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점 등

화가 이쾌대 - 군상 Ⅳ, 봄처녀

Lesley 2011. 7. 6. 00:22

 

 

  지난 달이었나, 그 지난 달이었나, 하여튼 인터넷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찾던 중, 전부터 관심이 있던 화가 이쾌대(李快大, 1913~1965)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이왕 한 번에 책을 잔뜩 사게 된 거, 그 책도 덤으로 얹어 주문했다.  보통 어떤 화가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일반인은 도통 알 수 없는 온갖 '~주의, ~유파, ~기법' 등의 말로 가득차 있어서, 읽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 책은 작은 판형에 2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인데다가, 그나마 많은 페이지가 이쾌대의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짤막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어서, 두 시간 정도 투자하면 뚝딱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다. (참으로 착한 책이라 하지 아니 할 수 없음~~ ^^)

 

 

  그런데 이 책을 구입할 때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제법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라(1996년도 출판) 창고에서 이 책 저 책에 잔뜩 눌리고 치였는지, 책 표지 가장자리가 구겨져있고 표면에는 스크래치가 잔뜩 나있고, 속지 일부도 서로 붙어 있었다. (다행히 조심스럽게 떼어내니 분리가 되긴 했음.)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 항의메일을 썼더니, 사과의 뜻이라며 포인트를 줬다. (책을 자기들에게 보내면 살펴본 후에 조치를 취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책 상태 확인 없이 곧장 사과해서 약간 의외였음. ^^) 

 

 

이쾌대의 '군상 Ⅳ' 을 표지로 쓴 '이쾌대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민족화가-'

 

 

  이 이쾌대라는 화가는 일제시대와 해방전후에 활약한,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다.

  이중섭과 같은 시대 인물이며, 일본 유학 중이나 귀국한 후에 이중섭과 같은 단체에서 활약하기도 하는 등 그 당시에는 이중섭만큼이나 유명한 화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술쪽 관련자 또는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중섭은 알아도 이쾌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쾌대가 월북화가로 분류되었다가, 1990년대에야 해금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쾌대란 이름을, 몇 년 전에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을 관람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덕수궁 미술관 및 석조전 (http://blog.daum.net/jha7791/15790476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에는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출품되었기 때문에, 원래 미술쪽으로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은 두 번이나 관람하고도 대부분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기억하지 못 한다. (두 번이나 관람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이 대규모 전시회가 의외로 무료 전시회였기 때문임. ^^)  하지만 이쾌대는 기억한다.  그 시절에 드물게 연애결혼을 했고, 부인과 무척 금슬이 좋아서 여러 그림에 부인의 얼굴을 등장시켰고, 결국에는 해방전후의 극심한 좌우대립 속에서 이쪽 저쪽 헤매다가 월북했던 그의 개인사가 특이했고, 그의 그림 중 몇 점이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에는 이쾌대의 여러 그림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군상 Ⅳ' 과 '봄처녀' 만 소개하려 한다.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에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2인의 초상' 등 이쾌대의 다른 작품도 여러 개 있었지만, '군상 Ⅳ' 과 '봄처녀' 가 가장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두 작품을 그 전시회에서 보지 못 했더라면, 이쾌대라는 작가의 이름 역시 다른 작가의 이름처럼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 깨끗이 사라졌을 것이다. ^^;;

 

 

1948년도 작품 '군상 Ⅳ'

 

  이쾌대의 작품 중 '군상' 이란 이름의 그림이 여러 개인데, 이 그림은 그 중 하나인 '군상 Ⅳ' 이다.

  어떤 화가가 그린 어떤 작품이든 간에,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보는 것보다는 실제로 보는 것이 훨씬 강한 느낌을 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이쾌대의 작품 중 반드시 실물로 봐야하는 것을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이 '군상 Ⅳ' 를 선택하겠다.  이 포스트에 올린 작은 크기의 그림만으로도 역동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흐르는데, 전체 크기가 177×216㎝ 나 되는 실물을 볼 때의 느낌은 정말 굉장하다.  '아~' 하는 감탄사 외에는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작품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에서 막 벗어났지만 혼란스럽기만 했던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일어서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림 오른쪽의 사람들은 바닥에서 몸부림치거나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왼쪽으로 옮겨 그림 가운데를 보면, 사람들이 힘겨워하면서도 일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림 왼쪽에서는, 그림에는 나오지 않는 그림 밖의 어떤 곳을 바라보며 그쪽으로 걸어가려 하고 있다. 

 

 

 

1940년대말 작품 '봄처녀'

 

  이 '봄처녀' 역시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림이다.

  '군상 Ⅳ' 과는 또 다른 의미로,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군상 Ⅳ' 이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자세, 등장인물들의 드러난 근육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면, '봄처녀' 는 등장인물과 배경의 강한 대비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봄처녀' 의 주인공과 배경은 한 그림 속에 같이 담겨져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배경만을 그린 그림 앞에 주인공이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에 구입한 책에는 '근경과 중경을 과감히 생략한 원경의 들녘과 극적인 하늘...' 이라고 설명되어 있던데, 그렇게 주인공과 가까운 배경 없이 먼 배경만 그려진 탓에, 주인공과 배경이 서로 다른 공간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봄처녀' 와 관련해서 한 가지 황당한 일이 있다.

  나는 이번에 구입한 책을 읽기 전까지, 이 그림의 배경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어두우면서도 강렬하게 그린 완만한 산맥의 굴곡은 바다의 넘실거리는 물결로 봤고, 어두운 들판 및 산과 역시 어두운 하늘 사이로 보이는 그림 오른쪽의 커다란 구름은 폭풍우로 크게 일어나는 파도로 봤다. (나 정말로 두 번이나 전시회 다녀온 사람 맞아? ㅠ.ㅠ)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을 두고 '배경인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는 혼란한 해방공간을 나타내고, 저 화려하고 인상적인 처녀는 미래의 희망을 나타내느라 봄처녀인가 보다' 라고 그럴듯한 해석(?)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구입한 책을 읽고서야 배경이 '들녁과 하늘' 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참... ^^;; 

  아마, 주인공이 어두운 배경과는 다르게 밝은 붉은빛 저고리와 흰빛 치마, 세찬 바람 때문에 부풀어오른 듯이 보이는 저고리와 치마, 땋아서 늘어뜨린 풍성한 머리, 배경에서 확 튀어나온 것마냥 두드러져보이는 모습 등으로 강한 인상을 줘서, 배경은 대강 본 모양이다. (...라고 주저리 주저리 변명하는... ^^;;)

 

 

  나중에라도 다시 이쾌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때는 먼저번 전시회처럼 다른 많은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것이 아닌, 이쾌대의 그림만 한 곳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