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경기도

중남미 문화원 탐방

Lesley 2010. 10. 25. 21:26

 

 

  10월 16일, 토요일이었던 이 날 서울 근교에 있는 중남미 문화원을 다녀왔다.

 

 

  사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일산에서 하는 결혼식에 갈 일이 생겨서 거기 가는 김에 함께 다녀왔다.

  원래 아버지가 참석하셔야 하는 결혼식인데, 사정이 생겨 내가 대신 가게 된 것이다.  일산이란 곳이 서울 바로 위에 붙은 곳이지만, 우리집이 서울 동북쪽이기 때문에 서울 서북쪽을 지나 있는 일산은 거리가 꽤 먼 곳이다.  게다가 교통편도 안 좋아서, 한 번만 갈아타자니 좀 둘러 가야 하고, 거리를 줄여 가자니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하여튼 그렇게 교통편도 안 좋고 오가는 시간도 만만찮은데, 어렵게 가서는 결혼식장에 돈봉투만 쓱 내밀고 오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산에 한 번 들릴만한 곳이 있는지 인터넷을 뒤져봤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 문화원...!  ^^ 

 

 

 

 

  중남미 문화원은 이름만 들으면 미국 문화원이나 영국 문화원처럼 중남미의 어떤 국가에서 설립한 문화원일 것 같지만, 뜻밖에도 개인이, 그것도 한국인이 설립한 문화원이다.

  중남미에서 오랫동안 외교관 활동을 한 이복형 대사 부부가, 외교관 생활 도중 수집한 문화재 및 미술품을 가지고 개관한, 국내 유일의 중남미 관련 문화원이라고 한다.  박물관, 미술관, 조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남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과 중남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장신구나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 등이 있다.

 

  중남미 문화원을 대중교통편으로 찾기에는 좀 불편하다. 

  원래는 중남미 문화원 홈페이지(http://www.latina.or.kr)에 나온 대로 3호선 삼송역(절대로 오타가 아님...!  '삼성역'이 아니고 '삼송역'임...!)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 했다.  그런데 이 날 아침에 인터넷 벗님인 KS님과 갑자기 연락이 닿아, 졸지에 중남미 문화원에서 두 사람만의 벙개를 뛰게 되었다.  덕분에 KS님이 몰고 오신 승용차 얻어 타고 편하게 다녀왔다. ^^

  결혼식 있던 곳에서 중남미 문화원까지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거의 도착해서는 길이 어찌나 복잡하던지...  왼쪽으로 막 꺾었나 싶으면, 위로 올라가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고...  주택가와 시장 있는 골목을 요리조리 다녀야 하는데, 나 같은 방향치는 혼자 가면 길 잃어버리기 딱일 정도였다. ^^;; 

 

 

 

(위) 중남미 문화원 입구

      : 오른쪽에 보이는 문은 고양 향교의 입구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중남미 문화원의 매표소.

(아래) 중남미 문화원 정원에서 보이는 고양 향교의 모습.

 

 

  위의 사진에 보이는 중남미 문화원 입구까지 잘 갔건만, 코 앞에 문화원을 두고 그 근처를 헤맸다. 

  그 바로 옆에 있는 고양 향교 때문에 중남미 문화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온통 양옥 투성이인 그 지역에서 한옥으로 된 고양 향교가 떡 버티고 있으니, 향교만 눈에 확 들어오고 바로 옆의 중남미 문화원은 존재감이 희미했다.  게다가 향교 옆에 '~ 교회'. '~ 신학대학' 이라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보니, 우리는 붉은 벽돌로 지어놓은 중남미 문화원을 교회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

 

 

 

중남미 문화원 정원에 서 있는 청동상(양쪽 모두 '라우라' 라는 이름임.) 

 

  이 라우라라는 이름의 여인의 청동상은 미술관 안에도 몇 번 등장한다.

  정원에 있는 것들이나 실내에 있는 것들이나, 각각 크기도 다르고 포즈도 다르다.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두건을 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촬영 금지라 사진 못 찍은 게 좀 아쉬움.)

  중학교 몇 학년 때였나...  미술 선생님이 미술 교과서에 실린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석상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인간의 몸은 똑바로 서거나 앉은 자세로 있을 때보다는 비튼 자세로 있을 때가 훨씬 아름답다고 하셨다.  그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들었는데, 정말 맞는 이야기 같다.

  저 라우라 동상들은 얼굴이 향하는 쪽과 몸통이 향하는 쪽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생동감 있고 당당해 보인다.

 

 

  쓰다보니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의 한 대목이 생각나서, 옮겨보겠다. (이거 혹시 저작권 위반이니 뭐니 하며 걸리는 건 아니겠지... 저 분명히 출처 밝혔습니다~~~~ ^^;;)

 

  여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몸이 더욱 아름다워보이는지를 알고 있었다.  단아한 어깨와 탐스러운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이어졌고, 약간 힘이 들어간 배는 팽팽하게 긴장했다.  한 쪽 다리를 길게 뻗고 뒤쪽 무릎을 굽히자, 부드러운 곡선과 시원한 직선이 얽혔다.

  그것은 온 몸으로 연주하는 우아한 가락과 같았다.  귀로 듣는 가얏고의 가락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몸의 가락이었다...   

 

 

 

정원 한복판에 있는 작은 분수대

 

 

 

(위 왼쪽) 조각공원의 입구

(위 오른쪽) 조각공원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계단과 풀밭의 조각품들.

                 : 계단 윗부분은 더 많은 조각을 설치하는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음.

(아래 왼쪽) 조각공원 입구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항아리로 장식한 벽.

(아래 오른쪽) 항아리로 장식한 벽을 확대한 모습. 

 

 

 

한 건물의 벽을 장식한 태양신 '인티'의 모습. (인티는 잉카 및 그 주변에서 숭배하던 태양신임.) 

 

  이 곳은 서울이나 경기 북부 쪽에 사는 사람들이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딱 좋은 곳이다. 

  아무래도 개인이 설립한 곳이다 보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문화원만큼 규모가 크거나 전시품목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중남미 미술품, 가면, 가구, 생활용품, 장신구, 종교 관련 물품 등을 볼 수 있는 희귀한 곳이어서, 경기도 테마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니 중남미 문화에 관심 많으신 분 또는 뭔가 색다른 것을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한 번 다녀오라 권하고 싶다. (단, 위에도 썼듯이 대중교통편이 조금 불편하다는 점을 생각해서, 승용차 없는 분이 어린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는 것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