가격의 3배로 되팔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일이란 정말 요지경이다.

 

  아니, 어쩌면 그 상인이 구입했던 그림을 3배 가격으로 되판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연연해하는 그냥 그런 상인이 아니라, 매사를 넓게 내다볼 수 있는 '안목' 이 있는 큰 상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은혜를 갚는 건 갚는 거고, 자신이 그 일에 들인 돈도 되찾을 생각에, 이런 결과를 예상하며 그림을 20폭이나 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상인이야말로, 그 젊은 새 아내가 말한대로 진정한 안목의 소유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