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나와 깊은 인연 맺은 전자제품 - 上

Lesley 2011. 3. 12. 02:34

 

 

 

  최근에 4년 동안 사용한 mp3 플레이어가 망가져서, 새 것을 구입했다.

  요즘 나온 mp3 플레이어를 보면, 생긴 것만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화려한 모습이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고장난 녀석은 무척이나 투박하게 생긴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쓰던 물건이라 정이 많이 들어 무척 섭섭했다. (흐음... 오래 쓴 물건에 애착이 강해지는 게 노화현상 중 하나라던데, 그럼 나도 이미 노년기에 들어선건가? -.-;;)  생각해보면, 작년 여름에 귀국한 후로, 그 동안 나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녀석들과 차례로 이별을 했다.

  지금에 와서 녀석들에 대해 포스팅 하는 건 좀 뒷북치는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수 년 동안이나 나와 함께 한 녀석들이 아닌가?  내 인생에서 떠나가는 녀석들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 녀석들과의 인연에 대해 써볼까 한다.

 

 

 

 

1. 노트북 컴퓨터(LG X-Note LS50a)

 

 

  먼저 중국으로 어학연수 떠나기 전부터 버벅거리며 애먹이다가, 중국에서는 아예 나를 속터지게 만들었던, 내 인생 최초의 노트북과의 인연을 소개하겠다.

 

 

 

하얼빈 흑룡강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기숙사 책상 위에 놓여있던 LG X-Note LS50a의 모습.

(보라, 요즘 노트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저 고풍스러운(?) 모습을...! -.-;;)

 

 

  내가 처음으로 나만의 컴퓨터를 장만하게 된 게 2005년 3월이었다.

  그 때까지 나와 두 동생이 데스크탑 컴퓨터 하나를 같이 사용했는데, 그러다보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컴퓨터를 장만하기로 했는데, 이왕 사는 거 노트북을 사기로 했다.  이미 컴퓨터를 장만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데스크탑 쓰다가 노트북 쓰니 컴퓨터가 차지하는 공간도 확 줄어들고 복잡하게 이런저런 전선이 얽힐 일도 없고 해서 너무 좋더란다.  또 마침 그 무렵이 노트북이 대중화되던 시기라, 그 전과 비교해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하지만 원래 내가 원했던 것은 저 노트북이 아니라, 삼보의 에버라텍 중 한 모델이었다. ^^;;

  지금은 모델명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즈음해서 삼보의 에버라텍 중 하나가 히트를 쳤다.  중소기업 제품이니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의 비슷한 사양 제품보다 저렴하면서도, 디자인은 그런 대기업 제품보다 훨씬 획기적이었다. (이탈리아의 페라리였나, 하여튼 유명 스포츠카의 형태를 컨셉으로 디자인했다고 했음.)  삼보가 그 무서운 IMF 시대를 맞아 거의 망하다시피 했다가, 그 모델의 대성공으로 기사회생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그걸 사겠다고 갔다가 그만 '헉~~' 했다.  정말 히트작이 맞긴 맞았는지, 삼보 대리점과 이마트의 삼보 매장을 차례로 가봤는데, 양쪽 모두 물건이 달려 예약을 하고 대기해야 한다는 거다.  그것도 며칠 대기하는 거라면 괜찮은데, 최소한 3주일이고 어쩌면 4주일을 넘길 수도 있단다...! ㅠ.ㅠ  뭐에 한 번 삘받으면 빨리 해치워야 하는 내 성격상, 그렇게 오래 기다리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포기하고 열만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가 잠시 멈춰선 틈에 버스 창문 밖으로 LG전자 판매점에 달라붙은 '컴퓨터 특가세일' 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홧김(?)에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려 LG전자 판매점에 들어가서는, 덮어놓고 '제일 저렴한 게 어떤 거에요?' 해서 소개받은 게 바로 LS50a였다. ^^;;  가격은 내가 점찍어놓은 에버라텍의 그 녀석보다 10만원 넘게 더 비싸면서(아마 123만원 또는 124만원이었던 듯...), 사양은 더 떨어지고 디자인도 너무 투박하고...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한 가지 장점, 즉 '당장 우리집에 가져갈 수 있다' 는 점 하나만 보고서 덥썩 구입했다. -.-;; 

 

 

  그렇게 대타로 구입했어도 한 3년 가까이는 만족스럽게 썼다.

  비록 CPU는 원래 사려던 삼보 에버라텍 것보다 떨어지는 셀러론이었지만, 특이하게도 RAM은 당시 상위기종에나 넣어주던 512메가짜리였다. (하위기종은 거의 256매가였으니, 요즘 같으면 지나가는 멍멍이도 거들떠보지 않을 사양...^^;;)  어차피 내가 무슨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또 온라인 게임을 하는 사람도 아니니, 그럭저럭 잘 썼다.

  그리고 우리집이 이사갈 때, 역시나 노트북의 가장 큰 장점, 즉 '이동성' 이 빛을 발했다.  그 전에 이사할 때는 한 덩치하는 데스크탑의 본체와 모니터를 옮기는 것도 일이고, 그것들을 분리하고 대여섯개는 되는 케이블 빼내서 챙겼다가, 나중에 새집에서 다시 합체시키는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노트북은 그냥 가방에 넣기만 하면 되니, 정말 가뿐했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면서 슬슬 한계를 드러냈다.

  애초에 가장 낮은 사양의 제품이었기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인터넷 환경을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요즘이야 나아졌겠지만, 당시는 LG전자가 독자적으로 노트북 만들기 시작한 때라서 LG의 컴퓨터 제조기술이 별로 좋지 않았다.  LG전자가 세계적인 컴퓨터 기업 IBM(지금은 IBM의 컴퓨터 부문이 중국 롄샹(聯想, 영어명 lenovo)으로 전부 넘어감.)과 손잡고 LG IBM이라는 이름으로 노트북 만들며 기술 익히다가, IBM과 결별하고 X-Note란 브랜드로 막 홀로서기 시작한 때였다. 

  그래서 그런가, 다른 건 둘째치고 발열문제가 좀 심했다. (나랑 같은 모델 쓰는 사람을 두 명 아는데, 그 사람들도 발열문제로 미치려고 했음... -.-;;)  노트북 안의 열이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컴퓨터 성능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리고 나중에 중국에 가져간 뒤로는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  그렇잖아도 흑룡강대학의 속 터지게 느린 인터넷 속도만으로도 미칠 지경인데, 노트북 자체도 그렇게 버벅거리니... ㅠ.ㅠ  나중에는 부팅하는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릴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러다가 나와 함께 한지 만 5년 6개월이 되던 작년 9월에 결국 사망했다...!

  버벅거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부팅도 안 되어, 결국 새 노트북을 구입하게 되었다.  중국친구 진쥔에게 이메일로 중국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을 버리고 새 노트북을 샀다고 했더니 '분명히 그 노트북이 네 남자친구와 다름 없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새로운 남자친구 사귀려고 옛 남자친구를 버리다니, 참 잔인하다' 는 답장이 날아오고... ^^;;

  사실은 '옛 남자친구' 를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중고 노트북 매매업체에 내다팔 생각을 했었다. -.-;;  많은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3만원 정도면 대만족이라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내 말을 듣더니 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오래되고 사양이 낮은 노트북을 누가 사가겠느냐며, 팔려면 3만원을 받기는 커녕 그 업체에 3만원을 얹어줘야 할 거란다. ㅠ.ㅠ

  결국 LS50a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못 하고, 내 방의 붙박이장 안에서 푹~~ 쉬게 하고 있다. ^^

 

 

 

 

2. 핸드폰(lenovo 제품, 모델명은 모름. ^^;;)

 

 

  2009년 3월에 하얼빈으로 어학연수 떠나서 구입한 중국 핸드폰이다.

  같은 유학원을 통해 간 사람들 30명 정도가 유학원 직원의 인솔로 핸드폰을 사러 갔다.  대부분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연수받고 떠날 사람들이기에, 무조건 저렴한 것을 찾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간 판매점에서 제일 저렴한 200위안 대의 핸드폰을 구입했다.

  하지만 나, 그리고 나와 어학연수 초기에 친하게 지낸 4명은 399위안짜리 핸드폰을 2위안 깎아서(참 많이도 깎았다~~ -.-;;) 397위안에 샀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너무 저렴한 거 샀다가 나중에 문제 생길까봐 걱정도 되었고, 3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몽땅 똑같은 거 들고 다니는 게 좀 웃길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무슨 암흑가의 조직이냐? -.-;;)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흑백액정 달린 핸드폰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1세기에 흑백이 뭥미...ㅠ.ㅠ) 

 

 

내 이불 위에 눕혀놓고 찍은 모습.

(내가 좀 험하게 썼나, 액정보호필름에 구멍이 뻥 뚫린...^^;;) 

 

 

  하여튼 그렇게 나와 1년 반을 동고동락한 이 핸드폰은, LG전자의 노트북 이야기하며 잠깐 쓴 중국기업 롄상(聯想, 영어명 lenovo)의 제품이다. 

  나중에 귀국한 후에야 알았는데, 알고보니 우리가 이 핸드폰을 구입했을 때는 롄샹이 적자 행진만 하는 핸드폰 사업에서 이미 손을 뗀 후였다.  당시 판매직원들이 이 제품이 이미 특가로 나온 거라 더는 깎아줄 수 없다며 달랑 2위안만 할인해줬고, 나중에 기숙사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래도 그 가격에 이런 제품을 산거면 잘 산거라고 했다.  아마 롄상이 핸드폰 사업 정리하면서 떨이식으로 판매했었나 보다. ^^;;

 

 

  이 녀석도 1월에 내 품을 떠났다.

  하얼빈에서 친하게 지냈던 J씨의 핸드폰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툭하면 불통이었다.  그래서 J씨가 잠시 귀국해서 만났을 때, 어차피 한국에서는 쓸 수 없는 핸드폰이니 J씨에게 줬다.

  그런데 막상 J씨가 핸드폰 갖고 갈 때는,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돌려달라고 할 뻔했다. ^^;;  파란만장했던 하얼빈 생활에서 수업 때도, 밥먹으러 식당갈 때도, 놀러나갈 때도, 공부할 때도, 심지어는 잠잘 때조차 항상 내 옆에 있던 녀석인데...  룸메이트 없이 지낸 나에게는 룸메이트나 다름 없는 녀석이었다.  J씨에게 주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떠나가는 걸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