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간수(감숙)성

간수성(甘肅省) 여행기를 마치며 / 귀국

Lesley 2010. 8. 23. 09:11

 

 

 1. 문명사회로 귀환하다.

 

  7월 15일, 간난에서 간수성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란저우로 돌아왔다.

  12시 20분부터 반나절 동안 버스를 탔는데, 햇살이 어찌나 뜨겁던지, 차내에 에어컨도 충분히 틀었고 커텐도 쳤지만 답답했다.  그렇잖아도 차멀미 하는 진쥔은 6시간이나 버스 타며 반쯤 정신 못 차렸고...

  저녁 6시 반쯤 버스가 란저우 시내로 들어섰는데... 오, 이럴 수가...!  란저우가 달라 보였다...! @.@  처음 란저우에 왔을 때는 '여기는 한 성(省)의 중심지라면서 그다지 크지 않네. 하얼빈보다 작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간난 다녀왔더니 무척 큰 도시로 느껴졌다.  큰 백화점에, KFC에, 영화관에 있을 거 다 있다.  도로 위에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다닐 뿐, 소나 양이 떼지어 지나가는 모습도 안 보이고... ^^;;  진쥔도 옆에서 '간난 다녀왔더니, 란저우가 엄청 번화하게 느껴져.' 라고 한 마디 했다. ^^

 

  화롄빈관에 방 잡고서, 그 날은 장거리 버스여행으로 지쳐 그냥 푹 쉬었다.

  6일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데 어찌나 상쾌하던지...!! (오오~~~ ㅠ.ㅠ)  뜨거운 물도, 샤워부스도, 양변기도, TV도, 심지어 형광등 마저 전부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랑무스의 유스호스텔에서는 백열등 있는 방을 썼음.)  내가 '우리는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돌아온거야.' 라고 하자, 진쥔이 처음에는 막 웃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맞다고 하고... ^^

 

 

 

 2. 란저우대학 맞은편의 한국식당 - 천리마(千里馬)

 

  다음날인 7월 16일,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하는 이 날 우리가 한 일이라는 게, 한국식당에 가서 고기 구워 먹은 일이다. ^^;;

  랑무스에서도 마오뉴(털소)의 고기가 들어간 햄버거도 먹었고, 위샹로우쓰(魚香肉絲) 같은 돼지고기 요리도 먹었건만, 진쥔은 그런 것은 고기요리로 치지 않고 계속 고기 타령을 했다.  특히나 하얼빈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 자주 갔던 고기집(하얼빈에는 한국식 고기구이집이 제법 있음.)의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며, 계속 고기, 고기, 또 고기... ^^;;

 

  그래서 점심 무렵 숙소에서 체크아웃 한 후,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식당을 찾아 무작정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겨우 두세 정류장이나 지났나...  진쥔이 저거 보라면서 창문 밖을 가르키는데, 한글과 한자로 '천리마(千里馬)' 라고 쓴 한국식당이 있다.  그래서 냉큼 버스에서 내려, 란저우대학 맞은 편에 있는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위) '패션바비큐음식을즐길', '한국의음식문화를맛볼' 이라니, 글을 쓰다가 말았나... ^^;;

(아래 왼쪽) 10위앤짜리 '실크로혼합베르가못트' 와 8위앤짜리 '루끼된장' 은 도대체 뭘까... ㅠ.ㅠ

(아래 오른쪽) '재래식초땅콩'과 '꿀즙대추' 정도면 그래도 양호함.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으니...^^

 

 메뉴판 글씨 잘 볼 수 있도록 텍스트 모드로 찍어 흑백으로 나옴.

 

 

  소고기와 돼지고기, 된장찌개를 시켜 포식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메뉴판을 보니 이게 도대체 무슨...  한국 분위기 내느라 한자로 된 음식 이름 밑에 한글도 쓴 것까지는 좋은데, 죄다 엉터리 이름이다.  아마 인터넷의 번역기를 돌려 그대로 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 한글이 이역만리까지 나가 고생이 많다. (그래, 타국살이라는 게 우리 사람한테만 힘든 게 아니겠지, 너희 글자도 힘들게 사는구나... ㅠ.ㅠ)  보다 못 해 볼펜으로 메뉴판의 글자 몇 개를 고쳤더니, 마침 음식 가져오던 종업원이 나한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

 

 

 

3. 간수성 여행의 시작과 끝 - 란저우역

 

  이번 간수성 여행 중 교통의 요지 란저우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몇 번이나 들렸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가 들릴 때마다 란저우역(기차역)에 커다랗게 붙여놓은 역이름 간판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

 

 

저 '란(兰 : 蘭의 간체자)'자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ㅠ.ㅠ 

 

  처음 란저우에 도착했을 때는 제대로 된 간판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둔황과 자위관 다녀왔더니 큰 태풍이라도 지나가서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자는 어디 갔나 안 보이고 '州'자만 혼자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  그런데 간난에서 돌아와보니 ''자 간판을 새로 매달아놓기는 했는데, ''자 아랫부분의 三이 너무 이상했다.  가운데 획이 가장 짧고, 맨 아래 획이 제일 길어야 하는데, 저런 모양새다 보니 어찌나 어색하던지...  우리는 '여기 란조우시정부가 돈이 없나봐~~ 돈 아끼려고 짧게 했나봐~~'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고... ^^

 

  오후 4시 좀 안 되어, 저 이상한 ''자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가운데, 진쥔과 헤어졌다.

  내가 탈 기차는 시안(西安)행인데 밤 10시 다 되어 출발하기 때문에, 4시 반쯤 청두행 기차 타야 하는 진쥔이 먼저 기차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9월에 베이징 가면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더니, 내 딴에는 진지하게 한 말인데 듣는 사람은 그게 아닌가 웃었다. ^^;;

 

 

 

4. 잃어버릴 뻔한 USB

 

  진쥔을 보내고 기차 탈 때까지 남는 시간을 보내려, 란저우대학 근처의 PC방으로 갔다.

  3시간쯤 있다가 란저우역으로 돌아와 기차시간 기다리며 역사 앞에서 그 날의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PC방 다녀온 부분 쓰다가 PC방에 USB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0-;;  그 USB에는 이번 여행 처음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이 다 들어있었다. ㅠ.ㅠ  

 

  덕분에 간수성 여행 막판에 운동 제대로 했다.

  USB도 걱정되었지만, PC방 다녀오다가 기차 놓칠 수 있다는 것도 걱정되었다.  그래서 뛰다시피 란저우역에서 란저우대학 근처까지 왕복을 했다.  계속 심하게 기침하는 나에게 진쥔이 그냥 긴바지(간난 여행 내내 입은 짝퉁 아디아스 운동복 ^^) 입고 귀국하라고 했었는데, 6일 내내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귀국하기가 좀 그래서 반바지로 갈아입기를 잘 했다.  기온은 낮았지만 간간히 부슬비가 내려 습도가 꽤 높았다.  그런 높은 습도 속에서 급하게 란조우대학까지 다녀왔더니 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히 내가 쓰던 컴퓨터에 USB가 그대로 꽂혀 있어서 되찾았다.

  하마터면 여행 초반부 사진이 몽땅 날아갈 뻔했다. ^^;;  그 날 밤 기차에 오른 후, 진쥔에게서 기차 탔느냐는 문자가 날아왔다.  USB 잃어버릴 뻔한 일을 알렸더니, 보통 그런 경우에는 USB를 못 찾는데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

 

 

 

5. 귀국 / 안녕, 중국...

 

  우리나라 제헌절인 7월 17일,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은 아침 7시 30분쯤 시안(西安)역에 도착했다.

  중국 서북부에서 제일 큰 도시인데다가, 주말이기도 해서 사람이 바글거렸다.  베이징역 빼고는 그렇게 사람 많이 모인 곳은 처음 봤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어찌나 혼잡스런던지...

 

  원래 계획은 이왕 시안에 간 거, 공항까지 가는데 2시간 정도 시간이 남으니 시안성벽에 올라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2004년 첫 중국배냥여행 때 시안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그 때만 해도 시안성벽이 공사 중이라 일부 구간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흑룡강대학의 같은 반 한국아이가 학기 중에 시안을 다녀와서는 공사가 다 끝났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기차가 반 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고, 사람이 워낙 많아 기차역에서 나오며 짐 맡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지, 운동화는 또 비에 젖었 축축하지...  그리고 갖고 있던 인민폐가 부족해서 무조건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야 하는데, 공항버스 정류장 찾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결국 성벽에 올라 둘러보기로 했던 계획은, 공항버스 서는 곳에서 멀지 않은 맥도날드에서 모닝세트 먹는 걸로 대신했다. ^^

 

 

공항버스 서는 곳은 시안역과 제팡판뎬(解放飯店 : 해방반점) 사이에 있는 도로. 바로 저 버스...!

 

 

  그런데 누가 사고뭉치 아니랄까봐, 마지막 순간까지 또 사고쳤다.

  공항에 도착해서 내릴 때 우산을 공항버스에 두고 내렸다...! ㅠ.ㅠ  작년 여름방학 때 J군이 귀국했다가 돌아오면서 사다준 꽤 좋은 우산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허구한 날 지하철에서 파는 5,000원짜리 우산이나 쓰다가 모처럼 생긴 좋은 우산이었건만, 그렇게 중국 떠나기 직전에 잃어버릴 줄이야... ㅠ.ㅠ

  진쥔에게 우산 잃어버렸다고 한탄하는 문자 보냈더니 '우산이 자기 고향 떠나기 싫었던 모양이니(한국 브랜드 달고 있지만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임.) 너무 상심하지 마.' 라는 답장이 날아오고... ^^;;

 

  이 날 시안의 기상여건이 안 좋아, 비행기가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은 2시쯤 출발했다.

  나와 같은 아시아나 비행기 탈 한국 단체여행팀(주로 60대 이상의 어르신들) 중 한 분이 출발시간 기다리며 일행들에게 중국에 대해 강의(?)를 하시는 걸 듣게 되었는데, 이거야 원...  중국에서는 자동차가 있고 없고를 떠나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상류층이라니, 이게 웬 70년대나 통할 이야기란 말인가... (그래도 노인분들은 '아, 그런가...' 하는 표정 짓고 듣고 계시고... -.-;;) 

  그렇게 시간 보내던 중, 드디어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탑승구에 줄 서서 진쥔에게 전화해 짤막하게 인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중국땅과 작별했다.  안녕,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