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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4) - 용진진(龍津鎭)

Lesley 2011. 10. 28. 00:08

 

  용진진(龍津鎭)은 이 날 둘러본 강화도의 다른 유적지(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고려궁지 등...)와는 달리, '얼떨결' 에 들리게 된 곳이다. ^^

  위에 말한 세 곳은 모두 엎어지면 코 닿을만한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이동하는데 시간을 많이 버리지 않고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 고려궁지에서 차로 이동해야 하는 전등사로 가려고 했더니, 이미 오후 5시쯤 되어 매표소가 문을 닫기 전에 가기 곤란할 듯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모두 치렀던 격전지 초지진(草芝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초지진으로 가는 길목에 뭔가 요새 비슷한 것이 보여서 잠시 멈추고 구경하게 되었다.  

 

  진(鎭)이란 군사상 중요한 해안 지역에서 설치한 군사주둔지역을 말한다.

  용진진이 있는 곳은, 원래도 고려가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의 일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효종 때 용진진이란 이름으로 이 곳을 축조되었고, 100명이 넘는 병력을 주둔시켰다.

  하지만 오랜 세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성벽이 다 소실되었고(근처 주민들이 자기네 집 주춧돌 세우는데 빼다가 쓰기까지 했다니, 참... ㅠ.ㅠ), 1999년에야 성루와 좌강돈대만 복원되었다.

 

 

밖에서 바라본 좌강돈대(左岡墩臺)의 모습과 입구.

 

  원래 용진진은 가리산돈대, 좌강돈대, 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했는데, 다 소실된 것을 좌강돈대만 복원했다.

  돈대란 돌 또는 벽돌을 이용해서 망루와 포루(대포를 쏘는 곳)의 역할을 하게 만든 성벽을 말하는데, 보통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만든다고 한다.  이 좌강돈대는 원형으로 되어 있다.

 

 

(위, 가운데) 좌강돈대 내부의 석벽 모습.

(아래) 좌강돈대 석벽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런데 이 곳은 제법 깔끔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큰 감흥을 주지는 못 한다.

  왜냐... 너무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것, 그게 바로 문제였다...!  유적지로서의 역사성이나 사실성 같은 건 어디에다 내던져버리고, 그저 사람들에게 '여기도 좀 와서 보시오, 이렇게 예쁘게 복원해놓았소~' 하는 홍보성만 짙게 남았다는 느낌이다.

  사실 이런 느낌은 중국 유적지에서 종종 받곤 했다.  유적지라기보다는 관광지라는 이름 붙여야 정확할 것만 같은, 그저 보는 사람들에게 '멋지다' 또는 '웅장하다' 는 인상을 줘서 입소문 퍼지게 해 손님들 끌어들이려는 인위적인 것들로만 떡칠을 한 느낌말이다.  그런데 그 느낌을 이제는 한국의 유적지에서도 받게 되다니... ㅠ.ㅠ

 

  좀 초라해보여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옛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서울의 경복궁은 조선시대 여러 궁궐 중 정궁이지만, 내가 제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궁궐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일본이 다 망쳐놓은 경복궁을 다시 복원하는 건 좋다, 이거다.  그런데 이왕 복원하는 거 좀 옛스럽게 복원하면 안 되는 건가?  창덕궁에 가보면, 비록 여러 전각들이 낡기는 했어도 고즈넉한 기분과 세월의 무게가 함께 느껴져서 참 좋다.  그에 비해 경복궁에 가보면,  고궁에 갔다기보다는 무슨 알록달록한 레고 블록으로 쌓아놓은 건축물 가득한 테마파크에 간 것 같은 느낌이다. ㅠ.ㅠ

 

 

좌강돈대 위에서 바라본 성루.

 

  용진진 그 자체는 뭔가 후딱후딱 대충대충 복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용진진의 좌강돈대 위에 올라서서 바라본 풍경은 좋았다.

  왼쪽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포도밭과 논이 보이는데, 저녁 햇살 아래 탁 트인 풍경을 내려다 보니 내 마음도 탁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바다의 풍경은, 원래 서해가 누런색 물이라 무척이나 지저분하게 보이는데, 해안에서 좀 떨어진 좌강돈대 위에서 보니 그런 서해조차 동해 수준으로 파랗고 깨끗하게 보였다. ^^ 

 

 

(위) 성루 위의 풍경.  뒷편으로는 저녁 연기 모락모락 나는 마을이 보이고... ^^

(아래) 현판을 보니, 성루 이름이 참경루(斬鯨樓)라고 함.

 

  그런데 저 참경루(斬鯨樓)라는 이름이 참 독특하고 재미있다.

  참(斬)이란 글자가 눈에 익다 했는데, 하얼빈 어학연수 때 배운 참수(斬首)의 그 '참'이다. ^^;;  왜 저런 살벌한 글자를 건물 이름에 썼나 싶어서 나머지 글자도 찾아봤더니, 경(鯨)은 고래라는 뜻이다.  그러면 '고래를 베다' 라는 뜻이 되는데, 바닷가의 요새니만큼 바다에 사는 큰 생물인 고래도 잡겠다는 군인의 기상을 나타내려고 저렇게 이름 지은 걸까?  아니면 고래는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외적을 의미하고, 그런 외적을 모조리 베어버리겠다는 비장한 뜻으로 지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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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올려다 본 참경루와 좌경돈대.

 

 

  이 곳을 다 둘러본 후 다시 초지진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 이미 관람시간이 지나서 문을 닫았다. ^^;;

  그래서 이 용진진이 이 날 강화도 여행의 마지막 관람지가 되었다. 

  그래도 20년만에 가 본 강화도는, 초등학교 때 단체관람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다음번에는 아예 아침 일찌감치 움직여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