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봄의 눈(春の雪, Spring Snow)

Lesley 2011. 3. 25. 00:42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에 봤던 일본영화 '봄의 눈(春の雪)' 을 최근 다시 봤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은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聡, 마츠가에 키요아키 역)와 타케우치 유코(竹内結子, 아야쿠라 사토코 역)다.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이 영화가 자위대 앞에서 할복자살한 걸로 유명한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의 마지막 작품  '풍요의 바다' 중 제1권 '봄의 눈' 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사마 유키오 출생 80주년 겸 사망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5년에 공개된 작품이다.

 

☞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트 참조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 (http://blog.daum.net/jha7791/10511680)

 

 

 

 

  이 영화를 처음 본 감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장점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등의 영화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유키사다 이사오' 이며, 촬영 담당이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타락천사' 를 촬영한 '크리스토퍼 도일' 이다.  감독이나 촬영 담당이나 그 동안 멋진 영상의 영화만 찍어서 그런가, 영상미가 정말 빼어났다.  일본의 가을 단풍 풍경과 겨울 설경을 너무 아름답게 화면으로 옮겼다.

  거기에 서양문물과 일본의 전통문화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뒤섞여있던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일본귀족들의 화려한 옷차림이라든지 서양풍의 사치스러운 생활 등 볼거리 또한 많다.

  게다가 주연, 조연할 것 없이 연기력도 다들 괜찮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한 마디로 '이게 도대체 뭐야?' 였다.  우리나라 일일드라마와는 좀 다른 의미로 막장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주인공 키요아키는 영화 중반까지 계속해서 여주인공 사토코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작정하고 괴롭히기까지 하더니, 뜬금없이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엄격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토코는, 아무리 상대가 어린 시절부터 쭉 사모해온 남자라고 해도 그렇지, 자기뿐 아니라 부모와 가문의 명운 전부를 걸고 '사랑 밖에 난 몰라' 식으로 행동한다.  

  간단히 말해서, 주인공들의 행동이 도무지 개연성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봤을 때의 감상은 많이 달랐다.

 

  인간의 감정, 생각, 관점이라는 것이 결국 시간이 흐르면 변하게 되어 있나 보다.

  몇 년 전에는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봤었다.  하지만 이번에 볼 때는 '인간의 욕망과 순수함'  또는 '인간의 순수한 욕망' 에 방점을 찍으며 영화를 봤다.  그러자 먼저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흔히 욕망이라는 것은 위험한 것 또는 더러운 것으로 취급받으며, 순수함과 반대되는 쪽에 속하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서로 섞일 수 없는 걸로 생각되는 욕망과 순수함이 함께 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래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인생이 권태롭기만 한 '키요아키'(오른쪽)

그런 키요아키를 언제나 걱정스레 바라보는 친구 '혼다'(왼쪽)

 

  키요아키는 귀족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뭐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란, 그저 사는 게 귀찮고 세상사를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18세의 소년이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아는 친구 혼다에게 뭘 모른다는 식으로 빈정거리지만, 사실 뭘 모르는 건 키요아키 자신이다.  키요아키는 아직 정신적으로 어려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쭉 알아온 다른 귀족 집안의 딸인 사토코에게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욕망이란 인간을 잡아먹는 마물이다' 라는 혼다의 말에, 키요아키는 아무렇지 않게 '그럼 차라리 전부 잡아먹혔으면 좋겠다' 라고 맞받아친다.  욕망에 전부 잡아먹혔으면 좋겠다는 이 말은, 키요아키의 꿈 속에 번갈아 나오는 사토코와 키요아키 자신의 시체와 함께 잔혹한 운명에 대한 복선이 된다. 

 

  키요아키와 어린 시절 함께 자랐고 그 때부터 쭉 그를 좋아한 사토코는, 키요아키와는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사토코는 보수적인 시대 분위기와 귀족 집안의 엄격한 풍습까지 무시하며, 키요아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사랑한다고 말로 고백한 건 아니지만 눈빛과 태도를 통해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냄.)  게다가 이 성숙하고 감수성 예민한 귀족 아가씨는 키요아키의 감정을 키요아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키요아키는 코흘리개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무줄이나 끊어놓고 머리카락이나 잡아당기는 것처럼, 밉살맞은 말과 건방진 태도로 사토코를 대한다. (심지어는 사토코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자신이 하녀와 성관계를 갖었고 유곽을 드나든다는 거짓말을 쓴 편지를 보내기까지 함... ! -.-;;)

  하지만 사토코는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런 코흘리개 꼬맹이의 심리를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키요아키를 대한다. (영화에서 사토코가 키요아키보다 두 살 연상으로 설정되어 있던데, 그래서 더 성숙한가? ^^;;)  그래서 키요아키가 더 약올라하고 공연히 초조해하며, 사토코에게 심술을 부리는 듯 하다.

 

 

키요아키의 유치함이 극에 달했던 극장에서의 만남...!

(키요아키는 사토코를 잘 속여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사토코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음.)

 

  사토코에게 심술맞게 굴던 키요아키가 갑자기 우연을 가장하여 다정한 태도로 접근한다.

  이제라도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사토코에게 잘 해주기로 마음 먹은거라면 오죽 좋겠느냐만은, 이것도 치기어린 행동일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유학온 두 태국 왕족 앞에서 자신을 어린애 취급한 것이 너무 분한 나머지, '이제 나도 어른이다. 이미 연인이라 할만한 여자도 있다.' 라고 태국 왕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허세와 객기일 뿐이다. -.-;;  

 

  그리고 이 도련님의 철없는 태도는 두 사람의 운명을 점점 꼬이게 만든다.

  사토코가 자신의 유치한 연극을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태연히 행동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데 우연히 사토코를 보게 된 어떤 일본 왕족이 사토코를 며느리감으로 점찍고 혼담을 진행시키자, 키요아키의 자존심은 아예 통째로 박살나 버린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혼담을 피하기 위해 키요아키와 연락하려는 사토코의 애절한 마음을 외면해버린다.

  하지만 막상 사토코와 왕족 아들의 약혼이 정식으로 발표되자, 그제서야 공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사토코의 유모에게 사토코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사토코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며 기어이 사토코를 불러낸다. (사실 그 편지는 읽지도 않고 불태워버렸음.)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욕망이 한 번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앞뒤 전혀 가리지 않는 키요아키의 욕망이 이 어린 연인들의 운명을 점점 막다른 곳으로 몰아간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미래가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사랑은 처음부터 질 것을 뻔히 알면서 시작한 전투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 사람은 집안의 경제적 사정이 어떻든 간에 갖고 싶은 장난감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기에(바꿔말하면 철이 덜 들어서...^^;;), 다른 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순.수.하.게. 키워온 사랑이 이제야 열매를 맺게 되었기에, 두 사람 모두 파국을 맞게 될 줄 알면서도 서로에게 정신없이 몰두한다. 

 

  결국 결혼을 앞둔 사토코가 임신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부모들은 뒤늦게야 자식들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음을 알고는, 두 가문이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토코를 낙태시키기로 결정한다.  키요아키만 사토코의 임신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사토코는 비밀리에 낙태수술을 받기 위해 떠난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사토코와 왜 사토코가 자신을 떠나는지 알지 못 해 안타까워하는 키요아키.

 

  낙태를 끝낸 사토코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키요아키를 마음에 담은 채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미 왕족과의 혼약이 공포된 마당에 키요아키와 함께 할 수도 없고...  키요아키와는 내세에 맺어지기를 소망하며 현생에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 맹세하고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해버린 것이다...!

 

  사토코의 임신 및 출가 사실을 뒤늦게 안 키요아키는 병든 몸을 이끌고 사토코를 만나겠다며 떠난다.

  만나주지 않는 사토코를 무작정 기다리며 절 앞에서 밤을 세우다가 병이 위중해진다.  연락을 받고 급하게 도쿄에서 온 친구 혼다는, 다 죽어가면서도 사토코를 만나러 다시 가겠다는 키요아키를 보고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한다.  그리고 키요아키 대신 주지승을 만나 키요아키와 사토코를 만나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키요아키를 만나주지 않는 건 사토코 본인의 뜻이라는 말에 포기하고, 이제는 피까지 토하는 키요아키를 데리고 도쿄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도쿄로 가는 기차 안에서 키요아키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사토코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면서, 다음 세상에서는 사토코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제멋대로인 키요아키 때문에 짜증이 날 정도였는데, 몇 번 되풀이 보면서 느낌이 달라졌다.

  관객이 감상의 초점을 '사랑 이야기' 가 아닌 '순수한 욕망' 에 초점을 맞춘다면 나름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키요아키의 사랑은 유치하지만 순수했기에, 그렇게 멋대로이며 잔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흔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순수한 사랑을 하기도 힘들고, 순수한 인간관계를 갖기도 힘들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에, 어린 시절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얄궂은 것은, 나이가 들며 점점 커지는 그런 순수하지 못한 면이 성숙함의 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는 순수한 욕망을 품는다.

  자신의 여건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든 간에, 상대방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본래의 순수함(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사회 규범에 맞춰 행동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좋게 말하면 성숙해지는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솔직함과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키요아키는 제멋대로지만 순수했고. 유치하지만 솔직했기 때문에, 뒤늦게 깨달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 하고 그 욕망이 이끄는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영화 도입부에서 친구 혼다에게 했던 말처럼, 마침내 욕망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만일 키요아키의 상대인 사토코라도 현실적인 인물이었다면, 그런 파국을 피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요아키에 비하면 훨씬 성숙하고 사려깊은 사토코조차, 사랑이라는 욕망에 순수하게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키요아키와 다를 바가 없다.

  

  영화 제목인 '봄의 눈' 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눈은 원래 겨울에 내리는 것이니, 봄에 내리는 눈은 가장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린 두 주인공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봄에 내리는 눈은 아무리 많이 내려도, 결국에는 겨울에 내리는 눈보다 빨리 녹을 수 밖에 없다.  즉, 결실을 맺지 못 하고 허무하게 끝날 두 사람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작년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와 그 시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호우시절' 을 알게 된 후, 봄에 내리는 비에 대해 그 전에는 못 느꼈던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 '호우시절'과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http://blog.daum.net/jha7791/15790609) )  하지만 이제는 봄에 내리는 비 뿐 아니라, 봄에 내리는 눈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봄에 내리는 비가 겨우내 잠들었던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희망찬 느낌인데 비해, 봄에 내리는 눈은 비극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면서도 시작하는 사랑 같은 처절한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