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 1

Lesley 2011. 4. 15. 14:28

 

 

  지난 3월 31일 얼떨결에, 제목도 생소한 인도영화 한 편을, 아무런 기대도 품지 않은 채 봤다.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인도영화인데, 무슨 인터넷 모임 벙개 뛰듯이 후다닥 보게 된 이영화는 뜻밖에도 많은 생각할거리와 큰 감동을 줬다.

  이 영화는 카란 조하르(Karan Johar) 감독의 작품이며 인도의 국민배우라는 샤룩 칸(Shahrukh Khan)이 주연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작년 초에 개봉되었던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인도영화라는 점 때문에 흥행성이 불확실해서 올해 3월에야 개봉하게 되었다.  그나마 개봉 첫날에는 달랑 13개의 영화관에서 상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개봉 둘째 주에는 상영관이 100개로 늘었다. 그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짝퉁 포레스트 검프?

 

  포스트 첫머리에도 썼다시피,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서 영화를 봤다.

  '보나마나 신파조 스토리를 나름 세련되게 포장한 영화로군.'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게 된 데에는 영화 광고가 한 몫했다.  '인도판 포레스트 검프 어쩌구...' 하고 소개해놓은 글을 본 순간, 그렇잖아도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 하나도 없이 가서 50밖에 안 되었던 기대감 지수가 아예 0으로 내려앉았다.  만일 그런 영화 광고를 미리 알았다든지, 내가 영화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다른 영화를 골랐을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분명 재미있게 봤고, 영화의 OST는 지금도 곧잘 들을 정도로 좋았지만, 음... 뭐랄까...  묘하게 신경을 건드린다.

  차라리 큰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주인공이 겪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비정치적인 사건으로 채웠다면 나았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미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사건들이 장애인인 주인공의 인생에서는 그저 '우연히 일어났고 한바탕 웃고 넘어갈 그렇고 그런 사건' 으로 지나가는 게 상당히 거북하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영화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흐음, 이제 짝퉁 포레스트 검프 시작하는군~' 하고 있던 나를 번쩍 정신 들게 했다.

  '내 이름은 칸' 은 '포레스트 검프' 보다 10배는 나은 영화였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장애인이고, 험난한 세상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가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우스갯거리로 삼고 넘겨버린데 반해, 이 영화는 결말에서 따뜻한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여러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가장 크게 다루고 있는 것은 종교적 차별 문제, 특히 미국에서 9.11 사건 이후 벌어지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차별 문제다.  하지만 그 외에도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갈라진 인도계 사람들의 갈등,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 형제간의 갈등 등도 다루고 있다.

 

  이런 무거운 소재들을 줄줄이 다룬다고 해서, 영화가 심각하고 어둡기만 하느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디지털 영화여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 본격적인 갈등이 벌어지기 전, 즉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영상의 색감이 너무 선명하고 예뻤다.  화려한 고대 문명과 다양한 신화로 가득찬 인도의 색깔을, 영화 배경인 샌프란시스코라는 대도시에서 잘 살려냈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남녀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가 전개되는 동안, 배경으로 깔리는 쾌활하면서도 웅장한 인도 음악하며...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정말 즐거웠다. ^^

 

 

 내 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영화의 주제가 뭔지 함축적이면서 강렬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리즈완 칸'(공교롭게도 영화상 주인공의 성과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성이 같음. ^^)은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갔다가, 보안요원들에게 끌려간다.

  리즈완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이라는 일종의 자폐증을 앓고 있어서 남들과 다른 언행을 보이는데, 그 때문에 위험인물로 오해받은 것이다.  더구나 '칸'이라는 성이 이슬람권에서는 우리나라의 김씨나 이씨만큼 흔한 성이라 하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지금은 리비아까지, 이슬람권 국가들과 줄줄이 치고받은 미국에서는 스파이나 테러리스트로 의심받기 딱이다.

  공항 보안요원들은 리즈완의 이상한 행동이 그저 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나서는 안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리즈완의 장애를 은근히 희롱한다.  리즈완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무언가 말하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고 하자, 낄낄거리며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거냐?' 고 묻는다.

 

  하지만 리즈완의 입에서 "내 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라는 말이 나오자 확 변해버리는 보안요원들의 표정... 

  전체 이슬람 교도를 상징하는 '칸' 이라는 이름과 9.11 테러 사건 이후로 미국 사회가 알러지 수준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테러리스트'라는 말...  이 두 단어가 들어간 "내 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라는 라즈완의 말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주제, 즉 '인간의 가치를 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는 리즈완의 엄마의 입을 통해 나온다.

 

  리즈완은 엄마와 남동생 '자키르' 와 인도의 빈민촌에서 성장한다.

  엄마는 자수 놓는 일을 하며 혼자서 두 아들을 키운다.  그렇잖아도 어려운 상황인데, 큰아들은 정상이 아니어서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무시당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의 상황을 한탄하기보다는 끔찍히도 애정을 쏟고 격려해주며, 얄궂게도 장애 덕분에 생긴 큰아들의 재능(엄청난 암기력, 훌륭한 손재주)를 키워주려 애를 쓴다.

 

  리즈완의 엄마는 아마도 리즈완처럼 빈민촌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빈민촌에서만 살았을 것이다.

  당연히 가난할 뿐 아니라 교육의 혜택도 못 받았다. (엄마는 아들의 장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처럼 보임.)  하지만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무슨 박사니 교수니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지혜롭다.

  어느 날 리즈완이 같은 동네의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도에 대해 악담을 퍼붓는 걸 우연히 듣고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반복해서 말한다.  깜짝 놀란 엄마는 아들을 붙들어 앉히고 말한다.  "이슬람교도든 힌두교도든 상관없다.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은, 리즈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리즈완에게 지극정성을 쏟는 동안, 어린 동생 자키르는 형만큼 관심을 받지 못해서 심한 소외감을 느끼며 자라게 된다.

  리즈완은 자키르에 대해 "동생은 머리가 아주 좋아서,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미시간 대학으로 공부하러 갔다." 라고 회상한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유학을 가게 되었으니, 분명 자키리는 머리가 좋은 아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보고싶을거다." 라며 섭섭해하는 엄마에게 "형을 돌보다가 시간이 나면 그러시겠죠." 라는 냉소적인 말을 내뱉고 떠나는 자키르의 모습을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키르는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에게 상처밖에 준 게 없는 엄마와 형을 떠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해 공부를 해서 머나먼 타국으로 떠날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리즈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원래는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자리잡은 자키르의 초청을 받아, 엄마와 함께 이민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민 전에 갑작스레 세상을 뜬다.  그래서 리즈완은 "리즈완,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엄마가 생전에 남긴 말을 기억한 채, 혼자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자키르야 의무감에서 어쩔 수 없이 형을 떠맡았겠지만, 자키르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은 리즈완의 인생에 여러가지로 좋은 기회가 된다.

 

  일단 자키르의 아내, 즉 리즈완에게는 제수가 되는 이를 만나게 된 것이 행운의 시작이다.

  따뜻한 심성을 지닌 자키르의 아내는 공교롭게도 심리학자였다.  그래서 그 때까지 리즈완 주위의 누구도 생각 못 했던 '리즈완은 왜 저런거지?' 하는 의문을 갖고 리즈완을 바라본다.  엄마는 리즈완을 너무 사랑했지만, 리즈완에게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가진 것도 너무 없고 아는 것도 너무 없었다...! ㅠ.ㅠ  자키르야 엄마보다 훨씬 똑똑했지만, 형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가 커서 형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자키르의 아내는 리즈완이 하는 행동의 몇 가지 특징을 잡아내어 일종의 자폐증임을 알고, 리즈완을 전문가에게 데려간다.  그래서 리즈완의 증세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이라는 게 밝혀진다.

 

  언제나 형을 적대시 하던 자키르도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아내가 "당신 형의 상태가 많이 심각하지는 않다.  당신 어머니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내셨던 것 같다." 라고 하자, 자키리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친다.  엄마가 홀몸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처음으로 이해를 하게 된 듯 하다. 

  물론 하루 아침에 마음을 확 열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형의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방법으로 형의 장래를 돕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행운, 아름답고 열린 마음을 가진 '만디라' 를 만나게 된다...!

  노란색과 큰 소리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 리즈완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인도 출신인 만디라는 이 리즈완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격려해준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만디라가 미용실 직원이었기에, 미용실을 돌며 화장품을 팔던 리즈완은 계속 만디라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심장이 마구 뛰는 경험을 하며 만디라 주위를 맴돌던 리즈완은 결국 청혼까지 한다.  하지만 리즈완에 대해서 그저 인간적인 호감만 갖고 있던 만디라는 거절을 한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를 모른 채 자란 자신의 아들 샘이 리즈완과 친해지고, 무엇보다 리즈완이 자신을 위해 멋진 샌프란시스코의 해돋이를 보여주는 데에 엄청난 감동을 느끼며, 청혼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만디라가 일하는 미용실 동료들과 만디라의 친구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

  행복한 결혼식이긴 하지만, 리즈완의 유일한 혈육인 자키르가 이슬람교도인 형이 힌두교도인 만디라와 결혼한다는데 반대를 하는 통에, 온통 신부쪽 하객들만 있는 특이한 결혼식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중간에 자키르의 아내가 참석해서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너무나도 완벽해보이는 삶 속에서, 리즈완은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는 어머니의 유언이 이루어졌음을 느낀다.

  남과 다른 리즈완이지만 아내 만디라와 의붓아들 샘에게 자기 방식대로 애정을 쏟고, 만디라와 샘도 그런 리즈완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인도에서는 허구헌날 벌어지는 이슬람교와 힌두교간의 갈등도 이 가족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리즈완이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기도를 할 때, 만디라와 샘은 그들대로 힌두교의 의식을 하며, 각자의 종교를 존중한다.  

  만디라가 결혼하면서 개업한 미용실도 잘 되어가고, 이 가족은 만디라의 고객이었다가 친구가 된 사라의 가족과 한 가족처럼 친해지고, 만디라의 아들 샘과 사라의 아들 리스는 단짝 친구가 되고... 

 

  지나칠만큼 완벽해서 오히려 불안한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결국...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 2(http://blog.daum.net/jha7791/15790806)

 

'영화, 드라마,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첨밀밀(甛蜜蜜)  (0) 2011.06.28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 2  (0) 2011.04.17
봄의 눈(春の雪, Spring Snow)  (0) 2011.03.25
만추(晚秋, Late Autumn) - 2  (0) 2011.03.06
만추(晚秋, Late Autumn) - 1  (0) 201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