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북한영화 '꽃파는 처녀'

Lesley 2011. 8. 2. 00:42

 

 

1. 영화 '꽃파는 처녀' 의 제작 배경 및 당시의 평가

 

 

  얼마 전에 뜻밖에도 북한 영화 '꽃파는 처녀' 를 구해서 봤다.

  1972년도 작품인 '꽃파는 처녀' 의 원작은 혁명가극(공산주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일종의 뮤지컬)이다.  1930년에 중국 동북지방에 머물던 김일성이 항일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직접 제작하고 공연한 게 시초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 역시 '우리 위대하신 수령님은 못 하시는 게 없어서, 예술작품도 만드셨어요~~' 하는 우상화 작업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  어찌되었거나 공식적으로는 김일성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그 가극을, 1972년 평소 영화 쪽에 관심이 많던 그 아들 김정일의 주도하에 영화로 각색하여 제작했다.

 

 

 

(위) 영화의 오프닝 장면 : 18세의 어린 나이에 이 영화 한 편으로 톱스타가 된 북한 배우 홍영희.

(아래) 1960~1970년대에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두 저런 복스러운 얼굴이 전형적인 미인상이었다고 함.

 

 

  이 영화는 북한 영화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린 작품이다. 

  냉전이 치열했던 시절이라,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고취시키는 작품성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흥행성(적어도 그 당시에는 다들 눈물 펑펑 쏟아가며 보는 영화였다고 함. 하지만 지금은... ^^;;)까지 갖춰서, 여러 공산주의 국가에게 좋은 영화로 인정받고 수출되었다.

  특히나 같은 동양 문화권이어서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 중국에서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그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사회 전체가 뒤죽박죽이었고 변변한 영화관도 없던 시절이었건만, 무려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성공했다.  중국에서 상영될 때 영화관 주변에 눈물을 닦기 위한 손수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쫙 깔렸었다니 말 다 했다. ^^

 

 

※ 중국에서 어느 정도로 유명했는지에 관해서는 다음 참조

 

 

☞ 기숙사 푸우위앤 아줌마의 사생활 침해(?) (http://blog.daum.net/jha7791/15790673)

☞ 발자크와 소재봉(巴爾札克和小裁縫) - 1 (http://blog.daum.net/jha7791/15790777)

 

 

 

 

2. 꽃파는 처녀, 중학생 시절, 그리고 최루탄...

 

  내가 이 '꽃파는 처녀' 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아직 학생운동이 잘 나가던 시절에 고려대학교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덕분에, 그 무서운 고엽제 성분이 상당량 들어있다는 최루탄 가스를 원없이 마시며 성장했다. (내 호흡기가 안 좋은 이유가 혹시 어린 시절 종종 들이마신 최루탄 때문...? ㅠ.ㅠ)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대학가에 이 '꽃파는 처녀' 의 상영 바람이 불었고, 그 때마다 이적물로 찍힌 이 영화의 상영을 막기 위해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며 대학으로 진입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가 높다란 언덕배기에 위치한 탓에, 저 아래 고려대학교에서 펑펑 하는 대포(최루탄 쏘는 대포) 소리와 함께 최루탄 연기가 하늘로 솟는 게 보였다.  영어 수업을 받던 우리는 '와~ 또 데모하나봐~ 우리 오후 수업 안 하고 집에 가겠다~' 하며 좋아했다. (경찰이 최루탄 가스를 너무 심하게 쏘면 선생님도 학생도 줄줄 흐르는 눈물 콧물 때문에 수업을 할 수 없어서, 오후 수업은 취소됨. ^^)  그러자 막 대학 졸업하고 교사 생활 시작해서 뜨거운 피가 솟구치던 젊은 영어 선생님이 '저 언니 오빠들이 뭐를 위해 저렇게 고생하며 시위하는데, 너희들은 철없이 좋아하는 거냐?' 하며 벌컥 화를 내셨고, 우리는 주인에게 걷어채인 멍멍이마냥 깨깽거렸다. ^^;;

 

 

  그렇게 그 시절에는 저 영화 보는 대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마구 잡아넣었는데, 이번에 내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나니 그 당시 정부의 조치가 정말 오버 중에서도 '왕(!)오버' 였음을 알겠다.

  내 생각에는, 당시 정부가 우려했던대로 저 영화 본다고 해서 멀쩡한 사람이 공산주의자로 변할 가능성은 없다.  아니, 오히려 공산주의에 관심 있던 사람이라도, 저 영화를 보고난다면 공산주의 사상 같은건 내던져버릴 듯하다.  왜냐...?  한 마디로 말해서, 너무 지루하다. -.-;;  (내 수준이 낮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음. 지루한 것은 지루한 것임...!)

  제작된지 40년이 다 된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고 보더라도, 사람 잡는 지루함을 갖춘 프랑스 예술영화보다 10배는 더 지루하다. ㅠ.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남한 영화도 지금 보면 지루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한 영화에 비할 수준이 아니다.  60~70년대 남한 영화인 '미워도 다시 한번' 이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를 케이블TV에서 방영해 줄 때 본 적이 있는데, 물론 옛 영화라 지루한 편이지만 그래도 몸을 비비 꼬고 하품하며 볼 정도는 아니었다.  만일 이 '꽃파는 처녀' 가 내 인생 최초로 접하는 북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안 봤을 것이다.

 

 

 

 

3.  줄거리

 

  영화의 줄거리와 주제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딸이 온갖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언젠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결국 냉정한 현실을 깨닫고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끝에서는 계급주의와 혁명사상에 눈을 뜨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은 일제시대의 어느 농촌이고, 주인공의 이름은 꽃분이(홍영희)인데 병든 어머니와 눈 먼 어린 여동생 순희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떴는지 안 나옴.)

  사실 꽃분이네도 전에는 사정이 좀 나았다.  꽃분이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듬직한 오빠가 있었고, 막내 여동생 순희도 앞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가난했어도, 네 식구가 서로 감싸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런데 친일파 지주인 배 주사 부부의 몰인정함과 패악으로 순희가 뜨거운 한약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장님이 된 것이다.  분노한 오빠는 배 주사네 집에 불을 질렀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 갇힌 후 소식이 끊겼다.

 

 

  2시간짜리 영화 중 절반이 꽃분이 식구의 고생담이다.

  배 주사는 빚 갚을 돈이 없으면 꽃분이를 자기네 집 하녀로 보내라며 꽃분이 어머니를 들들 볶고, 꽃분이 어머니는 딸만은 종살이 못 시킨다며 다 죽어가는 몸으로 자기가 그 집 하녀 노릇하며 학대 받는다. (중병 걸린 어머니 역 맡은 배우의 분장은 정말 리얼함.)  꽃분이는 어떻게든 어머니 병을 낫게 하겠다며, 꽃을 팔며 한푼 두푼 약값을 모으는 중이다.  앞을 못 보는 어린 순희는 하루 종일 집에서 외롭게 지내며, 언니와 어머니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꽃분이 자매가 드디어 좋은 약을 사서 행복해하며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배 주사네 마름인지 하인인지 하는 백만이란 나쁜 놈의 행패에 충격을 받고 숨을 거둔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영화의 흐름이 바뀐다.

  꽃분이는 순희를 친한 이웃집에 맡기고, 무작정 오빠가 갇힌 교도소로 간다.  노자도 부족해서 짚신 몇 켤레 가지고 먼 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힘들게 떠난다.  그 과정에서 자기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식민지배와 친일파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을 보게 되고...  그러나 오빠가 이미 죽었다는 교도관의 말을 듣고 절망하여 병에 걸려, 몇 달이 지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 하게 된다.

  한편, 순희는 매일 언덕 위에 올라 언제 올지 모르는 언니를 그리워하며 운다.  때마침 배 주사의 부인이 병이 들었는데, 동남쪽에서 온 악귀가 들린 탓이라는 점괘에 순희를 병의 원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꽃분이-순희 자매가 배 주사네 동남쪽에서 살기 때문이다. (자기네가 순희네에게 보복당할만한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 모양임... -.-;;)  그래서 백만이를 시켜 순희를 치워버리라고 하고, 백만이는 앞도 못 보는 어린 아이를 꾀어내어 한겨울 산 속에 버린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부...

  뒤늦게 돌아온 꽃분이는 평소 아무 말 없이 당하기만 하던 모습과는 달리, 배 주사네 집을 찾아가 순희를 어떻게 했느냐고 따진다.  공산주의식으로 말하면, 억압만 봤던 무산계급이 기생충 같은 지주계급에 드디어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옛날 배 주사 부인이 어린 순희에게 그러했듯이 뜨거운 약탕기 안의 한약을 배 주사 부인 얼굴에 끼얹고, 배 주사에게도 무거운 화로인지 그릇인지를 내던진다. (뽀빠이의 시금치 통조림이라도 먹었는지 갑자기 괴력을 발산하는 우리의 꽃분이...! @.@)  하지만 못된 백만이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기절한 채 창고에 갇힌다.

  이러한 꽃분이의 저항은, 역시 배 주사에게 온갖 수탈과 괴롭힘을 당하며 살던 동네 사람들 마음에도 저항의 불을 지른다.  모두 꽃분이를 구하고 배 주사를 죽이자며 들고 일어나, 배 주사네 집을 습격한다. (흐음~~ 드디어 민중혁명이 일어난건가? ^^;;)

  그렇게 살아난 꽃분이 앞에, 뜻밖에도 죽었다던 오빠가 나타난다.  알고보니 탈옥하여 조선혁명군에 몸담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돌아온 것이다.  더구나 오빠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버려진 순희까지 찾게 되어, 삼남매는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빠는 학생들을 상대로 주먹 불끈 쥐며 공산주의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일을 하고, 꽃분이는 여전히 꽃을 파는 일을 하는데 꽃다발 속에 볼쉐비키니 뭐니 하는 공산주의 유인물을 숨겨 나눠주는 일을 한다. 

  마지막에는 새로운 희망으로 빛나는 꽃분이 얼굴이 화면에 가득 비춰졌다가, 꽃분이가 안고가는 예쁜 꽃들이 클로즈업 되며 '혁명의 꽃의 씨앗을 심고~~' 였던가, 대충 그런 내용의 노래가 울려퍼지며 끝난다.

 

 

 

 

4.  감상

 

  이미 위에서도 썼지만, 이 영화 정말 심각하게 지루하다. ㅠ.ㅠ

  영화의 전반부는 온통 슬픈 장면 밖에 없다.  중병 걸린 어머니가 자기가 죽은 후 두 딸의 앞날이 어찌될지 눈물로 걱정한다든지, 꽃분이가 어머니와 동생의 일로 마음 아파한다든지, 앞도 못 보는 순희가 언니 대신 꽃을 팔겠다며 기꺼이 거지 취급을 받는다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눈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온다. -.-;; 

  우리 남한쪽의 60~70년대 영화도 그러하듯이, 이 영화도 배우들의 발성이나 몸짓이 지금 영화에 비해 너무 어색하고 과장됐다.  특히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은 홍영희는 어쩌면 그렇게 표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던지...  우는 장면에서도 눈이나 코끝이 빨갛게 변하거나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하는 변화가 전혀 없다.  그냥 한 곳을 응시하는 처연한 눈빛에, 안약의 효과가 틀림없는 어색한 눈물이 전부다. (오히려 조연급인 꽃분이 어머니의 연기가 훨씬 낫더라~~)

  물론 시대의 변화 탓도 클 것이다.  저 영화를 처음 상영했던 그 시절, 북한과 중국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하니, 분명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필할만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극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여서 그런지, 배경음악이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 

  영화 시작하면서부터 북한 특유의 엄청나게 높고 찢어지는 여자 목소리로 부르는 '꽃 사시오~ 꽃 사시오~' 로 시작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 귀에는 심하게 녹슬어버린 창문을 억지로 열어젖힐 때 나는 소름끼치는 '삑~~' 하는 소리로 들렸음. ㅠ.ㅠ)  비록 귀에 거슬리는 음악이긴 하지만, 한두 번만 나왔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보컬로, 연주곡으로 번갈아가며 나온다. ㅠ.ㅠ  그 노래 말고도 영화 말미에 나오던 '혁명의 꽃의 씨앗을 심고~~' 하는 노래도 수시로 나오는데, 노랫말의 선동성 같은 건 둘째치더라도, 높게 찢어지는 그 선율이 정말 듣기 거북했다. 

  한편으로는 왜 이 영화 주제곡들이 중국에서는 환영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중국 전통 가극인 경극에서도 북한 못지않게 목소리를 높여서 찢어지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데, 그래서 이 영화의 삽입곡들이 중국인들에게는 어필했나 보다. -.-;;

 

 

  게다가 무성영화도 아니건만, 뜬금없이 변사가 등장한다...!

  변사의 목소리가 처음 나오는 건, 꽃분이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꽃분이와 순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돌에서도 꽃이 핀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꽃분이의 그 지극한 정성이 설마 부족했더란 말이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듯하다.  분명히 애절한 장면이고, 변사가 말한 내용도 사람의 심금을 울릴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두 자매가 처연하게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갑자기 웬 아저씨의 굵직한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깔리니,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리는 기막힌 상황 발생... ㅠ.ㅠ

 

 

  또, 사회주의 정신을 고취시키겠다는 목적하에 만든 영화다 보니, 사족(蛇足)을 붙인게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끝부분에서 나오는 꽃분이 오빠의 행동이다.  이미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친일파 지주 가족과 일본 경찰까지 처단했겠다,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주제는 충분히 나타난 셈이다.

  그런데 꽃분이 오라버니는 몇 년 만에 만난 누이동생들을 끌어안고 눈물 펑펑 쏟다가, 뜬금없이 일장연설을 한다.  '네가 왜 이렇게 피눈물 흘리며 살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너는 잘 모를거다.' 하고 꽃분이에게 말하더니, 그 다음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원쑤(원수가 아니라 원쑤라 하는 걸 보니 역시 북한영화가 맞음 ^^) 왜놈들과 자본가 놈들이 없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조선혁명군을 도와야 합니다!' 라고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똑같은 표정과 눈빛으로만 나오던 꽃분이건만, 오빠의 말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갖었는지 사람이 달라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장이라도 총들고 일어나서 엄청난 여성 혁명투사가 될 것만 같은 매서운 표정...! @.@)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그 시절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리가 없건만, 자본가니 혁명이니 하는 평소에 듣도보도 못 하던 말을 단박에 이해하며 꽃분이 오빠의 연설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천재란 말인가... -.-;; )

  그리고 맨 마지막에서 꽃분이가 꽃다발 속에 공산주의 유인물을 숨겨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거리를 걷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황홀한 표정을 짓는지 얼굴에서 빛이 다 날 지경이다.  솔직히 내 눈에는, 한 번 뵙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던 교주님을 드디어 영접하게 된 신흥종교 교인의 표정 같은... -.-;;

 

 

  한 가지 의외였던 점은 배우들이 쓰는 말이 현재 남쪽에서 쓰는 말과 거의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이건 내 추측일 뿐인데, 평양쪽말을 토대로 하는 북한의 표준어(북한에서는 '문화어' 라고 함.)가 정비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제작한 영화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배우들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우리가 쓰는 단어와 거의 같긴 하지만, 억양이 달라서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보니 분명히 우리말로 만든 영화이건만, 영화 보는 중간 중간 영어로 된 자막을 읽어야 했다. -.-;;  

 

 

 

 

5.  꽃파는 처녀로 떠오른 별, 홍영희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을 맡았던 홍영희의 2009년도 모습.

(출처 : http://media.daum.net/politics/north/view.html?cateid=1019&newsid=20091004200704488&p=yonhap)

 

 

  위 사진은 이전에 변변한 연기경력이 없었는데도 파격적으로 '꽃파는 처녀' 의 주인공을 맡아 스타가 된 홍영희의 최근 모습이다.

  2009년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 공항의 환영식에서 원자바오 총리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영화의 주인공이니, 중국 고위급 인사를 환영하는 자리에 내세우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50대가 된 지금의 모습을 보면  '꽃파는 처녀' 를 찍던 10대 시절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그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통통하고 후덕해 보이는 얼굴 윤곽만 같을 뿐이다. ^^

 

 

  홍영희의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홍영희의 얼굴이 북한 지폐에 찍혀나오기까지 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지폐 속에 얼굴이 찍혀나오는 인물은, 그 나라 역사상 굉장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거나 국가 수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유명해도 연예인의 얼굴을 지폐에 넣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홍영희는 1976년부터 몇 년 전 북한이 화폐개혁을 해서 지폐를 바꾸기 전까지, 약 30년 동안이나 북한의 1원짜리 지폐에 얼굴이 실렸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연예인 얼굴이 한 국가의 지폐에 들어간 것은 홍영희가 최초라고 했다.  홍영희의 얼굴이 북한 지폐에서 사라진 것이 중국 관영언론에 '아쉽다' 는 논조로 보도되기까지 했다니, 꽃파는 처녀가 지금까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중 가장 국제적인 인지도나 호응도가 높은 영화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