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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晚秋, Late Autumn) - 1

Lesley 2011. 3. 4. 00:48

 

 

  지난 2월 21일 영화 '만추(晚秋, Late Autumn)' 를 봤다.

  만추는 김태용 감독의 작품으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 의 성공으로 요즘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빈과 영화 '색계' 로 단번에 세계적인 배우가 된 탕웨이(湯唯)가 주연을 맡았다.

  ☞ 영화 색계에 대해서는 '색계(色戒) (http://blog.daum.net/jha7791/14869876)' 참고

 

 

 

 

 

 

  이 영화는 내가 최근에 본 영화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볼 때 '이야기' 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진행되는, 기승전결이 명확한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시간의 흐름은 말 그대로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영화가 진행되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차츰 서스펜스가 고조된다든지, 또는 끝에서 어떤 확실한 결말(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간에...)을 맺지 않는다.  그래서 명확한 한 편의 이야기를 볼 생각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라면 '너무 지루하다' 또는 '이 영화 도대체 뭐니?' 라는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된 내용은 '여주인공의 심리 변화' 와 '그런 여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가 되는 남주인공의 시선과 행동' 이다.  우울한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에서, 아픈 기억과 회한으로 착 가라앉아 굳어버린 여주인공의 심리가 미묘하게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후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혼자서 터덜터덜 길을 걷던 중국계 미국인인 '애나(탕웨이)' 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애나는 그 일로 7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어머니의 죽음으로 3일간 특별외출허가를 받는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 시애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대뜸 버스표값 좀 빌려달라는 한국인 '훈(현빈)'을 만나게 된다.  돈 많은 중년부인들 상대하며 돈을 버는(한마디로 호스트...!) 훈은 그 동안 한국인만 상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고객의 범위를 다국적으로 늘일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신이 상대한 여자의 남편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애나에게 치근덕거린다. 

  하지만 애나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건 고사하고, 화를 내거나 불쾌해하는 빛도 없다.  그저 텅빈 눈빛과 표정 없는 얼굴로 돈은 안 갚아도 된다며 '나 좀 귀찮게 하지 말아라' 식의 반응만 보인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훈은 조금도 무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넉살좋게 자신이 애나한테서 빌린 버스표값을 갚을 때까지 담보물처럼 갖고 있으라며, 다음 만남을 위한 핑계거리로 손목시계를 일.방.적.으로 맡긴다.

 

 

 

  가족과의 어색한 해후, 그리고 남이 되어버린 첫사랑

 

 

  애나는 시애틀의 집으로 가서 7년 동안 못 만난 식구들을 만난다.

  오빠와 언니는 무척 반가워하면서도, 살인죄를 저지르고 교도소 생활을 하는 동생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 한다.  두 사람 모두 어색함을 떨쳐버리려는 듯 일부러 호들갑을 떨더니, 뭔가 처리할 일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애나는 그런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집 안에 있기가 불편한지 마당으로 나왔다가, 이웃에 사는 첫사랑 '왕징' 과 마주치게 된다.

  남편 살해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던 왕징은 결혼한지 얼마 안 된 듯한 부인과 함께 있다.  왕징의 부인이 먼저 집으로 들어가, 애나와 왕징 둘이서 짤막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내내 무표정하거나 어색한 표정만 간간이 떠오르던 애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감정이 실린다.  비록 희미하게 드러나는 표정이지만, 그 옅은 표정 속에는 설레임, 놀라움, 슬픔, 질투, 분노, 허무 등 여러 감정들이 뒤얽혀 있다.

  차라리 왕징이 애나를 만나 곤란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거나 죄책감을 내비쳤다면, 애나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나쁜 놈아!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된건데, 네가 어떻게 다른 여자랑 결혼을 해...!' 식으로... ^^;;)  하지만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우리는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한 오빠와 동생일 뿐이잖아.' 라는 뜻을 온몸으로 보이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왕징 앞에서, 애나는 입도 제대로 떼지 못 한다.

 

 

 

  이상한 남자 훈의 기묘한 제의

 

 

  애나는 혼자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훈과 다시 마주친다. 

  여전히 느끼한 작업멘트 날리는 훈에게, 애나는 '나를 원해요?' 라고 도전하 듯 묻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싸구려 모텔로 들어간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잘 알지도 못 하는 남자와 충동적으로 하룻밤 보내게 되는 여자들이 등장하곤 한다.  보통 그런 여자들은 무척 관능적이며 자극적인 태도로 나온다.  하지만 모텔 안에서 애나의 태도는 관능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관능적이고 자극적이기는커녕, 훈의 넥타이와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애나의 손길은 기계적으로 보이고, 표정도 무미건조 할 뿐이다.  마치 다른 남자와 함께 하는 걸로 왕징과 정말로 끝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려는 것처럼, 혹은 자신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떠난 것처럼 보이는 왕징에게 '너만 나를 잊은 줄 아니? 나도 벌써 너를 다 잊었어!' 하고 외치는 것처럼...

  그러나 얼굴과 몸매만 번지르르한 슈퍼 둔탱이 훈은 애나가 자신의 옷을 벗겨낼 때 '드디어 이 여자도 넘어왔군!' 하는 듯한, 반은 만족스럽고 반은 건방진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미모와 지성은 반비례 한다는 속설이 여자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해당되나 보다.

 

  그런데 애나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훈을 확 밀쳐버린다.   

  훈은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그러더니 '미안하다' 고 사과하는 애나에게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괜찮다, 오히려 나야말로 미안하다.  당신은 내가 만족시키지 못 한 첫 번째 고객이다.' 라는 직업정신(!) 철철 넘쳐흐르는 말을 한다. (이 때 애나가 조금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은, 훈이 화를 내지 않고 너무 신사적으로 물러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훈의 정체를 알았기 때문일까... ^^)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훈은 애나에게 그 날 하루 같이 시애틀을 구경하자고 제의한다.  수고비(?)를 얼만큼이나 내야 하는가는, 애나가 훈의 서비스에 얼마만큼이나 만족하는가에 따라 알아서 하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묘한 남자 훈이 제의한 묘한 일일 투어가 시작된다.

 

 

 

 

 

 

  이번 감상기는 어떻게든 한 포스트에 전부 담으려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또 주저리 주저리 쓰느라 2부를 기약하게 되는... ㅠ.ㅠ

 

 

만추(晚秋, Late Autumn) - 2(http://blog.daum.net/jha7791/1579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