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언제나 그렇듯이 7시 안 되어 일어나 씻고서 혼자서 아침 산책을 나갔다.
중국생활 하면서 신기한 것 중 하나가, 한국에서는 쉬는 날이면 아침 10시 넘어서까지 늘어지게 자는데, 중국에서는 어지간한 경우 아니면 6~7시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점이다. 이 날도 바로 전날 루얼가이와 탕커에 가서 러얼대초원과 황하구곡제일만 돌아다니느라 파김치 되어 돌아왔건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이 날은 다른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나는 말을 한 번 더 타봤으면 했고, 진쥔은 석양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변한다는 절벽을 자세히 보고싶다며 등산을 했으면 했다. 그래서 전날 루얼가이 가서 잠깐 쉴 때 말타기와 등산에 어떻게 시간을 배분할까 하는 의논도 했었는데... 하지만 내가 산책 나섰을 때 이미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숙소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갔을 때는 아예 장대비로 변했다. 말타기고 등산이고 다 틀린 것이다. ㅠ.ㅠ
전날 온종일 굶다시피 하고 돌아다녔더니 이른 아침인데도 배가 많이 고팠다. 아침 먹으러 숙소로 돌아왔더니, 전날 심한 차멀미로 시달린 진쥔은 여전히 꿈나라 헤매고 있고...
랑무스 유스호스텔의 식당 겸 로비.
할 수 없이 1층의 식당 겸 로비로 가서 혼자 비내리는 것 보고 있었더니, 유스호스텔 주인장과 다른 투숙객이 말을 걸었다.
그 투숙객은 그 날 러얼대초원에 갈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비가 오는 통에 포기했단다. 전날 내가 찍어온 사진을 보며 자기도 하루 더 일찍 와야 했다며 부러워했다. ^^
그리고 주인장에게 유용한 정보를 하나 얻었다. 우리는 랑무스에 란저우행 직행버스가 없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난의 중심지인 허줘(合作)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시 란저우행 차를 탈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인장 말이 낮 12시 20분에 직행버스가 있고, 자신이 예약해 줄 수 있단다. (오~~ 잘 됐네~~ ^^)
다시 방으로 갔더니 진쥔은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
진쥔 깨어나는 걸 더 기다리다가는 굶어죽을 지경이라, 나 혼자 '리사의 카페'('랑무스(郞木寺)(2) - 천장대(天葬臺), 리사의 카페, 랑무스의 풍경 (http://blog.daum.net/jha7791/15790758)' 참조)에 가서 아침을 주문했다. 반쯤 먹었을 때 그 때서야 일어난 진쥔이 그리로 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비 오는데 그 날 어찌 시간을 보낼까 의논하다가, 일단 근처의 약방에 가서 장약(藏藥)을 사기로 했다.
자, 그렇다면 장약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1. 티벳의 전통약, 장약(藏藥)
랑무스에 도착하던 날, 먹던 감기약이 다 떨어져 숙소 근처의 약국에 가서 새로 약을 샀다.
어차피 내가 중국약에 대해 아는 바도 없으니, 그냥 약국에서 주는대로 받아왔는데... 진쥔이 내가 사온 약을 보더니 '이거 장약이잖아?' 했다. 내가 그게 뭐냐고 했더니, 장족(藏族)의 약, 즉 티벳 전통 의술로 만든 약을 장약(藏藥)이라고 한단다.
(위) 내가 산 장약의 상자. 티벳 문자가 써있는 것 보고 좀 신기하게 여겼지만, 그저 중국어 모르는 티벳 사람들 위해 두 가지 문자로 표기한 줄 알았음. ^^;; 설마 장약일 줄이야...
(아래) 약의 성분을 왼쪽에는 티벳 문자로, 오른쪽에는 한자로 표기했음.
진쥔의 말로는 중국의 56개 민족 중 한족과 티벳인들에게만 전통약이 있단다. (한족에게는 우리가 흔히 한약이라 하는 중약(中藥)이, 티벳인들에게는 장약(藏藥)이 있음.)
물론 전통적인 민간약이 아예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나... 내 생각에 진쥔의 말은, 다른 소수민족의 경우에는 의술이니 약학이니 하는 이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와 수준을 갖춘 약이 없다는 뜻인 듯 하다. 하지만 티벳의 장약은 중국의 서부지역에서는 꽤 유명하고, 괜찮은 약만 산다면 효과를 볼 수 있단다. 자신의 어머니도 편두통 때문에 오래 고생하셨는데, 아는 이가 장약을 줘서 복용한 후 효과를 보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티벳으로 여행가는 딸에게 장약을 좀 사오라 하셨단다.
진쥔이 숙소에서 일하는 티벳 아줌마에게 괜찮은 장약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랑무스 사원의 승려들이 하는 약방이 있는데 거기가 괜찮다고 추천하셨다.
그 곳은 내가 장약 산 약국처럼 제약회사에서 대량생산한 약을 파는 곳이 아니라, 즉석에서 조제하는 약을 팔았다. 즉, 약방을 담당하는 티벳 승려가 약 사러 온 이에게 증세를 묻고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생약을 자르거나 빻아서 포장해주거나, 아니면 이미 환(丸)으로 만들어놓은 여러 종류의 약들을 섞어 주는 식이었다. 진쥔이 어머니의 증세를 설명하자, 그 승려가 약을 만들어 주며 복용방법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의사인 어머니가 약 성분에 대해 의문점 있으면 연락해도 되느냐 했더니, 친절히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알려줬다.
친절한 약방 담당 승려에게 인사하고 나오면서, 랑무스에 머무는 동안 그 승려를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BGM : 두두두둥~~~~ 위기감 고조...!)
2. 특명, 아이스크림을 찾아라!
약방을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가 비가 그친 틈에 주위 좀 돌아보자고 나갔는데, 숙소를 나서자마자 그만 사고가 났다.
숙소 앞 계단을 막 내려서는데, 내 뒤편에서 사람이 발 헛디딜 때 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봤더니 진쥔이 비틀대다가 겨우 중심 잡고 서는 게 보였다. 그저 계단에서 발이 미끄러진 거겠지 생각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그런데 진쥔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내 팔을 아플 정도로 꽉 잡고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왼쪽 발목을 또 삔 것이다. ㅠ.ㅠ
내가 흑룡강대학에서 보냈던 첫번째 학기 말에도 진쥔이 발목을 삐어 며칠 고생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테니스 하다가 발목을 삔 후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발목이 말썽이라더니, 평소 안 걷던 애가 여행한다고 열흘 넘게 강행군 한 것이 원인이었나 보다.
끙끙거리며 겨우 숙소 1층 식당에 들어가 앉은 진쥔이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구해다 달라 했다.
가장 좋은 건 얼음으로 발목 찜질하는 건데, 그 곳에서는 얼음을 못 구할거라며 아이스크림도 괜찮다고 했다. 사실 이건 중국에서 생활해 본 적 없는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야 한겨울에도 각 가정이나 음식점마다 냉장고 안에 사각얼음이 있으니까... 하지만 중국에서는 푹푹 찌는 때 아니면 얼음 볼 일 없다. (겨울이라도 기온이 영상인 남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낸 북방의 하얼빈은 그러함.)
어찌되었거나 그 때부터 아이스크림을 찾아 랑무스의 몇 안 되는 구멍가게와 상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없다... 내가 아이스크림 있냐고 물어보면,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없다고 했다. 어떤 회족 아줌마는 이런 날씨에 아이스크림 먹는 건 몸에 안 좋다고 충고하며, 우유를 사서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셨고... (아줌마, 먹으려고 사는 게 아니거든요? ㅠ.ㅠ) 나는 몇 군데를 들려도 아이스크림을 못 구해 점점 초조해지는데, 중국어 못 하시는 어떤 티벳 할머니는 중국어 할 줄 아는 티벳 아줌마를 통해서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일본이니? 중국어는 어디에서 배웠어? 혼자 여기 온거야?' 하고 줄줄이 물어보시고... (아, 정말...! 나는 마음 급해 죽겠는데, 왜들 이렇게 협조를 안 해주셔~~~ ㅠ.ㅠ)
몇 군데 허탕치고서 그냥 돌아가야 하나 더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 갑자기 아침에 들린 티벳 승려의 약방이 떠올랐다.
종합병원은 커녕 작은 동네의원도 없는 랑무스이니, 그 약방이 랑무스에서는 나름 괜찮은 의료시설 역할을 하고 있을 것 아닌가... 환자의 일은 의료시설에 가서 도움 청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방으로 가서 상황 설명했더니, 그 티벳 승려가 나를 회족의 가게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아이스크림이 있긴 했는데, 문제는 죄다 부드러운 콘 종류라는 거... 나는 급한 마음에 그거라도 사려했지만, 그 티벳 승려는 고개를 저으며 그런 건 곤란하고 네모나고 딱딱한 것(즉, 하드 ^^)이어야 한단다.
그러고는 지나가던 티벳 아이 두 명을 불러 티벳어로 뭐라고 말을 하더니, 나보고 그 애들을 따라 가면 아이스크림을 구할 수 있을거란다.
승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아이들과 함께 가며 이야기를 해봤는데, 거의 말이 안 통했다. 나는 그 애들이 초등학교 3학년 한 반 친구라는 것만 알아들었고, 그 애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만 알아들었다. 나는 티벳 아이들 특유의 중국어를 못 알아듣겠고, 그 애들도 외국인인데다가 원래 발음 안 좋은 나의 중국어를 못 알아듣고... -.-;;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가게에 도착해서 하드를 몇 개 사면서 '너희들도 하나씩 골라라. 나를 도와줘서 고마우니까, 내가 살게.' 했더니, 그 말은 정확히 알아듣고 둘이 엄청 좋아하며 한 개씩 골랐다는 점... ^^
그렇게 구한 아이스크림을 가져갔더니, 진쥔은 한 두 개면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이 사왔냐고 놀랐다. (엉?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었나? ^^;;) 그래서 두 개는 찜질하는 데 쓰고, 나머지 대여섯개는 우리가 다 먹었다. (덕분에 랑무스 도착하며 심해진 내 기침이 더욱 더 심해졌음. -.-;;)
결국 이 날은 진쥔이 못 움직여 밖에 못 나가고, 내리 침대 위에 누워 음악 듣거나 잡담 나누거나 잠을 잤다.
3. 유스호스텔의 마스코트, 고양이 형제.
여행자들에게 인기폭발인 새끼 고양이들. ^^
이 새끼 고양이 두 마리는 유스호스텔 난로가 종이박스에서 사는 녀석들인데, 여행자들의 인기를 한 몸... 이 아니고 두 몸에 받고 있다. ^^
여행자 뿐 아니라 지나가던 티벳 꼬맹이들도 이 녀석들 보면 안아보느라 난리고... 새끼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성가신가 은근히 피해다니는데, 유스호스텔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 우리도 랑무스를 떠나던 7월 15일, 어차피 그 전날 삔 진쥔의 발목 때문에 어디 돌아다닐 수도 없어서, 미리 짐 다 싸놓고는 이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랑무스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고양이들과 놀며 보내다가, 낮 12시 20분 차를 타고 란저우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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