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간수(감숙)성

자위관(嘉峪關, 가욕관) - 자위관, 현벽장성(縣壁長城)

Lesley 2010. 8. 9. 00:08

 

 

 1. 자위관(嘉關)행 기차 안에서 벌어진 절도미수(?) 사건

 

  7월 8일 아침, 자위관(嘉關, 가욕관)행 기차에 탑승했다.

  보통 장거리 기차여행의 경우 숙박비라도 아끼기 위해 밤기차를 타는데, 이번에는 일부러 아침 9시 반 기차를 탔다.  여행안내책자에 하서주랑(河西走廊: 란저우에서 둔황에 이르는 약 1,000킬로미터의 사막길을 말함.)의 풍경이 아름다우니, 가급적 낮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둔황으로 오긴 전, 란저우에서 미리 둔황에서 자위관으로 아침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끊었다.  

  하지만 이미 1박 2일 동안 둔황과 둔황 주변에서 질리도록 사막을 봤기 때문에, 우리 둘 다 기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시큰둥한 기분이었다. -.-;;  그래도 사막에 쭉 이어지는 풍력발전소는 볼 만 했다.  둔황으로 갈 때 봤던 것이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

  자위관역까지 가는 동안 사람이 적어서 빈 자리가 제법 많아, 큰 배낭들을 짐 선반에 안 올리고 우리 맞은편 빈 자리에 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빈 자리가 여기저기 있건만, 어떤 아저씨가 굳이 그 자리에 앉겠다며 배낭을 치워달라는 것이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전날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몸이 안 좋은 탓에 곧 잠이 들었다. (귀국 때까지 나를 끈질기게 괴롭힌 감기의 시작...ㅠ.ㅠ)  시간이 좀 흐른 후, 핸드폰 문자가 도착한 소리를 듣고 깼다.  하얼빈의 중국친구 중 누군가 안부 문자 보냈겠지 했더니, 뜻밖에도 바로 옆자리 진쥔이 보낸 문자다.  자신이 곧 화장실 갈텐데, 맞은편 남자가 수상하니 배낭들을 잘 지켜보라는 내용이었다.  진쥔이 화장실 간 사이 그 아저씨는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황당하게도 보던 잡지와 작은 짐꾸러미를 그냥 두고 갔고, 우리가 내릴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상황? -.-;;)

  진쥔은 그 사람이 처음부터 우리의 배낭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배낭에 온갖 색깔의 자물쇠를 달고 다녀서 '저 배낭 속에 비싼 물건이 많이 들어있을 거야.' 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단다.  배낭여행을 몇 차례나 하면서 한 번도 생각 못 해봤는데, 진쥔의 말을 듣고 보니 검은색 배낭에 빨강, 초록, 주황, 파랑 자물쇠가 달려있으니, 정말 눈에 띄긴 띈다. -.-;;  애초에  칙칙한 검은색 배낭을 산 이유가 도둑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검은색 배낭에 알록달록한 자물쇠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으니... (나 혹시 바보? ㅠ.ㅠ)

 

 

 

2. 자위관(嘉關 : 가욕관)

 

  2시 넘어서야 자위관(嘉關)에 도착해서, 숙소부터 잡았다.

  그런데 아침과 점심 죄다 굶어 둘 다 허기져서 제정신도 아니었고, 자위관역 근처의 유일하게 제대로 된 숙소인 철도빈관에는 방이 없다고 하고(평일인데 왜 방이 없을까? -.-;;), 다음 날 아침 타야하는 란저우행 기차표를 미리 사놨기 때문에 무조건 이 날 오후 자위관과 현벽장성(縣壁長城)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도 촉박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생긴 조급함이 우리의 이성을 잠시 마비시켜서, 역 앞에 있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시설 나쁘고 지저분한 초대소(招待所)에 짐을 풀었다.

  나중에 늦은 점심 먹고 자위관 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이해가 안 돼.  어째서 그런 형편없는 초대소를 80위앤(한화 14,400원)이나 주고 선택했지?', '그야 우리가 너무 배고프고 마음이 급해 잠깐 미쳤던 거지,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어.' 등의 말을 주고 받았다. -.-;;   

 

  그런데 자위관 가는 4번 버스 안에서 우리처럼 여행 온 중국 처자를 한 명 만났다.

  우리에게 자위관 가려면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냐고 묻기에, 우리도 처음 가는 길이고 여행자라고 하자, 동행하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 처자는 허난(河南 : 하남)성 난양(南陽 : 남양)에서 왔다는, 막 대학을 졸업한 예비 교사였다.  이미 초등학교에서 실습 비슷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이라는데, 곧 있을 교사자격증 시험 준비 전에 시안(西安 : 서안), 자위관, 둔황 등을 혼자 둘러볼 계획이란다.  광저우(廣州 : 광주), 선전(深 : 심천), 상하이(上海 : 상해) 등 경제적으로 발달한 대도시의 젊은 여자가 혼자 여행 다니는 건 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리고 나와 진쥔이 본받을 점 하나...  그 처자의 여행짐은 정말 단촐해서 약간 커다란 책가방 하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처럼 이미 숙소 잡아 큰 배낭을 숙소에 두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책가방이 전부란다.  10킬로그램 넘게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 우리는 도대체 뭐냐... ㅠ.ㅠ

 

 

웅장하고 늠름한 자위관의 모습. 

 

  자위관은 만리장성 서쪽 끝에 위치하는 관문으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하이관(山海關 : 산해관)을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고 하듯이, 이 자위관은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고 한다.

 

 

(왼쪽 위) 온통 황토와 황토로 된 벽돌로 만든 자위관의 모습.

(왼쪽 아래) 성채 입구의 천정을 보면 황토 벽돌이 질서정연하게 짜맞혀 있는 것이, 과학이 발달하지 못 한 과거에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을까 감탄스러울 정도임.

(오른쪽 위) 3중 성벽으로 구성된 자위관.

(오른쪽 중간) 가운데 성벽 위의 모습.

(오른쪽 아래) 가장 바깥쪽 성벽의 모습.  성벽 밖 벌판은 몽골로 이어지는 고비사막임.

 

  자위관 성벽 위를 돌아다니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아래에서 돌아다니며 구경할 때는 성벽이 하나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3중 성벽이었다. (어쩐지,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성벽이 유난히 복잡한 게 미로처럼 보이더라...)  그것도 3개의 성벽이 제각기 독립되어 있어서, 하나의 성벽에서 다른 성벽으로 옮겨갈 수가 없다.  다른 성벽을 보고 싶으면, 일단 내려가서 다른 성벽으로 통하는 계단을 다시 올라가는 수 밖에 없다.  만리장성이라는 게 북방과 서역의 유목민족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이었던 만큼, 아마도 철저한 방어를 위해 3중으로 만든 듯 했다.  진쥔도 '이렇게 3중으로 만들었으니, 고대에는 성을 하나 함락시키는 게 정말 힘들었겠다.' 하며 감탄하고... 

 

  이 자위관을 중건한 명나라가 얼마나 신경을 썼냐 하면...

  여행안내책자를 보니, 자위관의 설계자에게 벽돌이 얼마나 필요한지 물었는데, 나중에 자위관을 완성하고 보니 정말로 그 설계자라 말했던 벽돌 개수 그대로였다고 한다.

 

  

 

3. 현벽장성(縣壁長城)

 

  어느덧 5시가 넘어 3명(나, 진쥔, 난양에서 온 예비교사)이서 택시 잡아타고 서둘러 현벽장성(縣壁長城)으로 갔다. 

  1980년대 중반 복원했다는 현벽장성은 자위관에서 8킬로미터 떨어진 만리장성의 일부분이다.  흑산(黑山)이라는 이름 그대로 온통 검은색인 산 위를, 이 현벽장성이 한 마리 거대한 뱀처럼 휘감고 있다.  험준한 산 위에 장성이 구불구불 서있는 모습은 베이징의 빠다링(八達嶺 : 팔달령, 베이징 근처에 남아있는 만리장성 중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 관광객이 가장 많이 가는 곳)장성과 비슷하다.  하지만 빠다링장성이 다른 성벽처럼 평범한 큼직한 흰색 벽돌로 만들어진데 비해, 이 현벽장성은 황토를 굳혀 만들었다.  그래서 검은색 산 위를 노란색 장성이 달리는 모습이 강렬한 대비를 이뤄서, 빠다링장성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왼쪽) 여행안내책자 보니, 저 구간이 경사 45도라고 함.  올라가는데 제법 힘듦.

(오른쪽) 그렇게 힘들어도 경관이 너무 멋지고, 때맞춰 저녁 햇살까지 눈부셔서, 장성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랬음. ^^

 

 

검은색 산 위의 노란색 장성, 그리고 산 아래로 펼쳐진 푸른 들판. ^^ 

 

 

영차~~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현벽장성과 그 아래 펼쳐진 들판.

 

  정상에서 이 풍경을 직접 보면, 정말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로 장관이다.

  주위가 온통 사막인데, 저 푸른 들판은 틀림없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지역일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도 놀랍고, 척박한 자연 조건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도 놀랍고... ^^   그저 저 광경의 아름다움을 내 똑딱이 디카로는 반의 반도 담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저 풍경도 아름답고, 정상 주위의 흑산 풍경도 멋있어서, 우리는 이 장성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우리가 이미 투숙한 숙소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니, 더욱 더 내려가기 싫었다. ㅠ.ㅠ  내가 농담으로 숙소로 가지 말고 이 곳에서 하룻밤 자자고 했더니, 진쥔도 담요만 있다면 그러고 싶단다. ^^

 

 

(위) 현벽장성 정상에서 내려가는 계단길. 

(아래) 흑산 위를 달리는 현벽장성. 

 

  졸렬한 똑딱이 디카로는 내가 본 현벽장성과 그 주위 풍경의 아름다움을 절반도 담지 못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어떻게든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슬슬 해가 지려 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더럽고 누추한 숙소로 가야 했다. ㅠ.ㅠ